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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우리 밀로 만들었던 구포 국수] “개인적으로 제 고향은 현풍입니다. 저희 선친이 구포에서 잡일을 하다 해방이 되자 그마저도 여의치 않아 생계를 찾기 위해 구포 시장을 물색했어요. 그러다가 안면이 있던 배승룡씨가 국수 공장을 하는 것을 보고 국수 공장을 시작하게 됐어요. 구포 시장 안에는 배승룡씨하고 주복이, 김병순 같은 분들…. 다 돌아가신 분들입니다. 그분들이 서너 군데 수동 공장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제가 10살, 11살 때쯤이었어요. 처음에는 경상북도 일원이나 서부 경남 청도에서 생산된 밀을 가마니채로 사들여 밀가루로 도정해서 국수를 만들었어요. 근데 밀가루 까부수는 게 쌀이나 보리보다 까다로워 밀가루가 지금처럼 하얗지는 않았어요. 그때 국수 공장은 공장이라기보다는 가게에서 롤러로 돌려 뽑은 국수를 노상에서 널어 말리던 수준이었어요. 그때는 공해가 없었거든요. 그리고 국수라는 게 바람이 안 좋으면 반죽한 면이 갈라지기 때문에 습기를 품은 바람에 말리는 게 좋거든요. 그러니 강을 끼고 있는 구포 국수가 찰질 수밖에 없어요.” (김봉옥 제면소 김수암) 흔히 국수는 쉽게 만들어 간편하게 즐기는 음식으로 알고 있다. 오죽하면 ‘국수나 먹지’라는 푸념이 있을 정도일까. 하지만 밀은 그리 녹녹한 음식 재료가 아니었다. 우선 밀은 쌀과 달리 6~7겹의 질긴 껍질로 둘러싸여 있어서 안의 배젖 부분에서 밀가루를 채취하는 일은 정교한 기술과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다. 발상의 전환을 통해 ‘밀 낟알을 잘게 쪼개 안에 붙은 밀가루를 채취하는 다단계 제분 방식(Gradual Milling System)’이 도입되기 전까지 밀가루는 귀한 대접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국수를 뽑는 과정이 제분 과정보다 쉽다고 말할 수도 없다. 메밀이나 밀가루를 음식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몇 가지 방법이 있다. 조선 시대까지는 메밀 반죽을 넓게 밀어서 칼로 썬 칼국수가 일반적이지만 아주 가는 국수를 뽑으려면 국수틀이 필요했다. 면자기(麵榨機)라 불리던 이 기계는 부뚜막에 가마솥을 걸고 그 위에 수많은 구멍을 낸 철판을 깐 아름드리 나무통을 얻은 모양을 하고 있다. 『천로역정(天路歷程』의 삽화가 김준근(金俊根)의 그림을 보면 돌처럼 단단해진 메밀 반죽을 뽑아내기 위해 장정 한 명이 통 위에 얹은 널빤지를 지렛대 삼아 하늘을 보고 드러누워 있다. 기이한 자세와 꽉 다문 입 그리고 무표정한 얼굴에서 고된 노동의 흔적을 읽을 수 있다. 1980년대 후반 대기업이 제면업에 진출해 국수를 손쉽게 쏟아내기 전까지 구포 국수의 제조 과정도 고된 노동이라는 점에서 조선 시대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