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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와 망명 물리학자들이 만든 원자폭탄, ‘오펜하이머’로 본 물리학의 역사
By 신혜선·김동희 | 2023년 9월 4일 | 기획 · 연재, 미분류
“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도다”. ‘맨해튼 프로젝트’의 총책임자였던 오펜하이머의 생애를 다룬 영화 ‘오펜하이머’가 지난 8월 15일 개봉했다. 영화는 성공적이다. 개봉 2주 만에 관람객 252만 명(9월 1일 기준)을 기록하며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전쟁을 끝낸다는 명분으로 만들어진 핵폭탄은 지상의 최고 무기가 됐다. 핵폭탄 등장의 공은 나치와 한 무리의 물리학자들이다. 핵 개발을 초기에 착안한 것은 나치였으나, 나치의 전체주의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간 당대 유럽의 모든 과학자의 실력이 총화된 결과물이 바로 원자 폭탄, 수소 폭탄 등 핵폭탄인 것이다. 이론물리학자 김현철 인하대 교수가 영화 ‘오펜하이머’에서 그린 핵폭탄 개발 역사를 (물리)과학사의 관점에서 풀었다. 일본 오염수 방류에 대한 걱정은 덤이다. [편집자 주]
✔ 이론물리학자 김현철 교수의 영화 ‘오펜하이머’ 해설
✔ 원자 폭탄, 수소 폭탄은 정치인들이 만들어 낸 단어?
✔ 마리 퀴리부터 아인슈타인까지… 영화 속 물리학자
✔ ‘리틀 보이‘와 ‘팻 맨‘… 일본에 떨어진 두 개의 폭탄
✔ 핵 오염수 속 세슘·스트론튬, 완벽한 처리는 어려워
‘맨해튼 프로젝트’의 총책임자였던 오펜하이머의 생애를 다룬 영화 ‘오펜하이머’가 지난 8월 15일 개봉했다. 이론물리학자 김현철 인하대 교수가 영화 ‘오펜하이머’에서 그린 핵폭탄 개발 역사를 (물리)과학사의 관점에서 풀었다. (사진: 셔터스톡)
신혜선: 오늘 메디치 초대석에서는 장안의 화제인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펜하이머’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오늘 모신 분은 이론 물리학자이신 인하대학교의 김현철 교수님이십니다. 물리학과 이론 물리학은 뭐가 다른가요?
김현철: 물리학은 크게 이론 물리학과 실험 물리학으로 나눕니다. 이론 물리학은 말 그대로 원리나 가설을 토대로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 내는 것에 중점을 둡니다. 반면 실험 물리학은 실험하고 그 결과를 분석해 연구를 진행합니다. 사실 뉴턴 때만 해도 구분이 없었습니다. 제 생각에는 2차 세계대전 전후로 물리학이 둘로 나뉜 것 같습니다.
신혜선: 굳이 왜 나누나요?
김현철: 혼자서 다 할 수 없으니까요. 이론 물리학자는 세렝게티 평원의 치타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치타가 사냥할 때 혼자 하잖아요. 물론 이론 물리학은 대개 혼자서 연구합니다. 실험 물리학은 태평양의 돌고래 떼들처럼 무리를 지어 정어리를 사냥합니다. 실험물리학자는 그렇게 연구합니다.
<피렌체의 식탁>과 인터뷰하는 이론 물리학자 인하대학교 김현철 교수. (사진: 백범선)
이론 물리학=치타의 외로운 사냥 vs 실험 물리학=정어리 떼 사냥하는 돌고래들
신혜선: 물리학자로서 ‘오펜하이머’ 영화, 10점 만점에 몇 점 주시겠어요?
김현철: 만점 주고 싶은데요. 한 가지 때문에 9점을 줬어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CG(computer graphics)를 전혀 안 쓰잖아요. 2차 세계대전 당시 원자 폭탄의 버섯구름이 올라가는 장면이 찍힌 사진이 있거든요. 영화에서 구현한 모습은 당시 찍힌 사진과 좀 달라요. ‘원자 폭탄이 조금 더 장엄했더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했죠. 그 외에는 ‘어떻게 영화를 이렇게 잘 만들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완벽했던 영화입니다.
신혜선: 원자 폭탄과 핵폭탄, 어떤 것이 맞는 용어인가요? 차이가 없나요?
김현철: ‘원자 폭탄’, ‘수소 폭탄’이라고 부르는데, 상당히 정치적 단어입니다. 원래대로라면 원자 폭탄은 ‘핵분열 폭탄’, 수소 폭탄은 ‘열핵 폭탄’이라고 불러야 해요. 핵폭탄을 보통 ‘Thermonuclear bomb’이라고 하거든요. 정확히는 핵융합 폭탄인데, ‘핵’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어감이 안 좋은가 봐요. ‘수소’라든가 ‘원자’라든가 하면 그렇게 위험해 보이지 않잖아요. 실제로는 엄청나게 위력이 있는 폭탄임에도 정치가들이 새로운 단어를 내놓은 거죠.
물리학자 옆에 물리학자
신혜선: 과학사에서 오펜하이머에 대한 평가는 어떻습니까?
김현철: 물리학자에 대한 전형적인 편견이 있잖아요. 미국 시트콤의 ‘빅뱅 이론(The Big Bang Theory)’을 보면 물리학자들은 과학 외적인 분야에서는 멍청해 보이잖아요. 하지만 오펜하이머는 물리학만 잘한 게 아니라 언어나 문학 등에도 조예가 깊었어요.
신혜선: 영화에 엄청난 과학자들이 등장해요. 영화에서 그렇게 많은 과학자가 나온 건 처음인 것 같아요.
김현철: 과학자라고 하지 마시고 물리학자라고 해주세요(웃음). 그렇게 많은 물리학자가 나오는 영화를 언제 또 보겠어요. 보면서 가슴 뜨거웠습니다. 당시 물리학자가 관여할 수 있는 프로젝트가 2개가 있었는데 하나가 제2차 세계대전 때 맨해튼 프로젝트였고 다른 하나가 레이더를 개발하는 것이었습니다. 레이더가 되게 중요한 기술이었거든요. 맨해튼 프로젝트에 적극 참여한 분 중에 많은 수가 유대인이었어요. 한스 베테, 에드워드 텔러 다 유대인이죠.
신혜선: 아이러니하게도 나치가 아니었으면 그런 무기도 한참 뒤에 나왔을 수도 있겠네요. 교수님은 어떤 물리학자를 제일 좋아하세요?
김현철: 이론 물리학자 100명이면 100명이 다 이렇게 대답할 것 같아요. 말할 필요도 없이 아인슈타인이죠. 물리를 전공하게 된 동기가 아인슈타인이었던 분이 많이 계실 거예요.
아인슈타인(왼쪽)과 오펜하이머. (사진: 위키백과,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Einstein_oppenheimer.jpg#/media/File:Einstein_oppenheimer.jpg)
과학 법칙이 폭탄이 되기까지, 시작은 마리 퀴리!
신혜선: 그때까지 증명된 과학의 법칙이 폭탄으로 구현되기 전까지 많은 이론이 수정되고 등장했을 것 같은데, 역사를 좀 말씀해주세요.
김현철: 역사가 좀 길어요. 마리 퀴리는 19세기 말에 라듐이라든가 폴로늄 같은 방사성 물질을 발견하죠. 마리 퀴리의 발견은 물리학적으로 큰 의미가 있었어요. 마리 퀴리가 방사성 물질을 발견한 다음부터 후속 연구가 따라와요. 그래서 등장하는 인물이 어니스트 러더퍼드죠.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의 캐번디시연구소에서 주로 연구했는데, 어니스트가 거기서 방사성 연구를 하고 캐나다 맥길대학에서 교수가 돼요. 캐나다 맥길대학에서는 프레더릭 소디라는 화학자와 함께 연구해요. 러더퍼드는 물리적인 데 관심이 있었고, 프레더릭 소디는 화학적인 데 관심이 있었죠.
근데 소디가 이런 얘기를 해요. ‘원자에서부터 엄청난 에너지를 끄집어낼 수 있다.’ 왜냐하면 원자의 존재를 알았고 거기서 나오는 감마선과 같은 에너지가 굉장히 세다는 걸 알았기에, 그 에너지를 끄집어내면 정말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는 거죠. 하지만 어니스트 러더퍼드는 ‘핵에 있는 에너지를 실제로 끄집어내 쓰는 것은 불가능하다’라고 해요.
제가 러더퍼드의 논문과 책을 읽으면서 느낀 건, 러더퍼드는 그 위험성을 알았던 것 같아요. 핵에 있는 에너지를 끄집어내지 못하도록 불가능하다고 얘기한 게 아닌가 싶어요.
핵폭탄을 만들 수 있는 물리학의 법칙이 나온 건 원자 폭탄이 나오기 6년 전인 1939년입니다. 이탈리아계 미국 이민자의 자랑인 엔리코 페르미는 이론 물리학을 먼저 했어요. 이분은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데(1938년) 이론 물리학과 실험 물리학을 노벨상을 함께 잘한 마지막 물리학자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자연에 존재하는 네 가지 근본 힘에는 중력, 전자기력, 약력, 강력이 있어요. 페르미는 이 가운데 약력(약한 핵력, 원자핵의 붕괴에서 나타나는 짧은 거리에서 작용하는 힘)을 최초로 발견한 분이에요. 그런데 그 논문은 네이처에 투고했다가 너무 추상적이라고 거절당했어요. 그 논문은 다른 데 실렸죠. 약간의 상상력을 더해보면 페르미가 아마도 마음이 상한 것 같아요. 네이처에서 거부당하고 “이론 물리학 안 해. 실험 물리학 할 거야”. 실험 물리학으로 실제로 돌아서요.
신혜선: 그래서 그 프로젝트에 실제 참여했죠.
김현철: 실험 물리학을 본인이 직접 해요. 1932년 러더퍼드의 제자인 채드윅이 중성자를 발견합니다. 원자핵에는 양성자와 중성자가 있는데, 중성자에는 전하가 없어요. 양성자는 양의 전하를 갖고 있고. 알파 입자(헬륨)에도 양전하가 2개 있어요. 양전하는 서로 밀어내는 힘이 있어요. 그러니까 원자에 깊숙이 들어가지 못하는데, 중성자는 깊이 들어갈 수 있는 거예요. 엔리코 페르미가 그걸 가지고 실험을 해서 유명해져요. 본인은 초우라늄을 발견했다고 여기고 그게 핵분열인지 정작 몰랐지만, 그게 핵분열의 시작입니다.
그런데 우여곡절이 있었어요. 베를린에 있던 리제 마이트너와 오토 한이 페르미가 했던 실험을 반복하면서 확인했어요. 리제 마이트너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유대인이었는데, 1938년 오스트리아가 독일에 합병되잖아요. 그러면서 리제 마이트너가 탈출해서 스웨덴으로 갑니다. 오토 한은 슈트라스만과 실험을 계속했어요. 다만 리제 마이트너처럼 물리학적 통찰력이 있는 사람들은 아니라, 우라늄은 온데간데없고 바륨이나 크립톤같이 원자 수가 작은 원자핵들을 발견한 거예요. 그래서 오토 한이 리제 마이트너한테 논문을 보내서 도움을 청해요.
리제 마이트너는 당시 스웨덴에 있었는데, 오토 프리슈라는 조카도 함께였어요. 둘이 산책을 나가서 논문 이야기를 시작했죠. 그러다 그루터기에 앉아서 계산을 해보니, 공이 진동을 하다가 둘로 딱 분열하는 그림이 나와요. ‘이건 핵분열이다’. 리제 마이트너하고 오토 프리슈가 결정을 하죠.
프리슈는 닐스 보어와 친분이 있었고, 닐스 보어 연구소에 갑니다. 닐스 보어는 며칠 뒤에 미국에 가는 일정이 있었어요. 프리슈는 닐스 보어에게 자기들이 발견한 사실을 얘기해 주면서 ‘아직 논문 출판을 안 했으니 절대로 남한테 아직 얘기해 주지 말라’고 그러거든요. 그런데 닐스 보어가 같이 미국으로 가는 로젠펠트한테 이야기를 해줘요. 그런데 이게 비밀이라는 얘기를 안 한 거예요. 미국에 도착해서 로젠펠트는 리처드 파인먼의 스승인 존 휠러한테 얘기해서 알음알음 퍼지기 시작하죠.
물리학자들이 딱 보니까 여기서 엄청난 중성자도 나오고 에너지가 대단하거든요. ‘핵폭탄으로 쓸 수 있겠다’ 생각하죠. 그런데 연쇄 반응이 있어야 하는데, 연쇄 반응이 가능할 거라고 예측한 사람이 레오 실라르드입니다. 아인슈타인을 설득해서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원자폭탄 개발하라는 편지를 쓰게 했던 사람이죠. 그게 1939년까지 8월까지의 이야기입니다. 핵폭탄 만들어지는 데 딱 6개월에 6년밖에 안 걸린 거죠.
신혜선: 영화에 나오지만 ‘맨해튼 프로젝트’를 위해서 사막 위에 마을을 하나 만들잖아요. 13만 명이 관여했다고 하는데, 비용은 얼마 정도 들었나요?
김현철: 당시 20억 달러. 오늘날로 환산하면 240억 달러입니다. 우리나라 돈으로 30조 정도 되겠네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무기 개발에 가장 많은 돈을 쓴 게 맨해튼 프로젝트죠.
신혜선: 실험 이후에 마을은 그대로 유지가 됐어요?
김현철: 로스앨러모스 연구소는 지금도 있어요. 뉴멕시코주의 산타페에서 학회가 있어서 근처에 가봤는데, 경치가 좋지만 황량한 기분이 들었어요. 현재 로스앨러모스 연구소에서는 원자력과 관련한 분야 외에도 다양한 첨단 과학 분야의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어요.
미국 뉴멕시코주에 있는 로스앨러모스 연구소. 로스앨러모스 연구소는 2차 세계대전 당시, 핵폭탄을 처음으로 개발한 비밀기지였다. (사진: 위키백과,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Los_Alamos_aerial_view.jpeg#/media/파일:Los_Alamos_aerial_view.jpeg)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핵폭탄… ‘메가톤’ 수소 폭탄이 아니기에 망정이지
신혜선: 실험 끝나고 폭탄이 투하됐는데요. 폭탄에 ‘리틀 보이’, ‘팻 맨’ 이런 별칭이 붙어요. 왜 이런 이름을 붙이는지, 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폭탄은 어떤 차이가 있나요?
김현철: 히로시마에 떨어진 폭탄은 ‘리틀 보이(Little Boy)’, ‘작은 소년’이란 뜻이죠. 나가사키에 떨어진 건 ‘팻 맨(Fat Man)’ ‘뚱뚱한 남자’죠. 이런 이름을 붙인 사람은 ‘로버트 서버’라는 이론 물리학자입니다. 리틀 보이는 총알식으로 되어있어요. 임계질량 이하의 우라늄 2개가 화약 폭발로 하나의 우라늄이 되면 임계질량을 넘어요. 그 임계질량이 50kg 정도 됐다고 그래요. 50kg 이상 되는 우라늄이면 핵분열을 시작하죠.
나가사키에 떨어진 팻 맨은 내파 방식을 이용한 거예요. 바깥에 플루토늄을 두고 안에도 플루토늄을 둡니다. 플루토늄은 다루기가 상당히 힘듭니다. 온도에 따라 물이 얼음이나 기체가 되는 걸 ‘상전이’라고 하는데, 그런 상전이가 상당히 복잡한 금속이에요. 팻 맨은 바깥에 있는 것들이 터지면서 안으로 몰리게끔 해서 임계질량을 넘어서게 하는 거죠.
신혜선: 수소 폭탄은 또 어떤 차이가 있나요?
김현철: 아까는 핵분열이고 수소 폭탄은 핵융합을 이용하는 거죠. 핵분열은 중성자만 때려도 연쇄 반응을 할 수가 있는데, 핵융합은 어려워요. 중양자는 양전하를, 다른 중양자는 다른 양의 전하를 가지고 있으니까 서로 밀칠 거 아니에요. 그 밀치는 힘을 이겨내려면 온도가 무척 높아야 해요. 1억℃ 정도 돼야 합니다. 온도는 핵분열로 높여요. 원자 폭탄을 먼저 터뜨려 고온을 얻은 다음 핵융합을 시작하게 하는 거죠. 그래서 폭발할 때도 1단계, 2단계로 나뉘어져 있어요.
신혜선: 그러면 왜 ‘수소’라는 이름이 붙은 건가요?
김현철: 중수소를 쓰니까 수소 폭탄이라는 말을 쓰긴 하는데, ‘수소 폭탄’ 하면 좀 덜 위험해 보이니까요. 열핵폭탄이라는 말을 쓰는 게 정확해요.
신혜선: 그럼 원자 폭탄이 수소 폭탄 안에 들어가 있는 개념이네요.
김현철: 네. 수소 폭탄이 위력은 천배 만배 더 되죠. 수소 폭탄이 일단 메가톤급이에요. 10메가톤 그러니까 20kg에서 천 배 이상 되는 거죠.
신혜선: 일상이나 언론에서 ‘메가톤급’이라고 비유하는데, 수소 폭탄이 터지는 단위네요.
김현철: 그런 표현을 안 쓰는 게 좋아요. 보통 사람들은 그 위력을 잘 몰라서 그래요.
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 당시 모습. (사진: 연합뉴스)
일본 오염수 방류의 진짜 문제… 감시 핵종, 모두 제거됐는지 알 수 없어
신혜선: 체르노빌이나 일본 후쿠시마 같은 경우에는 폭탄에 의한 건 아닌데 엄청난 피해를 봤죠.
김현철: 원자 폭탄과 원자로의 차이는 하나예요. 연쇄 반응을 천천히 일어나게 해서 우리가 필요한 에너지로 제어할 수 있게 하면 원자로, 한 번에 확 일어나게 해서 터지면 원자폭탄.
개인적으로 원자력 발전의 안전에 대해서는 그다지 걱정하지 않습니다. 물론 사람이 실수하면 문제가 생길 수는 있습니다. 다만 가장 큰 고민거리는 고준위 핵폐기물이에요. 고준위 핵폐기물은 처리가 곤란하거든요. 원자력을 이용해서 에너지를 쓴다는 건 그 위험을 우리 후세대에 넘긴다는 거거든요. 그런 걸 고민해봐야죠.
신혜선: 일본이 방류를 시작한 핵 오염수는요?
김현철: 일본 오염수에는 중수소만 들어있는 게 아니라, 세슘 137이나 스트론튬 90도 들어있어요. 세슘 137에서는 감마선이 나오고 반감기가 30년입니다. 스트론튬 90은 반감기가 대략 29년인데, 스트론튬 90은 칼슘하고 화학적으로 거동이 똑같아요. 뼈로 갑니다. 뼈에서 계속 방사선을 내뿜으면 어른은 모르겠지만 애들한테는 안 좋아요. 애들이 마시는 우유에 다 들어가잖아요. 스트론튬 90하고 세슘 137은 우리나라에서도 감시 핵종이에요. 그런데 그걸 다 걸러내고 중수소만 버린다고 하는데, 이걸 완벽하게 100% 처리하느냐에 대한 확신이 없어요. 감시 핵종들이 바닷속에 들어가면 20~30년 동안 축적되잖아요. 그걸 정상적이라고 얘기하는 건 잘못된 거죠.
핵전쟁은 지구 공멸… 방사능 외에도 닥쳐올 ‘핵겨울’이 문제
신혜선: 에너지 자원으로 쓰기 시작한 건데, 위험성이 있고 전쟁 무기로도 활용되고 있습니다. 지금 핵폭탄을 보유한 국가는 수소 폭탄도 갖고 있다고 봐야겠죠?
김현철: 그렇죠. 미국,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 인도, 파키스탄, 북한도 넣어야지 될지 모르겠고 이스라엘은 가타부타 얘기를 안 하니까 아마 이스라엘까지 쳐야 되지 않을까 싶어요.
『코스모스』를 쓴 칼 세이건이 동료들하고 ‘뉴클리어 윈터(Nuclear winter)’라는 가설을 발표했어요. 중국과 인도에 핵전쟁이 벌어지면 1년 후 세계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공멸이에요. 왜냐하면 원자 폭탄이랑 수소 폭탄이 터지면 방사선도 방사선이지만 일단 먼지가 위로 올라가요. 어마어마한 흙먼지들이 위로 올라가서 태양광을 차단합니다. 햇빛이 안 비치니 대지는 차가워지죠. 그렇게 해서 오는 걸 ‘뉴클리어 윈터’라고 그래요. 핵겨울이죠. 그렇게 되면 온도가 급격하게 떨어지고 농사를 지을 수 없어, 결국은 인간은 서서히 멸망의 길로 들어선다는 내용입니다. 핵전쟁은 절대 안 됩니다.
칼 세이건이 동료들과 발표한 가설에 따르면, 핵전쟁이 벌어질 경우 지구의 온도가 급격하게 떨어지고 농사를 지을 수 없어, 결국은 인간은 서서히 멸망의 길로 들어서는 ‘핵겨울’에 이르게 된다.
신혜선: 알겠습니다. 영화 보면서 ‘선택’이라는 단어가 떠나지 않더라고요. 살면서 무언가 선택하라는 요구를 계속 받잖아요. 정치하는 사람이 아니라 과학자인데도 정치의 영역에 관여하게 되고, 군인이 아닌데도 전쟁의 영역에 상관하게 되잖아요. 선택의 책임은 본인이 져야 한다는 거죠. 교수님이 만일 그 시대의 과학자였다면 어떤 선택을 하셨을 거 같아요?
김현철 : 하하, 저는 아마 레이더 개발 쪽으로 도망갔을 거 같습니다.
대담=신혜선 미디어본부장
정리=김동희 피렌체의식탁 에디터
사진=백범선 메디치tv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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