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에 꼬릴 물고 이어지는 작품 전시회 이야기
그래도 한 번 읽어 보시면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ㅋ
미영(8회) 동창과 작은 아버지 부부
인천의 모 초등학교인가 서울인가? 벌써 잊었네 으으~~
교장선생님으로 은퇴하셨다고.....
이쁜 조카가 작품전시회를 한다고 하니 일부러 찾아오셔서 작품 몇 점을 구입하시고 가셨다.
나도 조카가 이렇게 작품전시회를 한다면 미국이라도 달려가겠다.
이 다음에 내 아들놈도 예술가로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하곤 한다.
기중 선배와 6회 동창회장 유영례 선배
뭐가 그리 즐거우신지......아마도 7회 선배가 사진 찍어달라고 하니까 거절한 걸까? 이쁜 영례
선배님을 기중 선배님은 왜 안 찍어드린다고 했을까?
아무튼 영례 선배님도 여걸에 속하는가 봅니다. 회장님을 하시니 ㅎㅎ
이번에 보니 대월 출신들의 인물이 참 좋더군요. 키가 작고 못생긴 나로서는 키 크고 잘 생긴
사람들이 제일 부러웠는데.....선남선녀들이 다 모인 대월 동문회!
작은 어머니께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는 8회 동창 미영
난 이제야 알았다. 사진을 찍으려면 키도 커야 하고
카메라도 좋아야 하고.....옷도 멋지게 입어야 한다는 걸!
6회 선배님들
앞에는 위 사진에서 설명했듯이 신당리에 사셨다는 유영례 선배님
뒤에는 얼굴은 알겠는데 이름은? 대산리에 사셨는가요? 죄송해유! 알려주시면 소개해드릴께요.
복을 지니고 사는 방법이란 미영 동창의 작품
복짓는 삶은 쉬운 것 같지만 그렇지만은 아닌 것 같다. 사실은 복을 받으려고 기도하지 않아도 복을 지으며
살면 저절로 받는 법인데.....
얼마전 제자 중에 명리학을 하는 분이 왔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생활하며 돈을 좀 모으면 명상을 하러
인도에 가서 수년 동안 머물며 수행도 했었단다. 그 분이 최근 들어 명리학을 공부하고 있어서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면서 자신의 사주팔자나 운세가 나빠도 복을 많이 지으면 좋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중 기억나는 것을 소개해 보겠다.
- 눈으로 복을 지어라.
상대방을 바라볼 때 사랑하는 마음으로 좋아하는 마음으로 그윽하게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복을 지을 수 있다.
- 말로 복을 지어라.
말 한 마디라도 좋은 말을 해주는 것도 복이다.
- 얼굴표정으로 복을 지어라.
웃는 표정, 온화한 표정은 절로 복을 가져다 준다.
-음식으로 복을 짓는 것 보다 좋은 복은 없다.
이번에 후배 강은숙(13회)을 보면서 다시 한 번 느꼈다. 동문회에서 이미 다 아는 사실이지만 후배는 맛있는 음식을
늘 공양함으로써 엄청난 복을 짓고 있음을..... 이런면에서 본다면 여자들이 오래 사는 복을 누리는 것도 늘 음식으로
식구들에게 복을 짓기 때문인가 싶다. 밥짓기 힘들어하시는 선후배님들 힘내세요!! 제 마눌도 벌써 힘들어 한답니다.ㅎ
미영동창의 질그릇 같은 작품
질쇠양반이 농사짓던 이야기를 꾸밈없이 써내려간 글이다.
글씨체도 그 분위기에 맞게 쓴 것은 물론......
미영은 내 분위기에 맞는다고 ㅎㅎ
내가 촌에서 사니까 촌스러운 분위기의 작품을 추천해 주는 초감각 센스!
아무튼 이 작품은 덕유산 자락의 산골 대청마루로 가져왔다.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이 작품은 마치 예전에 서당에서 사용되었던 한자책같은 분위기가 풍긴다.
갈색 선을 정성스럽게 하나 하나 그어 예전부터 내려오는 전래동화처럼 꾸몄다. 참 재미있는 발상이 아닌가?
우리 아버지때 흔히 볼 수 있었던 풍광이 그려지는 이야기를 읽고 있노라면 절로 욕심이 사라진다.
더 많이 가지고 살면 행복할 거라고 생각하며 살았던 우리 세대들.....그러나 우리 나라의 행복지수는 세계
100위권 밖에 있단다. 가난한 시절이었지만 아버지가 몰고 가는 소달구지를 타고 논과 밭으로 다니던 추억.....
저녁이면 온 동네 가득히 밥짓는 연기가 피어나던 여여하고 인심 푸근했던 때가 절로 그리워지는 작품이다.
우리 집에 오시면 다시 볼 수 있다. 관람료는 1000원. 이 작품은 후에 지금의 몇 배의 가격으로 올라갈 걸작이기에 ㅎㅎ
글씨의 기본 골격을 과감히 탈피한 글시체!
작품 속에는 작가의 삶이 묻어나있는 법이다. 다람쥐 쳇바퀴도는 일상생활처럼 정자화된 글씨
가 또 쓰여졌다면 아마도 고루하다는 느낌이 지지워지지 않았을 것이다. 미영 작가는 글씨체를 타파함으로써
짧은 귀절에 역동적인 생명력의 기(氣)를 불어넣어 주었다. 마치 자신의 모습처럼~
오는말이 고와야 가는 말이 곱다는 말이 생각난다. 근데 그 반대가 아닐까?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고운 법이다.
남에게 대접받기 보다는 대접해 주어야 하는데 평범한 진리이지만 막상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아리 아리 아라리오! 조정래 소설 [아리랑]이 절로 생각나는 구절이 리듬감있게 담겨져 있는
작품이다. 일제시대. 여러가지 이유로 고국을 떠나 하와이로 중앙아시아로 떠났던 우리민족의 삶의 애환
을 이야기한 이 소설을 읽으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절망적인 환경 속에서도 고국에 대한 그리움을
아리랑 노래를 불러가며 이겨냈던 이주민들.....
어렸을 적 여름에 마당에 모깃불을 켜놓고 멍석을 깔아놓으면 그 위에 누워서 할머니로부터 들었던
노래! 미영 작가는 그 노래를 글씨로 아름다운 글자체로 옮겼다. 나도 처음 들은 사실은 작년에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로 선정되었단다. 그런 사실을 알고 나니 더욱더 귀하게 느껴지는 노래 구절들이다.
이 작품 속에는 두 가지 글씨체가 나타난다. 무슨체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흔히 '나를 버리고 가시는 임은 십리도 못가서 방병난다'까지만 알고 있지만 원문에는 "백두에서 한라까지
탯줄되어 흐르는로래"란 구절이 있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미영작가는 이 글이 우리 민족 노래임을 나타내기 위해서 아래위에 붉은 선과 청색선을 그어서 태극을 나타내고 있다.
낙관도 다양하게 다섯개를 찍어서 그 노랫말의 의미를 극대화시키고 있다.
이 글은 초등동창 조명선의 좌우명이다. 사실 이 친구는 그렇게 살고 있다. 그래서 사업을 해서
성공하였고 지금도 전 세계를 누비면서 살아가는.....
유수와 같이 흐르는 시간! 하루를 25시간으로 해도 모자라게 살아가는 친구의 삶이 농축되어 있는
글귀.....
한옥문살 같은 표구를 하는 새로움을 선보였다.
아들이 많은 집에 가훈으로 두면 좋을 거 같다는 솔내음 미영의 작품
아들만 많이 두는 것이 예전에는 복인지 모르지만 지금은 안 그럴 걸~
그리고 형제들끼리 출가해서 같은 마을에서 사는 건 좋지 않다고 한다. 같은 엄마의 뱃속에서
나왔기에 좋을 거 같지만 같은 기(氣)를 갖고 있기에 서로 기가 상충해서 싸우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형제 중에 한 사람은 잘 안된다는데 사실인지 모르겠다.....아니면 그만이구....
이 작품 설명은 생략~
작품 속에 사진 찍는 내 모습 때문에 올렸다.
황문자(7회) 선배의 작품
교과서적인 글자체이다. 같은 동네에서 살았던 집안의 증조할머니 뻘 아지매!
이번에 뵙지 못해서 서운하다. 임숫골에서 대월학교 뒷산길로 가는 길에 살았었는데.....그 언니는
영자 아지매이고....
어디에서 사시는 데 아침 산책나갔다가 이슬을 털어 목걸이를 만들 생각을 했을까?
아니면 남편에게 이슬목걸이를 받고 싶었던 것일까?
문자 아지매여~ 내년에는 건익 아저씨랑 함 뵈요. 백희 대부님과 할머니께 세배하러 갔을 때
우리가 가면 내외하느라 건너방에서 나오지도 않던 기억이 나네요 ㅎ
우리 8회의 날쌘돌이 큰선환
대산리 청송부락에 살았던 선환과 신당리에 살았던 선환이 있어서 큰 선환 작은 선환으로 부른다.
이 동창은 전강화체육대회가 열리면 우리의 영웅이었다. 당시 600여명이 다녔던 대월학교는 저학년을
빼고 응원을 가서 달리기를 잘하던 선환친구의 다이나믹한 모습이 기억난다. 몸이 약해서 가을 운동회날
3등도 못하던 나의 눈에 선환은 정말 부러운 존재였다.
지금은 고향에서 법무사 사무장을 하며 동창과 동문들의 행사에 음으로 양으로 일하는 멋진 친구!
고향에서 멀리 산다는 이유로 궂은 일 다 맡겨놓아서 미안하네.....난 영원한 방랑자이자 이방인인 걸~~
그래도 갈 수 있는 고향이 있고 초딩 동창과 동문들이 있다는 게 얼마나 부자인지 모른다네....
( to be continued)
첫댓글 우와 세상에... 요모조모를 세심한 글텃치로 실감나게 논설을 하여주신 우리 인찬 친구님 _()_ 그 분이 아니계셨더라면..이번 전시회의 맛이 덜 날뻔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이틀간 전시장에서 함께하는 동안 겉으로 보여지는 온화한 상과 내면의 기를 다시 엿볼 수 있는 참 좋은... 존경해야 할 친구님이란 것을 다시 알았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난가 나뉘었으니 그 전에 같은 반을 했던 기억도 가물가물.....그 이후 40여 년이 흐른후 다시 가장 오랬동안 동창과 함께 한 시간이었군요^* 친구님의 소중한 인생이 담긴 작품들 속에서 파묻혀 있었던 전시회 기간이었죠. 정말 고맙습니다. 그리고 존경합니다. 그 이후도 오랜동안
하늘재 정말 좋은 뜻이군요 정말 하늘에서 훌륭한 인재를 보내셨군요 대월 명장이 또 한분 탄생했답니다 재 맘대루 해석임다 글 하나하나 정말 실감나는군요 마침 글을 쓴것처럼 세심하게 설명을 해 주시니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아 다시금 자꾸 들어오고 싶답니다 옛추억을 그리며 옛 친구들을 생각하며 30여년전의 시절의 추억을 되새김 합니다 아쉬운것은 울 14회 친구들은 아무도 없고 유리 혼자라는 사실입니다 넘 쓸쓸하고 외롭지만 선배님들이 계셔서 든든하고 행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