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화 <부부> 6. 비빔밥
정년퇴직하고 집에서 삼시세끼 밥을 먹으니 아내에게는 부담을 주는 것이라고 하지만 내 생각은 아내도 삼시세끼 밥을 먹어야하니 밥만 한 그릇 더 퍼서 주면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늘 있었습니다. 또 설거지는 내가 한다고 자청을 한 상태이니 밥 차려주는 것이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지요. 1972년 3월 결혼했고 2005년 2월에 퇴직했으니 만 33년 동안은 그래도 세끼 밥을 차려준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데 퇴직을 하고 집에 있으니 나갈 일이 거의 없더군요. 나의 고교친구 모임도 10여년, 아내 국민학교 동창 부부모임도 7년 동안 나갔지만 두 모임 다 만날 때마다 술을 곁들이니 나로서는 나가기 싫어졌습니다. 특히 내 친구모임에서는 나 이외의 친구가 모두 교인이었어요. 한 친구가 교회가 좋으니 종교를 가지라는 권유를 하지만 나로서는 받아들일 수가 없어 그날로 모임을 안 나가기로 한 것입니다. 나는 무신론자입니다. 누군가를 믿고 의지한다는 것이 마음에 안 듭니다. 옛 성인들의 이야기가 좋으니 언제나 마음속에 새기면서 따라하는 것은 좋습니다. 하지만 전적으로 자기의 생명과 영혼, 죽은 후까지 의지한다는 것은 나와 다릅니다. 또 세상 모든 사물을 만들었다는 창조론과 천당과 지옥이 있고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난다는 부활은 믿을 수가 없습니다.
부부가 같이 장보러 많이 다녔습니다. 주로 차를 가지고 마트에 가서 사왔어요. 장보고 오면 그래도 다음날은 아내가 반찬을 이것저것 만듭니다. 야채로 나물을 만들면 그 그릇에 밥을 넣고 비빔밥을 만드는 것입니다. 국물이 적으면 김치 국물을 넣고 들기름을 조금 더 넣은 후 내가 비비지요. 언제부터인가 나물과 김치 등을 가위로 잘게 자릅니다. 자르는 것은 반찬이 골고루 섞이어 짠 반찬도 골고루 퍼지도록 하는 것이고 잘게 자른 만큼 덜 씹어도 술술 넘어가고 소화도 쉽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는 열심히 섞어서 골고루 비빈 후 숟갈로 밥을 싹싹 문지르고 둘로 나누어 그릇에 담아 아내에게 주고 나는 비빈 그릇 채 놓고 먹습니다. 비빔밥에 무슨 국물이든지 간에 하나 만들어 곁들입니다. 그러면 아내는 마지막으로 계란을 후라이판에 부쳐 얹어줍니다.
고기반찬을 매일 먹기 어렵다면 소고기나 돼지고기 장조림을 해서 먹고 거기에 더해 계란 한 판을 삶아 까서 간장에 싱겁게 조릴 수도 있습니다. 또 더 간편식이 있으니 몇 개씩 포장된 막대형 소시지를 두 개씩 꺼내 프라이팬에 살짝 구울 수도 있고, 아니면 여러 개를 한꺼번에 찌거나 조릴 수도 있습니다. 간이 되어있고 후추 같은 향신료가 들어있어 맛이 괜찮지요. 하나 더 이야기하면 통조림입니다. 우선 참치 통조림도 여러 종류가 있지요. 깡통을 따고 물을 어느 정도 빼 버린 후 비빔밥에 넣고 비벼도 맛이 깔끔해 집니다. 같은 생선이라고 생물을 사다가 어떻게 먹든지 비린내를 피할 수 없는데 통조림은 정말 비린내 걱정 없습니다. 통조림하면 또 꽁치통조림이 있지요. 묵은지에 꽁치를 넣고 살짝 끓이기만 해도 김치 국물에 생선이 녹아 생선뼈 채 먹어도 전혀 부담이 없지요. 생선가시 걱정 정말 없습니다. 또는 통조림 참치 살에 양파를 아주 잘게 썰어 두 가지만 섞어도 좋은 반찬이 됩니다. 우리가 간혹 먹는 김밥에도 참치 통조림을 조금씩 넣어주는 것은 다른 김밥보다 조금 더 비싸다는 것 다 아시죠.
내가 퇴직 후 얼마 안 지나서 아내가 구청에서 하는 요리강습에 등록하고 두 달인가 석 달 다니더니 한 번에 한식 조리사 자격증을 받아왔습니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요리도 순서가 있는데 몇 가지 요령만 잘 배워도 맛이 확 달라지는 기분이 들었지요. 자격증 가진 아내가 해주는 반찬은 무엇이 달라도 다릅니다.
50년 같이 살아도 생각 습관 좋아하는 일이 같은 것 보다는 아직도 다른 것이 더 많습니다. 다만 감정을 앞세울 만큼 큰 문제가 아니면 그냥 넘어가는 것이 마음 편하니까요. 그만큼 마음도 몸도 무디어졌다고나 할까요.
하여간 그래도 비빔밥은 오래오래 마주앉아 같이 먹는 음식으로 계속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