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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4월 30일 자정이 조금 지난 시각, 용인시 기흥읍 A 사 주차장에 수상한 청년 두 명이 나타났다.
주변 차량들을 유심히 살펴보던 이들은 주차장에 세워져 있던 엘란트라 승용차에서 조심스레 번호판을 떼어냈다.
이때였다.
CCTV를 통해 범행을 목격한 경비업체 직원들이 갑자기 들이닥쳤다.
경비업체 직원들과 20여 분에 이르는 격렬한 격투 끝에 두 사람은 모두 붙잡혔으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검거하는 과정에서 한 청년이 인근 야산으로 도주하고 말았다.
주차장 인근에 세워져 있던 괴청년들이 타고 온 승용차를 살펴보던 경찰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차량 뒷좌석에 젊은 여성들의 사체 5구가 결박된 채 켜켜이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
이 승용차에서는 삽과 괭이, 노끈과 여러 장의 신용카드, 현금과 수표 60여만 원 등 ‘잔악한’ 범행을 예상케 하는 물건들이 쏟아져 나왔다.
5년 전 6명의 무고한 여성들을 잇따라 살해, 우리 사회를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었던 일명 ‘용인 연쇄살인사건’이 세상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용인경찰서 강력 1팀 윤석엽 수사관은 상당한 시일이 지났지만 이 사건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윤 수사관은 “유영철, 정남규 등 연쇄살인마가 등장하면서 웬만한 사건들은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요즘이지만 내가 강력반에 몸담고 있는 동안 이처럼 잔악한 사건을 다시 다루기는 어려울 것 같다”며 말문을 열었다.
윤 수사관의 얘기에서도 알 수 있듯 이 사건은 당시 내로라하는 강력반 형사들조차 고개를 내저을 만큼 ‘잔혹한’ 사건으로 오랫동안 오르내렸다.
당시 상황에 대해 윤 수사관은 이렇게 기억을 떠올렸다.
큰일이 터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승용차에서 발견된 여성들의 사체만으로도 이들이 얼마나 끔찍한 범행을 저지르고 다녔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피의자들의 실체와 범행동기, 범행수법, 피해여성들과의 관계 등 그 무엇도 섣불리 추측할 수 없었다.
특히 이들이 왜 범행의 가장 결정적인 증거인 여러 구의 사체를 차량에 싣고 다녔는지는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았다.
경찰 조사결과 사건 당일 주차장에 나타났던 괴청년들의 신원이 확인됐다.
검거 과정에서 도망친 용의자가 김용수(가명·당시 29세), 당일 검거된 사람은 허기만(가명·당시 25세)이었다.
경찰은 우선 피해여성들의 신원을 확인하는 동시에 달아난 김용수의 행방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도주 직후 어머니와 동생에게 연락을 취했던 김용수는 도피자금 600만 원을 갖고 동생과 함께 잠적한 상태였다.
탐문 끝에 김용수가 포항에서 보증금 30만 원에 월세 13만 원짜리 방을 얻어 장기간의 은신을 준비 중인 사실이 드러났다.
경찰의 포위망은 김용수의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조여왔다.
결국 그는 경찰이 월세 다락방에 들이닥친 5월 1일 오후 4시 15분께 소지하고 있던 흉기로 자신의 목을 찔렀다.
김용수는 즉시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과다출혈로 이날 오후 5시 50분께 사망하고 만다.
그러나 공범 김용수의 자살이 이들의 살인행각을 ‘비밀’로 묻어둘 수는 없었다.
경찰 수사는 검거된 허기만을 상대로 철저히 이뤄졌다.
허기만은 조용한 성격으로 좀처럼 쉽게 입을 열지 않았다.
하지만 경찰이 수집한 증거물들과 차량에 실려 있던 여성들의 사체 앞에서 그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더구나 허기만은 공범인 김용수가 자살한 사실을 모르던 상태였다.
결국 허기만은 “5명의 여성을 살해했다”고 자백하게 된다.
두 사내가 승용차를 택시로 위장해 벌인 며칠간의 엽기적인 살인행각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도대체 이들은 왜 이런 끔찍한 범행을 저지르게 된 것일까.
이들의 ‘잘못된 만남’은 사건이 발생하기 불과 한 달여 전에 시작됐다.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허기만은 2002년 3월 중순 경기도의 한 골프장 클럽하우스 종업원으로 취직했고 그곳에서 5개월 전에 입사해 근무하고 있던 김용수를 만나게 된다.
얌전한 성격의 허기만은 다른 직원들과는 잘 어울리지 못했으나 자신에게 살갑게 대해주는 김용수와는 쉽게 가까워졌다.
서로 가까운 곳에 방을 얻어 자취를 하던 이들은 ‘형 동생’ 하며 개인 사정까지 털어놓는 사이로 발전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허기만의 얼굴에 짙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는 것을 김용수가 보게 된다.
야, 너 얼굴빛이 왜 그래? 뭔 일 있냐?
형, 나 실은… 카드빚 때문에 죽을 지경이야.
갚을 길은 없고 매일같이 걸려오는 독촉전화 때문에 죽겠어.
얼마나 되는데?
한 800 정도 돼.
800? 푸하하! 겨우 800만 원 때문에 죽을상이었냐?
돈 되는 일이 있는데 같이 한번 해볼래?
이것이 두 사람의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시작이었다.
다음은 윤 수사관의 얘기.
같은 직장에 다니고 있었지만 두 사람의 가정환경은 너무도 달랐다.
김용수의 집은 교육자 집안으로 그의 부모는 명문 대학까지 졸업한 인텔리였다.
가정형편으로나 집안배경으로나 김용수는 아무 걱정 없는 유복한 집안의 아들이었다.
반면 허기만은 어릴 적 부모의 이혼을 경험하고 계모 밑에서 성장한 인물로 마음 한구석에 깊은 상처를 안고 있었다.
하지만 부유한 집안의 아들이었던 김용수가 단지 가까이 지내던 ‘동생’의 카드빚 때문에 범행을 제안했다는 것이나 전과 하나 없던 허기만이 그처럼 무서운 범행 제안에 쉽게 응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윤 수사관은 이들이 손잡게 된 이유에 대해 이같이 분석했다.
김용수는 좋은 집안에서 자랐지만 재수할 때 잘못된 길로 빠지고 말았다.
이것을 시작으로 그의 인생은 꼬이기 시작했다.
김용수는 95년 군 복무 당시 특수강도 등의 혐의로 4년간 실형을 산 전력도 있었다.
전과 7범이었던 김용수는 ‘돈과 여자’를 목적으로 범행을 했던 인물이었다.
한마디로 ‘여자를 상대로 범행을 하면 쉽게 돈이 생긴다’는 생각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또 이미 수차례 동종 전과가 있었기 때문에 범행에 대한 부담감도 없었다.
허기만의 경우엔 비록 전과는 없었지만 나날이 늘어나는 빚으로 인해 김용수의 범행 제안을 뿌리칠 만한 이성을 잃은 상태였다.
100만 원도 안되는 월급으로 빚을 갚기에는 불가능하다.
한탕 크게 하면 모든 게 해결될 것이다’라는 생각뿐이었다.
두 사람은 가정환경이나 성장과정, 성격 등에서 아무런 공통점도 없었지만 범죄에 대한 ‘필요충분조건’을 함께 안고 있었던 셈이다.
그들이 이 엄청난 범행에 쉽게 결탁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두 사람은 철처히 범행계획을 세웠다.
이들이 고안한 방법은 바로 ‘유령택시’를 이용한 강도행각이었다.
대충 범행의 얼개가 잡히자 이들은 바로 ‘행동개시’에 들어갔다.
4월 27일 두 사람은 훔친 택시번호판과 캡 등을 김용수의 승용차에 부착하고 수원과 용인 일대를 돌아다녔다.
이날 밤 11시경 수원 삼성전자 입구에서 이들의 승용차를 택시로 오인하고 올라탄 사람은 피아노 강사 A 씨(29).
이들은 A 씨를 신갈읍 오산천주차장으로 끌고가 마구 폭행한 뒤 현금 2만 원과 신용카드를 뺏은 다음 노끈으로 목을 졸라 살해하고 만다.
범행은 다음날에도 이어졌다.
28일 오후 9시경 이들은 용인시 기흥읍 영덕리 현대자동차서비스 앞길에서 B 씨(20)를 태워 경부고속도로 하행선 오산나들목 부근 갓길로 끌고가 카드를 빼앗고 역시 같은 방법으로 살해했다.
앞서 피해를 당한 두 여성들은 이들의 차량을 모두 진짜 택시인 줄 착각하고 탔다가 봉변을 당했다.
겉으로 보면 일반 택시와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다.
여성들이 자신들이 개조한 차에 올라타기만 하면 이들의 범행은 ‘성공’이었다.
범행이 생각보다 훨씬 수월하게 이뤄지자 두 사람은 점점 과감해졌다.
B 씨를 살해한 지 불과 몇 시간 후에 또다시 이들의 범행에 발동이 걸렸다.
29일 오전 5시경 수원시 매탄동 앞길에 서 있던 C 씨(22) 등 3명의 여성들을 발견한 이들은 “같이 술이나 하자”며 접근했다.
이어지는 윤 수사관의 설명.
C 씨 등은 아무 의심 없이 승용차에 올랐다.
하지만 고속도로를 타고 여주와 이천 등을 주행하던 이들은 순식간에 ‘악마’로 돌변했다.
여자 3명이라 해도 건장한 청년 2명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김용수 등은 영동고속도로 용인휴게소 인근 갓길에서 C 씨 일행 중 두 명을 성폭행했다.
그리고 ‘뒷일’을 만들지 않으려는 속셈으로 살해를 결심한다.
이들은 C 씨 등을 그 일행이 보는 앞에서 차례로 성폭행한 뒤 노끈을 목에 감아 살해하는 엽기적인 수법을 사용했다.
친구가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끔찍한 모습을 살아남은 여성들은 고스란히 지켜봐야 했다.
나머지 두 명이 제정신일 리 없었다.
여성들은 극한 공포감에 이성을 잃고 미친 듯이 저항했다.
김용수 등은 극렬하게 몸부림치던 두 여성에게 ‘끈으로 결박한 다음 너희들을 풀어주겠다’고 속여 저항을 멈추게 한 뒤 양손과 발을 결박하고 잠시 후 같은 방법으로 차례대로 살해했다.
그리곤 사체들을 마치 마네킹처럼 차량 뒷좌석에 쌓아놓았다.
사흘 동안 이들의 살인행각에 무려 5명의 무고한 여성들이 희생됐다.
하지만 두 사람이 5명을 살해하고 손에 쥔 돈은 240여만 원에 불과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이들 2인조의 추가 범행이 드러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보다 앞서 4월 18일 사라진 미용실 주인 D 씨(32) 실종사건을 수사하고 있던 경찰은 D 씨의 신용카드로 누군가 돈을 인출하는 모습이 담긴 CCTV 화면을 확보하고 용의자를 탐문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미 검거된 허기만과 화면 속 인물의 인상착의가 비슷하다는 점을 밝혀내게 된 것이다.
다음은 윤 수사관의 설명.
D 씨가 실종된 지 이틀 후 남편으로부터 가출인 신고가 접수됐다.
고속도로 휴게소 현금인출기의 CCTV에 한 젊은 남성이 D 씨의 카드로 돈을 인출하는 모습이 잡힌 탓에 우리는 범죄 연관성을 두고 수사를 진행하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화면이 워낙 흐려서 범인의 얼굴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아 수사에 애를 먹고 있었다.
증거는 단 하나, 범인의 인상착의였다.
특히 범인은 특이한 ‘뉴욕양키즈’ 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후에 김용수의 차량에서 당시 착용했던 모자가 발견된 것이다.
또 차량에서 발견된 삽과 괭이에 흙이 묻어 있는 것을 유심히 봐뒀던 수사팀은 이들이 또 다른 여성을 살해한 뒤 사체를 유기했을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있었다.
미용사 실종사건 역시 이들이 저지른 범행으로 판단한 경찰은 허기만을 상대로 추궁했다.
그러나 허기만은 여덟 차례나 조서를 쓸 때까지도 무조건 ‘모르쇠’로 일관했다고 한다.
(범행을) ‘안 했다’가 아니고 무조건 ‘모른다’고 대답하니 미치겠더라.
허기만은 요지부동이었다.
수사팀은 그를 붙들고 ‘너 5명이나 죽였잖냐.
모자까지 발견됐는데 이 와중에 숨길 게 뭐가 있겠나.
진실을 말해달라.
이 참에 아예 다 털고가자’고 계속 설득했다.
수사팀은 허기만을 윽박지르고 몰아붙이는 대신 인간적으로 살살 구슬렸다.
그러기를 수차례, 식사 때가 돼서 밥을 시켜 같이 먹고 있는데 허기만이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는 거다.
아! 얘가 결심을 했구나’ 싶었다.
나는 숨을 죽이고 그의 입을 주시했다.
잠시 후 허기만은 자포자기한 듯 ‘그것도 했습니다’라고 자백하더라. 그래서 ‘사체는 어디 있냐’고 물으니 ‘○○에 묻었습니다’라고 순순히 대답하더라.
우리는 즉시 사체를 찾으러 갔고 허기만이 지목한 기흥읍의 한 야산에서 D 씨의 사체를 발견했다.
얼마나 억울했던지 사망한 지 보름이 지났음에도 바로 전에 사망한 듯 부패도 되지 않은 상태더라.
허기만의 진술에 따르면 D 씨가 살해된 날짜는 실종된 당일인 4월 18일로 D 씨는 이들의 첫 범행대상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D 씨를 승용차에 태워 용인휴게소 주차장으로 데려간 이들은 신용카드를 빼앗고 살해, 암매장했던 것이다.
이로써 이들에게 희생된 여성은 모두 6명으로 밝혀졌다.
허기만은 자신의 범행 당시 심정에 대해 진술하는 과정에서 또 한 번 형사들을 놀라게 만들었다고 한다.
가장 궁금한 것은 왜 사체를 차에 싣고 다녔는지였다.
허기만은 나중에 범행한 지역에서 멀찌감치 벗어난 장소에 사체를 한꺼번에 묻으려고 했다고 진술했다.
시체를 싣고 다니면서 무섭지도 않았냐’는 질문에 허기만은 ‘아무렇지 않았다’고 하더라.
순진한 얼굴에 전과 하나 없던 그가 이처럼 무서운 살인행각을 벌이고 다녔다는 것에 수사팀은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쉽다’는 말처럼 김용수와 허기만은 살인에 급속도로 빠져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처음에는 두려웠는데 일이 너무 커지니까 나중에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
마치 최면에 걸린 듯 죽였다.
나중에는 웃음까지 나오더라’는 그의 고백에 수사팀은 할 말을 잃었다.
특히 허기만은 ‘계속되는 범행으로 경찰에 꼬리가 잡힐 것을 우려해 번호판을 훔쳐서 바꿔 달려 했다’고 진술해 추가범행을 계획하고 있었음을 보여주었다.
무고한 젊은 여성 6명의 목숨을 빼앗은 잔악한 이들 2인조의 운명은 결국 한 명은 자살로, 다른 한 명은 사형선고를 받는 것으로 비극적인 결말을 맺었다.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