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버스를 소재로 한 소설 10편을 묶은 『버터플라이 허그』(푸른사상)
중견 작가 열 명의 창작 소설을 모은 이 작품집에서는 상상해오던 세계를 오감으로 생생하게 체험하는 세계가 펼쳐진다. 현실과 가상이 뒤섞인 메타버스 세계에서 문학의 상상력은 더욱 강력해진다. 2023년 7월 3일 간행.
■ 목차
김 경_ 레퀴엠을 듣는 시간
김미수_ 내일이면 사라질 문장
김민주_ 버터플라이 허그
김지수_ 안녕! 안드로메다
김태정_ 아고라를 향해
엄현주_ 카페드림
이덕화_ 그가 나에게로 왔다
이연숙_ 알레 마지끄
이하언_ 무한의 오로라
허정수_ 타터, 스스로 죽다
■ 책머리에 중에서
처음에는 메타버스를 공부하는 중견 작가들의 모임으로 시작했다. 이론 공부를 위해 몇 달간 관련 논문을 읽고 함께 토론했다.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 때문인지 참가 인원 전체의 열기가 대단했다. 메타버스 기술과 게임을 바탕으로 한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라는 드라마도 함께 보았다. 1년에 걸쳐 기초이론 공부를 했다. 어느 정도 감을 잡고 단편 한 편씩을 썼다. 작품 초고에 대한 예리한 지적이 이어졌고, 두세 차례 합평회를 통해 고쳐갔다. 2년여 세월이 흘러 작품이 완성되었다. 구성원들의 열정에 무엇인가를 이룰 것이라는 기대가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다들 새로운 세계에 몰입했고, 그것이 어떻게 작품 결과로 이어져 독자들의 호응을 얻느냐가 관건이었다. 독자들의 관심을 어떻게 끌어들이냐에 따라 앞으로 메타버스 세계가 더 확장 발전되거나, 혹은 그대로 머물기 때문이다.
메타버스가 최첨단 기술로 만들어진 새로운 세계라면, 메타버스 소설은 지금 몸담고 있는 현실과 새로운 세계를 오가며 또 다른 제3세계까지 확장하는 이야기이다. 메타버스 세계가 생기면서 현실은 가상의 세계까지 확장하고, 당장 눈앞의 현실이 아니라 과거와 미래까지 소환, 지금까지 인류가 풀지 못했던 문제까지 푸는 열쇠가 될 수 있다.
■ 추천의 글
“생각을 오감으로 생생하게 느껴보십시오.
당신의 생각이 펼치는 세상으로 당신을 초대합니다.”(「카페드림」)
우리는 초대받았다. 우리의 생각을 오감으로 실감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의 세계로부터 온 초대장이다. 메타버스 환경에서 브람스의 클라라가 되기도 하고, 사별한 부모님과 행복했던 시간을 다시 경험하며 의미 있는 애도 작업을 수행할 수도 있다. 현실과 가상현실, 증강현실을 넘나들며 현실은 심화 확대되고 그에 따라 감각의 지도도 무한 팽창을 경험한다. 꿈꾸고 상상하는 인간의 욕망과 유희 본능, 행복감 등은 메타버스 기술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경계를 넘어 탈주를 거듭한다. 포스트-현실에서 포스트-휴먼의 감각을 탐문하는 인공지능과 인공 상상의 협업 양상도 흥미롭다. 이 초대에 응하면 우리는 여러 세상을 중층적으로 복합적으로 감각하고 실존할 수 있게 된다. 새로운 감각적 실존으로 우리 또한 새로운 상상적 탈주를 신나게 수행할 수 있게 될 것이다. ― 우찬제(문학평론가)
■ 작품 속으로
야호! 클라라와 브람스는 전망대에 버티고 서서 마음껏 소리친다. 사방 천지가 만년설로 뒤덮였다. 웅장한 설산의 기품에 눈이 부시다. 가슴이 확 트인다. 그동안 쌓인 응어리가 단숨에 풀린 듯하다. 브람스, 이 풍광이 바로 순수한 자연이구나. 순순한 자연……. 우리도 이 자연의 일부겠지? 클라라는 감격에 겨워 목이 잠긴다. 클라라, 하늘을 봐. 팔짝 뛰면 금방이라도 오를 것 같잖아? (김경, 「레퀴엠을 듣는 시간」, 31쪽)
독자들은 뮤가 써가는 이야기에 감흥을 받은 듯 표정이 수시로 바뀌고 있었다. 표정이 없어진 지 오래된 이들이 유일하게 자신의 표정을 되찾는 시간을 이곳 라이팅 룸에서 가진 듯했다.
작가가 즉석에서 써낸 이야기.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뮤가 만든 뮤의 이야기. 독자들은 그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홀로그램으로 전송하기도 했다. 누구든 바로 감상할 수 있었다. 바로 공개되므로 누구도 표절할 수 없었다. (김미수, 「내일이면 사라질 문장」, 62쪽)
“체온이 느껴지나요? 동작은 기계적일 수 있지만 우리는 기계가 아니기에 체온이 전달되지요. 그것은 간절함을 전하고, 그 간절함이 변화를 이끌어내지요. 이 기계 역시 단순히 기계가 아니에요. 차세대 기술은 인간의 마음과 마음을 연결하는 게 궁극적 목표에요. 기술은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발전해요. 마음을 얻어야 고객은 지갑을 열거든요. 그러니 0과 1로 이루어진 디지털이 이루려는 궁극적인 목표는 아날로그적인 인간의 마음이에요.”
(김민주, 「버터플라이 허그」, 81쪽)
“사실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은 따로 있어.”
이모는 이어 새로운 최첨단 패션 월드를 만들어 수익을 창출하는 이런저런 포부를 열성적으로 털어놓았다. 마치 알리바바와 40인이 일제히 램프를 밝혀 들고 있는 듯한 환상적인 계획들이었다.
서연의 우주 맵에서도 보다 큰 플랜이 있었다. 45년째 우주를 비행하고 있는 보이저호보다 더 진보된 우주선에 탑승해 별들의 세계를 탐사 체험하는 꿈이었다.
(김지수, 「안녕! 안드로메다」, 110~111쪽)
설립 초기에는 이름대로 꽤 이상적인 구석이 있었다. 그들은 가상세계에서의 아고라를 만들겠다고 했다. 유저들이 자유롭게 모여 인생을 논하고 경제활동까지 하는 공간을 제공하겠다고. 그러면서 다양한 기업들과 연동해 세를 키웠고, 옐로우버스도 아고라조에 편입해 입지를 다졌다. 황 사장은 ‘아고라아아조’라고 혀를 굴리며 자신이 큰 지분을 갖고 있음을 자랑하고 다녔다. 아무튼 그들의 뜻대로 돈이 모이는 곳에 새로운 유행도 만들어졌다.
(김태정, 「아고라를 향해」, 121쪽)
점차 시간이 지나가자 어떤 패턴이 있다는 걸 규는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일정 시간에 이를테면 오후 1시에서 4시 사이, 햇빛이 잘 드는 창가 자리를 차지해 노트북을 들여다보며 꿈꾸는 표정을 짓는 사람들이 정해져 있는 것이었다. 남자 둘, 여자 하나인데 그들은 그 자리를 놓칠세라 안간힘을 쓰는 광경을 그는 몇 번 목격했다. (엄현주, 「카페드림」, 143쪽)
메타버스 갤러리 플랫폼이 만들어지고 이미 영상이 다 완성되었다. 한 장씩 화면이 바뀌면서 다양한 배경 속에 배치된 차말의 그림이 펼쳐진다. 차말의 그림들은 시간을 반대 방향으로 돌리고 있는 것 같았다. 따뜻한 햇살이 드리운 푸른 언덕에 책으로 얼굴을 가리고 누워 있는 모습, 물안개가 피어 오르는 바다, 금모래를 뿌려놓은 듯한 흔들리는 물결,…
(이덕화, 「그가 나에게로 왔다」, 179쪽)
휴먼카페에 익숙해질 즈음, 경재는 연이가 그렇게도 사랑했던 ‘알레 마지끄’에 가보자고 했다. 이 말을 듣자마자 연이는 얼굴이 환해지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옛 모습 그대로 재현된 아름다운 ‘알레 마지끄’로 들어섰다. 연둣빛 새순들이 돋아나고 봄꽃들이 화사한 산책길은 따뜻한 봄으로 가득 차 있었다. 연이는 마법같이 펼쳐진 만개한 벚꽃 터널을 보며 달콤했던 경재와의 추억에 젖어든 듯했다. (이연숙, 「알레 마지끄」, 197~198쪽)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그러나 혜진이 그토록 갈구하던 것들이 무한한 속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강에 몸을 던지기 전 핸드폰에 마지막으로 남겼던 이름, 혜령과 나는 그 공간에 없었다. 면회 시간이 끝나고 병실을 나서기 전 헤드셋을 벗겼다. 혜진의 행복한 꿈을 빼앗는 듯했다.
(이하언, 「무한의 오로라」, 222쪽)
사람들은 이제 지구에서의 삶이 지루해서 모험을 찾아다니는 우주의 도전자들이 되었다며, 거칠고 추운 별에서 텐트 치고 캠핑하며 어린 왕자가 되는 꿈을 꾸는 낭만주의자들이라고 설득했다. 또한 용감한 챌린저라면 자신이 우주선을 타고 우주로 나가 자기의 별을 찾아내는 모험과 투자를 원하는데, 이때 화폐가 활발히 이동할 거라고 계산을 해줬다.
(허정수, 「타터, 스스로 죽다」, 238~23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