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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역사 5월 9일
그 이름
다 부르지 못할
그리움이 눈부십니다
이 시대 단 하나뿐인 안타까운 삶의 뒷굽
한겨울
세상사 붉은 노을
미어지는 울음 입니다.
때로는 심장 곳곳
애간장을 태웠지만
뼛속까지 출렁이는 삶의 미학을 배웁니다
이 아침
적멸의 우전차 한 잎
당신 잔에 띄웁니다.
-이재창 시인의 「어머니의 강 · 2」 전문, (서정과현실 2007년 상반기호)
*유럽의 날: 프랑스 외무장관 로베르 슈만이 항구적 평화를 위한 유럽통합선언(슈만선언)을 제안한 날, 유럽연합
*전승절: 전승절이 토요일이나 일요일이면 다음 월요일이 공휴일이 된다, 러시아
983년 [음]성종(成宗) 2년, 박사 임노성이 송에서 돌아와 서적들을 바침
ㅡ갑자 박사(博士) 임노성(任老成)이 송에서 돌아와서 「태묘당도(太廟堂圖)」 1폭과 『태묘당기(太廟堂記)』 1권, 「사직당도(社稷堂圖)」 1폭과 『사직당기(社稷堂記)』 1권, 『문선왕묘도(文宣王廟圖)』 1폭 및 『제기도(祭器圖)』 1권, 『칠십이현찬기(七十二賢贊記)』 1권을 바쳤다.
1328년 목은 이색 출생
1417년 [음]태종 17년, 황씨·한씨 등 명나라에 바칠 처녀를 선발함
ㅡ처녀(處女)를 가려 뽑았다. 의정부·육조·대간(臺諫)과 지신사 조말생(趙末生), 내관(內官) 노희봉(盧希鳳)에게 명하여 중국에 진헌할 처녀를 가려 뽑게 하였더니, 황씨(黃氏)·한씨(韓氏)를 상등(上等)으로 삼았다. 황씨는 용모가 미려(美麗)하니, 고(故) 부령(副令) 황하신(黃河信)의 딸이고, 한씨는 선연(嬋娟)326) 하니 고(故) 지순창군사(知淳昌郡事) 한영정(韓永矴)의 딸이었다
1422년 [음]세종 4년, 금천 부원군(錦川府院君) 박은(朴訔) 죽음
1438년 [음]세종 20년, 평양 등지의 주민 1,000호(戶)를 변방으로 이주시킴
ㅡ평양(平壤)에서 2백 호, 안주(安州)·영유(永柔)에서 각기 65호, 용강(龍岡)에서 60호, 중화(中和)·성천(成川)에서 각기 50호, 상원(祥原)에서 40호, 숙천(肅川)·함종(咸從)에서 각기 35호, 순천(順川)에서 32호, 영변(寧邊)·은산(殷山)·덕천(德川)·개백(价川)·강동(江東)·강서(江西)에서 각기 35호, 순안(順安)에서 28호, 삼화(三和)에서 25호, 정주(定州)에서 20호, 자산(慈山)·증산(甑山)에서 각기 15호, 삼등(三登)에서 13호, 양덕(陽德)에서 12호, 맹산(孟山)에서 11호, 선천(宣川)·용천(龍川)에서 각기 6호, 수천(隨川)·곽산(郭山)·가산(嘉山)·태천(泰川)·운산(雲山)·박천(博川)·희천(熙川)에서 각기 5호, 철산(鐵山)에서 4호 등, 총 1천 호를 추려 내어 장정 3, 4명 이상 착실한 사람으로 1호를 삼고는 8회로 나누어 운송하여 변읍(邊邑)에 이주하게 하니, 여연(閭延)에 1백 50호, 자성(慈城)에 1백 40호, 강계(江界)에 3백 호, 이산(理山)에 1백 60호, 벽동(碧潼)에 1백 호, 창성(昌城)에 1백 50호이었다.
1445년 [음]세종 27년, 사표국을 궁궐 안에 설치함
1450년 [음]문종 즉위년, 공물(貢物)의 대납(代納)을 금함
1504년 [음]연산 10년, 임사홍(任士洪)이 병조 판서가 됨
ㅡ강귀손(姜龜孫)을 의정부 좌찬성, 이계동(李季仝)을 우찬성, 임사홍(任士洪)을 병조 판서, 성희안(成希顔)을 이조 참판, 허집(許輯)을 호조 참판, 안처량(安處良)을 형조 참판, 반우형(潘佑亨)을 한성부 좌윤(左尹), 박건(朴楗)을 함경도 관찰사, 이계맹(李繼孟)을 승정원 우승지, 강징(姜澂)을 좌부승지, 손주(孫澍)를 우부승지, 박삼길(朴三吉)을 사간원 대사간, 최해(崔瀣)를 사간, 김준손(金俊孫)을 사헌부 장령, 김극성(金克成)을 사간원 헌납(獻納)으로 임명하였다.
1528년 [음]중종 23년, 경기·충청·황해·전라도 일대에 우박이 내림
ㅡ경기 통진(通津)에 새알만한 큰 우박이 내렸는데, 반 자 가량씩이나 쌓여 이틀이나 녹지 않으므로 곡식이 손상(損傷)되었다. 용인(龍仁)·인천(仁川)·양지(陽智)·고양(高陽), 충청도 보령(保寧)·홍산(鴻山)·서천(舒川)·한산(韓山), 황해도 배천(白川)·강음(江陰)·송화(松禾), 전라도 무장(茂長)·태인(泰仁)·흥덕(興德)에 우박이 내렸다.
1556년 [음]명종 11년, 황해도 배천에서 머리 하나에 날개와 다리가 넷 달린 닭이 태어남
1559년 조선의 제11대 중종의 제7남이자 제14대 선조의 사친 덕흥대원군 작고.
1629년 [음]인조 7년, 명나라 모문룡(毛文龍) 군이 이산(理山) 등지에서 노략질함
1659년 [음]현종 즉위년, 현종(顯宗)이 즉위함
1660년 [음]현종 1년, 부호군(副護軍) 이유태(李惟泰)가 풍속 교화·인재 양성 등에 대해 상소함
1693년 [음]숙종 19년, 임금이 출궁·환궁 때 익선관(翼善冠)에 곤룡포(袞龍袍)를 착용할 것이라 함
1728년 [음]영조 4년, 무고(誣告)를 자복한 조동규(趙東奎)를 참형에 처함
1737년 [음]영조 13년, 병조 판서 윤유(尹游) 죽음
1749년 [음]영조 25년, 유신들에게 《정훈(政訓)》을 읽게 함
1757년 [음]영조 33년, 굶주린 백성에게 죽을 끓여 먹이던 일을 중지하게 함
ㅡ굶주린 백성들에게 죽(粥)을 끓여 먹이던 일을 그만두도록 명하고, 병이 든 백성으로 미처 소복(蘇復)되지 않은 자는 활인서(活人署)로 하여금 구료(救療)하게 하였으며, 농촌으로 돌아가길 자원(自願)는 자는 노정(路程)을 헤아려 식량을 지급하도록 하였다.
1796년 [음]정조 20년, 이병태(李秉泰)·윤용(尹容)·정형복(鄭亨復)·한덕필(韓德弼)·허정(許晶) 등 5명이 청백리로 선발됨
1848년 [음]헌종 14년, 북경에서 아편 흡연 기구를 가지고 온 역관을 처벌함
ㅡ추조(秋曹)의 수인(囚人) 박희영(朴禧英)을 사형을 감면하여 추자도(楸子島)에 보내어 종[奴]을 삼으라고 명하였다. 박 희영은 역관배(譯官輩)인데 아편(鴉片) 연기를 빠는 기구를 가져오다가 만부(灣府)에서 잡혔으나 의거할 율문(律文)이 없으므로, 이 명이 있었던 것이다.
1865년 [음]흥선대원군, 국태공에 봉함
1871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 47개 모범 서원(書院) 제외한 전국의 서원 철폐.
1894년 동학군 해산
1897년 시인 변영로 출생 - 시를 언어예술로 자각하고 기교에 중점
1902년 하와이 사탕 농장 농장주 동맹회에서 이민 교섭을 위해 한국에 입국.
1904년 일본, 한국·러시아 양국 간 모든 조약 폐기 강요
1920년 천마산대, 평북 철산군 여한면사무소 공격, 방화
1928년 조선일보 제4차 무기정간
1930년 독립운동가 이승훈 세상떠남
ㅡ“내가 죽거든 뼈를 흙속에 묻어 쓸데없이 썩게 하지 말고, 표본으로 만들어 학생들이 연구하는데 쓰도록 하라. 이것이 나라에 이바지하는 내 마지막 일이다.”-유언
한말 일제시대 교육자이자 독립운동가인 남강 이승훈(1864∼1930) 선생이 1930년 5월 9일 67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선생은 "내뼈를 표본으로 만들어 사랑하는 학생에게 보여주기를 원한다"는 유언을 남겼다.
1864년 평북 정주에서 태어난 남강은 보부상과 국제 무역상 등으로 부를 쌓았으나 연이은 사업실패를 겪으며 외세와 민족문제에 대한 인식과 반일 민족의식을 갖게 됐다. 1907년 도산 안창호 선생의 강연에 감명받은 것을 계기로 비밀결사 조직인 신민회에 가입, 평안북도 총감이 됐다. 이후 서적-출판 판매 회사인 태극서관을 설립, 민족자본 육성에 힘쓰는 한편 초등교육기관인 강명의숙과 중등교육기관인 오산학교를 설립해 민족교육 운동을 전개했다.
1911년 안중근 의사의 사촌 안명근의 독립자금 모금사건인 안악(安岳)사건에 연류돼 제주로 유배되었고, 같은 해 일본 경찰이 민족운동을 탄압한 105인사건으로 기소돼 징역6년을 선고받았다. 3·1운동 때는 기독교계를 대표해 33인 중 한사람으로 참여,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1924년 조만식 선생 등과 함께 물산장려운동을 주동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됐다. 선생은 문화관광부가 선정한 1999년 `12월의 문화인물`로, 국가보훈처가 선정한 2001년 `3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됐다.
1932년 대한민국의 의사이자 교수, 학교법인 가천학원 이사장 이길여 출생.
1940년 한국 국민당(김구), 조선 혁명당(이청천), 한국 독립당(조소앙) 통합 한국독립당 창립됨(위원장 김구).
1942년 일본제국 조선에 징병령 공포
1944년 여자정신대 1차(경남반), 도야마현 동제 공업에 동원됨
1944년 만해 한용운 스님(1879-1944) 세상 떠남
1949년 이응준 육군 총참모장 면직, 채병덕 소장 임명
1951년 이시영 부통령이 이승만의 국민 방위군 사건 수사 방해를 성토하고 사직.
1952년 거제도 포로수용소 폭동
ㅡ6.25사변으로 인해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수감중이던 친공포로들이 수용소장인 도트 준장을 납치하고 대규모 폭동을 일으켰다.
16만여명의 공산군 포로들 중 이념상으로 북한에 송환되길 거부하는 반공포로들과 송환을 희망하는 친공포로들간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포로수용소 소장에 도트 미군 준장이 부임하자 친공포로들은 밥에 독약을 넣었다고 억지를 써 단식투쟁을 하면서 새 소장과의 면담을 요청했고 영문도 모르는 도트 준장은 그들의 수용동을 찾아갔다가 친공 포로들에게 납치 감금당한 것이다.
결국 유엔군이 탱크와 소총으로 수용소를 둘러싸고 강경 대응하자 72시간만에 도트 준장을 풀어주었으나 도트는 이 사건으로 종신 대령으로 강등됐다. 거제도 포로수용소 폭동사건은 포로수용소 안에서 포로와 전쟁을 하고 수용소장이 포로가 되는 등 포로사상 전무후무한 일로 역사에 남아 있다.
1960년 이승만 전 대통령, 정계 은퇴 성명
1963년 대납자금 부족에 무기 휴장한 증권시장, 73일 만에 재개
1964년 최두선 내각사퇴, 정일권 내각 들어섬
1964년 다섯번째 상업방송국 동양방송(라디오 서울) 개국
1964년 서울 남대문 경찰서, 빵 달라고 외친 6명 구속
1969년 재무부 차관업체 45%가 부실업체라고 발표
1973년 제6차 남북적십자 본회담 서울서 열림, 이산가족 생사확인방안 논의
1974년 박정희 대통령, 면책 특권 국회의원에 허위 사실 발언 경고
1981년 정부, 합참의장에 윤성민 대장, 해군 참모총장에 이은수 대장을 각각 임명
1982년 새뮤얼 K.도에 리베리아 원수 내한(13일 공동 성명 발표)
1983년 정부, 외국상표 도입 자유화하기로 결정
1983년 멸공 83 훈련 실시(∼12일)
1983년 도쿄에서 열린 제37회 세계 탁구선수권대회 여자개인단식에서 양영자 준우승
1984년 한ㆍ미연례안보협의회의 개막(서울)
1986년 국가안전기획부, 소설가 황석영 연행
1986년 제15회 전국소년체육대회 폐막(1위 서울, 2위 경남, 3위 충남)
1986년 조계종 승려 152명 시국선언문 발표
1988년 보사부, 노인복지 종합대택 마련, 88년중 추진 키로 결정
1989년 고려대·한림대 휴업 해제. 동의대사태 이후 학원분규 진정 기세
1989년 노량진수산시장 운영권강제교체사건과 관련 구속된 전기환 피고에게 징역 4년 선고돼
1990년 민자당, 전당대회에서 노태우 대통령을 총재에 김영삼.김종필.박태준 의원을 최고위원으로 선출
1990년 을지로 미국문화원 앞에서 시위를 벌이던 일부 시위대가 화염병 5, 6개를 미문화원 1층에 던져 화재
1990년 10만여 대학생, 반 민자당 격렬시위. 심야까지 전국서 화염병 공세
ㅡ민자당 창당대회가 열린 1990년 5월 9일 오후 서울 도심에서 민자당을 반대하는 대학생들의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학생들은 미 문화원에 화염병을 던져 불을 질렀으며, 경찰차가 전소되고, 진압경찰이 무장해제를 당하기도 했다. 이날 있었던 대학생들의 시위는 1987년 6월 민주화시위 이후 최대 규모로 벌어졌다.
부산, 대구, 광주 등 전국 17개 주요 도시에서도 학생 및 재야단체들이 시위에 참가했다. 서울의 경우 명동 일대로 뛰쳐나온 시위대는 순식간에 2만여명으로 불어나 회현 고가도로 밑에서 롯데백화점 앞 1㎞거리를 뒤덮었으며 오히려 진압경찰을 명동 외곽지역으로 밀어붙이고 4시간 가까이 도심일대를 장악했다. 이날 시위에는 대학생들 뿐아니라 전교조 전노협 전민련 등 전 재야단체회원들이 총동원되다시피 했다.
이날 시위의 표면적 구호는 민자당 해체로, 민자당 출범 1백일 동안 반민자당 투쟁을 효과적으로 추진하지 못한 운동권이 민자당 창당일을 계기로 총력 대응한 결과였다. 서울시경은 5월 13일 5.9시위 사태의 배후주동 혐의로 김근태 전민련공동의장을 검거했다.
1990년 동력자원부, 핵연료인 농축 우라늄을 소련 으로부터 10년간 총350t을 수입키로 계약을 체결
1991년 민족문학작가회의, 〈조선일보〉에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우라〉 기고한 김지하 제명
1991년 민자당 해체와 공안통치 종식을 위한 범국민 대회, 전국 42개 시.군에서 20만명이 참가 자정까지 진행
1993년 제1회 동아시아대회, 상해 홍코우 경기장에서 9개국 1252명의 선수 임원이 참가 개막식.
1994년 조계종 원로회의, 월하스님을 제9대 종정으로 추대
1996년 한국, 세계5위 철강생산국으로 부상(96년 1ㆍ4분기중 978만3000t에 달해)
1997년 5.18민주화운동기념일 제정
2000년 대검찰청, 경부고속철도 사업자 선정시 알스톰사의 거액 로비 혐의 포착해 수사 착수
2001년 부시 미 대통령, 김대중 대통령에게 한국의 대북 포용 정책 지지 친서 전달
2002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노사모’의 인터넷 티셔츠 판매에 사전 선거 운동이라며 중단 요구
2005년 명성황후 시해범의 후손들, 사건 110년 만에 사죄(謝罪)의 뜻 전하기 위해 방한
ㅡ일제의 1895년 명성황후 시해 만행에 가담한 일본 낭인(浪人)의 후손들이 사건 110년 만에 한국을 찾아와 2005년 5월 10일 고종황제와 명성황후가 잠든 경기 남양주시 홍릉에서 조상을 대신해 무릎을 꿇은 채 사죄하였다.
1895년 경복궁에 뛰어들어 명성황후를 시해한 일본 낭인(浪人) 중 주역급인 구니토모 시게아키(國友重章)의 외손자 가와노 다쓰미(河野龍巳)씨와 이에이리 가키쓰(家入嘉吉)의 손자 며느리 이에이리 게이코(家入惠子)씨가 ‘명성황후를 생각하는 모임’ 회원들과 함께 이날 한국에 왔다. 저녁 6시 인천공항에 도착한 가와노씨와 이에이리씨 외 ‘명성황후를 생각하는 모임’은 2004년 11월 결성된 시민단체로 구마모토 출신의 전직 교사 20여명이 회원이다. 이들은 명성황후 시해범들의 후손을 찾아내고 관련 기록을 조사해 시해사건 진상 규명에 앞장서고 있다.
흔히 ‘을미사변’으로 알려진 명성황후 시해사건은 황후의 친러 정책을 막으려던 일본 세력이 1895년 10월 8일 새벽 경복궁에 무단 난입, 황후를 죽이고 불태운 사건이다. 미우라 고로(三浦梧樓) 공사의 지휘 아래 당시 한성신보 주필 구니토모 시게아키가 낭인들을 이끌었다. 미우라와 구니토모 등 명성황후 시해범 56명은 이듬해인 1896년 히로시마 법정에서 증거 불충분으로 전원 석방됐으며, 구니토모는 1909년 병사했다.
2007년 나이지리아 피랍 대우건설 임직원 3명 전원 석방
ㅡ나이지리아 건설현장에서 무장단체에 의해 피랍됐던 대우건설 임직원 3명이 사건발생 후, 6일 만에 무사히 풀려났다.
외교통상부는 2007년 5월9일 새벽 1시30분 나이지리아 리버스 주(州)정부와 무장단체가 총 5차례 협상 끝에 대우건설 정태영 상무, 안종태 전문위원, 하익환 부장이 모두 석방됐다고 발표했다. 정부 당국자는 “피랍됐던 정 상무 등 3명은 모두 건강하며 주나이지리아 대사관에서 보호하고 있다” 고 말했다.
대우건설 정 상무 등은 2007년5월3일 나이지리아 남부 니제르델타 지역 포트 하코트시(市) 북동쪽에 위치한 아팜 발전소 건설현장에서 총을 쏘며 난입한 무장단체에 의해 피랍됐다. 정 상무 등이 납치되는 과정에서 나이지리아 군인이 1명 사망하고, 무장단체가 과도한 정치적인 요구를 내세움에 따라, 사태해결이 지연됐었다.
2007년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 사전 구속영장 신청
ㅡ아들을 때린 술집 종업원들을 보복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는 한화그룹 김승연(55) 회장에 대해 경찰이 2007년 5월 9일 사전(事前)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이 폭행 혐의로 재벌 총수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한 것은 처음이다.
김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신청은 지난 3월 8일 사건이 발생한 지 60여일만에 이뤄졌다.
이날 경찰이 신청한 구속영장에는 김 회장이 아들과 몸싸움을 했던 서울 북창동 S유흥주점 종업원 4명을 청계산 인근 신축건물 공사장에 감금하고 쇠파이프와 손, 발 등으로 폭행한 혐의, S유흥주점에 찾아가 다른 종업원 2명을 손과 발로 폭행한 혐의 등이 포함됐다.
그러나 김 회장이 범서방파 행동대장 오모씨 등 조직폭력배를 동원한 혐의는 영장 내용에서 제외됐다.
2009년 영문학자 장영희 서강대교수 척추암으로 세상떠남(57세)
2009년 프로야구에서 양준혁이 역대 최다 홈런인 341호 홈런을 세웠다.
2017년 제19대 대통령선거 문재인후보 당선 득표 13,423,800표(득표율 41.08%) 투표율 77.2%(16대대선 이후 최고)
ㅡ제19대 대통령 선거는 12월이 아닌 5월에 치러진, 제6공화국 최초의 대통령 궐위선거였으며, 입후보자 수가 13명(당초 15인이었으나 두 명은 사퇴)으로 역대 최다 출마자 기록을 세우게 되었다. 또한 대통령 선거로는 사상 처음으로 실시된 사전 투표에서 투표율이 26.1%에 달하면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촛불집회를 거치며 시민들의 정치 참여 의지가 성장하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편으로 여섯 차례에 걸쳐 진행된 대통령 후보 TV 토론회의 큰 영향력과, 소셜 미디어와 예능을 통한 선거운동 등 이전과는 다른 특징들이 돋보였다.
투표 결과 더불어민주당의 문재인 후보가 총 유효투표수의 41.09%인 13,423,800표를 득표해, 2위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24.04%)와 3위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21.42%) 등을 제치고 대한민국의 제19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는 6.76%,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6.17%를 각각 득표하였고, 그 밖에 8명 군소 후보의 득표 합계는 0.52%에 그쳤다.
2021년 손흥민, 시즌 개인 최다 22호골...리그 17골은 차범근과 타이
1147년 일본의 가마쿠라 막부 개창자 미나모토노 요리토모 출생.
1429년 잔다르크가 오를레앙을 공격하던 잉글랜드군을 물리치다.
1746년 프랑스의 수학자 가스파르 몽주 출생.
1799년 프랑스의 고전주의 작곡가 클로드 발바스트르 작고
1805년 독일극작가 프리드리히 실러 세상떠남 『빌헬름 텔』 “간단한 일을 완전히 할 수 있는 인내력의 소유자만이 언제나 어려운 일을 쉽게 할 수 있는 익숙함을 지니게 된다.”
1850년 프랑스 화학자 게이 뤼삭 사망
1860년 영국 소설가 제임스 배리 출생
1888년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이탈리아 전투기 조종사 프란세스코 바라카 출생.
1907년 나치의 전범 발두어 폰 시라흐 출생
1916년 영국 프랑스 비밀협약 (터키문제)
1926년 미국 탐험가 리처드 버드 해군항공대 지휘해 처음으로 북극점 상공 비행 성공
-- 미국탐험가 로버트 피어리가 1909년 개썰매로 최초로 북극점에 도달했다고 알려졌으나, 실제로는 북극점 40km 떨어진 지점으로 밝혀짐
1927년 독일의 생물리학자 만프레트 아이겐 출생.
1928년 미국의 테니스 선수 곤잘레스 출생 - 미국 프로 선수권대회 남자단식에서 7회 연속 우승을 포함하여 8회 우승
1931년 폴란드계 미국의 물리학자 앨버트 마이켈슨 작고.
1936년 이탈리아, 에티오피아 병합 선언
ㅡ5월 9일 이탈리아가 무력제압한 에티오피아의 병합을 선언했다. 이탈리아 무솔리니 파시스트 정권은 공황에 의한 국내경제위기로부터 국민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1934년 12월 에티오피아와의 전선을 형성, 1935년 10월 국경분쟁을 이유로 에티오피아를 침공했다.
에티오피아 황제는 이를 국제연맹에 제소했으나 영국과 프랑스는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고 독일은 에티오피아 병합을 승인했다. 결국 에티오피아 황제는 영국으로 망명했다.
1940년 노르웨이 대독 항전 중지
1940년 소련군 프라하 점령
1945년 소비에트 연방이 정식으로 나치 독일의 항복을 받아내다.
1946년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 이탈리아 왕국 국왕 퇴위
1949년 모나코의 루이 2세 작고
1950년 `슈만플랜` 제창
ㅡ5월 9일 프랑스 외무장관 로베르 슈만이 `유럽석탄철강공동체계획` 이른바 `슈만 플랜`을 제창했다. 슈만 플랜은 `국경을 초월한 협력관계를 유지하지 않고서는 서유럽의 미래는 없다"는 전제하에 서유럽 전체의 자원과 공장을 초국가적 기능에 의해 관리한다는 내용이었다.
따라서 유럽의 석탄·철강 생산을 프랑스와 독일 및 이에 참가하는 유럽 여러나라의 공동관리하에 두고, 생산의 합리화와 근대화를 기초로 한 공동경제시장을 창설해 결국은 유럽연합으로까지 발전시킨다는 것이다. 프랑스와 독일간의 전쟁 가능성이 사라진다는 것도 부수효과로 제기됐다.
아데나워 서독 수상은 이 제안을 환영하며 독일과 프랑스의 화해라는 중요한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첫 걸음으로 평가했다. 서유럽 6개국(프랑스, 서독, 이탈리아, 베네룩스 3국)은 이듬해 4월 슈만 플랜을 구체화시켜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 조약을 체결하고 12월에 비준했다.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는 오늘날 유럽연합(EU)의 모태가 됐다.
1955년 서독,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함으로써 서독은 재무장 시작
1956년 일본 필리핀 배상협정 성립
1960년 미국 FDA, 먹는 피임약 ‘에노비드10’ 승인
1966년 중국 첫 수소폭탄 실험
1970년 중국 캄보디아와 정식 수교
1976년 이탈리아 북부 지진 750여명 사망
1978년 모로 이탈리아 전 총리 납치55일만에 로마 시내 차속에서 주검으로 발견
1979년 미국-소련 2단계 전략무기협정(SALT 2) 합의
1980년 중국 최초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실험계획을 발표
1987년 폴란드여객기 일류신62기 이륙 직후 엔진고장 추락 사망183명
1993년 제1회 동아시아대회 열림(상해 홍코우 경기장) 9개국 선수 임원 1,252명 참가
1994년 넬슨 만델라, 남아공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선출
ㅡ흑인이기 때문에 태어나면서부터 부당하게 차별대우를 받게 되자 한평생을 인권운동에 바친 넬슨 만델라가 1994년 5월 9일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최초의 흑인대통령으로 선출됐다.
청년동맹과 민족회의를 결성해 저항운동을 전개했고, 재판에서 종신형을 선고받고 악마의 섬 `로번 섬` 감옥에 18년 동안 갇히는 등 모두 27년을 감옥에서 보낸 인권운동의 투사인 그는 1993년 노벨 평화상을 받기도 했다.
1994년 4월 26일부터 29일까지 사상 최초의 다인종 선거가 실시되어, 흑인 지도자 넬슨 만델라가 이끄는 아프리카 민족회의(ANC)가 전체 유효 투표의 62.5%를 획득하며 승리했다. 이날은 342년간의 백인 통치를 종식시킨 역사적인 날로 기록되고 있다
1996년 캐나다 하원 동성애자 차별금지법 통과
1996년 나라시마 라오 인도 총리 사임
2003년 미국, 소형 핵무기 금지법안 폐기
ㅡ미국의 부시 행정부가 북한과 이란 등의 핵 개발을 억제하기 위해 의회에 소형 핵무기 연구·개발금지법의 폐기를 요구했으며, 미국 상원 군사위원회는 이에 따라 지난 9일 이 법의 폐기 조항이 포함된 2004년도 국방예산안을 9일 논란 속에 가결했다
이 법은 1993년에 제정된 ‘스프래트·퍼스(Spratt-Furse) 수정안’으로 TNT 5000t 이하의 폭발력을 가진 소형 핵무기 생산을 위한 연구와 개발을 금지하는 내용이다.
부시 행정부는 새로운 소형 핵무기를 개발할 계획은 갖고 있지 않다고 말했으나 이 같은 금지법은 미국이 냉전 후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군사력을 재편하는 시점에서 무기 연구를 제약한다고 주장했다.
공화당의 존 워너(Warner) 상원 군사위원장은 9일 “실전 배치는 하지 않겠지만 소형 핵무기에 대한 연구는 점점 더 지하시설로 들어가는 적들과 새로운 위협으로부터 미국을 보호하기 위한 신중한 조치”라고 말했다. 공화당 인사들은 “위험 물질을 주변에 퍼뜨리지 않으면서 생물·화학무기를 그 자리에서 태워 버리기에는 소형 핵무기가 적격”이라고 주장했다
2003년 콩고민주공화국 여객기, 160명 추락사
ㅡ콩고민주공화국(DRC)의 소련제 일류신76 국내선 항공기가 비행 도중 뒷문이 열리면서 여러 명의 승객들이 기체 밖으로 떨어져 사망했다고 외신들이 9일 보도했다.
지난 8일 밤 수도 킨샤사를 이륙한 사고기는 원래 화물기이지만 경찰과 가족 등 모두 200여명이 타고 있었으며, 이륙 45분쯤 뒤 2200m 고도를 비행 중일 때 화물을 싣고 내리는 뒷문의 압력장치 고장으로 문이 열리면서 승객들이 밖으로 떨어졌다. 추락한 승객 숫자에 관해 AP와 AFP통신 등은 공항 관계자들의 말을 인용해 160여명으로, BBC 방송은 129명으로 보도했으나, DRC 정부관계자는 10일 오전 0시 30분(한국시각) 미국 CNN 방송과 인터뷰에서 “희생자는 7명에 불과하며, 나머지 대부분의 승객들은 비행기 앞쪽으로 대피해 화를 면했다” 고 주장했다.
제트 엔진 4개가 달린 이 낡은 화물기는 콩고민주공화국 군 당국이 전세 내 킨샤사에서 동남부의 이 나라 제2도시 루붐바시로 운항 중이었으며, 아프리카에서는 흔히 화물기가 승객 운송용으로도 사용된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사고 후 조종사는 비행기를 킨샤사로 되돌려 무사히 공항에 착륙시킨 후 “모든 승객들이 기체 밖으로 빨려나갔다” 고 말했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2004년 친러 체첸대통령 아마드 카디로프 피살
ㅡ체첸공화국 수도 그로즈니 디나모 스타디움에서 2004년 5월 9일 폭발사고가 발생, 아마드 카디로프 체첸대통령이 사망했다. 이날 사건은 카디로프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 관리들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러시아의 2차 세계대전 승전 59주년 기념 행사가 열리던 도중 귀빈석 밑에 장착된 지뢰가 폭발하면서 발생했다.
그는 이슬람 성직자 출신으로 체첸의 독립을 위해 싸우던 투사에서 친(親) 러시아 인사로 변신한 인물이었다. 1999년 10월 러시아의 제2차 체첸 침공 이후 러시아에 적극 협력해 이를 토대로 2000년 6월 크렘린궁에 의해 체첸 대통령으로 지명돼 체첸을 통치해왔다. 이로 인해 그는 체첸 반군들의 암살대상 1호로 지목돼 왔다. 이날 그의 죽음은 자신의 변절 행위로 멀어진 민심을 되돌리는 데는 실패한 것으로 평가됐다.
체첸 공화국은 소련 연방 해체 후 러시아로부터 가장 먼저 분리 독립을 추구했으나 우리나라 경상북도 크기만한 1만9000㎢ 국토면적에도 불구, 연간 260만t의 원유를 생산해내는 등 유전이 풍부해 러시아로부터의 독립을 쟁취할 수 없었다. 2000여명으로 추산되는 체첸 반군 강경파들은 이런 국민적 정서를 이용, 체첸의 완전 독립을 주장하며 러시아에 끊임없이 저항하고 있다.
2009년 칼레마 모틀란테가 남아공의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2012년 여성 헤어스타일 혁명 이끈 ‘보브컷’ 창시자 비달 사순 별세
ㅡ1960년대 파격적인 ‘보브컷(Bob cut·단발머리에 컷을 넣어 비정형으로 스타일링한 머리)’을 선보여 여성 헤어스타일의 개척자로 우뚝 섰던 세계적 헤어스타일리스트 비달 사순(Vidal Sassoon·84)이 9일 오전(현지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세상을 떠났다.
사순은 1997년 백혈병 진단을 받은 이후 지금까지 투병 중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1928년 영국 런던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사순은 1960년대 여성 헤어스타일에 ‘자유’를 선사한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너는 가난하니 커서 미용사가 돼라”는 어머니 조언에 따라 14세 때부터 미용 가위를 잡기 시작한 그는 26세 되던 1954년 런던에 자신의 첫 미용실을 냈다.
사순이 세계적 주목을 받게 된 건 1960년대 초 ‘혁명적 단발컷’으로 평가받은 ‘보브컷’을 세계 최초로 선보이면서부터다. 그는 평범한 단발머리를 뜻하는 ‘보브’에 기하학적인 ‘커팅’을 넣어 ‘보브컷’을 탄생시켰다. 비달 사순이 창조한 스타일이라 해서 ‘사순컷(Sassoon cut)’으로도 불린다.
2012년 러시아의 수호이 슈퍼제트 100(Sukhoi Superjet 100) 최신형 첫 중단거리 여객기가 시험비행 중 인도네시아 살락산에 충돌, 승무원포함 전원이 사망하다.
2015년 터키의 제7대 대통령 케난 에브렌 작고.
2016년 ‘피도 눈물도 없는 치안정책’ 내세워 ‘막말 주자’ ‘필리핀판 도널드 트럼프’라 불리는 로드리고 두테르테(71) 필리핀대통령 당선
2018년 말레이시아 제14대 총선, 독립 이후 61년만에 처음으로 야당(희망연대)으로 정권교체, 마하티르 모하맛 전 총리(93세 1981-2003) 은퇴15년만에 총리 복귀
2021년 아프칸 학교 앞 폭탄 테러...200여명 사상, 피해자 대부분 학생
2022년 필리핀 대통령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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