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5:38)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마 5:39)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마 5:40)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마 5:41)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마 5:42)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악한 자와 싸워 이기려면 더 악해져야 하고, 강한 자와 싸워 이기려면 더 강해져야 한다.
조폭 두목의 이야기를 들었다. 진짜 전문 강도는 밤에 들어와서 자고 있는 사람을 깨운다고 한다. 왜냐하면 자던 사람이 인기척을 듣고 놀라서 일어나서 무슨 저항을 할지 모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저항을 하게 되면 할 수 없이 칼을 쓰게 되는 데, 칼을 쓰게 되면 사람을 다치게 해야 하고, 그것은 강도가 원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전문적인 강도는 조용히 들어와서 자고 있는 사람의 목에 칼을 들이대고 깨운다고 한다. 조용히 자신이 필요한 것만 가지고 가겠으니 문제를 크게 만들지 말라는 의미가 있다. 그래서 강도가 들어와서 목에 칼을 들이대고 깨우면 저항하면 안 된다고 한다. 돈이 어디 있는지 물으면 그냥 다 가르쳐 주고, 이불 뒤집어쓰고 있으라고 하면 뒤집어쓰고 있으면, 강도는 자신이 필요한 것을 챙겨 가지고 간다는 것이다. 괜히 자신의 능력을 과신해서 강도와 정면 대결하려고 하면 강도와 싸우게 되는데, 전문적으로 강도짓을 하고 다니는 사람을 이길 수는 없다는 것이다. 싸우게 되면 결국 목숨까지 잃게 될 수도 있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약한 유대인들이 자존심 하나만 가지고 강한 로마제국에 대항하다가 나라 자체가 완전히 사라지는 일이 벌어졌다. 그들은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어야 했다.
옛날부터 제국들은 자신들이 정복한 지역 사람들에게 뭔가를 요구했다. 페르시아 제국도, 그리스 제국도, 로마 제국도, 몽고 제국도 한결같지 돈과 인력을 빼앗아 갔다.
오늘날 미국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나라나 일본, 그리고 세상 많은 나라들이 미국 제국의 깡패 같은 행위에 저항하지 못한다. 미국이 우리나라에 방위비를 더 내라는 것은 협상하려는 것이 아니라 명령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 시대에 유대나라는 로마 제국의 식민지였다. 유대인들은 로마를 위해 세금을 거두는 세리들을 나라를 팔아먹는 매국노로 여기면서도, 그것이 어쩔 수 없는 자신들의 처지라는 것을 부인하지 못했다.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다.
(마 5:43)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마 5: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마 5:45)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마 5:46)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마 5:47)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마 5: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예수님은 당시 설교자들은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를 미워하라고 가르쳤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에서 원수를 누구를 의미하는 것인가?
구약 성경을 살펴보면 원수를 미워하라는 부분보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부분이 더 많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갚는다는 것을 동태복수법이라고 한다. 고대 사회의 율법이나 모세에게 주신 율법도 동태복수법을 따르고 있다. 이 법은 과도한 복수를 금지하는 법으로 원수를 미워하라는 뜻이 들어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마저도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는 방법이 금전적인 보상으로 차츰 변해 갔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을 실천하기 위하여 손양원 목사님은 자기 두 아들을 죽인 공산당 청년을 아들로 삼아서 잘 키워 냈다. 물론 그것이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문자적으로 실현한 것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예수님 시대의 상황을 염두에 두면, 예수님의 말씀에 등장하는 원수는 유대인들을 위협했던 이방 사람들이라고 봐야 한다.
유대인들은 오래 동안 여러 제국들의 지배를 받아서 삶과 영혼이 피폐해져 있었다.
유대인들은 열등감과 함께, 자신들이 살아계신 유일하신 하나님을 섬기는 민족임에도 불구하고 여러 제국들에게 괴롭힘을 받는다는 것에 대한 풀지 못한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그에 대한 반동으로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사람 취급하지 않았다. 그렇게라도 해야 자신들의 열등감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이다.
유대인들이 얼마나 이방인들을 미워했는지는 46절을 보면 알수 있다.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세리는 유대인들에게 세금을 거두어서 이방인들, 로마인들에게 가져다 바치는 일을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세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유대인들에게 원수가 될 수 밖에 없었다.
유대인들은 자존심 때문에 로마 제국이나 그리이스 제국에 대하여 전쟁을 벌였다. 그것은 물론 계란으로 바위치는 것이었다. 이란이 미국과 전쟁을 벌이는 것도 그런 것이고, 북한이 미국과 전쟁을 불사하겠다는 것도 그런 것이다. 뻔한 싸움이지만 열등감을 극복하고 피해의식을 어루만지기 위해서는 자폭하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 얼마 되지 않아 유대인들은 또 반란을 일으켰고, 로마 황제의 아들 티투스 장군이 로마 군대를 몰고 와서 유대 나라 자체를 무너뜨렸다.
베드로는 어느날 환상을 보았다. 그 환상은 하늘에서 보자기가 내려 오는데 그 보자기에는 개, 돼지, 뱀, 쥐 같은 속되고 깨끗하지 않은 동물들이 있었다. 하나님은 그 동물을 먹라고 하셨다. 무엇을 먹는다는 것은 그것과 하나가 된다는 것이다. 베드로는 자신이 그런 동물을 먹지 않겠다고 말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동물들이 바로 유대인이 아닌 사람들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베드로는 유대인으로서 유대인이 아닌 사람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행 10:9) 이튿날 그들이 길을 가다가 그 성에 가까이 갔을 그 때에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그 시각은 제 육 시더라
(행 10:10) 그가 시장하여 먹고자 하매 사람들이 준비할 때에 황홀한 중에
(행 10:11)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
(행 10:12)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종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더라
(행 10:13)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어라 하거늘
(행 10:14)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내가 결코 먹지 아니하였나이다 한 대
예수님은 두로와 시돈이라는 이방인들의 땅에서 이방인 여자 수로보니게 여인이 자신의 딸을 고쳐 달라고 간청하자 “자녀에게 먹일 것을 개에게 던지지는 않는다.”라고 하셔서, 유대인이 이방인을 개처럼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해 주셨다. 그 여인의 딸을 고쳐주시고 여인을 칭찬해 주신 것을 보면 예수님은 보통 유대인들과는 다른 유대인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이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를 미워하라고 하신 말씀은 원수를 이방인으로 이해할 때 그 의미를 더 잘 알 수 있는 것이다. 44절에 보면 원수는 유대인을 박해하는 자이다.
(마 5: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맺음)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은 공통점이 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복음이고 복음은 천국에 집중되어 있다. 이 세상에 삶이 우리 삶의 전부라면 우리는 불쌍한 사람들이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 악한 자들에게 당하고 원수들에게 복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세상은 저 세상으로 가기 위해 잠깐 거쳐 가는 세상이기 때문에 주변을 둘러볼 시간이 없다. 주마간산이라는 말이 있다. 말 위에서 달리는 사람은 주위에 무엇이 있는지 둘러보고 감정을 느끼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 세상에서 악한 자가 잘 되는 것처럼 보일 수는 있어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계산하는 날이 오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삶에 지치고 강하고 악한 자들에게 고통을 당해서 마음이 상하고 지쳐 있는 사람들에게 이 세상살이에 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님의 사람들은 예수님처럼 오직 저 세상, 천국을 향해 달려간다. 그래서 강한 자, 악한 자가 와서 달라면 주고, 오른 뺨을 때리면 왼 뺨도 돌려 대며 이 세상살이에 별로 관심이 없이 사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너무 현실에 집착해 있었다. 암담한 현실 속에서 그들에게는 돌파구가 없었다. 예수님의 가르침의 핵심인 저 세상은 그들에게 돌파구를 보여 주었다. 이 세상은 뭔가를 이루며 살아야 할 곳이 아니라 달라붙는 것을 떨어 버리며 살아야 하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