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선덕여왕 6년(637) 자장율사가 왕명에 의해 해발고도 810m의 칠보산 기슭에 창건한 사찰이라고 하나 확실치 않고 다만 조선 중기까지는 절이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여러 차례 중건되었으나 화재 등으로 소실되고, 현 건물은 중수시 천장에서 나온 보자기 내용에 의해 조선 인조 5년(1627)에 중창되었다고 한다.
유금사가 자리한 지역은 삼국시대부터 금이 많이 생산되어 신라시대에서는 국가에서 금을 채광하였던 곳으로 예로부터 금과 관련된 전설이 많이 전해내려 온다. 신라의 국보 금척(金尺) 역시 이곳에서 발견하여 신라 왕에게 진상하였다는 말은 그 가운데 하나이다. 그리고 유금사가 자리한 칠보산은 이곳에 일곱 가지 보물이 감추어져 있다고 하여 그렇게 부른다. 혹은 선덕왕의 일곱 공주가 이곳에 와 모두 출가하여 수도하다가 선화(仙化)하여 신선(神仙)이 되었으므로 칠보산이라 불렀다고도 전한다.
유금사에 현존하는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5칸 크기의 맞배집으로 지어진 대웅전을 비롯하여 정면과 측면 1칸으로 된 산신각과 요사가 들어서 있고 최근에 중창한 건물도 있다. 또한 경내에는 보물 제674호로 지정된 삼층석탑이 있다. 이 탑은 원래 대웅전 앞에 있었는데 법당이 무너져 뒤뜰로 옮긴 것이다. 이전할 때 탑 속에서 금동불이 나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겼다
유금사 안내석
유금사 법당가는 길
유금사 요사
유금사 누각
유금사 대웅전
유금사 대웅전내
유금사 전경
유금사 삼층석탑
유금사 삼층석탑
보물 제674호
유금사 법당 뒷마당에 서 있는 석탑으로,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아래·위층 기단은 네 귀퉁이와 각 면의 중앙에 기둥 모양을 새기고, 각 기단의 윗면에는 2단의 괴임을 두어 윗돌을 받치도록 하였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을 각각 하나의 돌로 만들었다. 층마다 네 모서리에 기둥 모양이 새겨져있을 뿐 다른 꾸밈은 없다. 지붕돌은 밑면에 4단의 받침을 두고 있으며, 네 귀퉁이에서 느리게 들려 있다. 꼭대기에는 둥근 돌을 차례로 얹어 놓았는데, 훗날 보충해 놓은 것이어서 탑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다. 각 층의 크기가 줄어드는 정도가 적당하며, 적당히 큰 기단부에 의해 안정감이 느껴진다. 각 기단의 면 가운데에 기둥이 하나씩 새겨져 있는 것과 지붕돌 밑면의 받침이 4단인 것 등으로 보아 통일신라 후기에 세워진 탑으로 짐작된다.
유금사 대웅전
유금사 삼성각
유금사 삼성각내
유금사 석불좌상
유금사 향로전
유금사 향로전내
유금사 요사
유금사와 칠보산
유금사 누각
유금사 소원비는 돌
유금사에서 바라다본 바다
유금사 찾아가는 길
7번 국도로 가다가‘칠보산자연휴양림’표지판을 보고 좌회전하여 금곡교를 지나 오른쪽 금곡리로 난 마을길을 따라 50m 가면 길 오른쪽 앞에 금곡리 대승약국 금곡지정소 옆으로 난 마을길을 따라 20m 가면 금곡초등학교 앞에서 두 갈래로 길이 나뉜다. 왼쪽으로 난 마을길을 따라 산등성이로 올라 5.6km 가면 금곡 3리인 유금마을이 나오고 유금마을을 지나 200m 더 가면 유금사에 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