푯대를 향하여!
빌립보서 3-4장 찬송: 359장 천성을 향해 가는 성도들아
들어가며
흔히 바울의 편지들은 앞부분에서는
주요한 교리를 전하고 뒷부분에서는 구체적인 신앙생활 권면을 한다고 합니다.
빌립보서 3-4장도 성도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구체적으로 가르칩니다.
성도는 세상의 자랑거리를 버리고 하나님이 주신 상을 푯대로 삼고 달려가야 합니다.
성도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습니다. 성도의 시민권은 하늘에 속했습니다.
또한 교회는 다른 마음을 품지 않고 한 마음을 이루어야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주 안에서 자족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바울이 전한 권면을 살펴봅시다.
성경 속으로
1. 바울은 자신의 과거를 어떻게 여깁니까?
바울은 신자의 삶을 무엇에 비유합니까? (빌 3:1-16)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어지럽게 하는 유대주의 문제를 언급합니다.
유대인은 자기 민족과 언약의 표인 할례를 자랑합니다.
하나님은 특정 인종만을 사랑하고 그 외의 사람을 미워하는 분이 아닙니다.
유대인이 그런 착각에 빠진 것은 큰 오해입니다.
교회 내에서 자기를 자랑하며 교만한 것은 믿음 생활에 치명적입니다.
빌립보 교회에도 그런 자들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경고합니다.
그들은 “개들”이라며 강하게 도전합니다. 또 복음을 거부하는 자를 “행악하는 자”라고 판단합니다.
“몸을 상해하는 일”은 할례를 자랑하는 것으로 보입니다(2절).
이어지는 빌립보 교회를 향한 바울의 권면을 들어보십시오.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3절) 할례를 자랑하는 유대인을 염두에 두고 변론합니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라’에서 ‘봉사’(Service)는 예배(Service)와 같습니다.
의식주의를 벗어나 성령님이 함께하시는 예배가 더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자기 혈통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교만한 자들을 향해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라’고 권합니다.
육체를 자랑하는 유대인을 부끄럽게 하려고 바울은 자신의 과거를 가지고 변론합니다.
바울 자신은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고, 율법에 능한 전문가 바리새인이며,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을 정도로 충성된 자임을 밝힙니다(5절).
하지만, 바울은 그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긴다고 말합니다.
그런 것은 자랑할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로 만족하는 자는 그런 것에 미련을 두지 않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 가장 소중하고 만족스럽기 때문입니다(7-8절).
오직 그리스도와 그분의 은혜만이 바울의 가치를 결정할 뿐입니다.
신자가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으로 되지 않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인정받습니다(9절).
신자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부활한 데서 삶의 의미를 찾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신자의 구원은 믿음으로 걸어가고 달려가는 과정으로 이해합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12-13절)
하나님이 하늘에서 명령하신 뜻을 향하여 매일 달려가야 합니다.
이 달리기 경기는 다른 형제 신자와의 경쟁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기와의 싸움에 더 가깝습니다.
주저앉고 나태하고자 하는 악한 마음을 이기고 하나님이 뜻하신 바를 잡고자 애를 쓰며 달려가야 합니다.
2. 바울이 빌립보 교회를 향해 눈물로써 권면하는 내용은 무엇입니까?
빌립보 교회가 잊지 말고 붙잡아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빌 3:17-4:1)
바울이 눈물로써 빌립보 교회를 향해 권면합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 보라.”(17절)
적지 않은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부끄럽게 합니다.
세상의 삶이 더 매력 있어 보여 따라가기 때문입니다(17-18절).
유대인이 추구하는 것은 우선 좋아 보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할 뿐입니다(19절).
하늘 시민으로 살아가기를 거부하는 자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발을 디디고 살지만,
이곳은 영원한 거주지가 아닙니다. 잠시 나그네로 살다 갈 임시 처소일 뿐입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게 하늘나라 시민으로 살아갈 것을 권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 우편에서 지금도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일하시며 기도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20-21절).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온 우주의 통치자로서 교회의 머리가 되십니다.
신자가 이 세상에서 낮은 자로 살아가지만,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실 것입니다(21절).
그렇기에 빌립보 교회 성도가 잊지 말고 기억하며 붙잡아야 할 것은 이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주 안에 서라.”(4:1).
바울의 간절한 권고입니다.
자기의 의를 의지하는 교만한 유대주의자의 가르침에 서 있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의 교훈 안에 굳세게 서야 합니다.
나에게 예수님보다 더 자랑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까?
어떻게 하면 그것을 배설물처럼 여기고 예수님만 자랑할 수 있을까요?
3. 빌립보 교회 여인들 가운데 일어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라고 권면합니까?
그 외에 바울은 어떤 권면들을 전했습니까? (빌 4:1-9)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2절)
바울은 구체적으로 빌립보 교회 성도의 이름을 거명하면서 권면하고 교훈합니다.
이들은 여성입니다.
바울은 이들과 가까운 사이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같은 마음을 품으라”라고 명령하는 것을 보면, 이들은 다른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로 인해 적지 않은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그들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교회에서 비중 있는 자들이 문제를 일으키니 바울이 그들을 나무랍니다.
교회에서 봉사하고 섬길 때 서로 의견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럴 때 문제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저 여인들”(3절)은 서로 의견이 충돌하여 실의에 빠졌을 수 있습니다.
교회 성도들이 그들의 눈치를 보느라 하나 되지 못했을 수 있습니다.
바울은 “저 여인들”, 곧 유오디아와 순두게를 도와주라고 명령합니다.
또 다른 동역자들의 이름이 언급됩니다.
글레멘드(Clement)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동역자들인데,
그들에게도 교회의 지지와 도움이 필요합니다. 영적 도움도 필요하고 재정적 도움도 필요합니다.
그들 모두 하나님 나라의 일꾼이고 시민이기 때문입니다.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3절. 참고. 출 32:33, 시 69:28)라는 표현이 바로 증거입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4절)
바울은 다시 빌립보 교회를 향해 기뻐하라고 권면합니다.
신자가 누리는 기쁨과 즐거움은 세상 것과 다릅니다. “주 안에서 …
기뻐하라”라고 하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면 그 모든 고민과 고난과 고통을 넘어 기뻐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주 밖에서’는 기뻐하지 말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세상 것을 탐닉하고 즐기는 것은 금지됩니다.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5절)
사람이 자기 고집을 꺾고 타인의 의견이나 입장을 인정하며 넓은 마음을 품는 태도를 가지기란 쉽지 않습니다. 계속 손해를 보거나 받아 주어야 한다는 걱정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께서 곧 임하신다면 어떨까요? 관용하지 못할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혹 걱정할 것이 있다면 기도하면 됩니다.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지켜 주실 것입니다(6-7절).
신자의 바람직한 태도는 무엇에든지 참되고,
경건하며, 옳으며, 정결하며,
사랑 받을 만하며, 칭찬 받을 만해야 합니다(8절).
이런 것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이미 바울로부터 배우고 받고 듣고 본 것입니다(9절).
4. 바울이 어려운 처지에서도 배운 것은 무엇입니까?
바울과 빌립보 교회가 보여 준 아름다운 동역의 모습은 무엇입니까? (빌 4:10-23)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11-13절)
바울은 배고픔과 궁핍, 그리고 비천한 처지에서도 자족하는 비결을 깨달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능력으로 가능한 방법입니다.
그분이 능력을 주시면 불가능해 보이는 것도 가능합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가 ‘바울의 괴로움에 동참한 것’(14절)과
‘주고 받는 일에 참여한 것’(15절)을 귀하게 여기고 칭찬합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 빌립보 교회가 두 번이나 도움을 준 것도 언급합니다.
이것은 빌립보 교회가 바울로부터 받은 은혜의 열매입니다(17절).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가 보여준 풍족한 “향기로운 제물”(18절)
때문에 하나님께서 교회의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줄 것을 바랍니다(19절).
아름다운 동역의 모습입니다.
나는 내가 처한 상황과 환경에 만족합니까? 만족하지 못한다면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한 주간의 실천/ 감사 제목 5가지를 매일 정리하기.
마무리하며
세상에서는 문벌과 학벌과 재력은 자랑거리이고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신자도 그런 세상의 부귀영화에 마음이 솔깃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 시민은 그런 것을 탐닉하지 않습니다.
주 안에서 자족할 수 있습니다.
다른 데 눈을 돌리지 말고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야 합니다.
찬송: 359장 천성을 향해 가는 성도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