전쟁 소나기를 겪은 어머니의 이야기
박 일(아동문학가)
1.
다섯 살 때, 한국 전쟁을 보았습니다. 엄마와 논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날개를 활짝 편 비행기가 떼를 지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날아오고 있었습니다. “엄마! 무서워. 어서 엎드려!” 외치던 목소리가 지금도 선하게 들려옵니다. 밤에도 불이 날아다녔습니다. 이 산에서 저 산으로 새처럼 날아다녔습니다. 집을 버리고 도망을 쳤습니다. 언제 불새가 날아와 집을 불태울지 알 수 없으니까요. 자유란 외부에 구속을 당하지 않고 자신의 판단과 의지에 따라 선택하고 행동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자유를 누리며 살고 싶습니다. 홍정화의 동시집 『명태를 타고 온 아이』는 자유를 찾아 내려온 시인 어머니의 생생한 체험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입니다. 한국전쟁은 1950년에 일어납니다. 해방(1945년) 이후 불과 몇 년인데 고향땅을 버려야 했고, 왜 죽음을 무릅쓰며 남쪽으로 내려올 수밖에 없었을까요? 이 동시집은 전쟁의 절망이 아닙니다. 소나기 내린 이후의 햇살이 아름답듯이, 전쟁의 소나기를 겪은 어머니와 그 이후의 푸른 햇살을 보고 있는 손주 세대들을 아우르면서 행복의 세상을 소망하는 기도문 같은 노래입니다. 마음이 아리다가 슬며시 웃음이 흐르기도 합니다. 또한 이 동시집은 시인의 어머니가 겪은 전쟁 체험을 연작시로 엮었습니다. 시인이 존재하는 것도 어머니의 아픈 역사가 가져다준 행운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일기장처럼 간직하고 싶었습니다. 어쩌면 어머니께 드리는 감사 편지이기도 하겠지만, 알뜰한 효도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홍정화 시인! 부산평화방송국에서 PD 겸 아나운서를 지냈습니다. 그는 「엄마 밥」 외 1편으로 제18회(2015) 부산아동문학상 신인상 동시부문에 당선됩니다. 심사평(구옥순, 박선미)은 ‘일상 경험을 무리 없이 시적 형상화 시키는데 성공하였을 뿐만 아니라, 엄마 생각을 깊이 해 볼 수 있는 모처럼의 기회였다. 보편적이면서도 특별한 경험이기에 가슴 뭉클한 감동을 안겨 주었다.’였습니다. 그 동안 동요작사가로 이름을 떨쳤습니다. 제28회(2010) MBC 창작동요제에서 「안녕하세요, 고맙습니다」가, 제18회(2016) 고향의 봄 창작동요제에서는 「꿈꾸는 은행」으로 대상의 영예를 차지하기도 합니다. 금년(2022)에 비로소 부산광역시, 부산문화재단 <부산문화문화예술지원사업>에 선정되어 보조금 지원을 받습니다. 이번 동시집은 첫동시집입니다.
2.
동시집의 제목이 『명태를 타고 온 아이』입니다. 왜 명태를 타고 왔을까요? 명태는 바다에서 사는 물고기입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함경도 경성과 명천에서 많이 잡혀서 북어라고 한다고 적혀있고요. 그러니까 춥고 어두운 곳에서 탈출한 어머니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어머니는 벌써 할머니가 됐습니다. 손주들도 많아졌습니다. 아직도 전쟁이 화재가 되곤 합니다. 손주들이 이걸 놓칠 수 없습니다. 손주들이 취재 경쟁을 벌입니다. 메리디스 빅토리 호를 타고 남하할 때의 그 고통들이 고스란히 찍힙니다. 아직도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입니다. 전쟁이 곁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우리 손주들은 전쟁의 아픔을 겪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열두 명의 어린 기자들 취재 경쟁이 치열하다
손주 1: 열 명이나 되는 가족들이 하나뿐인 화장실은 어떻게 썼나요?
할머니: 똥 시간표를 짰지요 나는 꼴찌라서 기다리다가 아무 때나 쌌지요
손주 2: 열 명이 숟가락 네 개로 어떻게 밥을 먹었나요?
할머니: 손꾸락 다 모아 봐요 백 개나 되잖아요
다 같이: 하하 하하
8남매 중 막내인 외할머니 일흔이 넘어도 계속 막둥이 -「거실 기자 회견」 전문
영화 ‘국제시장’에 흥남철수 장면이 실감나게 그려져 있습니다. 중공군을 피해 피난길에 오릅니다. 10만 4천 명이 흥남부두에 몰려들었습니다. 193척의 군함들이 9만 여 명의 주민들을 남으로 실어 보냅니다. 아직도 1만 4천명이 남았습니다. 어떻게 됐을까요? 이 때 흥남부두에 남아있었던 배는 군수물자를 실러 온 화물선 메러디스 빅토리아호뿐이었습니다. 탑승정원은 불과 60명! 선장은 레오나드 라루! 승조원들은 어서 떠나자고 재촉합니다. 그러나 피난민의 절규와 눈물어린 호소를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결단을 내릴 수 없습니다. 조용히 기도를 올립니다. “하느님! 선하디 선한 저들을 죽음의 땅에 그대로 두고 떠날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기적의 힘을 보여주소서.” 선장은 결단을 내립니다. “1만 4천명을 모두 태워라!” 그러고는 25만 톤의 군수물자와 식량, 물을 모두 바다에 버립니다. 60명의 230배에 달하는 그들을 싣고 3일간의 항해를 합니다. 마침내 거제에 도착합니다. 그날이 1950년 12월 25일! ‘하늘에는 평화, 땅에는 축복’을 외치는 크리스마스였습니다. 하선할 때 5명이 불었습니다. 5명의 아기들이 태어났으니까요. 이 아이들이 자유의 땅에서 살게 되었으니 이보다 ‘따뜻한 마구간’이 어디 있겠습니까? 정말 고요하고 거룩한 밤이었을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기네스북에도 올라있다고 합니다. ‘한 척의 배로 가장 많은 생명을 구한 배’라고. 이 배에 시인의 다섯 살 어머니도 탑승합니다. 어머니 없이 시인의 존재가 가능한가요? 그래서 절절히 어머니의 이야기를 풀고 싶습니다. ‘전쟁과 평화’를 노래하고 싶습니다. 어머니는 이미 할머니가 되었으니까 손주들에게 스토리텔링처럼 들려주는 형식을 취하여 당시의 상황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때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세대들도 공감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신세대의 감각으로 풀어내고 있으니까요. 그러므로 이 시집의 효과는 실로 크고 특별하다 아니할 수 없습니다. 전쟁을 모르는 아이들에게는 자유의 소중함을 소나기처럼 적셔줄 수 있을 테니까요.
그 해 크리스마스 커다란 배에서 선물이 쏟아졌어
눈송이들이 저마다 앉을 곳을 찾는 것처럼
바다에서 태어난 다섯 명 아기들이 처음 땅으로 내려오던 밤
그 섬에는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마구간이 있었어 - 「고요한 밤 거룩한 밤」전문
이 땅에 살고 있는 것은 기적입니다. 그때 배를 놓쳤다면 여기서 살고 있겠습니까? 물 한 모금과 배에 오른 것과 이 땅을 밟은 것을 돌이켜보면 정말 기적 같은 일입니다. 그 기적에 감사하면서 살고 있는 것이 기적처럼 느껴지니까 감사하고 싶은 일이 많아집니다.
물 한 모금이 내 입으로 들어오고
무사히 배에 올라 땅을 밟았다면
지금 내가 여기 있는 것은 기적입니다
-「기적」 전문
북한을 이북이라고 합니다. 북쪽이라는 지역성을 담고 있습니다. 요즘 e-book의 인기가 대단합니다. 북에서 내려왔다고 이북 할머니가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데, 이를 e북 할머니로 표현한 재치는 어떻습니까? 이런 중의적 묘사로 신세대에 걸맞는 감각과 감정을 표현했으니 더욱 돋보입니다.
남쪽으로 피난 온 사람들을 북한 사람이라고 하지 않고 이북 사람이라고 부르지
요즘 e-book이 인기라는데 우리 할머니 세련되셨다
스마트폰 척척 카톡도 척척
역시 e북 할머니 -「스마트한 할머니」 전문
3.
이 동시집은 3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부 ‘거실 기자 회견’은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현재. 화자는 할머니입니다. 2부‘명태를 타고 온 아이’는 피난 당시의 이야기며, 3부 ‘행복 부스러기’는 미래와 희망을 아우르는 현재의 이야기로 화자는 손주들입니다. 전쟁의 아픔만큼 큰 게 있을까요? 그런데 또 있습니다. 오늘도 영식이는 눈이 부어있습니다. 부모의 별거는 이산가족만큼 아픈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생각하면 나는 더 아파도 좋습니다. 등짝을 맞고, 종아리를 맞아 눈물이 나도 말할 수 없는 것은 할 수 없습니다.
엄마한테 등짝 맞아도 아버지한테 종아리 맞아도
나는 말 못 해
오늘도 눈이 부은 영식이 때문에
이산가족이 된 영식이 때문에 -「참아 vs 차마 」 전문
얼마 전에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터졌습니다. 책상 앞에 양복 입은 힘센 정치가들이 모여서 ‘평화 공부’를 안 하고 뭐하고 있냐고 혀를 차고 있습니다. 두 번 다시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전쟁 졸업생 할머니는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피난길에 오른 우크라이나 사람들 텔레비전 속에 있다
양복 입은 힘센 나라 사람들 책상 앞에 모여 있다
평화 공부 미리 좀 해놓지
전쟁 졸업생 할머니 혀를 쯧쯧 -「미리 미리」 전문
역지사지란 처지를 바꾸어서 생각한다는 사지성어입니다. 처지를 바꾸어 생각해 보면 남이 처한 입장을 이해하게 됩니다. 어머니는 피난민의 고통을 알기 때문에 항상 그때를 생각합니다. 1950년 12월의 시린 겨울을 생각합니다. 그래서 따뜻한 국물에 수제비라도 끓여주고 싶습니다.
생각해 봐 너는 피난민이야
따뜻한 국물에 수제비라도 끓여주었으면 병아리 졸고 있는 창고라도 내어주길 바랐겠지
생각해 봐 너희 집에 피난민들이 왔어
물 좀 달라고 아이가 아프다며 울고 있어
1950년 12월 시린 겨울
솜옷을 겹쳐 입은 사람들의 검은 눈물을 떠올려봐
오늘의 사자성어 역 지 사 지 -「쏙쏙 사자성어 1」 전문
4.
햇빛 좋은 날 기다리다가 맑은 날 찍은
너무 눈이 부셔서 모두 찡그린
가족사진 한 장
-「가족사진」 전문
햇살 때문일까요? 가족사진에 그 찡그린 얼굴들! 아닙니다. 피난 때의 고통을 알기 때문입니다. 통일을 기다리는 아이가 있습니다. 통일이 되면 나와 싸운 놈, 우리 누이 괴롭힌 놈, 내 동생 놀린 놈, 큰일 났습니다. 마당에 묻어둔 주먹이 그냥 있지 않을 것 같네요. 그래도 통일을 기다립니다. 슬며시 손을 펴고 악수하고 싶거든요.
동무와 다툰 날 아버지에게 혼나고
주먹 쥐는 법을 마당에 묻어 두었지
급히 피난 오느라 파오지 못했다
통일만 되어봐라 우리 누이 괴롭힌 놈 내 동생 놀린 놈
내 주먹 매운 맛 보여줄 텐데
혹시 미안하다고 하면
슬며시 주먹 펴고 악수할 텐데 -「통일을 기다리는 소년」 전문
밤에도 빛나는 나라가 되면 좋겠습니다. 배고픈 사람이 없어야 환한 세상이 환해집니다. 그래서 물고기를 통해서 점검하고 싶습니다. 배고픈 사람이 누구인지, 별은 물론 똥까지 빛나게 하고 싶거든요.
물고기 밥이ᅠ 야광이면 좋겠다
언제 배고픈지 한눈에 알거야
네가 배부르면 세상도 환하겠지
밤에 화장실 갈 때ᅠ 무섭지도 않겠다
별도 반짝 똥도 반짝
밤에도 빛나는ᅠ 야광 물고기ᅠ -「야광 물고기」 전문
자유와 행복! 홍정화 시인이 추구하고 싶은 가치입니다. 행복은 커지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피난 시절에 모아둔 부스러기 행복들이 지금 이렇게 커졌으니까요. 이 동시집으로 행복 플러스가 되어 더 큰 행복의 세상이 오리라 믿습니다. 또한 싱싱한 시어와 번득이는 재치가 행복의 메아리가 되어 돌아오고 있네요.
할머니가 모아둔 행복은 부스러기처럼 작아서 가지고 다니기 쉽다고 하셨다
작은 떡 얻어와서 동생 입에 넣어주고
꽝꽝 얼었던 손 호호 녹여 주며
피난 시절 가난한 주머니에 하나씩 쌓아둔 행복을 나에게 주셨다
부스러기가 커다랗게 잘 자랐다 -「행복 부스러기」 전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