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때 : 2024. 12. 22(일)
□ 곳 : 저수재~촛대봉~시루봉~배재~싸리재~뱀재~솔봉~묘적령~묘적봉~도솔봉~삼형재봉~죽령
□ 낙동산악회
□ 참여 : 모두 22명 안팎
□ 날씨 : 햇볕
□ 길 : 눈길+플라스틱 널빤지 계단 길+바윗길+흙길
□ 걷는 데 걸린 시간 : 2024. 12. 22(일) 02:23~15:13(12시간 50분, 쉰 시간 포함)
□ 간추린 발자취(제 기준이므로 각자 다를 수 있음)
○ 02:23 저수재 나섬.
○ 02:52 촛대봉(1080m-‘푯돌’)
○ 07:30 솔봉(1021m-‘푯말’)
○ 07:48~08:10 아침밥
○ 08:55 묘적령(1020m-‘푯돌’)
○ 09:43 묘적봉(1148m-‘푯돌’)
○ 11:20 도솔봉(1314m-‘푯돌’)
○ 15:13 죽령. 산행 끝냄.
시루봉
뒤로 도솔봉이 보인다
도솔봉
뒤로 소백산 산등성(이) 보인다
□ 줄거리(제 기준이므로 각자 다를 수 있음)
2024. 12. 21(토) 22:40쯤 000 역을 떠난 버스는 3시간 20분쯤 달려 저수재에 닿았다.(12. 22.일 02:02)
길 나설 채비한 다음 저수재를 나서(02:23) 29분쯤 뒤 촛대봉(1080m-‘푯돌’)에 닿았다.(02:52)
이후 투구봉, 시루봉, 배재, 싸리재, 밤재, 솔봉까지는 볼펜이 얼어 기록은 했으나 얇은 종이에 글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제대로 된 발자취를 적을 수 없다. 안타깝다.
촛대봉에서 거의 6시간 쯤 뒤 묘적령(m-‘푯돌’에 닿았다.(08:55)
‘묘적령’은 산봉우리다. 옛날에 충북 단양군 대강면과 경북 예천군 상리면을 오갈 때 이 봉우리를 넘어 다녔던 모양이다.
그래서 봉우리가 고개 이름을 얻었는지 모르겠다.
강원도에 있는 ‘선자령’도 봉우리이면서 고개로 ‘고개 령(嶺)’을 이름에 붙이고 있는 것 같다.
묘적령에 닿기 조금 전에 볼펜을 살리는 방법을 생각해 냈다.
웃옷 주머니에 넣어둔 핫팩에 볼펜을 데웠더니 글자를 쓸 수 있었다.
4분쯤 머문 뒤 묘적령을 나서(08:59) 44분쯤 뒤 묘적봉(1148m-‘푯돌’)에 닿았다.(09:43)
5분쯤 머문 뒤 묘적봉을 나서(09:48) 1시간 32분쯤 뒤 도솔봉(1314m-‘푯돌’)에 닿았다.(11:20)
이 봉우리에는 멋진 검은 돌[오석] 푯돌이 있다.
도솔봉은 두 개가 있는데, 엄밀하게 말하면 뒤에 나오는 도솔봉이 20cm쯤 높으므로, 그곳을 진정한 도솔봉으로 쳐야 할 것 같다.
4분쯤 머문 뒤 도솔봉을 되돌 나와(11:24) ???분쯤 뒤 또 다른 봉우리 도솔봉에 닿았다.(???)
도솔봉을 나선 뒤에도 높지는 않으나 산등성)이)은 오르내림이 몇 번 더 있다.
죽령이 가까워지면 길은 산등성(이)을 비껴 산허리를 따라 나 있다.
명색이 대간 길을 걷는다면서 산허리를 따라 걷는 것은 체면을 구기는 일이지만 쉬운 길을 따랐다.
첫 도솔봉에서 3시간 49분쯤 뒤 죽령에 닿아 산행을 마쳤다.(15:13)
저수재에서 무려 13시간쯤 걸렸다.
많이 쌓인 눈밭을 앞서서 헤쳐나간 네오 대장 님과 길잡이 구실을 한 대원들 고생하셨다.
□ 그밖에
◎ 흘러가는 생각을 잠깐 붙들고...
1. 망망대해에 뜬 작은 종이배
전에는 잘 갖추지 않던 장비와 옷을 준비해 구비하고 나섰다.
산에 다니면서 발열 장비[핫팩]를 지고는 다녔어도 한 번도 써보지 않았다.
어느 때는 아내가 보온밥통이 식을까 봐 핫팩을 흔들어 등 가방[배낭]에 지고는 가보았으나 몸을 따스하게 할 용도로 사용해 보지는 않았다.
단 한 번 예외는 있었다.
지난 12월 8일(일요일) 죽령~고치령 구간 걸을 때 국망봉을 지나 상월봉이 바로 앞에 보이는 작은 돌 아래서 요기할 때, 연꽃, 산사랑제이 님에게 빵, 과일을 얻어먹고 길 나서기 전 연꽃 님이 핫팩을 건네기에, 웃옷 호주머니에 넣고 걸으면서 언 손을 녹인 일이 있었다.
내가 등산하면서 핫팩을 처음 썼던 일이다.
이번에는 기온이 최저 영하 7℃쯤, 체감 기온 영하 11~12℃쯤 될 것으로 생각하고 길 나서기 전에 핫팩을 뜯어 흔들어 웃옷 주머니 양쪽에 넣었다.
중간에 사진 찍고 손이 시려 핫팩에 손을 녹였다.
그럼에도 찬바람은 옷을 비웃기라도 한 듯 살을 파고들었다.
지난번 소백산 이어걷기에 이어 이번에도 내의를 입었다.
내가 너무 추위를 걱정했나?
걸을 때는 내의 입기를 잘했다 싶었다.
전에는 잘 입지 않았던 웃옷[재킷]도 입었다.
내가 많이 움츠러들었다는 징표일까?
내가 자연의 위력 앞에서 한없이 작은 존재임을 느꼈다.
나는 망망대해에 뜬 아주 작은 종이배 신세였다.
우쭐대지 말고 자연의 힘에 순응하면서 버둥거려야 할 것 같다.
자연 앞에 겸손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2. 볼펜 얼어붙고, 안경 잃다
저수재를 나서 촛배봉 쯤 갔을 때부터 볼펜이 얼어 글을 쓸 수 없었다.
예비 볼펜을 꺼냈으나 그것도 얼어 글이 써지지 않았다
.
솔봉 쯤부터 난관을 타개할 방법이 생각났다.
다행히 웃옷 주머니에 핫팩을 넣고 갔으므로 사진기 가방에 넣어 두었던 볼펜을 핫팩이 든 호주머니에 넣으면 볼펜이 얼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볼펜을 핫팩이 든 호주머니에 넣었더니 얼지 않아 기록할 수 있었다.
미련하게 그 생각을 못했으니 안타깝다.
색안경을 등 가방[배낭]에 달고는 다녀도 귀찮아 잘 쓰지는 않았다.
지난 구간 소백산 이어걷기 할 때는 색안경을 가져가지 않아 눈밭에 햇볕이 반사되어 눈이 따가워 고통스러웠다.
이번에 집에서 등 가방에 색안경 집을 채우는데 고리가 시원찮았다.
집에 있는 안경집 몇 개를 보았으나 고리가 성한 것이 별로 없었다.
늘 달고 다니던 안경집을 치켜들었더니 고리가 부실했다.
도중에 떨어지면 곤란할 터인데... 걱정했다.
눈밭에서 안경을 낄까 생각하다가 낮에 햇볕이 쨍쨍 내리쬐면 쓸 생각으로 걸었다.
묘적령 쯤 갔을 때 안경을 쓰려고 보았더니 안경집째 떨어지고 없었다.
준비 부족으로 눈이 따가워 애를 먹었다.
3. 무리[단체] 지어 움직이는 힘
백두대간이나 정맥 따위를 걸으면서 늘 느끼는 일이 있다.
아무리 어려운 구간이라도 홀로 걷지 않고 무리 지어 걸으면 나도 모르게 힘이 솟는다는 것을...
전에 대간을 걸으면서 캄캄한 새벽. 어쩌다 보면 혼자 걷는 일이 많았다.
홀로 된 순간에도 내 앞과 뒤에 동료들이 있다는 생각만으로 외로움과 무서움이 들지 않았다.
그것이 무리[단체], 단합, 공동 따위가 가진 이점일 것이다.
처음부터 혼자 나서 아무도 없는 길을 걷는다면 얼마나 외롭고 허전하고, 때로는 무서움이 들까?
춥고 더운, 낯선 길 20~30km를 걷는 것이 가능하기나 할까?
지난날 대간, 정맥 길을 걸으면서 그런 생각을 많이 해 보았다.
이번에도 그 기억이 조금 떠올랐다.
혼자 걸어도 두려움은 없지만, 적적하고 외로움은 들 것 같았다.
내가 아무리 우쭐대거나 헛기침하더라도 어쩔 수 없이 ‘사회적 동물’이요. 작은 무리일지라도 그 자장(磁場)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그래서 대원들이 소중하고 고맙다.
바람을 막아주는 곳에서 아침밥을 먹었다.
과자, 빵을 내주었던 난이 님, hong 님을 비롯한 대원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길에서 초콜릿을 나눠주었던 대원들에게 고마운 인사를 전한다.
4. 대원들은 용감했다.
자연이 아무리 세차게 우리를 시험해도 의기소침하거나 주눅 들지 않고 혹독한 도전에 굴하지 않고, 꿋꿋이 버티고, 헤쳐 나가는 대원들 모습을 보니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누구 한 사람 포기하거나 주저앉지 않고 묵묵히 예정된 구간을 걸었다.
매서운 추위에도 맨손으로 사진을 찍고, 찬바람에 얼굴이 빨개져도 아랑곳하지 않고, 깊게 쌓인 눈을 작은 발과 다리로 헤치고 나간 네오 대장 님을 비롯한 앞서 걸은 대원들..
그 굳건한 의지와 지칠 줄 모르는 힘...
존경한다.
5. 힘들었던 지난 추억
가. 낙동산악회 백두대간 5기 16구간
2007. 7. 28(일요일) 차갓재~황장산~벌재~저수재~촛대봉~시루봉~배재~싸리재~뱀재~솔봉~묘적령 구간을 걸었다.
여름 몹시 더운 날이었다.
늘 챙겨 다니던 과일을 거의 챙겨가지 못했다.
솔봉에서 밀감을 먹고 있던 대원 몇 사람...
숫기가 없는[좋지 않은] 나는 과일을 먹고 있는 대원들에게 밀감 한 조각을 차마 구걸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묘적령에서 밀양에 거주하던 백00 사장 님이 사과 1/4을 주기에 껍질째 먹었다. 살 것 같았다.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나는 그 뒤로 백00 사장 님에게 제대로 보답하지 못했다.
백00 사장 님 얼굴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그는 발걸음이 늦은 대원들을 많이 챙겼다.
그 일 이후로 나는 등 가방[배낭]에 과일을 넣고 다니는 것을 잊지 않는다.
나. 낙동산악회 백두대간 9기 22구간
2010. 12. 26(일요일) 저수재~촛대봉~모시골~묘적령~묘적봉~도솔봉~죽령 구간을 걸었다.
그날은 날씨가 매우 추웠다. 체감 온도가 영하 20℃쯤 되었을 것으로 짐작한다.
당시 등산 30년 세월에서 가장 추웠던 날이었을 것이다.
등산 40년쯤인 현재까지도 가장 추웠던 날로 기억한다.
기온 자체가 아주 낮았으므로, 소백산 비로봉 일대 칼바람보다 더 추웠다.
이번 산행(2024. 12. 22. 일)보다 더 추웠다고 생각한다.
날씨가 너무 추워 시계가 잠을 잤고, 사진기가 작동되지 않았다.
겨울 추울 때 사진기가 태업하는 것은 더러 겪었던 터라 이날도 사진기가 추위에 놀라(?)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지레짐작하고 사진을 거의 찍지 않았다.
나중에 사진기를 폼 속에 녹여 사진을 몇 장 찍기는 했다.
그날 옷을 단단히 챙겨 입었으나 몸으로 파고드는 추위를 막기에 역부족이었다.
이제는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아름답게(?) 포장되어 ‘기억 저장소’[‘창고’]에 잘 보관되어 있다.
첫댓글 영하의 기온.
뺨을 후려치는 바람.
캄캄한 어두움.
긴 동짓날 밤.
알 수 없는 눈길.
동료를 위한 배려(사진)
꼼꼼한 기록과 과거의 추억까지 되뇌어 주시어
한결 재미있는 후기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승승장구 님! 걸음이 빨라 산에서 제대로 볼 수 없었습니다.
자연이 내리는 도전과 역경을 굳건히 이겨내는 대원들 모습에서 감동을 받습니다.
누가 시킨 일이 아닌데도 나름 희망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힘쓰는 대원들의 풋풋한 기상이 좋습니다.
사진은 코브라가 독을 품고 머리를 치켜 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추운데 독특한 전경을 잡았습니다.
수고하셨고, 고맙습니다.
한길님의 '흘러가는 생각'을 읽으며
내복을 입고 핫팩을 하는 등의 현상을
'움츠려들고 위축되는' 현상이라 해석하지 않고
자연현상에 따른 올바른 대응이라고 생각하십사
조심스럽게 의견을 내놓습니다.^^
대자연 앞에 한없이 나약한 존재로서
자신을 보호하는 것은 결코 낮추어볼 수 없는
적절한 대처라고 생각해요.
얼어 기록되지 못한 볼펜의 기능을 살리는 것처럼요.
부지런한 한길님의 후기가
한동안 탑재되지 않아
혹여 편찮으신 건 아닌지 걱정되었는데
이리 접하게 되니 많이 반갑습니다.😁
홍님 말씀처럼
대선배님과 함께 대간을 걷는 영광을
저희 19기가 완주할 때까지 쭈욱 이어지길
바랍니다.
1빠 댓글 달려고 했는데
글쓰는 중에 자꾸 일들이 있어 이제야 😂
즐금 불금되셔요🥰
거친 자연이 주는 시련을 견뎌내면서 각자가 마음에 품은 뜻을 이루기 위해 분투하는 대원들이 멋집니다.
시린 바람이 싫어 얼굴을 가리는 두건을 쓰고도 볼이 시려 웃옷 머리 덮개[후드]를 눌러 쓰고 걸었습니다.
남들은 까짓 바람이야 하는 듯 아랑곳하지 않고 늠름한 모습들이었습니다.
눈이 나무에 단단히 달라붙어 하얀 세상을 만든 풍경. 남녘에서 쉽게 접하지 못해 그런지
다들 어린이들 모양 즐거워하는 모습들이 내 마음을 흐뭇하게 하였습니다.
세밑 새해. 정리해야 할 일이 쌓이는데, 게으름이 덮쳐 일손이 잘 잡히지 않고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
덧없이 시간을 흘려보냈습니다.
힘이 되기는커녕 짐이 되지 않을까 자신을 돌아봅니다.
며칠 남지 않은 2024년 마무리 잘 하시기 바랍니다.
수고하셨고, 고맙습니다.
우쩜 글도 그리 잘 적으시는지요
소설 읽듯이 재미나게 앍었습니다
항상 계셔주심에 든든하고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옷을 잘 차려 입으신것에 박수를 보내 드려요 따신것이 최고 입죠
앞으로도 따뜻하게 챙여 입으시고 가방은 작은걸루 메시면 더 멋지게 대간을 타시리라 생각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사진도 마구 퍼 담습니다
재미없고 딱딱한 말을 뒤죽박죽으로 글자로 옮긴 것에 불과합니다.
구멍이 숭숭 뚫리듯 앞뒤 없는 글을 재미있게 읽어주셨다니 고맙고, 또한 부끄럽습니다.
우리가 마주하는 자연은 날것 그대로, 투박하고 예리하고, 어떤 때는 뭉툭한 느낌도 듭니다.
그 과정이 매섭고 따갑고, 예리하기도 합니다.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쳐 우리는 자연을 조금씩 알아가고 적응해 가는지도 모릅니다.
묘적령 언저라애서 날아가듯이 홀연히 모습이 보이지 않았던 hong 님!
어찌나 빠른지 그림자도 잡을 수 없었습니다.
며칠 남지 않은 한 해. 알차게 마무리하시기 바랍니다.
수고하셨고, 고맙습니다.
이제서야 일상을 가다듬고 저수령에서 죽령을 복기합니다.
공동체 속에서 혼자 걸어도 힘을 내게 된다는 존재론도 참 멋진 말씀입니다.
그래서 공동체는 가볍기도 무겁기도 한, 신이 아닌 이상 늘 불안이 부유하는 공간 같기도 합니다.
늘 함께여서 고맙습니다
겨울 추운 날씨에 백두산은 잘 다녀오셨습니까?
우리 삶은 홀로 걷는 외로운 길이 아니라 더불어 울고 웃으면서 걸어가는 기나긴 나그네 길임을 느낍니다.
그 긴 여정에서 작은 일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평정심을 유지하려 노력하지만, 이 또한 쉽지 않은 일입니다.
눈 쌓이고 찬바람이 부는 거친 자연을 대하면서 '군중 속(의) 고독' 같은 것을 어렴풋이 느끼면서 내가 걷고 있는 삶을 되돌아보기도 합니다.
수고하셨고, 고맙습니다.
지난 밤 늦게 한길님(큰형님) 산행기를 보게 되었네요. 몸소 체험하신 경험을 소박하게 얘기하듯 적어신 산행기를 읽고 있노라면, 마치 옆에서 친절하게 애기를 들려주는 듯 생동감과 편안함이 느껴지네요.
과일 얘기는 참 재미있네요. 😀
부족함이 혹 있으시다면, 언제든지 말씀하시면, 기쁨 맘으로 쉐어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핫팩은 요즘 젊은 분들이 더 많이 잘 준비하더군요. 몇 발자욱 앞서가면서도, 힘이들어, 도솔봉을 내려와 첫번째 형제봉을 맞딱뜨렸을때, 살짝 멘붕이 오면서, 먼저 큰형님이 생각 나시드군요.
큰형님게선 큰베낭과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이곳을 오르실때 얼마나 힘드실까 하고요.
경험도 많으시고, 내공이 있는 분이시라,
큰 걱정 안해고 될거라고 일행들이 말씀하시더군요.
대원들 소중한 추억 담으시느라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사우나에서 조우했을때, 발목의 불편함을 말씀하셨을땐, 공감이 갔었습니다. 2년전 지리산 거림으로 하산중 물먹은 바위에 미끄러져(운좋은 부상)ᆢ등산화의 접지력, 착화감, 뒤틀림, 방수정도, 발목보호, 아웃쏠등
공부를 좀 해었습니다. 다음 산행에선 불편함 없이 더 안전한 산행 이어가시길 바라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내가 살아오면서 미련한 구석이 많습니다.
문명의 이기나 현란한 현대의 디지털 세상을 잘 모르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너무 기계에 의존하는 생활이나 너무 쉽게 살아가는 것이 죄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군대 생활하면서는 물론이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내가 겪은 어려움이나 힘든 과정을 마주할 때 조용히 생각할 때가 많았습니다.
내 아버지 세대가 일제의 수탈을 겪으면서도 조국 독립을 위해 나라 안에서는 물론, 시베리아로, 만주로, 중국으로, 사할린으로, 중앙 아시아 등지를 전전하면서 굶주림과 혹독한 추위와 싸웠음을...
형님 세대는 한국전쟁에서 목숨 잃고, 몸을 다치면서도 살아 왔는데...
내가 편안한 세대에 살면서 겪는 어려움을 그분들이 몸으로 실천했던 어려움과 아픔에 견줄 수 있을까 보냐?
내가 그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어떤 고난을 겪었을까를...
그리고 사람이 살아가면서 부딪힐 온갖 어려움을 생각해서 오늘 내가 맞닥뜨리는 어려움은 훗날 나에게 보약이 될 것이라는 기대 섞인, 망상 같은 생각도 하곤 했습니다.
가당찮은 생각이겠지만...
여러분이 권유해 침을 맞았더니 많이 나았습니다.
새해 건강하게 보람 있는 일 많이 이루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한길 큰형님.
그리도 오래되지않은 옛 얘기를 들어니,
맘이 숙연해지네요.
약주 한잔드시면, 선친께서 즐계 하시던 말씀들도 애틋한 추억으로 돌아오네요.
항상 건강 잘 챙기시고, 오래도록 산에서 뵐수 있길 바래옵니다. 편안한 밤되세요.
혼자 나라를 사랑하는 것처럼 비칠까 봐 잘 꺼내지 않는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별것 아닌 것 과찬하여 부끄럽기도 합니다.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
멋진 내일을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