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력과 음력에 대하여
우리나라에서 양력이라는 달력과 음력이라는 달력을 공용하는데 이런 나라가 주변에 몇 있다.
중공, 대만, 한국, 베트남, 태국, 미얀마 등이 이러한 갈등 속에서 두 날을 명절처럼 여긴다.
이러한 갈등이 오게 된 까닭은 종전부터 음역을 써 오던 역사에서는 중국이라는 나라가 달력을 세력 확장의 도구로 여기고 동양전체를 장악하여 왔었다는 타성에서 비롯된다.
음력은 중국황제의 전용물로서 해마다 이웃에 있는 약소국에게 은사물로 지어 보낸 것이다.
그러다가 일본이 일찍이 개화되면서 서양의 태양력을 사용하여 양력이라는 이름으로 영향력이 미치는 한국과 일부 대만 필리핀에 사용하게 한 것이 문제의 발단이 된 것이다.
해양과 대륙의 세력에 좌우되어 온 반도국인 우리나라로서는 어치피 지배를 받는 나라의 달력을 사용하게 되었는데 음력과 양력이 기묘하게도 그 용도를 달리하는 부분만 이용하여 사용함으로서 소위 양다리를 걸치는 상황으로 변질 된 것이다.
양력설은 근대화나 도시화, 식민지화 등과 함께 시작된 세시풍속으로서 처음에는 일본인들이 강요한 설로 시작되었다가 점차 그 근대적 의미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면서 일부 사람들에게는 음력설을 대체하는 것으로 정착되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 설은 음력설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으며, 양력설은 설의 의미를 상실하고 일년의 시작이라는 의미를 더 강하게 가지고 있다. 현재의 시간체계가 태양력에 기반하고 음력설이 가지는 전통적 상징성이 지속되는 한 설의 이중체계는 당분간 지속될 것이다.
인접국가에서는 한국에서는 오랜 시기 동안 음력설과 양력설에 따른 갈등을 겪어 왔어도, 인접한 일본에서는 1872년 태양력이 채용된 이래 원단(元旦)이라는 이름 아래 양력에 따라서 설을 쇠어 오고 있고. 중국에서는 여전히 춘절(春節)이라는 명칭으로 음력설을 지내고 있으며. 북한에서는 양력에 따라서 설을 쇠다가 1989년 정무원의 결정을 통해서 음력설도 공휴일로 쇠고 있다. 북한에서 음력설은 하루만 공휴일인 반면에 양력설은 이틀간 공휴일이다.
우리나라에서 양력설은 국가의 필요성에 따라 전통적인 세시풍속인 음력설을 대체하기 위하여 도입된 것으로 오랜 기간 정치적인 논란을 불러왔다.
양력 1월 1일에 설을 쇠는 양력설이 한국에 도입된 것은 1896년이다. 음력으로 1895년 11월 17일을 양력으로 1896년 1월 1일로 정한 것이다. 이 당시에 태양력의 도입을 얼마나 중대한 사건으로 여겼는지는 개혁을 추진하던 김홍집(金弘集) 내각이 조선시대 최초의 연호를 태양력을 도입했다는 의미의 건양(建陽)으로 정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하지만 태양력의 도입이 단발령의 시행과 함께 일본의 압력으로 이루어짐에 따라 일반 국민들에게 양력설은 일본설로 인식되었다. 일제강점기에 들어서면서 일제는 양력설만을 공휴일로 정하였고, 당시의 많은 언론매체에서도 양력설과 음력설을 동시에 쇠는 것을 이중과세(二重過歲)라고 간주하였으며, 음력설보다는 양력설을 지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양력설만이 공식적인 설로 간주된 반면, 음력설은 개인들이 지내는 사적인 설로 폄하되었다. 음력설에 대한 공식적인 탄압과 금지에도 불구하고 양력설을 빨리 받아들인 일부 사람들을 제외한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음력설을 따랐었다.
1949년 6월 4일 양력설을 공휴일로 정하였고, 1950년부터 이를 시행하였다.
양력설 중심의 국가정책은 일제강점기와 달라진 바가 없었다. 1월 1일부터 1월 3일까지 휴일로 정하면서 양력설을 장려한 국가정책은 1989년까지 계속되었다. 1985년에 ‘민속의 날’이라는 명칭 아래 음력설을 공휴일화하고, 1989년 2월 1일 대통령령인 ‘관공서공휴일에관한규정’을 개정하여 하루만 쉬던 음력설을 사흘 연휴로 개정하면서 명칭도 설날로 복원하였다. 이로써 1990년에는 음력설과 양력설 모두 사흘씩 쉬었다. 1991년부터는 양력설의 연휴를 이틀로 줄이고, 1999년부터는 1월 1일 하루만 휴일로 지내고 있으며, 명칭도 신정이라는 표현 대신에 ‘1월 1일’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이처럼 양력설은 1991년까지 음력설 대신에 한국의 공식적인 설날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설에 대한 이러한 국가정책의 변화는 전통적 설에 대해 한국인들이 부여한 의미가 그만큼 컸다는 사실을 반영하는 것이다.
대다수의 한국 국민들은 음력설을 진정한 설로 인정하고 음력 설날에 차례나 세배, 윷놀이 등의 세시풍속을 행했지만, 공무원 등의 직업을 가진 이들은 양력설만이 공휴일이어서 명절을 보내기가 편리하고 또한 솔선해서 국가정책에 따른다는 의미에서 양력설을 쇠기도 하였다.
이들이 양력설에 주로 행한 것은 여타 사람들이 음력설에 행하는 것과 대동소이하다.
가장 대표적인 세시풍속으로 조상에게 제를 올리는 차례와 어른들께 절을 하는 세배 등이 있다. 서로 복을 빌고 축하하는 덕담을 주고받고, 집안 식구들끼리 윷놀이를 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화투놀이를 하기도 한다. 양력설을 지내던 사람들도 1990년부터 음력설이 공휴일이 되자 대부분 음력설을 쇤다. 하지만 일찍이 양력설이 세계적인 추세라는 판단 아래, 양력설을 집안이나 문중, 마을의 공식적인 설날로 정한 사람들의 후손이나 직업상의 이유로 양력설을 지낸 사람들 중에서 양력설이 더 편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여전히 양력설을 지내기도 한다. 양력설을 쇠는 것과 상관없이 사람들은 양력설이 다가오면 가까운 사람들에게 연하장을 보내기도 한다.
현재 한국에서 양력설은 일반 국민들이 지내는 설이라기보다는 공식적으로 일년이 시작되는 날이라는 의미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대중매체를 통해서 확인할 수가 있는데, 공식적인 신년사나 덕담, 세화 등이 양력설 혹은 1월 1일을 기념하는 신문에 실리거나 방송에 방영되는 것을 볼 수가 있다. 또한 각 기업이나 관공서에서도 시무식을 1월 2일에 실시하여 양력설이 일년의 시작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생산하기도 한다.
근래에 와서 생긴 풍속이기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종로의 보신각 주변에 모여서 한 해가 가고 새해가 시작됨을 기념하여 1953년부터 공식적으로 시작된 제야의 타종행사를 경축하고, 같이 새해의 소원을 비는 행사를 가지기도 한다. 이때에 폭죽이나 불꽃놀이를 행하기도 한다. 방송국에서 제야(除夜)의 타종행사를 중계하면서 이 행사에 좀더 큰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양력설에는 음력설과는 달리 마을공동체 단위의 행사는 벌어지지 않는다. 마을 단위로 벌어지는 동제를 비롯한 여러 세시는 음력설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이다. 양력설은 근래에 와서 생긴 세시로 도시와 지방의 편차가 음력설에 비해 거의 없다.
음력설을 지낸다고하여 미개한 나라가 아니고, 양력을 사용한데서 개명된 나라로 구분 하는 것 역시 잘못된 생각이다.
음력의 논리적 면모는 동양역사의 전부를 좌우해 온 역활도 이어저 왔었고, 양력이 마르코 폴로에 의해 서양에서 일찍 전해 와도 그당시는 이를 양용으로사용 했을 뿐이여서 동양에서의 양력은 어디까지니 달력에 불과하였다.
그리고음력이 동양의 모든 생활과 풍물과 기준에서 볼 때 무시되어서는 않되는 부분이 잇는 것이다.
다만 오래 된 감정으로 인한 부작용이 지나치게 변질 된 상황에 불과하다. 그러나 단순하지 않는 상황이다.
이는 더 두고 보면서 인간의 지혜로운 선택에 따를 뿐이다.
이관희 수집 (자료 국림민속자료 및 네이버자료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