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5:25)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아 온 한 여자가 있어
(막 5:26)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막 5:27)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막 5:28)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일러라
(막 5:29)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막 5:30) 예수께서 그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곧 스스로 아시고 무리 가운데서 돌이켜 말씀하시되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시니
(막 5:31) 제자들이 여짜오되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보시며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물으시나이까 하되
(막 5:32) 예수께서 이 일 행한 여자를 보려고 둘러 보시니
(막 5:33) 여자가 자기에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떨며 와서 그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여쭈니
(막 5: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12년 아래로 피를 흘리는 병을 앓은 여인이 있었다. 12년이라는 것은 12라는 완전한 숫자를 떠올리게 할 만큼 긴 시간이다. 12년의 투병 생활 후에 여인은 새로운 시작을 맞게 되었다. 12는 완전한 숫자임과 동시에 새로운 시작을 여는 숫자이기도 하다.
사람이 몸을 중요하게 여긴 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다. 예전에 '잘 먹고 잘 살아라.'라는 말이 욕으로 쓰였다. 먹고 사는 대만 집착하여 반듯한 생활을 하지 못한다는 뜻의 욕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찌 되었든 잘 먹고 잘 살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잘먹고 잘 사는 것이 삶의 목표가 되어 버렸다.
요즘 사람들이 몸에 집착하는 것을 보면 병적이다. TV에서는 계속해서 먹거리 안내, 먹거리 조리법에 대한 방송을 내보내고, 반면에 그렇게 먹으면 살이 찔 수 밖에 없는데도 날씬해지는 다이어트에 대한 방송도 내보낸다. 예전에는 건강한 몸, 통통한 몸을 가진 사람들이 미남, 미녀 취급을 받았는데, 지금은 뼈다귀만 남은 사람들이 미남, 미녀 취급을 받고, 모든 사람들의 부러움을 받는다. 지금 사람들이 몸에 대한 집착이 병적이듯, 2천년 전 예수님 시대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예수님이 가르치신 부활도 영혼의 부활만이 아니라 몸의 부활이었고, 예수님 당신도 몸이 부활하신 것이었다. 부활한 몸은 찔러도 아프지 않은 그런 몸이었다. "도마야, 네 손가락으로 내가 못 박혔던 손에 난 구멍에 넣어 보아라."
12년 혈루병을 앓고 있었던 여인은 사회적으로 냉대받을 수 밖에 없었던 여인이었다. 유대인 사회에서는 월경을 하는 여자도 부정하게 여겼다. 하물면 끊임없이 피를 흘리는 여자를 부정하게 여기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피를 흘리는 여자가 닿는 모든 곳이 부정하게 된다고 생각했다. 율법에도 그렇게 명시되어 있었다. 여자가 이 의사, 저 의사에게 치료를 받기 위하여 다니면서 여자의 병에 대한 소문은 이미 좁은 유대인 사회에 다 퍼졌을 것이다. 여자는 사람들을 피해서 외롭게 살았을 것이다.
여자는 사람들 사이로 들어가서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대었다. 그녀의 입장에서는 큰 용기를 낸 것이었다.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하게 자기의 얼굴을 가리고 예수님께 접근했을 수도 있다. 사람들이 자기를 알아보면 닿이지 않기 위해서 피하며 욕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여인의 그런 행위는 믿음의 기도와 같은 것이었다.
기도는 믿음으로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대는 것이다. 기도하면서 하나님이 내가 기도하는 것을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를 시작할 때부터 우리를 주목하고 계신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하는 기도를 하나님은 듣지 못할지 몰라도 사람들은 들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의 귀에 대고 큰 소리로 기도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그것은 거꾸로 판단한 것이다. 사람들을 향해 아무리 큰 소리로 말한다고 해도 사람들의 귀가 막혀 있는 경우가 많다.
예수님이 걸어가실 때 수많은 병자들이 예수님을 따라 다니고 있었지만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댈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예수님이 제법 큰 집회를 여실 때 이벤트 행사의 하나로 몇 사람의 병을 치료하실 것이고, 그 때에 자기가 선택되면 좋겠다는 생각만으로 예수님을 따라 가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들은 예수님이 자신을 광고하시기 위한 목적으로 병자를 고치는 이벤트를 여시는 분으로 생각했을 수 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모이게 되는 집회를 기다리며 예수님을 따라가고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아니면, 예수님을 따라 가는 수 많은 병자들 가운데 있는 자신이 아무리 크게 소리 질러도 예수님이 듣지 못하실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믿음이 없으니 용기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오직 한 여인은 예수님이 공명심 때문에 병을 고치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몰래 예수님의 옷자락에 몰래 손을 대 보았던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댄 여인에게 주목해야겠지만, 손을 대지 않은 수많은 병자들도 주목해야 한다. 그들이 반면교사가 된다. 우리가 큰 소리로 조리 있고 설득력 있게 기도해야 하나님이 들으시는가? 하나님을 믿고 한 걸음 다가서는 용기를 내는 순간 이미 하나님은 기도를 들으신 것이고 기적은 일어나는 것이다.
예수님은 기적을 행함으로 능력을 보여 사람들의 인기를 얻으려 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예수님은 믿음을 가지고 용기를 내어 예수님께 다가오는 사람을 찾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