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어드리 베어의 <융 평전>을 읽었는데 정말 힘들었다.
이 책을 읽으며 자서전과 달리, 제3자가 쓰는 평전이 어때야 하는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힘들었던 이유는:
1. 정말 두껍고 무거웠다. 2권 정도로 만들수 없었을까..
들고 읽기자체가 어려운 책이라니.. 거기다 수술후 누워서 읽고있는데 참으로..
2. 평전 저자가 융과는 완전히 다른 유형이다.
즉, 한편 융을 제3자적 시각에서 보여준 것은 나쁘지 않을수있지만
그래도 난 한 사람의 전기를 쓸때는 그 사람의 면면이 어느정도 드러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책은 그야말로 팩트 폭격이다.
근데 그 팩트 폭격이 융과 융의 이론에 대한 것이 아닌
융 주변의 모든 인물이 다 등장한다.
하다못해 끝에가선 평전을 누가 쓸지를 놓고 벌인 격렬한 갈등과 게약서 조항까지.
굳이 이럴 필요까지 있었나싶다. 이건 융 평전이라기보단 융 일대기에대한 백과사전같다.
융 연구소 기록물로는 좋을지 모르지만, 그의 삶과 분석심리학에 관심있는 이들에겐 아쉬움이 크다.
3. 내가 읽은 평전 중 가장 좋았던 건 휠터 아이작슨의 <스티브 잡스> 평전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마치 잡스가 직접 쓴것처럼 그의 성향까지 파악이 되고
그의 장점뿐 아니라 단점까지도 있는 그대로 객관적으로 묘사가 되고
거기다 시대적 배경과 그에따른 미국이라는 곳도 어느정도 공부할 수 있다.
탁월하고 훌륭한 평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 내가 발견한 가장 큰 사실은
융 또한 정말이지 불완전한 인간이었다는 사실이다.
융의 자서전과 심리학서들을 읽다보면
그가 마치 큰 샤먼처럼 느껴진다.
경계 너머로 넘어간 인물이랄까..
물론 그는 이미 당대에 그 천재성으로 위대한 영혼으로 일컬어질만큼
유럽 사회는 물론이고 미국에서도 존경받던 인물이다.
그럼에도 그런 위대함이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그 또한 살면서 실수하고 격렬히 갈등하고 고뇌하며
한걸음, 한걸음 위대함을 쌓았다는 그의 뒷면을 볼 수 있었던건 참으로 좋았다.
그토록 거대한 산과같던 그조차 이런 여정을 거쳐
삶 그 자체를 하나의 작품처럼 서서히 만들어간 것이라면
우리 또한 너무 힘겨워하지 말고, 서서히 각자의 삶을 만들어가도 괜찮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에서 필요 이상으로 상세히 기록하고 있는
지금까지는 보기 힘들었던 그의 인간적인 면을 기록하자면:
1. 어릴적 동성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
놀랍고 충격적인 일이다. 그런데 융은 이 사실을 오랜 시간 비밀로 한다.
그 대상이 아버지 친구였던 사제였기때문에. 다행히 한번으로 끝나기 했으나
이 일은 어린 융에게 사람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2. 엄청난 부자집 여성과의 결혼. 그로부터 얻은 경제적 자유.
어렴풋이 알고 있었으나 이번에 확실히 알게 되었다.
경제적으로 쪼들리던 융은 운좋게 스위스에거 손꼽히는 부잣집 자산 상속녀와 결혼한다.
이로서 결혼과 함께 경제적 자유를 누리게 된다. 하지만 그는 이 사실에 그다지 개의치않고
자신만의 길을 걷는다. 워낙 심리학 외의 일에는 관심이 없었던 그라서 그러했다.
그럼에도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책임을 지기위해 전전긍긍했던 프로이트보다는 훨씬 유리한 입장이었다.
3. 일찌감치 시작된 불륜
상담자로 활동을 시작한 초반 이미 내담자와 불륜 관계가 벌어진다.
흥미로운건, 그녀는 병을 치유하고 그 자신도 분석심리학자가 되었다는 사실.
융은 확실히 정신과 의사로서도 그 능력이 탁월했다고 한다.
4. 프로이트와 격렬한 대립
전해지는 말보다 프로이트와의 대립은 훨씬 격렬하고 오래 이어졌다.
그리고 전해지는 말보다 융은 프로이트와의 대립을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그만큼 무의식 세계가 억눌린 성욕으로만 이루어졌다는 프로이트의 생각에 절대 동의하지 않고
자신만의 이론 체계를 연구해 들어갔다. 오히려 현실에선 프로이트가 융의 도움이 더 필요했었다.
5. 융의 욕망과 포부
프로이트와 결별한 이유는 이론적 대립도 있었지만
현실에서의 융은 아들러 못지않게 권력욕이 강했언 인물이었다.
그의 자서전을 보고 그가 어떤 유형인지 파악후 그럴것이라 예상은 했었는데
이 책을 보니 그는 학문적으로나 권위적으로 야망이 아주 큰 인물이었다.
그 큰 야망이 원동력이 되어 분석심리학이란 사상의 창시자가 되었겠지만 말이다.
6. 토니 볼프와의 삼각관계
또 하나 놀라웠던 사실은 융은 일생 아내, 엠마와 더불어 토니 볼프라는 여성과 삼각관계를 유지한다.
그리고 더 놀라운건, 엠마가 이 사실을 용인했다는 것.
융은 마치 아내 두 사람을 거느리고 산 족장과도 같았다고 한다.
엠마는 아이들을 낳고 길러주는 전통적인 아내였다면
토니 볼프는 (일생 아이는 낳지 않았다) 엠마가 육아로 바쁜 나머지 채워줄 수 없었던
나머지 부분을 채워주는 파트너와 같았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융에게 가장 중요했던 것은 이 두여인 포함 가족이 아닌 그의 학문이었다고 하니
참으로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7. 나치 협조자 Vs 유태인 도우미
융을 끝까지 따라다닌 불명예 중 하나가 나치 동조자라는 낙인이었다.
이유인즉, 융의 입장에선 세계대전을 일으킨 히틀러와 그의 동료들 심리상태가 너무도 궁금했다고.
해서 그들이 도움을 요청했을때 순수하게 학문적 호기심으로 그들과 접촉을 했던건 사실이라고 한다.
하지만 한편 유태인을 돕는 여러가지 일들도 하였다고 한다.
그리하여 나중에는 나치의 감시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고.
그럼에도 나치에 동조했다는 사실만큼은 오래도록 융의 명예에 흠이되는건 사실인 것 같다.
8. 철학에의 깊은 조예: 칸트 & 니체
칸트를 이해하지 못하고 나를 이해하려 들지말라, 고 할 정도로 융은 심리학 이전 철학에 조예가 깊었다.
그런가하면,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를 심리학적 관점에서 분석하기도 할만큼
니체와 동일시를 하기도 하였다고.
물론 철학뿐 아니라 융은 신화, 종교, 연금술, 동양사상 등 그의 관심은 폭넓었다.
9. 동양사상에 대한 그의 이해
그럼에도 동양사상에 대한 이해가 (동양인의 관점에선) 아주 깊었다고 말할 정도까지는 아니었던 것 같다.
아프리카 여행에 이어 인도까지 여행을 하며 그 자신 자신의 심리학적 경험치를 확대하려하고
그나름 의미깊은 경험을 한 것은 사실이겠으나, 아무래도 시대적인 한계상 동양사상에 깊이 접근하진 못한 것 같다. 동양인으로서 약간 아쉬운 부분이다. 심리학과 동양사상은 깊이 단계에서 통하는 것이 많기에.
10. 프란츠와 야코비
또 하나 흥미로운건 융을 잇는 제자들 중 남자 제자들보단 여제자들이 탁월했다는 사실.
그 중 학문적으론 마리아 폰 프란츠가 으뜸이었고, 야코비는 융 연구소를 이어가는데 탁월했다고 했다.
11. C.G 융 연구소
이건 당대로선 융의 분석심리학이 하나의 학문 체계로 자리잡는 거대한 완결점이었다고 한다.
그런만큼 이 연구소 건립을 두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격렬한 의견대립을 벌였는지
말년의 융도 지쳐 나가떨어질 정도였다고. 시대불문, 사람들이 모여 무언가를 도모하는데 각자 이해관계가 다른만큼 갈등은 필수인듯하다. 더군다나 다들 내노하라는 심리학자들끼리 모여도 이정도니. 씁쓸하기도 하고 위로가 되기도 한다.
12. 삶의 일부였던 죽음
그는 죽음을 앞두고 여러가지 병에 시달리며 쇠약해진다. 그럼에도 죽기 며칠전까지 분석심리학에 대한 토론의 끈을 놓지 않는다. 그도 역시 인간의 한계가 있었다는 생각과 함께, 그럼에도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든다.
죽음을 앞둔 융은 그 어느때보다 경계너머 환상경험을 많이 하였는데
그 중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우주의 한가운데 같은 산봉우리에 다 이루었다, 라는 글이 새겨진 환상이다.
이 환상을 본 융 자신도 이제 갈 때가 되었다고 말했다고 하니
무릇 위대한 영혼들은 어떤 방식으로던 자신이 갈 때를 아는 것 같다.
특히 융의 경우, 죽음은 절대적으로 삶의 일부라고 하였다고 하니
역시나 죽음 이후에도 이어지는 무언가가 존재하는 건 맞는거같다.
13. 전 세계의 애도의 물결
그의 죽음이 알려지자 스위스는 물론이고 유럽 전역과 미국에서까지 애도이 물결이 이어졌다.
다들 그를 두고 "위대한 천재, 위대한 영혼"이었다는 점에서는 일치한다고.
그리하여 그가 남긴 분석심리학이란 학문은
오히려 그의 사후에 본격적으로 전 세계에 퍼져나가며
그 범위를 가늠하기 어렵다고 하니
확실히 살아생전 그가 도달한 세계의 깊이는 헤아리기 어려운건 사실인 것 같다.
사람들의 경험할 수 있는 심리학적 무의식 세계를
가장 깊고 넓게 문을 열어보이고
그 자신 무의식 세계 자체가 되어버린 칼 융.
그 영혼의 깊이는 어쩌면
선승들의 깨달음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듯
감히 이해하지 못할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역시 불완전한 인간이었지만
너무 깊은 영혼. 칼 구스타프 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