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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0장 끊어짐을 잇게 하고 (2)
공자 경보(慶父)를 연인으로 두면서부터 새로운 세상을 맞이한 애강(哀姜)은 얼굴에 윤기가 돌았다.
'이렇듯 인생이 신나는 것일 줄이야..'
그녀는 이러한 기쁨과 환락을 보다 더 오랫동안 지속하고 싶었다.
'노장공이 일찍 죽는다면..............'
그리하여 경보(慶父)가 노나라 임금자리에 오른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다행히 노장공에게는 적자 소생이 없다. 뿐만 아니라 건강도 좋지 못하다. 그가 만일 죽는다면 손을 쓰기에 따라 경보가 군위를 이어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어떻습니까? 나리께서 아예 이 나라를 차지하시는 것이."
애강(哀姜)은 속삭였다. 이때부터 경보는 친동생인 숙아와 가깝게 지내며 당(黨)의 세력을 키워나가기 시작했다.
노장공(魯莊公)이 죽기를 바라는 애강의 바람을 하늘이 들었음인가. 이듬해 여름, 노장공이 병이 났다.
많지 않는 나이에 병세가 여간 심상치 않았다. 하루가 다르게 악화되더니 급기야는 시의(侍醫)마저 고개를 저었다.
노장공(魯莊公)도 자신이 회복되기 힘들 거라는 것을 직감했다.
'후사가 걱정이로다.'
그에게는 적자 소생이 없다. 여러 아들이 있긴 했으나 모두가 후궁 소생이다. 당연히 맏아들인 공자 반(般)에게 군위를 물려주어야 할 것이겠지만 , 그 이후가 문제이다
군위를 물려줄 유력한 공족들이 너무 많은 것이다. 특히 공자 경보(慶父)와 숙아의 당(黨)이 만만치 않다. 그들은 동복 형제이다. 만일 그들이 합세라도 하면 일약 공실 제일의 당(黨)이 되는 것이다.
'이 일을 정리하지 않으면 반(般)이 위태롭다.'
'죽기 전에 해야 할 나의 마지막 일'이라고 노장공은 결심했다.
며칠 후, 노장공(魯莊公)은 이복동생인 숙아를 불러 떠보았다.
"나의 병세가 심상치 않다. 내가 죽은 후 이 나라를 누구에게 맡기면 좋겠는가?"
질문을 받은 숙아(叔牙)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지금 공실에는 적자 소생이 없다. 공자라면 누구나 군위에 오를 수 있는 자격을 갖고 있는 것이다.
형제를 말함일까. 아들을 말함일까. 아니면 정말로 아직까지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심각히 생각할 필요 없다. 다만, 참고로 들어두려는 것뿐이다."
노장공의 이 한마디에 숙아(叔牙)는 자신의 마음을 정했다.
"꼭 부자 상속이어야 한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사직의 장래를 위해서라면 경륜 있고 덕을 갖춘 사람이 군위를 이어야 한다고 사료됩니다."
"누군가. 경륜과 덕을 갖춘 사람이?"
"경보(慶父) 형님입니다. 그라면 능히 우리 노나라를 편안하게 할 것입니다."
"좋은 말이다. 그대의 의견을 깊이 생각해 볼테니 그만 물러가라."
그 날 밤, 노장공(魯莊公)은 병상에 누운 채 어둠 속에 잠긴 천장을 오래도록 쳐다보았다. 날이 밝자 이번에는 자신의 동복동생이자 막내인 계우(季友)를 불러들여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나의 병세가 심상치 않다. 내가 죽은 후 이 나라를 누구에게 맡기면 좋겠는가?"
계우(季友)는 노장공을 타박하듯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형님께서는 어찌하여 맏아들인 반(般)을 버리려 하십니까? 저는 죽음으로써 반 공자를 받들겠습니다."
계우(季友)의 직선적인 말에 노장공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숙아는 경보 형님을 추천하던데, 그대 생각은 어떤가?"
"안 됩니다. 경보(慶父) 형님은 경박하고 잔인하기만 할뿐 덕이 없습니다. 임금의 재목이 아닙니다. 숙아 형님은 경보형님과 가까운 사이입니다. 그의 말을 들어서는 안 됩니다."
노장공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다가 느닷없이 엉뚱한 말을 던졌다.
"선공(노환공)께서는 그대 이름을 우(友)라 지어주셨다. 그대는 그 의미를 알고 있는가?"
계우는 태어날 때부터 손바닥에 '우(友)'라는 글자 모양의 손금을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이름을 우(友)라 지었다. 이것을 어찌 본인인 계우가 모르겠는가.
그러나 노환공은 단순히 손금 모양 때문에 '우'라는 이름을 지어준 것은 아니었다. 우(友)는 우(右)와 통한다. 군주의 오른편에 서서 보필하는 사람이 되라는 뜻에서 우라는 이름을 내렸다. 이 해석을 계우(季友)는 성장한 후에야 노장공을 통해 들었다.
- 우(友)라는 이름의 의미를 아는가?
이 질문을 받는 순간 계우(季友)는 노장공의 뜻이 어디에 있는가를 알았다.
그는 고개를 숙이며 맹세했다.
"신이 반(般) 공자의 오른편에 서겠습니다."
"내 명이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사세가 급하다."
계우(季友)는 침전을 나오는 즉시 내관을 불러 지시했다.
"숙아 공자에게 가서 주공의 말씀을 전하라."
공자 숙아는 대부 침무(鍼巫)의 집에 가서 기다려라. 곧 과인이 특별한 분부를 내리리라.
내관으로부터 말을 전해들은 숙아(叔牙)는 희색이 만면해서 대부 침무의 집으로 달려갔다. 침무(鍼巫)는 노장공이 아끼는 심복 대부 중의 한 사람이다.
술상 앞에 앉아 들뜬 마음으로 술잔을 기울이는 중에 궁에서 다시 내관이 나왔다. 내관은 술 한 병과 함께 계우(季友)의 편지를 내놓았다. 숙아는 편지부터 펼쳐 읽었다.
주공의 명으로 공자 숙아(叔牙)에게 죽음을 내리노니, 공자는 이 술을 마셔라. 그리하면 그대의 자손은 대대로 위(位)를 지킬 것이나, 만일 복종하지 않으면 그대는 물론 그대 일가까지 도륙을 면치 못하리라.
이 무슨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인가.
그랬다. 내관이 가지고 온 술병은 짐주였다. 짐이란 뱀을 잡아먹는 새인데, 그 새의 깃털이 술에 들어가면 사람을 즉사시키는 맹독으로 변한다. 당시 사람들은 독주로서 이 짐주를 가장 많이 사용하였다.
편지를 다 읽고 난 숙아(叔牙)는 안색이 돌변했다. 재빨리 방에서 도망치려했다. 그러나 이미 대부 침무는 힘센 장정들을 문 밖에 배치해놓은 뒤였다. 그는 계단을 내려가려는 숙아를 붙잡아 머리를 움켜쥐고 짐주를 귓구멍 속으로 들이부었다.
마침내 숙아(叔牙)는 온몸을 뒤틀며 몸부림치다가 아홉 구멍으로 피를 쏟으며 죽었다. 짐새의 독이 어찌나 독한지 그의 몸뚱아리는 삽시간에 검푸른 색으로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