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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2월 17일 온고을교회 수요예배설교-황의찬목사
시내산 현현
출19:16~25
<미운 일곱 살>
옛말에 ‘미운 일곱 살’이란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이 무슨 뜻입니까?
어린아이는 누구나 다 귀엽고 깜찍하고 예쁩니다. 그런데 이 아이가 점점 자라서 일곱 살 쯤이
되면 서서히 미운 짓을 시작합니다. 조금 컸다고 제 멋대로 하려고 고집을 부리고, 잠깐 한 눈을
팔면 엉뚱한 짓을 저지릅니다. 그 나이가 일곱 살쯤이기 때문에 ‘미운 일곱 살’그럽니다.
그런데 세월이 가면서 아이들의 성장속도가 빨라졌습니다. 그래서 ‘미운 다섯 살’까지로 내려왔
다고 합니다. 다섯 살만 되면 이미 미운 짓을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를 보는 어른들이
자라나는 아이를 보면서, 요놈이 서너 살 때에 하는 귀여운 짓을 계속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간혹 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 생각은 대단히 위험한 생각이지요? 애기 보는 어른 좋으라
고, 아이의 성장이 서너 살에서 멈춰버리면 그것은 대단히 심각한 일입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성장을 시작합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한 평생을 살다가 죽는 순간까지 쉬
지 않고 성장해야 합니다. 여기서 ‘성장한다.’는 말을 다른 말로 바꿔보면 어떻게 될까요?
그것은 ‘변한다.’입니다.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쉬지 않고 변해야 하는 존재입니다.
잠시라도 변화가 멈추면 어찌 됩니까? 그것은 정상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육체도 변해야 합니다. 정신도 변해야 합니다. 마음도 변해야 합니다. 영혼도 변해야 합니다.
아이가 여덟 살이 되면 학교에 보내는 이유도? ··· 변하라고 보내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만나게 하는 이유도? ··· 그 사람을 만나서 변화하고, 성장하라는 것입니다.
유학을 보내고, 여행을 보내는 이유도? ··· 그 경험을 통해서 변하라는 것입니다.
<변화의 세 가지 측면>
우리가 변화 혹은 성장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해 볼 것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우리가 어디까지 변화하고 성장할 것인가의 문제가 있습니다.
둘째는 변화와 성장의 목표를 위해 어떤 기회를 가져야 하는가의 문제입니다.
셋째는 변화의 다양성에 대한 문제입니다.
① 어디까지 변화하고 성장할 것인가?
지금 캐나다의 벤쿠버에서는 동계 올림픽이 열리고 있습니다.
한국선수단이 대단히 선전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금메달 세 개, 은메달 한 개를 땄습니다. 대
단합니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것은 모든 운동선수들의 꿈입니다. 모든 운동선수들이 성장
하고자 하는 목표지점이 바로 올림픽 금메달입니다.
그러나 이 선수들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다고 해서 인생의 목표를 달성한 것은 아닙니다. 올
림픽을 따고 나서도 이들이 살아가야 할 인생의 여정은 많이 남아있습니다.
도대체 사람들이 변화하고 성장하기 위한 최종 목적지는 어디입니까?
이거 생각해 보셨습니까?
② 변화와 성장의 목표 달성을 위해 어떤 기회를 가져야 하는가?
운동선수들은 금메달을 따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열심히 훈련을 해야 하는 것은 기본입
니다. 문제는 훌륭한 스승을 만나는 일이 중요합니다.
김연아 선수는 ‘브라이언 오셔’라는 캐나다 사람인 코치를 만나서 훌륭한 선수가 될 수 있었습니
다. 이변이 없는 한 김연아 선수는 아마 금메달을 따겠지요. 그러나 김연아 선수도 언제까지 피겨
스케이팅 선수로 살아갈 수만은 없습니다. 김연아 선수도 새로운 변화와 성장을 위한 목표를 가
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새로운 기회를 가져야 합니다.
어떤 기회를 가져야 합니까?
여러분들은 변화하고 성장하기 위해서 어떤 기회를 만들고 있습니까?
③ 변화의 다양성
세 살짜리 귀여운 아이가 미운 일곱 살이 되는 것도 변화입니다. 또 소년이 장성하여 어른이 되
는 것도 변화입니다. 변화는 많습니다. 어린 시절 부모님 말씀을 잘 듣던 아이가 사춘기를 지나면
서 가출하고, 부모 속을 썩이는 아이로 변화하는 일도 허다합니다. 또 반대로 속을 썩이던 자식이
어느 날 개과천선하고 효자가 되는 변화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가장 큰 변화를 어떤 변화라고 말합니까?
우리말에 ‘개천에서 용 났다.’는 말이 있습니다. 개천에 살던 지렁이가 나중에 용이 되었다는 것
을 대단히 큰 변화라고 이야기합니다.
도대체 어떤 모습에서 어떻게 변하는 것이 인생의 궁극적인 변화인가?
여러분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① 우리가 어디까지 변화하고 성장할 것인가?
② 변화와 성장의 목표를 위해 어떤 기회를 가져야 하는가?
③ 변화의 다양성 즉, 변화 중의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인가?
이 세 가지의 질문에 대한 답이 오늘 본문 속에 들어있습니다. 이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대답을 세
글자로 대답할 수 있습니다. 그 대답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 『하 · 나 · 님』
① 우리가 어디까지 변화하고 성장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어디서라도 들어본 일이 있습니까?
세상에서는 “사람이 되어라!”는 말을 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틀리지 않습니다.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태어날 때 이미 사람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도 ‘사람이 되어라’고 합니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사람이 되는 것, 이것이 우리가 변화하고 성장해야 할 목표입니다.
성경에서는 무엇이라고 말씀할까요?
엡4:13『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
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성경에서도 같은 말을 합니다. 온전한 사람을 이루라
온전한 사람이 되는 것을, 에베소서에서는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라 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목표지점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입니다.
② 변화와 성장의 목표를 위해 어떤 기회를 가져야 하는가?
변화와 성장의 목표가 분명해졌습니다. 온전한 사람을 이루라
온전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기회를 가져야 합니까?
사람이 사람 되기 위해서 취하는 방법은 수없이 많습니다.
학교 교육을 받아야 하고, 훌륭한 스승을 만나야 하고, 좋은 친구를 사귀어야 하고, 좋은 직장을
가져야 하고 등등 수없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런 방법을 다 동원해도 사람이 사람 되도록 하지 못
한다는데 인류의 문제가 있습니다. 이것이 세상의 문제입니다.
어떤 기회를 가져야 합니까?
좋은 학교, 좋은 스승, 좋은 친구, 좋은 직장, 다 좋지만, 결정적으로 사람이 사람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누구를 만나야 한다고요? ··· 하나님~
이것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은 로또에 당첨되어야 한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야
한다. 땅을 사두어야 한다. 아파트를 사두어야 한다. 주식을 사두어야 한다. 온갖 방
법을 다 동원합니다. 그러나 이런 모든 것들로는 사람이 사람 되게 하지 못합니다.
/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 우리는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 우리는 성령님을 만나야 합니다. 할렐루야~
우리가 주님을 만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주님을 영접해야 합니다. 주님이 지금 문 밖에서
문을 두드리고 계시는데, 우리가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그 분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 어서 들어오십시오!”하고 맞아들여야 합니다.
<출애굽기 19장>
오늘 본문 출애굽기 19장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만나는 장면입니다. 성경책은 사람들
이 주님을 만나는 이야기들로 가득한 책입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출애굽기 19장의 만남은 대단
히 독특한 만남입니다.
하나님은 대부분 사람들을 불러내어 만나실 때, 일대일로 만나주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은밀한 중에서 세미하게 음성을 들려주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출애굽기 19장은 구약에서 유일하게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집단으로 만나주시는 대
목입니다. 하나님은 왜 이스라엘 백성들을 집단으로 만나주십니까?
사람이 사람 되게 하시려고 // 주님이 왜 저와 여러분을 만나주십니까? “사람 되게 하려고”
하나님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현현하실 때 어떻게 오시는가?
(16절)『셋째 날 아침에 우레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 소리가 매우 크게
들리니 진중에 있는 모든 백성이 다 떨더라』
천둥소리를 우레라고 합니다. 엄청난 천둥소리와 번개가 꽈광하고 번쩍번쩍 합니다. 그리고 구
름이 산 위에 빽빽하게 찼습니다. 어디 이뿐이 아닙니다. 나팔 소리가 매우 크게 들렸습니다.
(18절)『시내 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그 연기가
옹기 가마 연기 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
산에 불이 붙었습니다. 그러나 이 불은 모세가 떨기나무에서 본 불이었습니다. 아마도 이 불로
나무가 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연기는 옹기가마에서 솟듯이 엄청났습니다. 또 땅이 흔
들렸습니다.
우리는 높은 사람이 올 때 요란한 모습을 가끔 봅니다.
만약에 대통령이 이곳 전주에 온다고 하면 온 시내가 난리가 납니다. 공항에서는 군악대가 출동
하여 나팔을 불면서 대통령을 영접하고, 의장대는 사열을 할 것입니다.
서울 여의도에 가면 여의도 침례교회가 있습니다. 이 교회에는 미국의 카터 대통령이 대통령 시
절 한국에 왔을 때, 주일 예배를 드린 교회입니다. 당시 한국의 대통령은 박정희였습니다. 토요일
에 카터 대통령이 주일에 예배를 드리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어느 교회로 가실 겁니까 하고 물었더니 카터 대통령이 침례교회 신자였기 때문에 ‘서울
에 있는 침례교회에 가겠다.’고 대답해서 부랴부랴 침례교회를 찾았는데, 카터가 예배에 참석할
만한 교회가 여의도에 여의도 침례교회였답니다.
그런데 그때만 해도 여의도를 개발하기 이전이어서 교회 진입로가 포장이 되어있지 않았습니
다. 박정희 대통령이 어떻게 했을까요?
밤새워서 여의도 침례교회 가는 길을 아스팔트로 포장을 했습니다. 유명한 일화입니다.
미국의 대통령이 예배하러 교회에 가는 데도 이렇게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시내 산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만나시겠다고 하십니다.
천군천사들이 하나님의 강림하심을 준비하는 거지요.
세상의 어떤 사람의 행차에도 이렇게 천둥 번개와 빽빽한 구름과 불과 연기 속에 오는 경우는 없
습니다.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이렇게 자연 현상이 하나님의 현현을 예비하는 겁니다.
아마 출애굽기 19장의 하나님의 시내 산 현현 이후에 사람들은 지위가 높은 분의 행차 시에 나팔
을 불고, 의장대를 동원하고, 길을 새로 내고 했을 겁니다.
이렇게 오시는 하나님을 이스라엘 백성이 어떻게 맞이합니까?
(14~15)『모세가 산에서 내려와 백성에게 이르러 백성을 성결하게 하니 그들이 자기 옷을
빨더라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준비하여 셋째 날을 기다리고 여인을 가까이 하지 말라 하
니라』
“성결하게 하라!”
거룩하고 깨끗하게 하라~ 우리가 주님을 만날 때의 자세입니다.
모세 당시에 성결하게 하는 것은 옷을 빠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부생활을 자제하는 것입니다. 그
런 다음에 하나님을 뵙는 것입니다.
<하나님 현현의 특성 중 두 가지 점>
백성들을 성결하게 준비 시킨 하나님이 시내 산에 현현하시는데, 여기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두 가지 특성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과 만나시는데,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대표자로서 모세를 중보자로 세우시고 만난다는 점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직접 보게 되면 죽게 된다는 사실을 확고히 하시는 점입니다.
하나님은 왜 이렇게 하셨을까요?
① 중보자 모세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현현하시되, 하나님의 모습을 직접 보여주시지는 않습니다. 하
나님이 오신다는 사실을 자연 현상을 동원하여 알리시고, 음성으로 들려주십니다. 음성만을 들을
수 있게 하시는 것도 대단합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대표로 세워서 하나님과 백성 사이를 중보 하도록 합니다. 이렇게 하시는 이유
는 질서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데, 대표자가 없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틀림없이
대형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많습니다.
(12절)『너는 백성을 위하여 주위에 경계를 정하고 이르기를 너희는 삼가 산에 오르거나
그 경계를 침범하지 말지니 산을 침범하는 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할 것이라』
하나님의 이 방법은 나중에 사람들이 모여 군중을 이루게 되면 언제나 대표나 지도자를 선발하
는 선례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질서를 유지함으로써 사람들의 안전이 유지되는 것입니다.
또한 모세를 중보로 세운 이 방법은 나중에 신학적으로 예수님이 이 땅에 중보자로 오시는 것의
선례가 됩니다.
② 내가 그들을 칠까 하노라(24절)
둘째로 하나님의 모습을 직접 본 자는 죽게 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24절)『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가라 너는 내려가서 아론과 함께 올라오고 제사장들
과 백성에게는 경계를 넘어 나 여호와에게로 올라오지 못하게 하라 내가 그들을 칠까 하노
라』
오늘 설교 모두에 저는 변화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첫째는 우리가 어디까지 변화하고 성장할 것인가? / 둘째는 변화와 성장의 목표를 위해 어떤 기
회를 가져야 하는가? // 셋째는 변화의 다양성에 대한 문제입니다.
이 셋 중에서 첫째와 둘째에 대해서는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어디까지 변할 것인가?
우리는 사람으로 태어났지만 사람이 될 때까지 변해야 한다. 그 성경적 근거는요?
엡4:13『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
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둘째 변화되기 위해서 어떤 기회를 가져야 하는가? 좋은 학교, 좋은 친구, 좋은 직장 등등 이 모
두가 중요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요? ··· 하나님을 만나야 된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이유도 결국은 우리가 사람 되게 하시려고~ 말씀 드렸지요?
셋째, 변화의 다양성 에 대해서는 아직 말씀드리지 않았습니다.
젖먹이는 얼른 자라서 젖을 떼어야 하고, 어린이는 자라서 청년이 되어야 하고, 청소년은 자라서
어른이 되어야 합니다. 또 불효자는 효자가 되어야 하고, 불량배는 선량한 시민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사람들은 끊임없이 변화가 되어야 하는데, 사람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변화는 어
떤 것입니까?
그것은 죽는 것입니다. 산 사람이 죽는 것이 변화 중에서도 가장 큰 변화입니다.
우리말에도 있습니다.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죽는다.” 이런 말 들어보셨지요? 틀린 말이 아닙
니다.
사람이 죽음에 이르는 길은 고를 당하거나, 중병에 걸리거나, 늙어 기력이 쇠한 때입니다.
그러니 건강하고 오래오래 살려면 사고를 만나지 말아야 하고, 중병에 걸리지 말아야 합니다.
삶에서 죽음으로의 변화는 우리가 육적인 존재에서 영적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살아서는 육적인 존재이지만, 죽은 이후부터는 영적인 존재로 있게 됩니다. 이것이 변화 중에서
가장 큰 변화입니다. 사고가 되었든, 병이 되었든, 아니면 노쇠가 원인이 되었든, 육적인 존재에서
영적인 존재로의 변화가 바로 죽음입니다. 이 죽음은 바로 하나님을 직접 뵙게 된다는 것을 의미
합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뵈었다는 말은 죽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육신을 가진 채로는 하나님을 결코 뵐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직접 뵈려면 우리가
육신의 존재가 아닌 영의 존재가 되어야 가능합니다.
이걸 모르고 하나님이 시내 산에 현현하신다니까 호기심에 마구 달려가서야 되겠습니까?
이런 사람들이 마구 쫓아가다가 하나님이 “너 그러다가 죽는다.” 그러니까 섭섭하다고 합니다.
성경에는 살아있는 사람이 하나님을 직접 뵈면 죽는다는 사상이 엄연히 존재합니다. 그 사실을
또한 본문에서부터 하나님이 알리십니다.
(24절)『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가라 너는 내려가서 아론과 함께 올라오고 제사장들
과 백성에게는 경계를 넘어 나 여호와에게로 올라오지 못하게 하라 내가 그들을 칠까 하노
라』
이 말씀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엄청나고 깊은 사랑을 뼈저리게 느껴야 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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