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권의 책을 읽다
제20회 작품상
서미숙
중양절이다. 음력 구월 구일, 국화 꽃잎으로 화전을 부쳐 먹거나 경치 좋은 곳으로 놀러 가는 날이다. 오랜 설렘을 안고 예천으로 달려간다. 천년 고찰 용문사에서 윤장대輪藏臺를 체험하기 위해서다. 보물의 훼손을 막기 위해 음양이 교차하는 삼월 삼짇날과 함께 일 년에 단 이틀만 허락된 날이 아니던가. 마음을 가다듬고 일주문을 지난다. 대웅전에 문안드리고 서둘러 윤장대를 모신 대장전으로 향한다.
열린 문 사이로 윤장대가 모습을 드러낸다. 팔각의 거대한 팽이가 다포로 장식한 팔각지붕을 이고 있는 듯하다. 부처님 나라가 이러할까. 한 쌍의 윤장대는 마치 다보탑과 석가탑을 대하는 듯하다. 왼쪽은 팔각형의 면마다 살구, 모란, 연꽃 등 꽃살 창호를 정교하게 새겨 화려하다. 오른쪽은 격자무늬 창호로 간결하다. 창호 위에는 양쪽 모두 돌아가며 탱화를 그렸다. 하단은 역삼각형이다. 모서리마다 초각 장식을 하고 앞면에는 용 문양이, 한쪽 모서리엔 긴 나무 손잡이가 붙어있다. 아래위의 몸체를 연결하는 부위엔 목리문이 드러난 구름 문양을 조각하고 팔방으로 난간을 섬세하게 둘렀다.
윤장대는 사찰에서 경전을 보관하던 책장이다. 바퀴가 달린 궤를 돌리며 읽고 싶은 경전을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했다. 용문사 윤장대는 그 자체로서 신앙의 대상이다. 완전한 모습으로 전해지는 것은 이것뿐이라 더욱 귀한 대접을 받는다. 지극한 불심으로 이루어진 정교한 솜씨에 절로 두 손을 모은다.
윤장대엔 외양만큼이나 아름다운 이야기가 전해진다. 글을 모르는 사람도 윤장대 안에 경전을 넣고 돌리면 만 권을 읽은 것과 같아 번뇌가 소멸되고 공덕을 쌓을 수 있다고 한다. 윤장대 안에는 이미 경전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과학적 근거는 없어도 마음에 위안을 주는 위약효과 덕분에 많은 사람이 찾아오는 모양이다. 배우지 못한 가엾은 사람들을 위해 윤장대를 설치한 지엄 대사의 자비심이 두고두고 빛을 발한다.
파란색 등산복 재킷으로 통일한 젊은 부부가 나란히 윤장대를 돌린다. 합심하여 윤장대를 돌리는 그들의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빌어본다. 이어서 풍성한 잿빛 바지에 꽃무늬 셔츠를 입은 할머니가 합장 후, 윤장대를 따라 돈다. 할머니는 연신 무언가 중얼거리신다. 그동안 못 배운 한을 풀러 오셨을까. 평생 까막눈으로 살아온 억울함과 답답한 속내를 시원히 풀고 계신 것일까. 할머니를 따라 내 마음도 같이 돈다.
다음은 내 차례다. 디딜방아 고처럼 뭉툭하게 튀어나온 손잡이를 잡아본다. 지나온 세월만큼 골이 깊게 패였으나 촉감은 매끄럽다. 천년 가까운 세월 동안 얼마나 많은 중생의 손길이 닿았을까. 서러운 신세를 보상받고자 윤장대를 잡고 돌았을 이 땅의 까막눈이들, 생각만 해도 먹먹하다. 나 또한 간절한 마음을 담아 세 바퀴를 돈다. 머루 같은 눈망울을 지닌 젊은 여인을 위해서다. 그녀를 대신하여 돌리고 또 돌린다.
그녀는 시골집 이웃에 사는 베트남 새댁이다. 스물둘 꽃다운 나이에 마흔 여섯 신랑과 혼인하여 다문화가족이 되었다. 베트남에서 중학교를 졸업했다. 친정의 가족들과 인터넷으로 소식을 나누는 신세대다. 어느 날 국적 취득을 위한 서류작성을 도와달라며 나를 찾아왔다. 남편과 시어머니 모두 한국인이지만 한글을 잘 모른다. 가족 모두가 까막눈인 셈이다. 자식 교육이며 이곳 생활을 어떻게 적응해 나갈지 걱정이다. 서류작성을 끝내고 새댁과 아이에게 가져간 그림책 몇 권을 읽어주었다. 틈날 때마다 읽어보라고 당부하지만, 농사와 집안일 하느라 책 볼 시간이 없다고 한다. 안타까운 마음을 윤장대에 꽂아두고 나오다가 대장전 보위에 올라앉은 용과 눈이 마주쳤다.
용문사는 여러 차례 화재를 입었다. 새로 불사를 하면서 곳곳에 물을 뿜는 용을 배치했다. 대웅전 지붕 위에도 한 쌍의 용이 고개를 내민다. 신기하게도 대장전만은 한 번도 화를 입지 않아서 윤장대가 잘 보존되었다. 대장전의 용을 향해 또 두 손을 모았다.
옛사람은 ‘독만권서讀萬卷書’와 ‘행만리로行萬里路’를 권했다. 만권의 책을 읽고 만 리 길을 걸으며 생각하라는 뜻이다. 문자로 된 것만이 책이 아니라 세상천지 만물이 다 책이요, 스승과 벗이 모두 책이라 했다. 활자로 된 책만 읽지 말고 살아 숨 쉬는 책을 읽으란 가르침이리라. 하지만 팔만대장경도 모르면 빨래판이라 했거늘, 글을 배우지 못한 사람에게 글 읽는 소리는 한낱 소음에 불과할 것이다. 글을 읽는다는 것은 신천지가 열리는 것이다. 윤장대에 기대지 않고 누구나 읽기가 가능한 세상이 진정한 유토피아일 것이다.
해질녘 절집은 고요를 되찾았다. 언덕 위에 노랑과 연보라 소국이 눈길을 끈다. 먼 곳에서 찾아온 단체 답사객도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풍경소리가 적막을 가른다. 높은 굴뚝에서 흩어지는 연기가 구수하다. 장삼 위에 가사를 갖춘 젊은 스님이 저녁 종을 친다. 서른세 번의 장엄한 종소리가 나를 일으켜 세운다.
만권의 책을 단숨에 읽어서일까. 어둠살이 내리는 데도 허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내년 삼짇날이 벌써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