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머문 자리 딜쿠샤
문육자
행촌동 언덕 위에 자리한 '딜쿠샤(Tillusha)'는 페르시아어로 '기쁜마음이라는 뜻으로 한국을 사랑했던 AP 통신원 앨버트 W. 테일러와 메리L 테일러 부부가 살던 붉은 벽돌집의 이름이다. 100년의 역사를 안고 있으니 얽힌 이야기야 오죽할까 싶다. 아버지 사업을 도와주려 한국에 왔던 테일러와 아내는 한양도성 성곽을 걷다가 은행나무마을에 끌려 여기에 터를 잡아 집을 짓고 인도 궁전 이름인 딜쿠샤를 그대로 붙였단다. 딜쿠샤의 아름다움만큼 선한 주인의 행위도 세계에 알려졌다. 아들이 태어난 세브란스 병원에서 독립선언서를 우연히 발견하게 되자 이 사실을 몰래 해외에 알렸고 뉴욕타임스는 “한국의 독립선언서는 정의와 인도주의 이름으로 2천만 민족의 목소리를 대표한다."라는 내용으로 곧바로 보도했다. 외국인의 용기로 3.1 운동의 전모를 세계에 알렸다는 사실은 국제 여론을 자극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러나 1941년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고 일본의 외국인 추방령으로 1942년 테일러 부부는 25년 살아온 한국을 떠날 수밖에 없었고 방치된 딜쿠샤는 집 없는 사람들을 위한 다세대 주택이 되었으나 옛 모습은 잃어버리고 말았다. 국가의 흥망성쇠만큼 우여곡절을 겪은 딜쿠샤. 이젠 국가 소유. 아들 브루스는 어릴 적 뛰어놀던 집에 대한 그리움을 지울 수 없어 한국의 지인에게 의뢰하여 딜쿠샤를 찾아내었다. 하여, 브루스는 딜쿠샤를 방문하게 되었고 딜쿠샤는 옛날의 모습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앨버트의 아들 브루스는 귀향하여 서양식 건축기법으로 잘 복원된 딜쿠사가 한국인들에게 소개됨을 따뜻하게 바라보았다. 딜쿠샤를 방문한 그는 집이 자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던 자신에게 인사했다. 집은 꿈이며 희망이라는 그의 생각은 이루어졌고 그는 자주 오리라는 맘을 남겨 둔 채 떠나갔다. 딜쿠샤는 브루스에겐 그리움이었고 집이 없는 사람들에겐 보금자리였다. 힘을 받은 딜쿠샤는 이젠 꿈의 궁전이 되어 이 언덕배기를 지킬 것이다.
엷어진 겨울 햇살의 정동 거리는 스산했다. 국립 정동극장은 아름다운 딜쿠샤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상상과 사유를 심어 한 편의 창작 뮤지컬 <딜쿠샤>로 무대에 올렸고 역경을 겪으면서도 집을 지켜낸 사람들의 이야기로 무대를 채웠다. 미국 바닷가 마을에 새 둥지를 틀었던 주인공 브루스는 갈 곳이 없어 딜쿠샤의 터줏대감이 된 금자와 편지 교환으로 딜쿠샤에 머물렀던 사람들의 켜켜이 쌓이고 얽힌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거기엔 3.1운동부터 한국 전쟁, 한국의 근현대사까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100여 년의 역사가 묻어 있었다. 집의 의미는 다양했다. 집이 없는 사람들에겐 집이란 추억이며 바람막이고 안식처라고 노래하기도, 어머니 같은 존재이며 영원히 나를 기다려주는 한 줌 햇살 같은 희망이라고 정의하기도 했다. 브루스는 노래했다. 태어나 빛을 보았고 이야기가 묻힌 그리운 딜쿠샤에게로
돌아가야 한다고 뮤지컬 '딜쿠샤'는 관객 모두에게 갖가지 집의 의미를 안겨 주고는 암전되었다.
내게 집은 어떤 의미로 존재하고 있는가 유년의 기억을 소환하면 집이란 계단을 오르내리며 놀던 놀이터였다. 계단을 타고 내려오는 햇살에 미끄럼을 타다 크게 다쳤던 일도 그리움이 되는 것을 훗날 알았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놀이터였던 집을 채권자에게 내어주고 외삼촌 댁으로 갔을 때 이 아늑하고 작은 목욕탕 같다고 생각했다. 외삼촌 내에서의 첫날을 편안하게 잠들었던 초등학교 3학년 꼬마의 눈에 비친 '집'이었다.
집 이란 어떤 의미로 내 곁에 있는가를 더듬는다. 돌아보니 내 삶이 머물했던 자리다. 맘 놓고 나를 내려놓는 장소이기도 하다. 원고지를 패대기치기도 하고 자판을 북 치듯 두들기기라도 하면 집은 숨을 죽인다. 패악이라도 부릴라치면 집은 영락없이 몸살 앓게 한다. 집이 내게 주는 형벌이다, 길지 않았다. 잠자리에 누이고 고이 잠들게 한다. 눈물이 골을 타고 내린다. 그보다 더한 위로가 있을까. 무망(無望)에 놓이거나 절망에 빠졌을 때 일어서라고 기운 불어넣어 주는 곳이다. 보아도 그리운 얼굴, 눈감아도 그려지는 얼굴을 수월하게 만날 수 있는 곳이다. 내가 또 하나의 나를 만나 죽비를 들기도 쓰다듬기도 한다. 모락모락 어느 시골의 저녁연기 같은 이야기가 피어나면 꿈이라고 하는 보이지 않는 안개가 벽이 되어 간격을 좁히며 내게로 온다. 너울너울 춤추며 온다. 꿈은 희망이다. 희망이 피어날수 있는 곳이 바로 집이다. 영혼까지도 담을 수 있는 무한히 큰 그릇이다.
뮤지컬의 울림이 딜쿠샤가 서 있는 가파른 언덕으로 나를 안내했다. 종로구 행촌동, 백 년의 시간을 품고 서 있는 딜쿠샤 앞에 서니 이름할 수 없는 뜨거움이 목을 넘어왔다. 바로 곁은 임진왜란에 행주대첩을 거둔 도원수 권율 장군의 집터로 수령 420년의 은행나무가 역사의 동행인 양 늠름히 서 있었다. 집의 역사는 인생의 역사였으며 그 생로병사였다.
새들도 귀소하는 저물녘, 사람마다 가슴에 등불 하나씩 켜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인데 병원에서 이승과 저승을 헤매는 내 짝은 집으로 오는 길을 영영 잊어버린 걸까. 그를 위해 내가 딜쿠샤가 되는 꿈을 안고 천천히 언덕을 내려왔다.
첫댓글 월간 한국수필, 2024년 3월
'딜쿠샤(Tillusha)'는 페르시아어로 '기쁜마음이라는 뜻... 집 이란 어떤 의미로 내 곁에 있는가를 더듬는다. 돌아보니 내 삶이 머물했던 자리다. 맘 놓고 나를 내려놓는 장소이기도 하다... 모락모락 어느 시골의 저녁연기 같은 이야기가 피어나면 꿈이라고 하는 보이지 않는 안개가 벽이 되어 간격을 좁히며 내게로 온다. 너울너울 춤추며 온다. 꿈은 희망이다. 희망이 피어날수 있는 곳이 바로 집이다. 영혼까지도 담을 수 있는 무한히 큰 그릇이다...새들도 귀소하는 저물녘, 사람마다 가슴에 등불 하나씩 켜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인데 병원에서 이승과 저승을 헤매는 내 짝은 집으로 오는 길을 영영 잊어버린 걸까. 그를 위해 내가 딜쿠샤가 되는 꿈을 안고 천천히 언덕을 내려왔다.
- 본문 부분 발췌-
페르시아어로 기쁜 마음이란 뜻의 딜쿠샤. 삶이 머문 붉은 벽돌집.... 어린 시절 연분홍 장미 넝쿨이 있던 붉은 벽돌집 생각이 났습니다. 성소와 같은 공간. 세상의 모든 집이 세상의 모든 이들에게 '딜쿠샤'였으면 ..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