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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 서서 나로 하여금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에서 찾다가 찾지 못하였으므로 내가 내 분노를 그들 위에 쏟으며 내 진노의 불로 멸하여 그들 행위대로 그들 머리에 보응하였느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에스겔 22:30-31)
"모세가 여호와께로 다시 나아가 여짜오되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 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출애굽기 32:31-32)
1. 얄팍한 동정심의 파산 : 중보는 남을 돕는 적선이 아니다
오늘날 강단에서 '중보기도'라는 단어만큼 처참하게 그 본질이 훼손되고 가벼워진 단어도 드물 것입니다.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중보기도를 무엇으로 착각하고 있습니까? 내 기도 수첩에 다른 사람의 이름을 몇 자 적어놓고, "하나님, 저 사람도 축복해 주시고 병도 고쳐주십시오"라며 적당히 동정심을 베푸는 종교적 팁(Tip)이나 덕담쯤으로 여깁니다. 내 코가 석 자지만, 그래도 남을 위해 기도해 주면 하나님이 나를 더 대견하게 보시고 내게 유한한 자원을 더 많이 '분배(Distribution)'해 주실 것이라는 얄팍하고도 구역질 나는 계산법이 깔려 있습니다.
똑똑히 들으십시오! 성경이 말하는 중보기도는 여유 있는 자가 부족한 자에게 베푸는 종교적 적선이 결단코 아닙니다! 중보는 내 남는 시간을 쪼개어 타인을 불쌍히 여기는 우아한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맹렬한 공의의 심판 앞바다에 내 영혼을 통째로 던져 넣어 육탄으로 막아내는 가장 피 튀기고 소름 끼치는 십자가의 최전방 사역입니다!
2. 파가 (Paga) : 갈라진 틈을 온몸으로 틀어막는 거룩한 충돌
에스겔 22장에서 타락한 이스라엘을 향해 진노의 불을 쏟아내기 직전, 하나님은 우주를 흔드는 비통한 심정으로 한 사람을 찾으십니다.
"성 무너진 데를 막아 서서 나로 하여금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에서 찾다가 찾지 못하였으므로!"
여기서 '막아 서서'에 해당하는 중보기도의 히브리어 원어가 바로 기독교 영성의 가장 치열한 심장, **‘파가(Paga)’**입니다!
이 파가는 단순히 누군가를 대신해 간청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 단어의 원초적 의미는 **'무력하게 부딪히다, 대신 형벌을 받아내다, 원수의 치명적인 공격과 멸망의 대상자 사이를 육탄으로 막아내는 맹렬한 충돌(To meet violently, Intercede)'**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기도자는 유창한 수사학으로 타인의 안부를 묻는 자가 아닙니다. 죄악으로 인해 무너져 내린 가정, 타락한 조국 교회, 그리고 이 세대의 갈라진 성벽 틈새로 하나님의 맹렬한 심판의 칼날이 쏟아져 내릴 때! 도망치지 않고 그 틈새로 달려 들어가 자신의 가슴을 열어젖히고 "하나님, 이들을 치시려거든 차라리 나를 쳐서 도륙하십시오!"라고 벼락같이 막아서는 자! 이 피 비린내 나는 '파가'의 제물이 없었기에, 예루살렘은 기어이 진노의 불에 타들어 가고 말았던 것입니다!
3. 모세의 맹렬한 파가 : 내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 버리소서!
이 맹렬한 '파가(육탄으로 막아섬)'가 역사 속에서 가장 처절하게 폭발한 현장이 바로 출애굽기 32장의 시내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우상 숭배의 극치를 달릴 때, 하나님의 진노는 극에 달하여 그들을 모조리 진멸하려 하셨습니다. 그때 모세는 어떻게 기도했습니까? "하나님, 저들이 무지해서 그러니 한 번만 참아주십시오"라고 적당히 타협하고 변명했습니까?
아닙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의 진노의 불길 그 한가운데로 자신의 영혼을 내던지며 우주를 향해 사자후를 터뜨립니다!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이것이 모세의 중보(파가)입니다! 모세는 타인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영원한 구원과 영생의 권리를 십자가의 제단 위에 몽땅 갈아 넣었습니다! "저 백성이 지옥에 가야 한다면, 나 역시 천국의 안락함을 거부하고 저들과 함께 지옥의 불구덩이로 떨어지겠습니다!"
이 맹렬하고도 미친 십자가의 사랑, 자신을 완벽하게 파산시켜 기어이 타인을 살려내고야 마는 이 압도적인 영적 육탄전 앞에서! 창조주 하나님은 진노의 칼을 거두시고, 당신의 무한한 **‘공급과 충만’**으로 그 패역한 백성을 다시 덮어버리십니다. 중보는 내 입술의 노동이 아니라, 내 영혼의 가장 깊은 본질을 도륙하여 내어주는 거룩한 사형장입니다!
4. 앤드류 머레이의 사자후 : 골고다의 십자가 곁에 서라
기도의 위대한 스승 앤드류 머레이(Andrew Murray)는, 나 하나 잘 먹고 잘살게 해달라는 이기적인 기도에 함몰된 타락한 성도들을 향해 이 '파가'의 진리를 들어 피를 토하는 일갈을 쏟아냈습니다.
"여러분! 중보기도는 당신의 남는 시간을 적당히 할애하여 덕을 쌓는 종교 놀음이 결코 아닙니다. 참된 중보기도자는 골고다 언덕에서 피 흘리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바로 곁에 자신의 십자가를 나란히 꽂는 자입니다!
그는 세상을 향해 쏟아지는 하나님의 그 두려운 공의의 심판을 자신의 가슴으로 받아내는 위대한 영적 피뢰침이어야 합니다. 당신의 기도에 피 흘림이 있습니까? 타인의 죄를 끌어안고 내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고통(파가)을 경험하지 못했다면, 당신은 아직 십자가의 심장이 무엇인지 단 1퍼센트도 알지 못하는 구역질 나는 종교적 이기주의자일 뿐입니다!"
디모데전서 2장 1절은 명확하게 선포합니다.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중보)를 하되!"
기도의 궁극적 성숙은 내 필요의 감옥을 부수고 나오는 것입니다. 타인의 구원과 교회의 회복을 위해, 기꺼이 내 자아를 십자가의 벼랑 끝으로 밀어넣고 세상을 막아서는 방패가 되는 것! 이것이 세상을 향한 십자가의 위대한 역설입니다.
결론
내 문제, 내 밥그릇, 내 자식의 앞길만 놓고 부르짖는 그 천박하고 이기적인 기복주의의 쳇바퀴를 지금 당장 십자가의 도끼로 산산조각 내어 버리십시오!
우리는 나 혼자 천국 가겠다고 발버둥 치는 비겁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무너져 내리는 이 시대의 가정과 조국 교회의 갈라진 성벽 틈새로 뛰어들어,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를 내 가슴으로 틀어막는 위대한 영적 방패(파가)들입니다!
오늘 밤, 동정심을 베푸는 얄팍한 기도를 끝장내십시오! 내 영혼을 갈아 넣어 타인을 살려내는 피 비린내 나는 십자가의 중보로 하늘 보좌를 강타하시기를,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이자 중보자 되시는 만왕의 왕,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가장 맹렬히 축원합니다! 아멘!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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