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음악은 순수하지 않다. 네루다도 자신의 시에 대해 이와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내 음악은 추상적이지 않고 순수하지도 않았으면 한다.
차라리 불완전하고 허약함과 부족함으로‘얼룩졌으면 좋겠다’. (···)
내 음악은 언어가 되었으면 좋겠고,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하는 공허한 음향의 울타리를 넘어섰으면 좋겠다.음악은 언어처럼 이해해야 할 대상이다. 작곡가 한스 베르너 헨체 가 1972년에 한 말입니다. 음악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이자 의지라는 사실을 세상에 공포하는 것처럼 들리네요. 원래 음악에는 병든 사람을 고치고 꽃을 피우며 인간을 이롭게 하는 신비스런 힘이 숨어 있다고 여겨졌지요. 하지만 이런 매혹적인 음악의 표상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작곡가들도 있습니다. 그들이 보기에 음악은 그저 아름답기만 한 존재는 아니지요. 악보에 기록하고 연주하는 음악은 가치 있고 옳아야 합니다. 한스 아이슬러, 루이지 노노,한스 베르너 헨체가 음악의 사회참여를 적극 주장하는 대표적인 작곡가들입니다. 이 세 명의 작곡가는 모두 의식이 깨어 있고,철학에서 회화예술에 이르기까지 모든 문화적 영역에 관심을 보입니다.그리고 음악과 정치는 서로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고 믿습니다. 20세기에 음악은 파시즘과 전쟁의 희생자들과 정치적으로 박해받고 억압받는 자들에게 새로운 세계의 비전을 제시하고 격려하는 역할을 합니다.아니면 반대로 음악이 인간에게 아무런 윤리적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돋보이는 베토벤 애호가였지만 수많은 유대인들을 학살하는 데 앞장선 나치 의사 요제프 멩겔례를 보세요. 아이슬러는1920년대에 공산당원으로 활동하며 사람들을 자본주의와 독재에 맞서 싸우도록 고무하기 위해 <연대의 노래Solidaritätslied>같은 합창곡과 투쟁가를 작곡했고, 루이지 노노는 특히1950년경 이후에 본격적으로 참여음악으로 기웁니다. <아우스비츠에서 벌어진 일에 대한 기억Ricorda cosa banno fatto in Auschwitz>(1966)과 칸타타<중단된 노래Il canto sospeso >(1956)는 노노의 대표적인 작품들이죠. 그는 음악과 언어의 관계를 새롭게 고민합니다. 음악을 한 번 울린 다음 사라지고 마는 현상으로 보지 않으며, 연속적인 역사의 흐름 속에 음악의 흔적을 남기려 합니다. 가사에 담긴 정치적 메시지는 음악과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노노의 작품에서 언어와 음악은 하나로 녹아 전체를 이루며 청중에게 사고를 요구하고,더 나아가 행동으로 이어지기를 바라지요. 어떤 사람들은 참여음악이 정치적으로 큰 영향력을 행사할 뿐만 아니라 음악적으로도 뛰어난 수준을 자랑한다고 주장합니다. 이 문제를 놓고 종종 논쟁이 벌어지기도 하지요. 헨체의 오페라 <우리는 강에 왔다We come to the River>(1976년 런던 코베트가든의 로열 오페라 하우스에서 초연)는 정치적 요구와 음악적 요구를 동시에 충족해 주는 인상적인 작품입니다. 각기 다른 세 장소에서 서로 다른 액션이 벌어지는 오페라인데, 장소마다 무대뿐만 아니라 오케스트라 편성까지 달리하여 더 효과를 높였지요.에드워드 본드Edward Bond가 대본을 썼습니다. 아우스비츠에서는 왈츠의 장단에 맞추어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칠레에서는 음악으로 저항하던 한 음악가의 손이 잘렸다.이제 새로운 음악이 등장해야 한다.결코 인간을 죽음으로 내몰지 않는 음악,음악가 의 손가락이 잘리는 것을 막아주는 음악이 필요하다. 에드워드 본드가 쓴 오페라 대본 <철창살 뒤의 오르페우스Orpheus hinter Stacheldraht>(1986)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음악이 세상을 바꿀 것이라고 믿는 모든 음악가들을 향한 간절한 호소입니다.
<출처:쾰른음대 교수진,‘클래식 음악에 관한101가지 질문’_0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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