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그문트 프로이트(1856~1939)는 인간의 내면에 있는 광활한 땅-꿈과 무의식의 세계를 개척, 마르크스와 함께 20세기 사상사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마르크시즘이 퇴조하고 프로이트에 이론적 빚을 진 미셸 푸코, 자크 데리다, 자크 라캉 등이 1990년대 새로운 지적 주류로 등장하면서 그의 이론은 문학, 언어학, 대중문화 비평 등에서 인간과 사회를 보는 새로운 인식틀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숱하게 많이 나온 프로이트 관련 서적은 너무 전문적이어서 일반 독자의 접근이 어려웠다. 그런 프로이트를 알기 쉽게 해석한 책들을 살핀다.
먼저 심리학의 대중화를 출발시켰던 최창호 씨의 <나는 얼마나 자유로운가>(동녁/1996)는 벽창호라는 인물이 일상적인 고민을 프로이트에게 털어놓는 형식을 통해 프로이트 심리학의 세계로 들어간다. 구강기 항문기 남근기 잠복기 성기기 에로스(삶의 본능) 타나토스(죽음의 본능) 초자아 자아 이드 등 주요 개념이 상세히 설명돼 있다. 예를 들어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기기’와 같은 상황은 ‘전이轉移’(본능적 욕구나 충동을 위협을 많이 주는 대상에서 덜 주는 대상으로 대치하는 방어기제)로, 자신의 실수로 공을 못 치고도 골프채를 탓하는 사람의 심리는 ‘투사投射’(불안이나 문제의 원인을 다른 대상으로 설명하는 방어기제)의 개념으로 설명한다. 프로이트의 생애와 알프레드 아들러, 카를 융, 에리히 프롬 등 후학들의 성과도 수록했다.
<나는 다만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지 않을 뿐이다>(1993) <어떻게 태어난 인생인데>(1995) 등의 베스트셀러를 낸 정신과전문의 김정일 씨의 <아하, 프로이트>(푸른숲/1996)는 프로이트의 기본개념은 물론 남녀의 성본능 차이, 결혼과 성의 심리학, 무속인 심진송沈震頌에 대한 정신분석, 사주의 심리학적 해석 등 흥미로운 주제를 임상치료 사례를 토대로 풀어썼다. 남편이 외도를 한다고 음식을 마구 먹어대는 여인은 감각이나 활동이 입으로 모아지는 구강기에 성격이 잘못 형성됐다는 식이다. 경험적 분석에 치우치다 보니 프로이트 이론의 본래 개념과 동떨어진 설명도 더러 나온다.
정신과의사 김상준 씨가 쓴 <프로이트와 영화를 본다면>(집현전/1996)은 영화 속 주인공을 심리학과 정신의학의 잣대로 분석한 책이다. 저자는 <피아노> <레인맨> <레옹> 등 21편의 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행위와 성격의 문제성을 찾아낸다. 예컨대 <레옹>의 주인공 킬러가 조숙한 소녀 마틸다에게 사랑을 느끼는 것은 몸만 커버린 소년이 성인이 돼서도 모성의 품을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피아노>를 프로이트의 ‘자아-이드-초자아’ 이론으로 분석하는 저자는 자폐증, 치매, 신경증, 피해망상 등 갖가지 증상을 영화 주인공과 내용에서 추출해 설명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