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전만 해도 벼나 보리 곡식을 보관하기 위해 창고가 없으면 임시 보관을 위한 뒤주를 만들었다. 당시 곡식 창고를 가진 농가는 아주 드문 시절이다. 나무판자로 뒤주를 만들기도 했지만, 서민들은 비용을 감당키 어려워 엄두를 낼 수 없는 형편이다. 그래서 마당에 짚으로 엮은 가림막으로 뒤주를 만든다. 바닥은 비가 많이 내려도 잠기지 않도록 짚단으로 높이 한 자 두께가 넘도록 바탕을 만들어 받혔다. 짚으로 엮은 뒤주를 원형 기둥 꼴의 형상이 되게 둘레에 밧줄로 여러 겹 묶어 완성한다. 이렇게 만든 원기둥 안에 채우는 곡식은 20석은 좋게 담을 수가 있다. 이런 작업은 혼자서는 어렵다. 시기적으로 수확하느라 바쁜 철에 시간도 부족한 일거리다. 큰 농가는 여러 사람이 함께 만들게 되므로 가능한 일이다.
나는 이런 방법을 개선하기 위한 생각에 집중했다. 벼를 보관하는 계절은 기온이 낮은 겨울철이라 다음 해 봄까지만 보관하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다. 해마다 봄이면 양식이 동나는 가정이 많고 뒤주의 곡식도 여유가 있는 가정도 장리 곡을 주는 일이 바빠진다. 봄에서 여름까지 장리 곡을 빌리면 몇 달 지나지 않아 가을에 50%~100%의 현물 이자가 붙어오는 일이다. 대개 여름까지 가지도 않고 봄이면 부잣집 뒤주도 동이 나기 마련이다. 겨울 동안만 버티면 될 뒤주를 해마다 만드는 일이 너무 버거운 작업이다. 내가 개발한 방법은 철판 함석을 이용했다. 철물점에 가면 철판을 쉽게 구할 수가 있었다. 철판 이음새에 구멍을 뚫고 나사를 꽂아서 조르면 간단하게 원기둥이 만들어진다. 이런 시설은 장기로 사용할 수 있어서 매우 편리하다. 사용이 끝나면 나사를 풀고 두루마리처럼 말아두면 보관하기도 쉽다. 다음 해 다시 설치하기도 쉬워서 아주 간단한 작업이다.
해마다 우리 집에서 생산하는 벼는 1년 농사를 모두 계산해도 20석에 못 미친다. 뒤주 하나면 아주 완벽한 시설의 곡물창고를 대신하는 쇠로 만든 뒤주가 된다. 짚으로 만든 뒤주에 비교하면 10분의 1도 안 되는 작업과 재활용 능력까지 보태면 귀신 같은 효력이 발생한다. 뒤주의 무게도 아주 가벼운 상태고 밧줄로 묶는 일도 생략할 수 있어서 안성맞춤이다. 철판 자체가 강하고 견고하므로 장기적인 시설로 오래 사용할 수 있어서 좋았다. 아직도 이런 시설의 뒤주는 없었고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도 없다. 기발한 생각이 개발한 뒤주가 양곡 저장고 대신 편리한 기능으로 도움을 주었다. 마치 특허감의 내 생각이 농촌의 생활을 바꾼 일이다. 이제까지 곡식 뒤주를 만들지 못했던 사람도 누구나 이런 방법으로 쉽게 만들 수 있어서 퍽 다행이다.
볏짚 뒤주는 나중에 지나 보면 쥐들이 들어가서 많은 곡식에 피해 주기 마련이다. 쥐들이 기어 올라 입으로 덮개 구멍을 뚫고 마음 놓고 먹었기에 말이다. 당시는 이런 쥐의 피해를 막을 방법이 없었다. 쥐약을 놓아도 쥐가 맛 나는 벼를 두고 약을 먹을 리가 없다. 사람이 만든 쥐약은 쥐의 먹이가 없어야 쥐들이 굶주림에 참지 못하고 먹는 것이다. 뒤주를 만들어야 하는 가정이라면 부농이라 쥐의 피해를 하찮게 여긴 일이기도 하다. 사실 쥐가 먹어 허비하는 수량은 많지 않고 훔쳐 가서 따로 보관하기 때문에 많아지는 허비 수량이 된다. 어떤 쥐는 자기가 훔쳐서 감추어 두고 그 자리를 그만 잊어버리고 다시 보관 자리를 만든다. 쥐가 식량을 준비하는 버릇은 타고난 생태 습관이다.
집쥐는 그래도 얌체가 있어서인지 몰라도 뒤주의 옆구리는 절대로 뚫지 않았다. 짚으로 만든 뒤주의 옆구리에 구멍을 뚫는다면 그대로 흘러서 낭패다. 쥐가 어찌 그 일을 예상하는지는 몰라도 절대로 뒤주 옆구리 뚫는 일은 보지 못했다. 사람으로 치면 자충수를 스스로 범하지 않는 일이나 마찬가지다. 쥐가 사람에게 들키지 않는 방법을 쓰기로 표나는 옆구리 뚫기는 망설이는 것 같다. 쥐는 그냥 기어 올라 지붕 쪽만 틈을 만들어 곡식을 훔치는 일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쥐가 먹어 치우는 벼알이 아깝기는 하다. 동네 이웃 쥐들이 모여들면 많은 수량의 벼알이 도둑맞는 일이 된다. 그래서 처음으로 생각한 일이 철판으로 뒤주를 가리려는 생각이었다. 더 발전하여 아예 철판으로 제작하는 생각으로 발전한 계기였다. 철판으로 덧붙여 가리는 방법도 효과는 있지만, 작업도 어렵고 직접 만든 철판 뒤주가 가장 효과적임을 알게 되었다.
처음으로 철판 뒤주를 만들고 곡식을 채우니 멋진 뒤주로 통쾌한 예술 작품 같았다. 뒤주 만드는 작업도 간편하고 비용도 오히려 저렴하게 들어서 창의력의 기쁨을 새삼 느꼈다. 뒤주 지붕 덮개도 가볍게 만들어서 올리면 완성 작품이다. 너저분한 짚 부스러기도 없고 깔끔한 모양은 새로운 환경을 말끔하게 풍기는 일이다. 이제 쥐의 알곡 피해도 없고 완벽한 저장시설을 갖추게 되어 신명 나는 일이기도 했다. 이웃 아저씨들이 어떻게 이런 기발한 생각을 다 하게 되었느냐고 감탄사를 자아내는 모습이다. 쥐에게 뺏기지 않는 곡식으로도 시설비를 절약한다는 칭찬의 이야기 풍년이다. 그러나 쥐의 먹이를 모조리 뺏는 듯한 일이 마음에 걸린다. 쥐도 일정한 먹이는 유지해야 하는 생명체이기 때문에 안쓰럽기도 하다.
이런 즐거움도 잠시로 끝나 버리는 일이 벌어졌다. 어느 날 혹시 지붕 덮개에 비라도 새는가 싶어 점검하다가 놀랐다. 작은 강아지만 한 쥐들이 놀이터를 만들고 있었다. 마당 한가운데 설치하면 다른 일에 방해가 될까 하여 잿간이 있는 쪽에 2m 거리를 두고 가까이 설치했다. 이 쥐들이 어디에서 어떤 경로로 침입했는지 조사하기에 이르렀다. 아무리 생각해도 쥐들이 들어온 경로를 알 수가 없었다. 날개 없는 쥐가 날아올 수는 없는 일이기에 말이다. 며칠을 곰곰이 생각해도 쥐가 들어온 경로는 오리무중이다. 그러던 가운데 밤에 화장실에 앉아 일을 보는데 무엇이 잿간 지붕에서 새처럼 날아 뒤주 지붕으로 날아앉는 현상을 목격했다. 기상천외하게도 쥐가 잿간 지붕에서 뛰어 나른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날개도 없는 동물이 날아야 한다는 생각이 기발하다. 쥐들이 뒤주의 벼알 냄새를 맡은 일은 가능성이 있다 해도 옆 건물 지붕에서 뛰어 건너는 일은 예사 지능이 아니다. 뒤주보다 높은 지붕에 올라 뒤주 위에 뛰어내리는 생각은 차원이 다르다.
쥐가 태산도 무너뜨리는 지진의 예감을 미리 알아내는 기능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도 모른다. 대전동의 역사 전설이 생각난다. 부잣집에서 성가신 쥐를 잡아 없애자는 자식들 의논이 있었다. 자식들 말을 들은 선비가 쥐도 먹을 것을 남겨주는 일이 옳다고 말렸다는 이야기다. 그 후 쥐들이 마당에 괴상한 놀이 잔치를 벌여서 주인 선비는 가족을 모두 불러내어 구경토록 했다. 가족 모두가 나와서 희한한 광경을 구경하며 즐기고 있을 때다. 쥐가 새끼를 업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도 줄 세워 춤추며 갈 곳을 몰라 난동이다. 쥐들의 때아닌 연기에서 처음 보는 구경거리였다. 그때 갑자기 우레 같은 지진이 일어나면서 뒷산이 무너지고 무너진 산의 돌이 굴러 기와집이 몽땅 내려앉았다고 한다. 쥐들이 지진의 낌새를 느끼고 미리 피란 이사하는 광경을 보고 재난을 피해 살아난 이야기다. 쥐가 지진이 강하게 울린다는 예보를 알아차리는 기능은 놀라운 사실이다. 어디서 그런 정밀한 감각 지능이 왔는지 신기하다.
내가 사과원 농기구 방제 차를 몰고 지나가면 땅속의 쥐가 그 진동을 느끼고 100m가 넘는 전방에서 미리 도망가는 현상을 본 적도 있다. 현재도 대전동 마을 뒷산이 반으로 쪼개져서 산이 엎질러진 흔적을 남기고 있다. 지진의 현상으로 무너진 산의 모습이 아련하게 짐작이 간다. 쥐의 마지막 목숨을 위협할 먹이는 남기는 배려가 사람에게도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사람이 느낄 수 없는 땅의 진동을 예측해내는 쥐의 기능은 어디서 오는지 신비하기만 한 느낌이다. 사람이 싫어하는 진드기도 쥐가 모두 맡아서 쥐 몸에 기생시킨다. 사람에게 오기 전에 쥐가 맡아서 괴로움을 사람 대신하는 꼴이다. 그래서 쥐는 약으로 죽이면 죽은 쥐에서 나오는 진드기는 사람에게 옮아오기 쉽다. 쥐에 기생하는 진드기는 쥐를 잡는 가해자에게 달라붙는다는 이치의 깨달음을 먼저 알아차릴 일이다. 진드기도 제가 살기 위해 죽는 쥐의 몸에서 탈출하기 바쁘다. 죽는 쥐의 체온이 낮아지는 감각을 진드기는 알아차리고 가해자에게 옮겨타야 하기에 말이다. ( 글 : 박용 장편소설 202108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