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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 1: 4. 아내를 맞이하였는데 ( 상 )
룻 1: 4. 아내를 맞이하였는데 - 그들은 모압 여자 중에서 그들의 아내를 맞이하였는데, 하나의 이름은 오르바요, 하나의 이름은 룻이더라. 그들이 거기에 거주한 지 십 년쯤에 ( 그들은 모압 여자 중에서 아내를 취하였는데 하나의 이름은 오르바요 하나의 이름은 룻이더라. 거기 거한지 십년 즈음에 )
1] 그들은 모압 여자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였는데 하나의 이름은 오르바요 하나의 이름은 룻이더라.
결혼 (혼인)
혼인은 창조주 하나님의 뜻에 근거를 두고 있다. 곧 남자와 여자 둘이 하나를 이룰 때만이 사람은 하나님의 완전하고도 충분한 형상이 되고(창 1: 27), 남자 홀로는 그렇지 못하며, 남자는 그와 대등한 상대방인 여자에게 의존한다(창 2: 18, 23-24).
그렇지만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구체적으로 나타난 혼인 방식을 보면 혼인은 전적으로 또 일방적으로 남자의 지배적인 지위에 의해 규제되었다. 신부를 구하는 남자와 신부의 아버지가 맺은 언약을 통해 또 일정한 예물(신랑 지불금)을 근거로 하여 젊은 여인은 이른바 남편의 소유가 된다.
* 창 24: 2-4 – 2 아브라함이 자기 집 모든 소유를 맡은 늙은 종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내 허벅지 밑에 네 손을 넣으라. 3 내가 너에게 하늘의 하나님, 땅의 하나님이신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게 하노니, 너는 내가 거주하는 이 지방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지 말고 4 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
* 창 38: 6 - 유다가 장자 엘을 위하여 아내를 데려오니 그의 이름은 다말이더라.
* 신 7: 3 - 또 그들과 혼인하지도 말지니 네 딸을 그들의 아들에게 주지 말 것이요 그들의 딸도 네 며느리로 삼지 말 것은
* 삿 14: 2-3 – 2 올라와서 자기 부모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딤나에서 블레셋 사람의 딸들 중에서 한 여자를 보았사오니 이제 그를 맞이하여 내 아내로 삼게 하소서. 하매 3 그의 부모가 그에게 이르되, 네 형제들의 딸들 중에나 내 백성 중에 어찌 여자가 없어서 네가 할례받지 아니한 블레셋 사람에게 가서 아내를 맞으려 하느냐? 하니 삼손이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내가 그 여자를 좋아하오니 나를 위하여 그 여자를 데려오소서. 하니라.
* 창 24: 58 - 리브가를 불러 그에게 이르되, 네가 이 사람과 함께 가려느냐? 그가 대답하되, 가겠나이다.
* 창 29: 18 – 야곱이 라헬을 더 사랑하므로 대답하되, 내가 외삼촌의 작은 딸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에게 칠 년을 섬기리이다.
남편은 아내를 경제적으로 부양하고 그를 소홀히 대하지 않을 의무를 진다.
* 출 21: 10 - 만일 상전이 다른 여자에게 장가 들지라도 그 여자의 음식과 의복과 동침하는 것은 끊지 말 것이요
그렇지만 남편은 - 거의 아무 이유나 대고서 - 마음대로 아내를 다시 내보낼 수 있고(이혼), 동시에 여러 여자와 결혼할 수도 있다.
* 창 4: 19 - 라멕이 두 아내를 맞이하였으니 하나의 이름은 아다요 하나의 이름은 씰라였더라.
* 신 21: 15 - 어떤 사람이 두 아내를 두었는데 하나는 사랑을 받고 하나는 미움을 받다가 그 사랑을 받는 자와 미움을 받는 자가 둘 다 아들을 낳았다 하자. 그 미움을 받는 자의 아들이 장자이면
더 나아가서 남편이 다른 여자들과 관계를 맺더라도 - 그 여인들이 혼인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남자들의 '소유 관계'를 침해한 것이 되지 않는 한(출 22: 16-17. 신 22: 28-29 참조) - 이를 간음으로 여기지 않았다.
그와는 달리 혼인한 여자의 경우에는 낯선 남자와 어떤 식으로든 성적인 접촉을 하면 이로써 간음의 구성 요건이 이루어졌다고 보았다. 이러한 외적인 조건과 법적인 가능성이 있었지만 지배 계층의 극단적인 예외를 제외하면(삼하 3: 2-5. 5: 13. 왕상 11: 1-8. 렘 38: 22에서 말하는 임금의 여인들) 혼인은 이미 포로기 이전에 한두 여인과 하는 것이 보통이었던 것으로 보인다(한 여인 – 창 12: 5. 사 8: 3. 호 1: 2-3. 3: 1. 두 여인 – 창 4: 19. 29: 15-30. 출 21: 10. 신 21: 15-17. 삼상 1: 2. 잠 2: 16-22. 5: 15-19. 12: 4. 18: 22. 19: 14. 31. 10-31같은 본문에서는 실제적으로 일부일처의 관계를 암시한다.)
예언자들이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혼인의 비유로 묘사하는 것도(아래를 보라) 일부일처제를 정상적이고 이상적인 것으로 전제한다. 토비 8: 5-7에서는 창 2: 18, 24를 일부일처제를 장려한다는 뜻으로 이해했다.
이리하여 바벨론 포로기 이후에는 일부일처제가 실제로 거의 정상적인 경우로 되었고, 대제사장에게는 이를 의무적으로 지키게 했다. 이미 예수님 시대 이전에 쿰란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던 무리들은 - 예언자들이 때때로 매섭게 공격했던(말 2: 14-16) - 이혼을 거부했다.
예수께서는 혼인에 관한 하나님의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뜻을 창 1: 27. 2: 24에서 찾으셨다. 이런 본문에 따르면 혼인은 일부일처제이고 해체할 수 없다는 점이 예수께는 두말할 나위가 없었다. 하나님의 이러한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뜻을 다시 주장하고 유효하게 하는 것이 예수께서 이제 막 동튼 하나님 나라에 대해 선포하는 내용에 포함된다.
* 막 10: 2-12 – 2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묻되, 사람이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3 대답하여 이르시되, 모세가 어떻게 너희에게 명하였느냐? 4 이르되, 모세는 이혼 증서를 써주어 버리기를 허락하였나이다. 5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마음이 완악함으로 말미암아 이 명령을 기록하였거니와 6 창조 때로부터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으니 7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8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9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더라. 10 집에서 제자들이 다시 이 일을 물으니 11 이르시되, 누구든지 그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에 장가 드는 자는 본처에게 간음을 행함이요, 12 또 아내가 남편을 버리고 다른 데로 시집 가면 간음을 행함이니라.
예수께서 여성을 실제로 진지하게 대하셨으므로 혼인에서 남자가 차지해 온 지배적인 지위가 대등한 당사자로 서로 협력하는 자리로 바뀌어야 하는 것은 마땅하다.
* 갈 3: 28 –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 고전 7: 3-5 – 3 남편은 그 아내에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 4 아내는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그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 5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이는 너희가 절제 못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 고전 11: 11-12 – 11 그러나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니라. 12 이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같이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났음이라. 그리고 모든 것은 하나님에게서 났느니라.
* 골 3: 18-19 – 18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 19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
* 벧전 3: 7 -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과 하나님 백성의 관계를 묘사하기 위해서 예언자들은 거듭거듭 혼인 관계를 비유로 이끌어 썼다(호 1-3장. 렘 2: 2. 3: 1-10. 9: 2. 겔 16: 7-14. 사 50: 1. 54: 5-8. 62: 4-5). 창 2: 24를 신약 성경에서는 마지막 때 하나님과 하나님 백성의 관계,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에서 비로소 실제로 완전하게 이루어질 그런 상황을 예언적으로 암시하는 말씀으로 이해한다(엡 5: 31-32. 막 2: 19. 요 3: 29. 고후 11: 2. 마 22: 2-3. 25: 1. 계 19: 7-9. 21: 2, 9 참조).
모든 그리스도인의 혼인은 이 완성된 표준적인 관계를 본받음으로써 거기에 참여하는데, 그 능력의 터전 위에서, 곧 그리스도의 사랑 및 그리스도께서 일깨우신 사랑의 능력으로써 참다운 혼인 생활을 이루어야 한다.
* 엡 5: 25-33 – 25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26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27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28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과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29 누구든지 언제나 자기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에게 함과 같이 하나니 30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라. 31 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32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33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 같이 하고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
(1) 결혼은 하나님이 세우신 제도
* 창 2: 23-24 – 23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2) 예수님의 결혼관
* 마 19: 4-6 – 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고 5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6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
(3) 아들의 결혼
페쉬타 역본(the Syriac Peshitta)과 탈굼 역본(the Targums)은 본 절에 덧붙여 '그들이 이방인 아내를 취한 것은 하나님의 율법을 어긴 것이다'라는 내용을 삽입시켰다. 그리고 몇몇 학자들은 이 번역에 동의하여 그들의 결혼을 정죄했다(Matthew Henry. Thomas Fuller).
그러나 혹자는 모세 율법은 가나안 여인과의 결혼만을 금지했지, 모압 여인과의 결혼까지 금지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굳이 결혼 자체를 정죄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Keil, Hervey).
* 신 7: 3 - 또 그들과 혼인하지도 말지니 네 딸을 그들의 아들에게 주지 말 것이요 그들의 딸도 네 며느리로 삼지 말 것은
그러나 모압 족속에 대한 신명기의 규례를 자세히 살펴볼 때 그들의 결혼을 정당화시킬 수는 없다.
* 신 23: 3-6 – 3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그들에게 속한 자는 십 대뿐 아니라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4 그들은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떡과 물로 너희를 길에서 영접하지 아니하고, 메소보다미아의 브돌 사람 브올의 아들 발람에게 뇌물을 주어 너희를 저주하게 하려 하였으나 5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사랑하시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발람의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저주를 변하여 복이 되게 하셨나니 6 네 평생에 그들의 평안함과 형통함을 영원히 구하지 말지니라.
율법에서 가나안 여인과의 결혼을 금지시키신 것은 그곳의 우상 숭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화란의 신학자 고스링가(Goslinga)의 말대로, 이들의 결혼이 율법을 문자적으로 범한 것은 아니지만 율법의 정신을 범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 왕상 11: 1-2 - 1 솔로몬 왕이 바로의 딸 외에 이방의 많은 여인을 사랑하였으니 곧 모압과 암몬과 에돔과 시돈과 헷 여인이라. 2 여호와께서 일찍이 이 여러 백성에 대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그들과 서로 통혼하지 말며, 그들도 너희와 서로 통혼하게 하지 말라. 그들이 반드시 너희의 마음을 돌려 그들의 신들을 따르게 하리라. 하셨으나 솔로몬이 그들을 사랑하였더라.
이런 점에서 모압 여인과의 결혼은 우상 숭배의 위험성이 내재해 있으므로, 그들은 율법의 정신을 범한 것이다.
(4) 바람직한 결혼
* 창 24: 1-67 - 이삭과 리브가의 결혼
(5) 잘못된 결혼
* 삿 14: 1-20 - 삼손과 딤나 여인
* 삿 16: 4-31 - 삼손과 들릴라
(6) 배우자
① 오르바 : '돌아가는 자', '암사슴'
② 룻 : '친구', '우정', '붉은 꽃'(장미)
룻 1: 4. 아내를 맞이하였는데 ( 하 ) - 룻 1: 5. 두 아들의 죽음
2] 그들이 거기에 거주한 지 십 년쯤에
십 년쯤이란 연수를 깨달으면 이 세상의 생명의 수를 뜻한다. 첫 아담은 세상 시작에서 죽었고 마지막 아담은 세상 끝에서 죽었다. 이 두 죽음은 '거기 거주한지 십 년쯤'이란 세상의 생의 날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수의 뜻이 '나 다니엘이 서책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고하신 그 년 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무함이 칠십 년 만에 마치리라 하신 것이니라' 함과 같은 것이다.
룻 1: 5. 두 아들의 죽음 - 말론과 기룐 두 사람이 다 죽고, 그 여인은 두 아들과 남편의 뒤에 남았더라. ( 말론과 기룐 두 사람이 다 죽고, 그 여인은 두 아들과 남편의 뒤에 남았더라. )
1] 말론과 기룐 두 사람이 다 죽고
(1) 아들의 죽음
엘리멜렉에 이어 그의 두 아들까지 일찍 죽은 것은 죄 때문이라고 보기도 한다(G. Gerleman).
① 언약의 땅 가나안을 떠난 죄
② 이방 여인들과 결혼한 죄
물론 반드시 그렇다고 볼 수만은 없다. 향후 전개되는 구속사적 위치상 나오미 가정이 점하는 비중을 놓고 볼 때 결코 우연의 일만은 아닌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이는 이방의 신실한 여인 룻(Ruth)을 '여호와의 날개 아래'(2: 12)로 불러들이기 위한 하나님의 적극적인 섭리의 결과로 봄이 타당하다.
(2) 다 죽음
두 아들이 다 죽은 것은 나오미에게는 실낱같은 희망도 전혀 없는 절망 상태를 나타내고 있다. 누가 먼저 죽었는지, 어떻게 죽었는지 자세한 기록이 없다.
겔레만(Gillis Gerleman)은 탈굼 역(Targum)에 의하여 말하기를, 엘리멜렉의 두 아들이 일찍 죽은 것은 이방 여자들과 결혼한 죄 때문이었다고 한다.(Die Tage der beiden Sohne wurden nach Tag. verkurzt als eine Strafe wegen ihrer Ehen mit den auslandischen Frauen. - Biblischer Kommentar Altes Testament, Ruth, Das Hohelied, 1965, s.15). 그러나 성경에 그들의 죽은 원인이 명시되지 않았으므로 우리가 단언하기는 어렵다. 모든 사람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그의 깊으신 행사를 사람이 다 알 수 없다.
하나님을 떠나면
오늘 본문은 하나님을 떠난 엘리멜렉의 가정을 통하여 성도들에게 두 가지 교훈을 주셨다.
(1) 하나님 안에서의 삶
엘리멜렉이 베들레헴에서 살았을 때는 다복한 가정을 이루어 주셨다.
한 부인과 두 자녀, 그리고 경제적인 부를 주셔서 고향의 유명인이 되었다. 그러나 말씀의 기근으로 그는 하나님의 집을 떠나 우상을 섬기는 배교의 길을 걷게 되었다. 육신의 배고픔은 헤어났을지라도 죽게 되었고 더구나 두 아들까지 잃게 되었다.
아무리 많은 부를 축적하여도 생명을 잃으면 아무런 가치가 없다. 생명의 가치를 물질로 평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생의 가치를 평가할 때에는 무엇이 참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을 떠나서 살 수 없음을 말씀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밖에는 진정한 생명의 평안이 없다. 그리스도 밖에서는 세상의 어디를 가도 진정한 평안이 없다.
하나님은 성도를 간섭하신다. 때때로 고통스럽게 하시는데 그것은 당신을 자녀로 삼으셨기 때문이다. 당신의 자녀가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매를 들고 간섭하여 벌을 주듯이 괴롭펴야 참 사람이 될 것이다.
하던 일이 잘 안됩니까? 일마다 꼬입니까? 괴로운 일이 자꾸 생깁니까? 나오미처럼 하나님처럼 믿었던 사람이 떠났습니까? 애지중지하던 자식이 떠났습니까? 이럴 때일수록 하나님은 당신의 곁에 있다. 하나님의 돌아오라는 신호다.
위치를 확인해 보고 오히려 어려울 때일수록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십시오. 키질의 원리를 살펴보면 키질을 할수록 점점 안으로 다가서는 것은 알곡이다. 껍질과 겨는 점점 밖으로 밀려 나갑니다. 환난과 시험은 참된 성도를 가려내는 하나님의 방법이다. 하나님을 떠나서 모든 것을 잃은 사람, 알고 보니 그것이 축복이었다.
(2) 사람의 생각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엘리멜렉은 고난 앞에서 자신의 생각과 의지대로 실천하였다. 그러나 그는 모든 것이 실패로 끝나 버렸다. 자기의 지식과 재물과 재능이라면 어떠한 역경도 이겨낼 것으로 믿고 살았다.
그러나 자신의 실패로 마무리되지 않고 두 자녀의 실패로 마무리되었다. 이것이 하나님을 떠난 사람 엘리멜렉의 말로다. 신약의 아버지를 떠난 탕자의 말로와 같다. 그가 쥐엄 열매를 먹고 굶주릴 때에야 아버지의 집을 생각하였다.
잠언 16: 9은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고 증거하고, 19: 21에서는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만이 완전히 서리라.고 증언한다.
나에게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면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옆드려 간구하기 바란다.
2] 그 여인은 두 아들과 남편의 뒤에 남았더라.
'뒤에 남았더라.'에 해당하는 동사 '솨아르'는 '부지하다', '연명하다' 등의 뜻이다.
남편과 두 아들을 잃고 홀로 뒤에 쳐져 남아있는 나오미의 모질고 비참한 모습을 풀러(Thomas Fuller)는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여자는 남자보다 연약한 존재이다. 여자 중에서도 노년기의 여자는 더욱 약하다. 그중에서도 과부는 더 불쌍하며, 거기에 가난한 과부는 더더욱 측은하다. 나아가 가난한 노년기의 과부 중에서도 자식이 없는 사람은 더욱 처량하며, 그것도 먼 타국에서 객이 된 자식 없는 가난한 노년기의 과부는 실로 가련하며 불쌍하다. 진정 욥이 남자 중 가장 많은 고난을 겪었다면, 나오미는 여자 중 가장 처량한 지경에 빠진 여자이다"(Pulpit Commentary).
나오미는 낯선 이국땅에서 일찍이 남편을 여의고, 애써 키운 두 아들마저 잃고 말았지만, 그녀는 좌절하거나 하나님을 원망하지는 않은 듯하다. 즉 나오미는 언약의 땅을 쉽게 떠나온 것을 깊이 뉘우치고, 오직 위로자요 구원자 되시는 여호와만을 더욱 의지하고자 한 듯하다(6절). 이러한 나오미의 신앙이 마침내는 기쁨의 결실을 보게 되는 원동력이 되었다(4: 14-17)
(1) 과부
결혼 후 남편의 죽음으로 홀로 사는 여자. 첫 사람만 사모하여 다시 출가하지 않고 사후의 세계를 바라보고 지조를 지키는 여자를 말한다.
① 하나님은 과부의 재판장이시다.
* 시 68: 5 - 그의 거룩한 처소에 계신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시라.
* 말 3: 5 - 내가 심판하러 너희에게 임할 것이라. 점치는 자에게와 간음하는 자에게와 거짓 맹세하는 자에게와 품꾼의 삯에 대하여 억울하게 하며. 과부와 고아를 압제하며. 나그네를 억울하게 하며. 나를 경외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속히 증언하리라.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 눅 18: 1-8 – 과부와 재판장 비유 – 1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2 이르시되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장이 있는데 3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4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5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6 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7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② 과부를 돕도록 하셨다.
* 출 22: 22 - 너는 과부나 고아를 해롭게 하지 말라.
* 신 10: 18 -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정의를 행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여 그에게 떡과 옷을 주시나니
* 신 14: 29 -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 인과 네 성중에 거류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이 와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 신 24: 20-21 – 20 네가 네 감람나무를 떤 후에 그 가지를 다시 살피지 말고 그 남은 것은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며 21 네가 네 포도원의 포도를 딴 후에 그 남은 것을 다시 따지 말고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라.
* 딤전 5: 3, 5 - 3 참 과부인 과부를 존대하라. 5 참 과부로서 외로운 자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 주야로 항상 간구와 기도를 하거니와
(2) 늙은 과부 : 나오미 - 유대인
* 눅 2: 36-38 - 36 또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 하는 선지자가 있어 나이가 매우 많았더라. 그가 결혼한 후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37 과부가 되고 팔십사 세가 되었더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38 마침 이 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그에 대하여 말하니라.
(3) 젊은 과부 : 오르바와 룻 - 이방인
* 딤전 5: 11 - 젊은 과부는 올리지 말지니(거절하라.) 이는 정욕으로 그리스도를 배반할 때에 시집가고자 함이니
① 자만하거나 자부하지 말라.
* 사 47: 8-9 - 8 그러므로 사치하고 평안히 지내며 마음에 이르기를 나뿐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도다. 나는 과부로 지내지도 아니하며 자녀를 잃어버리는 일도 모르리라 하는 자여 너는 이제 들을지어다. 9 한 날에 홀연히 자녀를 잃으며 과부가 되는 이 두 일이 네게 임할 것이라. 네가 무수한 사술과 많은 주문을 빌릴지라도 이 일이 온전히 네게 임하리라.
② 과부 때의 치욕을 기억하지 않으신다.
* 사 54: 4-8 – 4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 놀라지 말라. 네가 부끄러움을 보지 아니하리라. 네가 네 젊었을 때의 수치를 잊겠고 과부 때의 치욕을 다시 기억함이 없으리니 5 이는 너를 지으신 이가 네 남편이시라.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이시며,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시라. 그는 온 땅의 하나님이라. 일컬음을 받으실 것이라. 6 여호와께서 너를 부르시되, 마치 버림을 받아 마음에 근심하는 아내. 곧 어릴 때에 아내가 되었다가 버림을 받은 자에게 함과 같이 하실 것임이라. 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느니라. 7 내가 잠시 너를 버렸으나 큰 긍휼로 너를 모을 것이요. 8 내가 넘치는 진노로 내 얼굴을 네게서 잠시 가렸으나, 영원한 자비로 너를 긍휼히 여기리라. 네 구속자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두 과부
저자는 본문을 통하여 두 과부에 대하여 은혜를 나누고져 한다.
(1) 나오미
베들레헴에서 귀한 신분으로 유복한 삶을 살았던 이스라엘로 본다. 그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은 것은 이들을 통하여 온 세상의 이방인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고자 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의 소임을 무시하고 직분을 버리고 육신의 안락함을 찾아 나셨다. 젊음의 시절을 헛되이 보내고 생산 불능의 무능한 여생을 보내버린 자가 되었다.
나오미를 통하여 구약 교회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2) 오르바와 룻
모암여자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함 받지 못한 자들로 태어났으나 자기 땅에 찾아온 유대인 가정에 결혼하게 되어 짧은 신혼생활을 통하여 참 하나님을 체험하게 된 이방인이였다.
자녀를 생산하지 못하고 과부가 된 것으로 보아 신혼생활이 행복하지는 못했던 것으로 본다. 그러나 하나님을 알게 되었으나 오르바는 처음 며느리로 중도에 포기한 반면 룻은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하여 예수 가문의 족보에 오르는 참 신앙인의 어머니가 되었다.
두 모압 여자를 통하여 오르바 같은 로마 가톨릭과 룻 같은 개혁교회를 연상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