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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 7 : 16 - 17 흰 옷 입은 무리의 축복
계 7 : 16 흰 옷 입은 무리의 축복 -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아니하리니, ( 저희가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할찌니 )
하나님께서는 그들 위에 천막을 치셔서 더 이상 주림이나 목마름이 없이 먹을 것을 공급하실 것이며, 또 더위로 인한 해가 없도록 그들을 보호하실 것이며, 또 그들의 눈에서 눈물을 씻겨주실 것이다.
16) 축복 : 저희가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할지니.
본문은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 상태에서 귀환할 때의 이사야의 진술을 반영한 것으로(*) 구속 받은 자들이 누릴 영원한 축복을 나타낸다.
* 사 49: 10 - 그들이 주리거나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며, 더위와 볕이 그들을 상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을 긍휼히 여기는 이가 그들을 이끌되 샘물 근원으로 인도할 것임이라.
(1) 주림과 목마름
'주림과 목마름'은 단순히 육체적 빈곤의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 갈급의 상태를 나타낸다. 구속 받은 자들은 그러한 주림과 목마름이 더 이상 없는 완전히 충족된 상태를 누리게 될 것이다.
* 마 5: 6 -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 요 6: 35 - 예수께서 이르시대,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 요 3: 34 - 하나님의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없이 주심이니라.
* 요 4: 14 -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 다시 주리지 아니한다.(사 49: 10)
⒝ 목마르지 아니한다.
* 요 4: 10, 13-14 – 1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1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 시 63: 1 -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2) 해가 없다 - 절대 안전.
* 사 4: 5-6 - 5 여호와께서 그 거하시는 온 시온 산과 모든 집회 위에 낮이면 구름과 연기, 밤이면 화염의 빛을 만드시고 그 모든 영광 위에 덮개를 두시며 6 또 초막이 있어서 낮에는 더위를 피하는 그늘을 지으며 또 풍우를 피하여 숨는 곳이 되리라.
* 사 32: 2 - 또 그 사람은 광풍을 피하는 곳, 폭우를 가리는 곳 같을 것이며, 마른 땅에 냇물같을 것이며, 곤비한 땅에 큰 바위 그늘 같으리니,
(3) 상하지 아니한다. - 절대 보호.
'아무 뜨거운 기운'에 해당하는 헬라어 '판 카우마'(*)는 '불에 타다'라는 의미를 가진 '카이오'(*)에서 파생된 단어로 고통스러운 열기를 말한다. 이것은 일반적인 고통이나(Morris) 혹은 넷째 대접의 재앙을 가리킨다(Mounce).
* 계 16: 9 - 사람들이 크게 태움에 태워진지라 이 재앙들을 행하는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이름을 비방하며 또 회개하지 아니하고 주께 영광을 돌리지 아니하더라.
'상하지 아니할지니'에 해당하는 헬라어 '우데 메 페세'(*)는 '떨어지다'의 의미를 지닌 '피프토'(*)의 부정관사 시상으로 강한 이중 부정이다.
이는 구원받은 자들에게 지상에서와 같은 고통스러움이 결단코 없을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본 절은 성도들이 전형적인 육체의 모든 고통에서 장차 해방될 것임을 시사한다(Mounce, Moffatt, Ford).
계 7 : 17 어린 양의 위로 -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 (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 )
흰 옷 입은 무리들은 목자 되시는 어린 양이 그들을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여 그들의 눈에서 흘렀던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이다.
17) 생명수 샘 :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
(1) 어린 양이 목자가 되신다. -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목자 : Shepherd(인명) [히](ro'i) [그] poimhvn(poimen)
생업으로 가축을 돌보는 사람.
아벨·아브라함·이삭·야곱과 그 아들들은 목자였다. (창 4: 2. 13: 5-8. 26: 20. 37: 12)
하나님은 목자요 목양자시다.(시 23: 1. 사 40: 11. 렘 23: 4. 25: 34. 겔 34: 2,5,8).
예수님과 제자들도 목자로 그려져 있다. (요 10 장. 요 21: 15-17. 엡 4: 11).
목축은 안일한 생활이 아니다.(창 31: 40) 가축은 소유자나 자녀들에 의해 목축되었다.(창 29: 9. 출 2: 16-17. 삼상 17: 15). 고용자를 두기도 했다.(삼상 21: 7. 요 10 :12).
목자는 새로운 목초지와 야수(출 22: 13. 삼상 17: 34. 사 31: 4. 암 3: 12)· 적의 습격에 대항하는 일 등 노고가 많았다.(창 31: 39. 요 10: 8)
시 23 편은 목축 생활을 통하여 체험한 하나님의 은총을 노래한 것이다. 목자이신 여호와에게 인도되는 양의 행복을 노래한 시다(시 74: 1. 77: 20. 78: 52).
선한 목자(예수)에게 인도되는 자는 고난 중에도 행복에 관여함을 깨닫게 된다.
가축에게 매일 우물로 인도하여 물을 주어야 한다.(창 24: 20. 29: 3,8. 출 2: 16) 때론 우물을 둘러싸고 분쟁이 발생한다. (창 21: 25. 26: 20. 출 2: 17)
양 떼를 보호하기 위해 끝이 굽은 지팡이나 물맷돌(삼상 17: 40,50)를 사용(삿 20: 16)하거나 생명을 버리는 일도 있다(요 10: 11).
저녁에는 동굴이나 우리에 수용하고(민 32: 16. 대하 32: 28), 목자들은 오두막에 유숙한다(미 2: 12).
우리에 넣는 때, 양의 수를 조사한다(렘 33: 13. 겔 20: 37. 레 27: 32). 야수에 찢긴 것 이외는 양을 잃은 책임이 목자에게 있다. (출 22: 10-13. 창 31: 38-39. 암 3: 12)
동일 지역의 목자들은 한 우리에 넣어 교대로 파수한다.(눅 2: 8)
양은 목자의 소리를 알고 분별한다.(미 2: 12. 요 10: 2-5)
양은 이름이 있고, 목양견(욥 30: 1)을 사용하기도 한다.
양과 염소는 함께 방목한다. 양은 풀밭에서, 염소는 바위틈에 올라가 목초를 찾는 풍경도 보인다. 양과 염소는 최후의 심판에서 인류의 운명을 표현하기 위해 인용되었다(마 25: 32). 양(羊)이 구원된 자를 대표하고 있다.
목초지대인 길르앗에는 천막 거주의 하봇야일(야일의 村樂)이 있었다(민 32: 41. 신 3: 14. 삿 10: 4).
지배자를 목자로 불렀다(렘 23: 1. 겔 34: 2-).
목자의 양에 대한 사랑, 양의 목자에 대한 신뢰와 순종은 하나님과 사람 관계의 설명으로서 심원한 의미를 가진다.(겔 34: 8. 눅 15: 3-7. 요 10: 1-18)
하나님의 양 떼를 먹이라(요 21: 15)는 사명감, 목자장이신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열망(벧전 5: 2-4)은 그 내용을 정신화 한 것이다.
'보좌 가운데 계신'은 문자적으로 하나님의 보좌와 이십사 장로들과의 중간 위치를 가리키나 위치적인 의미보다는 그리스도의 '중보자 직임'을 상징한다.
'저희의 목자가 되사'에 해당하는 헬라어 '포이마네이 아우투스'(*)는 '보살피다'는 의미의 '포이마이노'(*)에서 파생된 미래 능동태로 문자적으로 '그들을 보살피실 것이다'라는 의미이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중보 사역을 실제로 행하실 것을 약속해 준다(Swete, Ford).
* 요 21: 16 - 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 행 20: 28 -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 벧전 5: 2 -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하며
(2)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신다. -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생명수 샘으로'의 헬라어 '에피 조에스 페가스 휘다톤'(*)은 어순상 '생명의'(*, 조에스)를 강조한다. 이는 다함이 없는 생명의 근원을 의미한다.
* 요 4: 12-14 – 12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셨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마셨는데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1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 요 7: 38 -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 계 21: 6 -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 계 22: 1,7 – 1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7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 출 23: 25 -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 그리하면 여호와가 너희의 양식과 물에 복을 내리고 너희 중에 병을 제하리니
(3)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신다. -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
본문은 사 25: 8을 반영한다.
* 사 25: 8 -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자기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여살레이프 세이'(*)는 문자적으로 '...으로부터 제거해 버리다'라는 의미의 미래 시상으로 하나님께서 주체가 되셔서 구속받은 자들을 고통과 아픔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실 것을 상징한다.
이것은 장차 구속받은 자들이 누릴 영원하며 절대적인 희락과 평강의 축복을 나타낸다.(사 25: 8)
* 계 21: 4 -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예비처는 종 된 자가 다시 예언할 때 따라 나온 백성이 광야 같은 예비처에서 후 삼년 반 시대를 피하여 숨어 있는 곳이다.
* 계 12: 6,13-16 – 6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천이백육십 일 동안 그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 13 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쫓긴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박해하는지라. 14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 15 여자의 뒤에서 뱀이 그 입으로 물을 강 같이 토하여 여자를 물에 떠내려 가게 하려 하되 16 땅이 여자를 도와 그 입을 벌려 용의 입에서 토한 강물을 삼키니
① 장막을 쳐서 보호한다.
* 계 7: 15-16 – 15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16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아니하리니
* 계 16: 8-9 – 8 넷째 천사가 그 대접을 해에 쏟으매 해가 권세를 받아 불로 사람들을 태우니 9 사람들이 크게 태움에 태워진지라. 이 재앙들을 행하는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이름을 비방하며 또 회개하지 아니하고 주께 영광을 돌리지 아니하더라.
② 천막을 덮어 보호한다.
* 사 4: 5-6 – 5 여호와께서 거하시는 온 시온 산과 모든 집회 위에 낮이면 구름과 연기, 밤이면 화염의 빛을 만드시고, 그 모든 영광 위에 덮개를 두시며 6 또 초막이 있어서 낮에는 더위를 피하는 그늘을 지으며 또 풍우를 피하여 숨는 곳이 되리라.
③ 밀실에서 보호한다.
* 사 26: 20 - 내 백성아, 갈지어다. 네 밀실에 들어가서 네 문을 닫고 분노가 지나기까지 잠간 숨을지어다.
④ 강과 하수를 둘림 같이 보호한다.
* 사 33: 20-21 – 20 우리 절기의 시온 성을 보라. 네 눈이 안정된 처소인 예루살렘을 보리니, 그것은 옮겨지지 아니할 장막이라. 그 말뚝이 영영히 뽑히지 아니할 것이요, 그 줄이 하나도 끊어지지 아니할 것이며 21 여호와는 거기에 위엄 중에 우리와 함께 계시리니 그곳에는 여러 강과 큰 호수가 있으나 노 젓는 배나 큰 배가 통행하지 못하리라.
⑤신 육지에서 보호한다.
* 시 66: 6 - 하나님이 바다를 변하여 육지 되게 하셨으므로 무리가 걸어서 강을 건너고 우리가 거기서 주로 말미암아 기뻐하였도다.
⑥ 해변가 아스글론 장막에서 보호한다.
* 습 2: 6-7 – 6 해변은 풀밭이 되어 목자의 움막과 양 떼의 우리가 거기에 있을 것이며 7 그 지경은 유다 족속의 남은 자에게로 돌아갈지라. 그들이 거기에서 양 떼를 먹이고, 저녁에는 아스글론 집들에 누우리니 이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가 그들을 보살피사 그들이 사로잡힘을 돌이킬 것임이라.
⑦ 한 처소에서 보호한다.
* 미 2: 12-13 – 12 야곱아, 내가 반드시 너희 무리를 다 모으며 내가 반드시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모으고 그들을 한 처소에 두기를 보스라의 양 떼같이 하며 초장의 양 떼같이 하리니 사람들이 크게 떠들 것이며 13 길을 여는 자가 그들 앞에 올라가고 그들은 길을 열어 성문에 이르러서는 그리로 나갈 것이며 그들의 왕이 앞서가며 여호와께서는 선두로 가시리라.
일곱 곳에 예언한 예비처에 대한 말씀이 계시록 15: 2-4에 바닷가 보호로 완성된다.
* 계 15: 2-4 – 2 또 내가 보니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고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 바다 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3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불러 이르되,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놀라우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 4 주여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이까? 오직 주만 거룩하시니이다.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으매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리이다. 하더라.
이 예비처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곳이다.
지금은 아무도 모르도록 감추어 두셨다. 정한 때에 인 맞은 종들에게 알려 주어 백성을 예비처로 인도하게 하신다.
후삼년 반이 지난 후에 다시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인도되어 심판을 면하게 하신다. 많은 사람을 살리는 종이 되자.
본 장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 대 환난을 통과하자.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救贖)받은 성도들은 이 세상에서, 특히 주의 재림 직전에 대 환난을 통과해야 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인치심이 있기에 잘 감당하고 승리할 것이다.
이것은 대 환난을 통과해야 할 모든 성도에게 큰 위로와 격려가 된다.
둘째, 구원은 하나님께 있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께 있다.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는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
요한복음 6: 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요한복음 10: 28,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요한일서 5: 4,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굳게 가지고 세상의 환난과 시험을 이겨 나가야 한다.
셋째, 어린 양의 위로가 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이다.
14만 4천의 주의 종 ( 박 조준 목사 ) 저자와 견해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하나님의 오른손에 들리워 있는 두루마리의 여섯째 인을 떼는 것까지 생각했습니다. 이제 일곱째 마지막 인을 떼는 광경이 나올 것인데, 그것은 다음 장으로 미루고 그 사이에 나타나는 놀라운 광경을 사도 요한이 보았습니다. 말하자면 막간에 일어난 일입니다. 본문 7장 1절에 “이 일 후에 내가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 것을 보니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더라” 했습니다.
계시록에 나타난 천사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하나님의 사자로서 그의 계획을 땅 위에 실행하는 것이 그들의 역할임을 알게 됩니다. 2장과 3장에서는 그들이 각 교회에 배치되어 있는 사자로 나타납니다. 8장에서는 나팔 심판을 알리는 역할을 합니다.
여기 보니까 천사들이 자연의 힘을 지배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본문에 나타난 대로 천사들은 지상의 네 모퉁이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다스립니다. 뿐만 아니라 천사들은 하나님의 종인 144,000의 환난기의 증인들에게 인을 찍습니다. 본문 4절에 “내가 인맞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맞은 자들이 십사만사천이니” 했습니다.
아마 성경에 이 말씀만큼 왜곡되게 해석된 구절도 없을 듯 싶습니다. 여기 144,000의 의미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가 혼란을 느끼는 것으로 압니다. 많은 비성경적이고 이단적인 종파들이 이것을 사칭하고 나타나는 것을 볼 때 재미있는 것 같습니다. 제 7일 안식 교회에서는 이것을 자기네 교인 중의 충성된 사람들이라고 주장하면서 주님 재림하실 때에 유대인의 안식일을 지키고 있는 그들의 모습을 볼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주님이 다시 오실 때 자기네들만 들림을 받고 나머지 교회는 심판을 받는다고 가르칩니다.
가령 여호와의 증인들은 이 144,000이 끝까지 충성을 다하는 자기네 교파 교인들 중에서 “이기는 자”로 선택받게 될 숫자라고 가르칩니다. 그들의 가르침은 소위 “천년왕국 여명설”이라고 합니다. 이치에 맞지도 않고 괴상하기만 한 “나르는 두루마리”로 불리는 종파도 그와 비슷한 주장을 하고 있는데, 그 144,000은 피를 모두 깨끗이 하여 죽지도 않고 이 땅 위에서 영원히 살게 될 사람을 가리킨다는 것입니다. 그 외에도 여러 사설 종파의 지도자들이 그들 나름대로 자기를 따르는 신도들이 말세에 가서 144,000이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가 조금만 정신을 차리고 조심하면 그들의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본문을 자세히 보세요. 144,000이란 숫자는 이스라엘 족속의 각 지파에서 12,000명씩 모은 숫자입니다. 이 중에 이방인은 끼어 있지 않습니다. 자신이 144,000명에 끼어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물어보세요. “당신은 어떤 지파요?” 그러면 그들은 무슨 대답을 할지 몰라서 당황해 할 것입니다. 그러면 이 14만 4천 명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성경에 있는 그대로 해석한다면 이 144,000은 유대인이 될 것이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요한은 분명히 이런 말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 7장 4절에 “내가 인맞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맞은 자들이 십사만사천이니” 했습니다. 이스라엘 열두 지파에서 12,000명씩 하면 꼭 14만 4천이 됩니다. 열왕기상 19장에 보면 엘리야 시대에 하나님은 자신을 위해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선지자 7,000명을 남겨 두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꼭 숫자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넓은 의미에서 숫자의 상징적인 의미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12는 완전수입니다. 천은 많은 것입니다. 7천이란 숫자도 그렇습니다. ‘7’은 완전수요, ‘천’은 많은 것을 의미합니다.
구원받은 사람, 그리고 “종”이란 말은 헬라어로 ‘둘로스(δουλος)’인데 사도 바울이나 요한 자신을 가리켜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소개하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맡은 의무는 그의 직업이나 섭리에 관계없이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종이 말씀을 전파하는 일에 충성을 다하리란 것은 본문 9절에 나오는 놀라운 결과를 보게 되리란 사실로부터 알 수 있습니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양 앞에 서서” 했습니다.
그들은 계시록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로도 큰 자극을 얻게 되는데 이 책은 바로 하나님이 “그의 종들에게 앞으로 나타날 일을 보여주시려”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말할 수 없이 어려운 환난에 처하겠지만 환난기의 기간을 알기 때문에 마음을 평안히 가질 수가 있고, 하나님이 인간을 위하여 책정하신 계획을 보이신 마지막 책을 연구함으로써 앞으로 일어날 놀라운 사건들을 예기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 3절에 보니까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하는 말이 나옵니다. 이 일이 무엇으로 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성경은 그것을 볼 수 있게 해주십니다. 요한계시록 13장 14~18절에 보면 이와 꼭 같은 시기에 사람들이 그 이마에 “짐승의 표적”을 받는 것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믿는 사람의 이마에는 하나님의 표적을 받고, 믿지 않는 사람들은 적그리스도의 표적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표적 모두가 최종적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번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은 영원히 그 결정 속에 속하게 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로 작정한 사람들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이 14만 4천의 전도는 속이는 이적과 속임수에 넘어갈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자들을 향한 것입니다. 이것은 적그리스도의 추종자와 14만 4천 양쪽이 환난기 초기에 각각 자기 편의 인을 맞도록 사람들을 인도하는 대대적인 역사가 이루어질 것을 가리킵니다. 적그리스도가 모든 성도에게 극한 핍박을 시작하고, 환난기 중반에 가서 자신이 하나님인 것처럼 군림하기 시작할 때가 되면, 이 두 가지 중에 한편으로 굴하지 않을 자는 거의 없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마태복음 25장 31~46절에 예수님께서 친히 보여 주신 그대로입니다. 양과 염소가 갈라지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양”으로 표현되는 사람들은 환난 때에 자기 목숨을 걸고 이스라엘 편에 선 사람이요, 결국 그 몸 그대로 천년왕국에 들어갈 권리를 얻게 될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천년왕국의 시민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14만 4천이 전하게 되는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말해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사도행전 28장 30~31절에 보면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유하며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담대히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을 가르치되 금하는 사람이 없었더라”고 기록했습니다. 여기서 성경은 바울이 복음을 전했다고 말하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했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행 4:12). 복음은 한 가지뿐입니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의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 1:8~9) 했습니다.
이것으로 보아 14만 4천의 증인들이 사도 바울이나 사도 베드로가 전한 그리고 우리가 전하고 있는 복음과 같은 것을 전하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오늘 우리가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은 이 복잡한 사회에 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그 복음의 한 획도 바꿀 수 없으며 바꾸어서도 안된다는 것입니다. 14만 4천의 증인들처럼 우리도 언젠가는 하나님 앞에 서서 어떻게 복음을 증거했는지를 해명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복음을 증거하는 가장 큰 이유는 사도 바울처럼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내게 화가 미칠까”하는 염려 때문입니다.
본문 9절을 보십시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양 앞에 서서” 했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바라시는 것은 영혼을 구원하시는 일입니다. 베드로후서 3장 9절에 보면 하나님은 한 영혼이라도 멸망에 이르기를 원치 아니하신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사역에 있어서 최고봉은 조금 전에 읽은 말씀대로 환난기의 전반부에 인류 역사상 제일 가는 대대적인 영혼 추수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때는 2천년 기독교 역사상 구원받은 사람보다 많은 사람이 구원을 얻게 되리라고 믿습니다.
이것은 막연히 꿈꾸는 낙관적인 생각에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수많은 예언에 나타나며 요한계시록 7장 9절에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라는 말로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환난의 때가 올 것인데 그 주된 목적은 7년 간을 통하여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나 적그리스도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적그리스도를 좇아 짐승의 표적을 받게 된다는 사실은 다음에 우리가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환난 초기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 편으로 돌아설 것입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에 생각한, 여섯째 인을 떼실 때의 심판은 이 지구가 영원한 곳인 양 생각하는 사람들의 잘못된 안도감을 없애서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도록 하는, 하나님이 정하신 상태를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육지 위에 서 있는 한, 인간은 하나님께 대하여 교만한 태도를 취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지진이 일어나고 별이 하늘로부터 떨어지고 하늘이 두루마리처럼 말려 올라가고 산과 섬들이 제 자리에서 움직이게 되면(계 6:12~14), 그제야 인간들은 하나님께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게 될 것입니다.
계시록 6장 12~17절까지의 말씀을 보십시다. “내가 보니 여섯째 인을 떼실 때에 큰 지진이 나며 해가 총담같이 검어지고 온 달이 피같이 되며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선 과실이 떨어지는 것 같이 땅에 떨어지며 하늘은 종이축이 말리우는 것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옮기우매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각 종과 자주자가 굴과 산 바위틈에 숨어 산과 바위에게 이르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우라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
“임사호천”이라는 옛말이 있습니다. 죽음에 임박하게 되면 하늘을 찾는 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더구나 이런 환난이 밀어닥칠 때 하나님께 나오지 않을 수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될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오늘의 인구 폭발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으면서도 종말에 나타날 복음의 전파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는 이가 거의 없습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주후 2000년이 되면 이 지구 위의 인구는 60억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인구가 팽창해 나간다면 환난기 전반부에 벌써 전 세대에 믿은 수의 절반이 구원을 얻게 되는데 막대한 인구 때문에 교회의 전 역사를 통해서 거둬들인 수보다 더 많은 영혼이 그리스도께로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이 사실을 생각해 볼 때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있도다 하니”(계 7:9~10)하는 말씀을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9절 말씀은 환난 동안에 구원받게 될 수많은 무리를 보여주고 있는데 어떻게 그 수가 많은지 “능히 셀 수 없을 만큼 많더라”고 기록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놀라우신 능력과 온 세계에 흩어져 있는 그의 종들을 통해서 역사하신 성령의 능력인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모든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온 사람들입니다. 이것은 그 부흥 운동의 범위가 하늘 아래 있는 모든 피조물이 복음을 들었던 때,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성령 운동이 일어났던 1세기와 거의 비슷하게 될 것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족속이 들을 뿐 아니라 그들 중 몇몇은 거기에 응답하게 될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분의 이름을 우리도 찬양합시다. 그 수없이 많은 무리가 흰 옷을 입고서 보좌와 거기 앉으신 어린양 앞에 섰다는 사실은 그들이 땅에서 구속함을 입어 지금 주님 앞에 나왔다는 것을 의미하며 종려 가지는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한 것을 의미합니다. 10절 말씀에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있도다” 하신 찬송은 그들이 다 회개하고 구원받으면 하늘의 천사들이 기뻐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땅에서 구원받은 이들을 바라보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천사들의 태도를 보세요. 11~12절에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섰다가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가로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능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했습니다.
이때 “장로 중의 하나가 응답하여 내게 이르되 이 흰 옷을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뇨 내가 가로되 내 주여 당신이 알리이다 하니 그가 나더러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계 7:13~14) 했습니다. 이 많은 사람들의 정체가 명확하게 나와 있습니다. 장로 중의 하나가 이 사람들의 정체에 대하여 묻습니다. “이 흰 옷을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뇨?” 요한은 그들이 누구인지도 몰랐으며, 그들이 교회의 성도, 혹은 구약 시대의 성도라고 가르쳐 주었다면 그도 알아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환난 때를 통하여 구속함을 입었기 때문에 요한이 몰랐던 것도 당연합니다.
환난 때의 성도들은 구분이 되어 있는 무리로서 그것은 마치 신약 시대 교회와 구약 시대의 성도,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이 따로 무리를 짓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무리는 그들이 믿음을 얻은 시기에 따라 그리스도와 관련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이들이 “믿는 성도”라는 것은 그들이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했다”고 하는 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아주 중요한 말씀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흰 옷을 입었는데 흰 옷이 된 것은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피에 그 옷을 씻었기 때문입니다.
여기 복음의 진수가 나타나 있습니다. 흰 옷을 입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는데 흰 옷은 “의”를 말합니다. 우리가 의롭게 된 것은 우리가 힘씀으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어린양 예수의 피는 우리의 더러운 심령을 희게 합니다.
1. 예수 십자가에 흘린 피로써 그대는 씻기어 있는가 더러운 죄 희게 하는 능력을 그대는 참 의지하는가
2. 주 예수와 밤낮으로 늘 함께 그대는 행동을 하는가 아무때나 어디든지 그대는 십자가 붙들고 있는가
3. 주님 예수 다시올 때 그대는 영접할 예복이 있는가 그대 몸은 거룩한 곳 성전에 들어갈 준비가 됐는가
4. 모든 죄에 더러워진 예복을 주 앞에 지금 다 벗어서 샘물같이 솟아나는 보혈로 눈보다 더 희게 씻으라
(후렴) 예수의 보혈로 그대는 씻기어 있는가 마음속의 여러 가지 죄악이 깨끗이 씻기어 있는가.
심령의 옷을 어린양의 피에 씻어 희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4절에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심령의 두루마기를 빠는 복이 함께 하기 바랍니다. 그러면 흰 옷을 입은 사람들이 받는 복은 무엇입니까? 흰 옷 입은 사람들에게는 영원한 상급이 주어집니다. 본문 15절에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했습니다.
첫째로, 그들은 하나님의 보좌 앞에 앉아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게 됩니다.
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보좌 앞에서 밤낮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복입니다.
둘째로,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신다고 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7절에 “그러므로 우리가 주와 함께 영원히 거하리라”는 약속과 같은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약속은 자기의 믿음을 주님께 둔 자들이 내세에 영원히 주님과 함께 있을 것을 약속하는 것입니다.
셋째로,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모두 공급해 주실 것입니다.
16~17절을 보세요.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고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할지니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환난기의 성도들이 인간적으로 많은 고통을 겪고 주리게 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환난기를 지내는 동안에 주리고 목마를 것이며 고문도 당하게 되지만 “끝까지” 견디어서 결국엔 주님으로부터 “공급받게” 될 것입니다.
넷째로, 하나님께서 친히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입니다.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신다”고 했는데,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분명치는 않지만 “모든 눈물,” 세상에 사는 동안 이런 경우 저런 경우 가슴 아파서 흘린 눈물을 다 포함해서 씻어 주신다는 의미로 여겨집니다. 그러니까 모든 슬픈 생각을 기억에서 없애 주신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우리가 사랑하던 이들이 지옥에서 고통 당하고 있을 것을 생각하면 하늘의 기쁨도 없어질 것이므로, 하나님께서는 그 크신 은혜로 그런 생각마저도 없애 주신다는 것입니다.
다섯째로, 구원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것입니다.
사람이 능히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구원을 받지만 한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사람은 개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거나 거절한다는 사실입니다. “자기 옷을 어린양의 피에 씻게 한 사람”이라야 구원받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개별적으로 구원받는 모습을 아름답게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자신의 죄를 깨닫고 하나님 앞에 나오면 우리의 죄는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씻기워 눈처럼 희게 되고 귀한 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이와 같은 복을 받기 바랍니다.
이 약속은 내세에 하나님의 자녀에게 주실 축복으로, 요한계시록 21장 4절에 기록된 크고 흰 보좌의 심판 후에 교회에도 그렇게 해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