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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03. 20(월요일) 雙溪菴 無慾道場 本尊 毗盧遮那佛 坐像 造成緣起 奉安文
우러 불법승 삼보에 엎드려 찬탄 귀의하옵니다. 기쁘고 기쁘도다. 우리의 스승 석가세존의 자비 광명이 비추지 않았으면 어찌 이곳 쌍계난야에서 부처님을 뵈올 수가 있었으리요. 한라산 남록 하원동 법정악 雙溪菴 창건주 正曉 和尙은 貧僧의 사제로서 해인사에서 10년 동안 동고동락한 도반이기도 하다. 和尙이 海印寺에서 내려와 잠시 公職에 20여년 머물다가 토굴을 짓더니, 병신년 겨울에 나를 찾아와서는 木佛을 모시게 되었다면서 그동안 경과를 설명하고 나서는 조성 연기 봉안문을 지어달라 하기에, 외람되이 몇 자를 더한다. 1956 丙申年 江汀洞에서 태어난 正曉 尹奉澤 和尙은, 1970년 7월 30일 합천 해인사 용탑선원에 주석하고 계시는 조계종 宗正 해인총림 方丈 佛祖 76조이신 祥彦 尹古庵 대종사의 문하로 출가하여, 이듬해 3월 15일 老師의 제자인 禪曉性學 화상을 은사로 受戒 得度하고, 老師로부터 正曉라는 법호를 받았다. 1974년 10월 해인사 승가대학을 졸업하고, 1975년 3월 8일에는 古庵祥彦 대율사를 전계화상으로 대중과 같이 보살계와 구족계를 전해 받았다. 1980년 8월 14일부터 在家에 머물면서도 음주와 살생 망어를 하지 않고 간시궐 화두를 놓지 않았으며, 어린이·학생·청년·시민 포교와 전법을 하면서, 서귀포시 관내 문화재 소장 사찰과 전통사찰의 불사를 주도 하였다. 그러면서 和尙은 불국토를 이뤄나가기 위해 서원을 세웠는바, 전국에 사찰은 많으나 모두가 출가불자들을 위한 수행 공간일 뿐, 재가불자들을 위한 수행 공간이 없음을 애닯게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제주에서 생산된 나무로 부처님을 조성하여 모시고, 금당 또한 제주다운 집으로 짓고자 했다. 여기에 명상원을 더하여 스님들을 위한 수행 공간이 아니라,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을 따라 37조도품에 의지하여 止觀 수행하려는 참된 재가불자들과 불교를 믿지 아니하여도 善을 행하는 시민들을 위한 전용 명상 공간을 마련하고자 하였다. 그리하면서 어려운 사람들에게 佛心을 심어 주되, 燈을 팔거나 齋 또는 佛供 비용을 받지 아니하는 無慾의 도량으로 가꿔나가겠다는 서원을 세우면서, 도내 구석을 찾아다니며 佛地村을 물색하던 중에 1995년 지금의 터전 하원동 1857번지를 찾았다. 그동안 사재로 토지를 매입하고, 2009년 12월 1일에는 大韓佛敎圓覺會를 창립하였다. 2012년 7월 15일에는 토굴 三笑窟을 雙溪菴이라 정하고, 2013년 3월 27일에는 老師로부터 전해 받아 사형 학균스님에게 보관하고 있던 제주도지정 유형문화재 제31호 쌍계암묘법연화경을 옮겨 왔다. 2014년 2월 28일에는 쌍계암 터전을 닦으려 토신제와 국사대신께 고유제를 올렸다. 和尙은 2014년 10월 16일 명인 조각장 유영민 선생을 만나, 서귀포시 신효동 723번지에 있던 두 아름드리 넘는 녹나무(樟木)를 2013년도에 벌목한 사실을 확인하였다. 본래 이 나무는 신효동 723번지에 거주하였던, 1939년 출생 金吉永 居士가 여섯 살이 되던 1944년 초봄에, 집터 한켠에서 15cm 정도 어린 묘목 한그루를 발견하고, 올래 입구에 퇴비를 보관하는 구석진 곳에다가 정성스럽게 심어 놓았는데, 이게 바로 녹나무였다. 당시 김길영은 조부 김태조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으면서 동거하였는데, 조부 또한 어린 손자가 심은 이 나무를 잘 보살폈기에, 나무는 손자와 같이 성장을 함께 하였다. 1970년 새마을 운동이 시작되어 도로가 확장되면서, 울타리 내부에 있던 나무는 도로 경계선이 되었으나, 나무는 계속 보존되었다. 나무가 울창하게 자라 둘레가 320cm 정도 되자, 서귀포시청에서는 마을 보호대상 나무로 지정하였으나, 나무가 너무 커서 주변 집들을 가리게 되자, 토지주 사촌동생 김길량이는 서귀포시청의 허가를 받아 2013년에 나무를 벌목하게 되니, 당시 나무 수령은 70년이 되었고, 작업은 유명민 거사가 하게 되었다. 정효 和尙이 2016년 현재 78세가 되신 金吉永 거사를 만나 나무를 심고 키우게 된 동기를 전해 듣고, 이 나무가 불상으로 조성되기 까지 과정을 살펴보니, 석가세존의 인연이 아니고서야 어찌 이러한 희유한 일이 나타날 수가 있었으리요. 和尙은 2014년 10월 16일 유명민에게 벌목된 녹나무를 밑동에서부터 150cm를 매입하였고, 2015년 7월 6일에는 국가지정무형문화재 제108호 목조각장 기능보유자로 지정된 인간문화재 목아 박찬수 선생과 인연이 되어, 불상을 일목조 방식으로 조성하기로 하고, 和尙이 수행정진하였던 해인사 팔만대장경각 법보전에 모셔진 법신 비로자나좌불좌상을 근본으로 하되, 2016년대 한국인의 체형에 맞게 조성이 시작되어, 2016년 11월 17일 목조비로자나좌불상이 완성되었다. 불상에는 금을 입히지 않고 황칠로 하였다. 작업은 경기도 성남시 분당 수내동에 거주하는 백사 구영국 선생께서 맡았으며, 좌대 또한 녹나무로 제작되었다. 불상 규격은 높이 85cm. 너비 67cm이다. 제주도에 불법이 전래된 지 오래되었지만, 지금까지 제주도내에서 생산된 나무나 다른 재료를 가지고 불상을 조성 봉안한 사례는 일찍이 없었다. 더욱이 녹나무를 가지고 불상 조성은 국내 최초이며, 木佛에 황칠을 입히는 것 또한 국내 최초이다. 왜냐하면 그만큼 황칠을 구하기가 어렵고 가격 또한 순금보다 더 비싸기 때문이다. 和尙이 이곳에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을 모시고자 하는 이유는, 우리가 사는 이 사바세계가 바로 중생들의 염원하는 화엄세계이기 때문이다. 2016년 7월 여름에는 화가 兒石 양기훈 거사가 암자로 찾아와 잠시 쉬게 되면서, 쌍계암에 이곳을 찾는 시민들이 三笑가 될 수 있는 탑 세우기를 함께 서원하였고, 이에 대하여 양 거사는 불법 가운데 숫자로 된 내용을 가지고 탑을 세우는 게 좋겠다는 제안을 하자, 이에和尙은 삼보에서부터 백판번뇌에 이르기 까지 숫자로 이뤄진 내용을 모아 양거사와 같이破煩塔 설계를 완성하였다. 그리고 이를 만다라로 도형을 제작하여 명칭을 ‘破煩만다라’라 하고, 이를 후불 탱으로 사용하였고, 포교 설법으로 사용될 수 있도록 편집하였다. 이는 대승불교에서 최초로 만다라를 제작한 것이기도 하다. 佛舍利는 2015년 4월 8일 태국 사완 왓 서완먼에 계시는 와수끼 순다나고 스님이 산방산 보문사로 모셔온 것을, 보문사 대표 제미숙 보살이, 일부 쌍계암으로 이운 봉안하여 주신 사리에서 8과와 大邱人 一雲 朴成圭 거사께서 모셔온 사리 31과 중에서 7과를 더하여, 모두 15과를 모신다. 후령통은 대구 보현암 선진 비구니스님께서 준비하셨다. 사리함은 제주도지정무형문화재 14호 제주도허벅장 전수교육조교 許銀淑 보살이 제작하였다. 복장에는 불사리와 함께 부처님께 올리는 보이차를 함께 넣는다. 이는 부처님께서 영원히 차 공양을 드시게 하는 것이며, 더불어 나중에 쌍계암이 참으로 어려울 때, 이 보이차를 필요한 만큼만 판매하여 쌍계암 중창 불사에 보탬이 되게하고자 함이다. 따라서 후학들은 화상의 창건 정신을 받들어 물욕에 빠지지 말고, 과욕하지 않으며, 자중자애하기를 진실로 바란다. 또한 쌍계암이 재가 불자 중심으로만 전승되어 지기를 바라는和尙의 원력 또한 끝까지 지켜지기를 간곡히 바라노라. 본존 불상 점안은 和尙의 사형이신 상효동 선돌 선덕사 주지 鶴栴學均 宗師께서 거행하여 주었다. 그리고 이 불상 조성에는 많은 인연들이 부처님 마음으로 함께 하여 주었다. 특히和尙과 同鄕人 강창용 문숙희 부부가 앞장서서, 1982년 강정보리수불교학생회원 출신 불자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 주었다. 이러한 동참 대원력을 세워주신 불자들이 없었다면, 어찌 부처님을 모실 수가 있었으리오. 거룩하신 삼보 전에 귀의 앙원하오니, 불사에 동참하신 모든 法友들이 삼재가 소멸되고 무병장수 극락왕생 하며, 모든 소원이 이뤄지면서, 함께 성불하여지기를 삼보 전에 축원하면서 삼가 분향 삼배 올립니다. 마하반야바라밀, 나무청정법신비로자나불, 나무원만보신노사나불, 나무천백억화신석가모니불. 佛紀 二五六十年 서기 2016 丙申年 12월 1일 전라남도 강진군 만덕산 백련사 前 住持 如然 柳鳳 撰 대한민국서예대전 서예부문초대작가 中石 姜京勳 奉書
證明秩 摩訶迦葉. 天台行乎. 懶庵普雨. 喚惺志安. 古庵祥彦 大宗師 覺靈 恩法師 禪曉性學 大宗師 大宗師因緣秩 日毫普光. 中天東昇. 金牙慧國. 秀峰性雄. 海印寺僧伽大十五會道伴秩 法雨. 東勳. 玄覺. 東明. 不動. 景浩. 眞月. 華公. 淨相. 曇空. 法連. 道現. 和庵. 宗浩. 性悟. 宗林. 宗師因緣秩 學均. 頂宇. 圓印. 玄照. 玄應. 觀曉. 道宗. 性黙. 性圓. 道玄. 明德因緣秩 一鏡. 大和. 慧德因緣秩 明玄. 蓮雨. 性同 設辦齋者 강창용. 문숙희. 윤경필. 황경애. 朴成圭. 강문석. 김미심. 양기훈. 조근호. 최영범. 최영민. 제미숙. 許銀淑. 施主齋者 이병철. 이경애. 반병문. 李詳順. 강경훈. 강기훈. 강상규. 강상욱. 강복실. 이명직. 양봉순. 昔山 姜昌和. 菩提樹佛者 고경봉. 고권일. 이진우. 김홍자. 윤만혁. 윤미정. 고명숙. 강용혁. 홍은표. 佛緣齋者 조선희. 윤지용. 고효신. 윤성찬. 윤세찬. 윤승찬. 윤정용. 김은주. 윤용보. 윤옥선. 방춘규. 윤용택. 김순희. 윤경용. 윤수경. 윤용옥. 이순희. 윤현경. 오기옥. 조택배. 황영란. 강도용. 이기택. 김춘덕. 최진숙. 김다석. 최윤희. 高文弘. 金福實. 김관일. 김효라. 고성옥. 김문수현. 因緣齋者 이화순. 윤성돈. 고영숙. 윤희찬. 윤영찬. 김명실. 윤성민. 정아름. 윤익찬. 윤기찬. 윤서영. 윤현아. 윤현선. 방현정. 방현지. 방현주. 방현우. 조나리. 조아라. 조애리. 조혜정. 조인규. 조정순. 윤숙자. 윤철숙. 윤성희. 윤상희. 윤수진. 이용국. 오충남. 송현숙. 최선경. 안정업. 양명임. 강승원. 고현심. 한지헌. 임운학. 김철민. 박동석. 윤자명. 김신애. 김영애. 배순용. 김정섭. 한서윤. 황영애. 최미정. 이춘애. 김영옥. 김혜승. 문예진. 이수연. 김미영. 박경선. 박성의. 차동옥. 정철웅. 정성일. 이정엽. 김종호. 김덕용. 김관태. 김의태. 정승관. 황창연. 황 현. 정 훈. 김은주. 오한숙희. 往生極樂發願灵駕秩 戊午法井寺抗日運動同參灵駕. 姜熙穆. 文東弼. 尹宗孝. 尹啓深. 尹永池. 呂乙品. 尹太興. 金月仙. 姜太賢. 吳申生. 尹德仙. 尹太彦. 柳春靑. 尹太磻. 尹龍造. 尹龍俊. 尹玉女. 李春三. 姜景照. 조생석. 조봉천. 조택수. 허 관. 허영화. 허영석. 허영칠. 허영팔. 허경생. 허병생. 김계월. 홍경아. 金光協. 김영삼. 송귀하. 김선배. 정석연. 황장용. 황영주. 灵駕 疾病苦速得快差發願齋者 백암 강재훈. 尹喆鏞. 尹敏纂. 장희나. 김호준. 石相彬. 李承彦.
雙溪菴 不遷龍象榜 東堂 學栴學均 宗師 西堂 維那 悅衆 持殿 爐殿 志安 고경봉 明燈 淸靜心 강만숙 秉法 谷隱 윤한범 弘法 東秀 이병철 立繩 無學 강창용 察衆 性能 윤경필 都監 無二 채우석 別座 性輪 이진우 鼓頭 注性 박성의 護法 道安 안정업 行者 無量心 양청자 知客 修悟 김상돈 影供 無慧 강용혁 壽供 法輪性 김문수현 法供 慈悲行 허은숙 舞供 慈悲心 양명임 音供 木蓮花 박경선 茶角 禪定心 윤미정 園頭 無門 강문석 庫頭 善哉 김경용 看病 智慧心 김성저 負木 性準 윤정용 幹善 性眞 윤지용 道行 淸衆 兒石 양기훈 供養主 正心行 고효신 都化主 法輪行 문숙희 侍者 正曉 尹奉澤 和尙
2017년 양 3월 20일 춘분일. 쌍계암 본존불 점안 순서 1. 불상 이운(여주-성남-제주) 2. 불사리 친견 3. 좌불상 복장 수습 4. 좌불상 안좌(安坐) 5. 104위 신중청 6. 점안 7. 상단 불공 8. 중단 불공 9. 영단시식 서귀포시 신효동 723번지에 있던 두 아름드리 넘는 녹나무(樟木) 구루터기 본래 이 나무는 신효동 723번지에 거주하였던, 1939년 출생 金吉永 居士가 여섯 살이 되던 1944년 초봄에, 집터 한켠에서 15cm 정도 어린 묘목 한그루를 발견하고, 올래 입구에 퇴비를 보관하는 구석진 곳에다가 정성스럽게 심어 놓았는데, 이게 바로 녹나무였다. 당시 김길영은 조부 김태조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으면서 동거하였는데, 조부 또한 어린 손자가 심은 이 나무를 잘 보살폈기에, 나무는 손자와 같이 성장을 함께 하였다. 2013년 벌목, 둘레 320cm 매우 커다란 녹나무였는데, 수령은 70년(1944~2013) 1944년 녹나무를 직접 심은 金吉永(1939년 출생)옹, 현장을 돌아보고 있다. 밑둥으로 불상 조성하기 위해 150cm로 절단, 2014년 10월 16일 불상 재료 녹나무 구입. 해인사 대적광전 서쪽 대비로전에 모셔져 있는 쌍둥이 비로자나좌불상 가운데 전면 좌측에 모셔진 비로자나불좌상(서기 883년 조성)으로 이 불상에서 형체를 인용하였으나, - 쌍계암 비로자나좌불은 21세기 체형에 맞는 볼륨으로 조성. 특징을 나타내었다. 국가지정 무형문화재 제108호 목아 박찬수 선생에 의하여 2015년 7월 6일 부터 2016년 11월 17일 까지 16개월 동안 조성이 이뤄짐 이 불상은 경기도 여주 목아박물관에서 시작되어, 2016년 11월 17일 조성됨. 조성된 불상을 황칠작업을 위해, 경기도 성남시로 이운함. 황칠은 경기도 성남시에 거주하는 白士 구영국 교수(백제황칠 명인 1호. 황칠기능보유자)께서 2016. 12. 24일 첫 치자 치자칠을 시작으로, 26일, 29일. 2017년 1월 3일. 6일까지 5회에 걸쳐 치자를 입히고 난 다음, 2017년 1월 10일 황칠 첫 작업을 시작으로, 17일. 29일. 2월 8일. 17일. 21일. 25일. 27일. 3월 1일. 4일. 6일. 13일. 16일에 걸쳐 황칠 13회를 입혔다. 황칠 작업 중인 비로자나좌불상, 이 불상은 국내에서는 최초로 녹나무를 소재로 불상이 조성되었으며, 또한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불상에 황칠을 하였다. 이는 황칠이 귀하였기 때문에 왕궁이 아니면, 황칠 사용이나 채취를 금하였기 때문이다. 비로자나불 조성연기 봉안문은, 대한민국 서예대전 초대작가 중석 강경훈(월평동) 선생이 쓰셨다. 조성문은 전통한지로 되었으며, 조성문과 증명법사 동참발원 재자 인명지가 오래도록 보존되기 위동백기름으로 입힌 다음, 음지에서 말리고 나서 봉안하였다. 부처님 조성 봉안문(동백기름 입히기 전) 부처님 봉안에 따른 증명법사는 부처님의 법을 처음 받아 전하신 마하가섭 존자, 조선 세종 때 불법을 펴시다가 유림들에 의해 옥고를 치루시디가 제주도에 유배오시어 조선 최초로 참수 순교하신 천태종장이신 천태행호 선사, 명종 시대에 선교일치로 불교 중흥을 펴시다가 유림에 의해 제주도에 유배되어 장살 순됴하신 나암 보우선사, 영조시대에 불교재건을 위해 애쓰시다가 제주에 유배되어 참수 순교하신 화엄종장 환성지안 선사, 그리고 저를 이끌어 주셨던 조계정 종정을 3대나 지내신 고암상언 대종사 등 다섯 어른을 증명법사로 모셨습니다. 저를 삭발출가 시켜주셨던 은법사 성학선효스님과 해인사 시절, 같은 회상에서 수행하셧던 선배 큰스님들과 도반스님, 그리고 해인사승가대학 15회 도반스님, 저와 인연 있는 분들, 그리고 무오법정사항일운동동참영가 들을 동참 영가로 모셨습니다. 복장에 넣을 산호. 호박 등입니다ㅣ. 부처님 진신사리입니다. 이 사리는 미얀마에서 모셔온 것입니다. 전체 15과를 봉안하는데, 8과는 태국에서 모셔온 사리와 함께 모셨습니다. 유리로 조성된 사리 내함입니다. 백사 구영국 선생의 황칠 작업 일지입니다. 복장에 함께 넣었습니다. 후령통은 대구 보현암 선진 비구니스님께서 적동으로 제작 보시하여 주셨습니ㅏㄷ. 사리 외함은 제주도지정무형문화재 14호 제주도허벅장 전수교육조교 許銀淑 보살이 제주전통옹기 법으로 제작하여 시주하셨습니다. 제주옹기로 사리함 제작은 처음입니다. 제주전통옹기 제작 수법으로 만들어진 국내 최초의 사리함입니다. 복장에 모실 후령통, 사리함 등을 수습하고 있습니다. 사리함에는 2016년도에 생산된 녹차잎 등으로 만들어진 보이차 28편이 각 각 시주자의 소원문을 담아 함께 복장에 봉안되었습니다. 불상복장 봉안법회 증명하고 계시는 선덕사 주지 사형 학균스님. 강진 백련사 회주 사형 여연 스님. 복장물을 다 봉안한 다음, 마지막으로 합문을 닫으려 하는 중입니다. 합문을 봉하고 난 다음에, 마지막으로 '옴'자를 써 넣고, 다시 삼보인과 쌍계암 인이 찍혀있는 봉인문을 붙이고 있습니다. 이로서 복장물은 다 수습된 것입니다. 복장을 다 봉인한 다음, 부처님을 좌정 시키고 있습니다. 1980년대 강정마을 불교 학생회 출신 법우들인데, 벌써 세월이 흘러 함께 가고 있습니다. 법회 증명은 영천동 선덕사 주지이신 사형 학균스님과 강진 백련사 회주이신 사형 여연스님께서 하여 주셨는데, 여연스님은 사진에 함께 하질 못했습니다. 뒤에 있는 후광은 파번만다라입니다. 특허청에 상표 등록되어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