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수행이야기]〈43〉겨울바람 속에 봄바람이 담겨 있다
좋고 나쁜 것 마음에 증감(增減) 없이 인연따라
기쁨에는 슬픔이 전제돼 있어
생사·열반 양쪽 보는 지혜 필요
“인생이란 무엇인가. 어차피 참고 걸어가는 먼 길이다. 좋은 일도, 어려운 일도 많은 길이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가변성을 가진다…나는 검찰에 몸담던 시절, 인생의 절정기에 있던 인사들을 수사하며 그들의 영욕을 지켜보았다. 잘나가던 사람이 한 발자국 더 나가겠다고 욕심을 부리다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목도했다…그때 얻었다. 도전도 야망도 분수에 맞게 가져야 한다.”
위 글은 이전 검찰총장을 지냈던 이 아무개가 한 말이다. 글을 읽으면서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그가 삶속에서 느낀 표현을 불교 진리와 견주어 보며, 생활 속에 불법이 담겨 있음을 새삼 깨달았다. <유마경> ‘불이법문품’에 이런 내용이 전한다.
“해탈열반을 좋아하고, 세간을 좋아하지 않는 것을 둘(二)이라고 한다. 반대로 해탈열반도 좋아하지 않고, 세간 또한 싫어하지 않는 것을 불이(不二)라고 한다. 속박이 있다고 한다면 해탈을 열심히 구하겠지만, 속박이 없는데 무슨 해탈을 구할 것이 있겠는가.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는 이에게는 정작 기뻐할 것도 없고, 슬퍼할 것도 없다.”
이 경에서 언급한 불이 사상은 대승의 상징적인 진리요, 중도(中道)요, 공사상이다. 대승경전에서 언급하는 진리나 선사의 말씀이 수행의 저 높은 경지를 표현한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삶의 표상이요, 인생에서 터득된 땀의 결실이다.
기쁜 일이 생겨도 기쁨에는 슬픔이 전제되어 있는 것이요, 슬픈 일이 발생해도 바로 기쁜 일을 전제로 하는 슬픔이다. 곧 기쁨이든 슬픔이든 그 어느 것도 영원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명예로 이름이 오를 때는 그 명예가 생기는 순간부터 언젠가는 추락함이 잠재되어 있다. 누군가가 나를 칭찬하면, 언젠가는 비난할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자연 현상으로 보아도 그러하다. 꽃이 피었을 때는 그 꽃 속에 꽃잎이 떨어짐을 함께 가지고 있으며, 사람이 태어났을 때는 생명이 길고 짧을 뿐 그 생(生)과 동시에 죽음이 전제되어 있다. 또한 도자기가 만들어졌을 때는 깨질 수 있다는 잠재성을 가지고 있다. 영원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니 어떤 것에 집착할 것인가!
그래서 삶과 죽음, 즐거움과 고통, 밝음과 어두움, 생사와 열반 등은 모두 제각각인 것 같지만 결코 다르지 아니하다(不一不二). 어떤 현상에 치우칠 필요도 없고, 그 어떤 것에 차별을 두지도 말며, 양쪽의 가치를 공정하게 보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본다.
달마선사의 사행(四行) 법문 가운데 수연행(隨緣行)이 있다. 고통과 즐거움을 받는 것이 모두 인연에 따라 받는 것이니, 인연이 다하면 다 사라지게 되어 있다. 그러니 어찌 기뻐할 것이 있겠는가. 좋고 나쁜 것도 다 인연에 따르며 마음에 증감(增減)이 없기 때문에 기쁜 일에도 동요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 반대로 뒤집어보면, 슬픈 일에도 의기소침하지 말 것을 추론해 볼 수 있다.
자연 현상이든 어떤 것이든 간에 인연되어 홀연히 생겨났다가 인연이 성글면 사라지게 되어 있다. 어느 누구에게나 영욕(榮辱)과 고락이 있는 법이요, 어느 누구나 삶의 무게와 깊이는 같은 것이다. 오로지 자신만 특별히 겪는 것은 아니다. 그러기 때문에 선사들은 수행자들에게 팔풍(八風, 이·利, 쇠·衰, 훼·毁, 예·譽, 칭·稱, 기·譏, 고·苦, 락·樂)에 동요되지 말라고 강조하였다.
한 해가 시작되는 이즈음, 매서운 겨울바람이 불어오지만 그 바람 속에는 희망찬 봄바람이 내재되어 있다. 겨울바람에 힘들어하지 말자.
정운스님… 서울 성심사에서 명우스님을 은사로 출가, 운문사승가대학 졸업, 동국대 선학과서 박사학위 취득. 저서 <동아시아 선의 르네상스를 찾아서> <경전숲길> 등 10여권. 현 조계종 교수아사리ㆍ동국대 선학과 강사.
[출처 : 불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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