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선명 평전 제7장 교육과 학술이 올바른 인간을 만든다 5. 통일신학대학원과 브리지포트대학 문선명은 미래를 짊어질 청년들에게 종교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을 교육하는 것을 언제나 첫 번째 사명으로 꼽았다. 초종교적 이념에 자신의 몸을 던지는 청년들을 기르기 위해 미국에 학교를 세웠다. 한국에서부터 먼저 학문적으로 더 체계 있고 세계인을 상대로 초종교파적 교육을 할 수 있는 대학을 세우기로 한 것이다.
1974년 여름은 무척이나 더웠으나 문선명은 더위를 느낄 수 없을 만큼 바빴다. 뉴욕에서 북쪽으로 140km에 위치한 베리타운(Berrytown)에 캠퍼스를 구입한 것이다. 그곳은 허드슨 강가에 있었으며 주변 풍광이 무척 아름답고 평화로워 종교 교육과 기도생활에 적합했다. 첫눈에 마음에 들었지만 바로 그 자리에서 결정하지 않고 17번이나 찾아가 꼼꼼히 살핀 뒤 결정했다. 학교 이름은 통일신학대학원(Unification Theological Seminary:UTS)으로 지었다. 미국에서 문선명이 최초로 세운 이 학교는 1975년 9월 20일에 2년제로 시작했다. 첫 입학생은 종교교육 학생 56명이었다. 비록 학생 수는 적었으나 이제 미국에서 뿌린 씨앗이 곧 열매를 맺을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학교 문을 여는 날 문선명은 왜 통일신학대학원을 세웠는지에 대해 들려주었다.
"우리 신학교를 살 때 내가 17번을 왔다갔다 했습니다. 왜 17번씩이나 다녔을까요? 기도하고 정성들이기 위해섭니다. 하나님의 막중한 사명을 완수하는 일이기에 부지런히 다녔습니다. 제가 이 땅을 왜 샀겠습니까? 좋은 대학을 짓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워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는 학사, 박사를 배출시키기 위해서입니다. 누가 되었든 공부하겠다는 사람은 다 공부시킬 계획입니다."
문선명은 학교를 자주 찾아 어려움은 없는지, 필요한 것은 없는지, 고쳐야 할 곳은 없는지 두루 살피고 점검했다. 학교에 갈 때마다 늘 고향집에 가는 것처럼 기쁨과 감사의 마음이 가득했다. 눈이 초롱초롱한 청년들과 나무 아래에서, 교실에서, 산책을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또 허드슨 강에서 고기 잡는 법을 직접 보여주고, 어망을 고치는 방법을 일일이 알려주었다. 또 삽을 들고 학생들과 함께 축구장도 만들었다. 학생들은 문선명이 바지를 걷어 올리고 흙 속에서 삽질을 할 때 무척이나 놀랐다. 그러나 문선명은 그러한 일이 항상 즐거웠다.
학교를 세울 때 무엇보다 강조한 것은 초종교적 화합이었다. 세계 여러 학교를 뒤져 다양한 신앙을 지닌 훌륭한 교수들을 직접 뽑았다. 유대교, 감리교, 개혁교, 그리스도교, 로마카톨릭, 그리스정교 등 가지각색의 믿음을 가진 저명한 학자와 신학박사들을 각 나라에서 초빙했다. 또 학교에서 학생들과 함께 커다란 호수도 만들었고 그 주위에 온갖 나무들을 심었다. 학생들은 자신의 나무를 심었고 졸업 후에도 여러 해 동안 방문하여 나무가 자라는 모습을 지켜봤다. 졸업생 모임이 열리면 학생들은 꼭 호수를 찾아 자신이 청년시절에 심은 나무를 쓰다듬으며 그 시절의 각오를 다시 한 번 다지곤 한다.
정성을 들인 또 하나의 학교는 브리지포트대학교(The University of Bridgeport:UB)이다. 뉴욕에서 약 89km 떨어진 코네티컷 주 남서부 해안에 1927년에 세워진 브리지포트대학교가 있다. 처음에 코네티컷 전문대학(Junior College of Connecticut)으로 설립되었다가 1947년 4년제 대학으로 승격되었다.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63년동안 브리지포트대학은 학문의 요람으로서 많은 인재들을 길러냈으나 1970년대 이래 점차 악화되는 경제 상황으로 인해 쇠퇴하기 시작했다. 오랜 역사와 아름다운 캠퍼스, 훌륭한 교수진에도 불구하고 학교는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70년에는 재학생 수가 9천 명에 이르러 명문 종합대학으로 전국 각지에서 학생들이 몰려왔지만 재정이 악화되자 1992년에는 1,400명으로 급격히 줄어들었다. 그러자 교직원들은 파업을 했고, 대학이 진 빚은 2,400만 달러나 되었다. 대학 존립 자체가 위태로운 지경이었다.
문선명은 이 소식을 듣고 마음이 무척 아팠다. 교육의 중요성을 늘 강조하고 한국에 여러 학교를 세우고 1975년 뉴욕에 통일신학대학원 (UTS)을 세운 설립자로서 유서 깊은 대학이 그대로 사라지게 할 수는 없었다. 문선명은 세계평화교수아카데미(PWPA)와 함께 그 대학을 살리는 일에 착수했다. 그러자 「워싱턴 포스트」와 「뉴욕타임스」등 여러 언론들이 비판에 열을 올렸다. 하지만 문선명은 일부 비판 여론에도 불구하고 1992년에 브리지포트대학을 인수했다.
설립 초기부터 브리지포트대학은 어느 종교나 종단에 속하지 않았으며 문선명이 인수한 이후에도 교육의 목표는 변함이 없었다. 오직 학문의 전당으로서 그 역할에 충실하며 세계의 발전에 이바지하는 인재를 길러내는 사명에 힘을 쏟고 있다. 브리지포트대학을 인수한 이후 10여 년 동안 문선명은 PWPA를 통해 1억 1천만 달러를 아무 조건없이 지원했다. 오직 대학의 중흥을 적극적으로 후원해 전 세계로부터 온 학생들을 교육시키는 일에 정성을 기울였다.
1996년 2월 21일, 우르과이 몬테비데오에서 브리지포트대학 대표자들을 만나 함께 아침식사를 하면서 조화, 순결, 평화, 통일의 4가지 교육 이념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만약 순결이 브리지포트대학의 핵심 가치 중 하나가 된다면 전 세계의 많은 부모들이 자녀를 안심하고 브리지포트대학에 보낼 것입니다"라고 강조했다. 또한 1999년 1월, '코단(Kodan)'이라 불리는 특별기금을 마련하는 자리에서 신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들은 브리지포트대학을 인수한다는 것을 꿈에서조차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나는 일본과 한국에서 기금을 마련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그 일을 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반면 다른 모든 이들은 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고 그저 지켜보기만 했습니다. 그러나 브리지포트대학은 이제 유명해졌습니다. 「워싱턴 포스트」부터 「뉴욕타임스」에 이르기까지 미국 언론은 온통 비판을 했습니다. 미국에서 대학을 운영한다는 것은 세계적인 지도자를 양성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는 대학이 잘 발전해 나갈 수 있도록 지원했으며 더 좋은 결과를 이루어냈습니다."
브리지포트대학이 발전한 데는 1995~99년까지 총장을 맡은 리차드 루벤스테인(Richard Rubenstein)박사의 힘이 컸다. 그는 하버드대학을 졸업한 저명한 신학자이자 종교역사학자로 플로리다 주립대학에서 봉직했다. 또한 PWPA회장으로도 일했다. 그는 「내 생애의 가장 특별한 순간들 중 하나」라는 제목의 수필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문선명 목사님께 너무나 감사하고 있다. 1992년 파산하여 폐교할 위기에 처해 있었던 브리지포트대학을 구해주었다. 당시 우리 대학은 미국 고등교육 역사상 가장 길고 격렬했던 교직원 파업 중이었다. 세계평화교수아카데미와 브리지포트대학이 동반자 관계를 맺게 되었을 때, 언론과 코네티컷 여론은 격렬하게 비난했다. 그러나 문선명 목사님의 헌신적인 지원 덕분에 비판자들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1995년 이래 대학 재정과 수익은 매년 증가했다. 제가 총장으로 선임되었던 1995년 학생 수는 1,900명이었다. 하지만 총장직에서 물러난 1999년에는 3,000명으로 증가했고, 캠퍼스와 시설은 훨씬 더 현대화되었고, 개선되었다. 그때까지 문선명 목사와 그의 제자들은 1억 달러 이상을 기부했다."
1995년 9월 7일, 브리지포트대학은 문선명에게 명예박사학위를 수여했다. 「뉴욕타임스」는 박사학위 수여식에 관해 보도하면서 루벤스테인 총장의 말을 인용했다. "만약 여러분에게 가장 많은 후원을 한 분이 있다면 여러분은 그의 손을 붙잡고 '감사합니다'라고 말하지 않으시겠습니까? 만약 문선명 목사님이 안 계셨다면, 브리지포트대학은 이미 문을 닫았을 것입니다."
이후 총장을 맡은 네일 살로넨(Nail A. Salonen)은 헌신적으로 일해 2003년에 재정적으로 완전 독립된 학교로 재탄생시켰다. 그때 이래로 졸업생들과 사회단체의 기부금이 놀랄 정도로 증가했다. 2012년에 이르러 전체 학생 수는 5,300명에 달해 10년 만에 3배가 넘는 성장을 했다. 전 세계의 90개 이상의 나라에서 학생들이 유학을 왔고 미국 내에서 가장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는 대학이 되었다. 빈사상태였던 브리지포트대학을 세계적인 명문대학으로 만든 데에는 많은 교수들과 지역주민, 학생과 학부모들의 노력도 컸다. 궁극적으로는 "교육은 절대 중단되어서는 안 된다"는 신념으로 수년 동안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고 정성을 기울인 문선명의 결단이 밑거름이 되었다.
또한 초등학교와 중・고등교육을 위해 브리지포트대학 인근에 청소년을 위한 국제학교를 세웠다. 바로 브리지포트호프스쿨(Bridgeport Hope School:BHS)과 브리지포트국제아카데미(Bridgeport International Academy:BIA)이다. BHS는 유치원에서부터 8학년까지를 가르치며 뉴저지 주 클리프턴(Clifton)에 있다. BIA는 9~12학년까지를 가르치며 브리지포트대학 인근에 있다. 인종, 국적, 종교와 상관없이 모든 이들에게 열려 있으며 두 학교의 선생님들과 학생들은 전 세계에서 온 인종의 집합소이다. 학교 안에는 현대적 시설의 기숙사가 있어 다른 나라에서 온 학생들이 함께 어울려 생활한다. 현재 학생들은 25개국에서 온 어린이와 청소년들이며 기독교, 이슬람, 불교 등 각자의 종교를 믿는다.
문선명이 미국 땅에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학교를 세운 이유는 교육이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실현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었다. 그 이념을 바탕으로 세워진 브리지포트호프스, 통일신학대학, 브리지포트대학 등은 오늘도 인류 평화와 세계 발전을 위해 공헌하는 인재들을 길러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