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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고대국어 갑골문자 원문보기 글쓴이: 하늘아비
妻 아내 처
머리 올리다, 여의다
아내, 처
妻의 갑골문
妻의 갑골문 자형은 단정하게 무릎을 꿇은 형상인 女[①]와 손의 모양인 又[②]와 몇 가닥으로 나타낸 머리칼이 위로 올려 있는 모양인 ③ 부분과의 합자입니다. [④ 부분은 人]
이는 배달말에서‘시집가다’에 대한 관용적인 표현인‘머리 올리다’를 그대로 시각화한 글자입니다. 배달민족 외에도 중국이나 일본, 혹은 태국과 같은 아시아의 어떤 나라에서도 결혼한 여자가 머리에 비녀를 꽂을 수는 있겠으나, 이렇게까지 분명한 상징으로‘머리 올리다’와 같은 관용격식이 사람들의 입말에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은 분명 다른 것입니다. 그런 비유적인 입말에서 사용되고 있어야만 문자로 표기될 수 있는 것입니다.
‘머리 올리다’는‘머리 얹다’라고도 합니다. ‘올리다’와 ‘얹다’의 차이는 신분이나 지역, 혹은 시대적인 차이일 뿐이지 결국 같은 풍습에 의한 비유적 표현입니다. 얹은머리는 머리 위에 가체(加髢)로 만든 큰머리를 덧씌우듯 올리는 것을 말합니다. 이게 신분이나 직역, 혹은 시대적인 변화로 ‘올린머리’가 된 것입니다.
이 얹은머리를 ‘어여머리’라고도 하는데, 분명 妻(아내 처)의 본딧말은 이와 관련이 있었을 것입니다.
“어여쁜 그대, 예(/어여),,,여의,,,여희,,,, ,,, ”
머리 올리고 오롯이 나에게로만 온 님, 妻의 본디 소릿값이 무엇이었을까, [처]의 소릿값 자체가 결혼한 여자를 의미하며, 그에 대한 표현으로 ‘머리 올리고 있는 모양’의 글자를 만든 것으로 추정합니다.
妻의 고문 妻의 전문
妻의 고문(古文) 자형은 장식이 된 모자[冃(쓰개 모)]를 여자가 쓰고 있는 모양인데, 전문(篆文) 자형에서 다시 갑골문이 표기하는 방식에 따라 머리를 말아 올려놓은 모양으로 복원됩니다. 갑골문과의 차이는 갑골문에서는 단순하게 올려 있는 머리카락이 전문에서는 비녀를 꽂고 있는 것입니다. 예법을 문자에 보다 구체화 시킨 것입니다. 여자가 모자를 쓴다는 것이‘결혼하다’와는 맞지 않음을 시황제(始皇帝)는 분명히 알았던 것입니다.
중국어에서도‘上頭[shàngtóu]’라고 우리와 유사한 용례가 있기는 하지만, 우리처럼 일상에서 사람들의 입말에 살아서 구현되는 것이 아니라, 강식(强式 ; 억지 방식)에 의한 사용입니다. 그들의 옛날이란 그들의 문화가 아님이 이 책의 갑골문 자원 연구에서 충분히 확인되고 있듯이, 상고시대(上古時代) 우리의 관습이나 말을 재번역해서 사용한 것입니다. 그래서 上頭[shàngtóu]’는 현대 중국어의 입말에서 독한 술에‘금방 취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것입니다.
妻가 처음 만들어 졌을 당시의 소릿값이 무엇이었다고 단정적으로 말하긴 어렵습니다. 소릿값이 아니라 회의(會意)의 방식으로 만들어진 글자입니다. 결혼한 여자를 뜻하는 婦(며느리 부)의 경우에는 존칭의 어기가 들어 있지만, 妻는 평칭(平稱)이기에‘아내, 여보’ 정도의 어기를 가진 말로 불리었을 것입니다.
妻子(처자), 夫妻(부처), 妻家(처가), 妻男(처남), 愛妻家(애처가), 糟糠之妻(조강지처) 등에서 妻가‘처’의 뜻입니다.
일반적으로‘여편네’와‘남편네/남정네’를 한자어로‘女便’, ‘男便’으로 씁니다. 이런 경우를 상고대(上古代)에 한자의 유입으로 순우리말화 된 것이라고 정의 내리기도 합니다만, 재고(再考)해 보아야 할 문제입니다.
‘남편’과 ‘여편’은 한문(漢文) 문서에 나타나지 않으며, 현대 중국어에서도 사용하지 않습니다. 존칭과 겸칭, 문두(文頭)에 사용되는 ‘삼가[謹(삼갈 근)], 감히[敢(감히 감)], 조심스럽게/나름[竊(몰래 절)]’ 등과 같은 정태부사(情態副詞)는 한문 문장과 한국어에서 아주 일반적인 표현이지만, 현대 중국어에서는 없는 용법입니다.
이처럼 중국어에서 한국어로 유입된 말 중에 본토에서는 사라지고 한국어에서만 존재하고 있는 점 등을 비견해 보았을 때, 중국어에서의 유입(流入)으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라, 본래 있던 어감(語感)이 후에 들어온 한자음(漢字音 ; 배달어의 중국식 변화음)에 다시 영향을 받은 측면을 고려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妻는 회의의 방식으로 만들어진 글자이지만, 파생되는 다른 글자들에서 순우리말의 소릿값 ‘여의/여위’가 공통으로 추출됩니다. 하여, ‘예편네/여편네’라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상관관계는 있다고 할 것입니다.
또 妻에 의하여 파생된 한자들의 독(讀)이 모두 [처]인 것은 본래의 소릿값이 아니라, 강식으로 덧붙여진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허신(許愼)의 설문해자에 나타나는 이 소릿값들은 태고로부터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자전적인 분류에 지나지 않으며, 그 자전적인 발음이 현대중국어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은 고유의 중국어란 거의 사라지고 없는 것이기도 합니다.
娶妻不取同姓. 『禮記』
여희에게 장가듦에 같은 성(姓)은 취하지 않는다.
상기 예문의 娶妻는 ‘아내에게 장가들다’로 풀이됩니다. 하지만‘아내’란 이미 결혼한 상태의 여자이기에 다시‘장가들다[娶(장가들 취)]’라고 하면 문장에 오류가 발생합니다. 물론 많은 경우에서 妻가‘아내’라는 일반적인 의미를 나타내고 있기는 하지만, 이 문장에서의 妻는 별도의 어기를 가진 것입니다. 麗姬(여희)는‘아름다운 여자’를 일컫는 말인데, 여기서의 [여희]는 본래 우리말의 소릿값에서‘성인식을 거친 여자’및‘아내’의 뜻을 동시에 나타냈던 것으로 추정합니다. 또 한 가지 특기할 점은‘여희다’는‘여의다(/딸을 시집보내다)’의 옛말이기도 합니다.
아래는‘여의다’및 유사한 소릿값을 가지는‘여위다’에 대한 사전적 정의들이며, 妻에 의하여 파생된 다른 글자들에 다양하게 적용됩니다.
여의다 (1) 부모나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서 이별하다.
(2) 딸을 시집보내다.
(3) 멀리 떠나보내다.
여의살이 ; 시집을 가서 사는 살림.
여위다1 (1) 몸의 살이 빠져 파리하게 되다.
(2) 살림살이가 매우 가난하고 구차하게 되다.
(3) 빛이나 소리 따위가 점점 작아지거나 어렴풋해지다.
여위다2 ; ‘여의다’의 잘못.
여위다3 ; [옛말] 물 따위가 마르다.
예우다 ; ‘여의다(/딸을 시집보내다)’의 북한어
“자네 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배달말에서 [처]는 독자적으로‘아내’의 뜻으로도 쓰입니다. 이런 경우는 妻 외에도 적지 않은 글자들에서 발생하지만 모든 글자들에 해당되지는 않습니다. 예로 天(하늘 천)과 地(땅 지)의 [천], [지]는 각기 독자적인 음으로는 의미를 가지지 못합니다. 고대중국어와 중국 문자가 한국어로 유입되었다는 기존의 고정관념 하에서는 한자의 소릿값이 어떤 경우에는 고유어에 준하는 지위를 가지고, 또 어떤 경우에는 성어(成語)라는 개념 하에서만 의미를 가지는 가에 대한 명확한 구분은 불가능합니다.
한자 음 현대중국어음
莫 [막] [mò]
或 [혹] [huò]
各 [각] [gè]
得 [득] [dé]
상기 도표에서 음(音)은 현대한국어 상에서의 한자음이긴 하지만, 고대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원음(原音)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현대중국어 상에서의 소릿값은 원음의 종성 [ㄱ] 음가가 완전히 소멸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한자가 중국어로부터 한국어로 유입되었다는 기존의 고정관념 하에서라면 중국어 [mò]가 한국어로 유입되어 [막]이 되고, [huò]가 유입되어 [혹]이 되었다는 말이 되지만, 외국어를 받아들이면서 존재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자연스럽게 덧붙여질 수 있는 음운현상도 아닌 종성 [ㄱ] 음가가 덧붙여질 리는 없는 것입니다. 이는 반대로 상고대 배달말이 중국어로 흘러 들어가면서, 하나의 형태소가 하나의 단어역할을 하는 단모음 언어인 중국어의 특성 상 종성 음가가 제거된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막], [혹], [각], [득]의 각각의 첫소리 값 [m], [h], [g], [d] 현대중국어에서도 여전히 유지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天[하늘]과 地[땅/따]의 경우에는 [tiān], [de]로 전혀 무관함 음으로 발화되고 있습니다. 이는 상고대 배달말이 중국어로 흘러 들어가면서‘하늘, 땅’과 같은 세상 모든 언어에 존재하는 개념의 낱말의 경우에는 그네들 본연의 소릿값으로 대체되었으며, 새로운 개념, 즉 본연의 중국어에는 없는 낱말의 경우에는 배달말을 자기들 나름으로 따라한 것이 됩니다. 지금도 한국어를 전혀 모르는 중국인들에게 한국어 음 [막], [혹], [각], [득]을 들려주고 따라하라면 [mò], [huò], [gè]. [dé]와 거의 흡사하게 발음합니다.
종성 음가가 중국어로 들어가면서 사라지는 이유는 단모음 언어로 하나의 형태소가 하나의 낱말의 기능을 하기에 중국어에서 종성을 나타내기 위하여, [막]을 [마그]와 같은 식으로 소리 내면 하나의 절이나 문장으로 들리기에 종성을 제거하고 음의 뒷부분을 그네들 나름으로 강조하는 형식으로 발화하고는 제거시키는 것입니다.
McDonald[맥도날드]는 현대중국어에서 麦当劳 [Màidāngláo ; 마이당라오]로 [맥]의 종성 음가가 제거되어 [마이]로 발화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서도 天地의 한자음 [천]과 [지]는 분명히 중국어의 영향인데, 이는 언어에 있어서의 역수입 현상으로 보아야 하겠습니다.
棲 깃들일 서
머리올리고 사는 곳 ; 보금자리
棲의 전문
棲는 구조물을 뜻하는 木과, 妻의 합자이며, ‘머리올린 구조물’이라는 것에서‘보금자리’의 뜻을 나타냅니다.
棲는 栖[전문자형 없음]로 쓰기도 하는데, 栖의 西가‘날개깃을 접은 새’의 모양으로‘깃들다’의 뜻입니다. 棲息(서식)을‘깃들여 숨 쉬다’로 풀이한다면‘깃들다’가‘안식처’의 의미를 가져야 하지만, 이는 표현에 있어서 은유적인 특이성이지, 일반화된 관용어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하여 栖는 전문 자형이 없는 것입니다.
棲息(서식), 兩棲(양서), 群棲(군서), 同棲(동서), 歸棲(귀서) 등에서 棲가‘보금자리’의 뜻입니다.
霋 갤 처
여위다, 예다 ; 개다
霋의 갑골문
霋의 전문
霋의 갑골문 자형은 雨[①]와 변형된 妻[②]의 합자(合字)입니다. 이 변형의 원인은 妻의 갑골문은 그 모양새가 보다 앞선 것에서 후대로 오면서 점차로 정형화된 것일 수도 있으며, 전문 자형에서는 又[③]자로 나타납니다. 이는 쪽진 머리에 비녀를 꽂은 모양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妻가‘여의다(/[옛말] 물 따위가 마르다/빛이나 소리 따위가 점점 작아지거나 어렴풋해지다)’에서‘비가 개다’의 뜻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霋에는 ‘구름이 가는 모양’의 뜻도 있는데, ‘예다(녜다<녀다)’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예다’가 현재 사전적으로는‘가다를 예스럽게 이르는 말’이라고 되어 있지만, ‘가다’와는 어원이 다르며, 느릿느릿 천천히 움직이는 모습을 나타낸 것으로 판단합니다.
悽 슬퍼할 처
여위는/여의는 마음 ; 에다
悽의 전문
悽는 心과 妻의 합자이며, 妻가‘여위다, 여의다’에서‘여위는/여의는 마음’에서‘에다(/마음을 몹시 아프게 하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悽絶(처절), 悽慘(처참), 悽然(처연) 등에서 悽가‘에다’의 뜻입니다.
哀哀悽悽 懷報德也. 『爾雅』
애애처처[애처롭고, 에고 에이는] 보덕을 품었다.
상기 이아(爾雅)의 예문에 사용된‘悽悽’를 기존의 풀이에서는‘은덕을 갚고자 하는 마음’이라는 식으로 정의하고 있지만, 의역(意譯)일 뿐이며, 실제로는 순우리말의‘에다’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淒 쓸쓸할 처/찰 처
에이는 온도 ; 쌀쌀하다, 쓸쓸하다
淒의 전문
淒는 溫(따뜻할 온)의 축약인 水와, 妻의 합자이며, ‘에는 온도(溫度)’라는 것에서‘쌀쌀하다, 쓸쓸하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현재는 水 대신에 仌[冫]이 쓰인 凄[전문 자형 없음]가 주로 쓰이고 있습니다.
凄[/淒]凉(처량), 凄[/淒]切(처절), 凄[/淒]然(처연), 凄[/淒]日(처일 ; 싸늘한 날. 곧, 가을날을 이른다), 凄[/淒]雨(처우 ; 찬비) 등에서 凄[/淒]가‘쌀쌀하다, 쓸쓸하다’의 뜻입니다.
秋日淒淒 百卉具腓 亂離瘼矣 爰其適歸 『詩經·小雅』
가을날은 쌀쌀하고 쌀쌀해, 온갖 풀이 같이 시들었네, 난리는 마구잡이 치는데, 이에 그렇게 적적히 돌아가네,
緀 무늬 처
여의
緀의 전문
緀는 繡(수놓을 수)의 축약인 糸와, 妻의 합자이며, 妻가‘여의(/꽃술의 옛말)’로 쓰여‘수(繡)놓은 꽃술’의 뜻을 나타냅니다.
萋 우거질 처
풀로 에우다 ; 우거지다
萋의 전문
萋는 艹와 妻의 합자이며, 妻의‘여위다, 여의다’에서‘에우다(/사방을 빙 둘러 싸다)’로 쓰여, ‘풀이 에우다’로‘우거지다(/풀, 나무 따위가 자라서 무성해지다), 욱다(/우거지다)’의 뜻을 나타냅니다.
葛之覃兮 施于中谷 維葉萋萋. 『詩經·國風』
칡덩굴 뻗을 지라네, 골 가운데에까지 베풀어, 그 잎이 욱고 우거졌다네.
有客有客 亦白其馬 有萋有且 敦琢其旅. 『詩經·周頌』
손님이 있어, 손님이 있어, 또 하얀 그 말, 욱어/에우고 있고 주저하고 있네. 도타이 다듬은 그 나그네.
상기 시경의 萋는 일반적으로 ‘공경하다’로 풀이합니다. 하지만 오역일 뿐이며, 실제로는 ‘욱다(/기운이 줄어지다)’를 나타낸 것입니다. 이 구절에서 客은 화자(話者)에게는 ‘님’이 되며, 님이 화자에게로 바로 오지 못하고 주변에서 다른 길로 들어설 듯 말 듯 하는 상황을‘有萋有且’, 즉‘욱다’와‘주저하다’로 나타낸 것입니다. 이 경우의 萋는‘에우다(/다른 길로 돌리다)’로 볼 수도 있습니다. 차마 그대로 오지 못하고 여린 마음에 에둘러 다닌다는 의미입니다.
대부분의 한문문장(선진 이전의)도 마찬가지 이지만, 특히나 시경(詩經)은 순우리말, 배달말이 아니면, 정서적인 감흥의 전달은 거의 불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