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2) : 사피엔스, ‘보편적 질서’를 수립하다
‘농업혁명’ 이후, 사피엔스는 변화된 환경을 조정하고 수용하기 위해 좀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통제하기 위해 ‘상상 속의 질서’를 수립한다. 잉여의 생산물과 늘어나는 사람들을 하나의 공동체 속에서 통합하기 위해서는 서로가 신뢰할 수 있는 ‘무엇’이 필요했다. 그리고 무엇은 서로의 ‘상호주관성’을 통해서 받아들여져야 했다. 이런 필요에 의해 법, 종교, 신화 등이 만들어졌으며 사람들은 효과적으로 협력하기 위해 이것들을 수용해야 했다. ‘상상의 질서’가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객관적 질서라는 점을 인식시키기 위해서는 ‘상상’을 현실의 물질적 실재로 전환시켰으며, 이것을 통해 우리의 욕망을 통제하였다. 이런 과정 속에서 ‘상상 속의 질서’는 결코 상상의 산물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시켰고 상호주관성의 관계 속에서 진리로 규정된 것이다.
‘상상의 질서’가 효과적으로 사피엔스 사이에 확산될 수 있었던 또 다른 요인은 ‘문자체계’의 발명이었다. 사피엔스가 처리해야 할 정보의 양은 무한대로 늘어났으며 이것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방법이 필요했다. 기원전 3500년에서 3000년 사이에 수메르의 이름모를 천재들은 특정한 기호를 사용하여 인간의 정보를 전달하고 보존하는 방법을 찾는다. 그렇게 시작된 문자체계는 경제적 효용이 높은 숫자나 생각의 깊이까지 담을 수 있는 완전한 문자체계로 까지 발전하기 시작했다. 효율적인 측면에서 이상적이었던 ‘상상의 질서’와 ‘문자체계’는 사피엔스의 삶을 외형적으로 확대시켰지만 평등하고 전체적이었던 삶의 형태를 구분하고 관리하는 관료제적 형태와 그것을 반영하는 ‘차별’의 위계구조로 변화시켰다. 그렇게 발전을 주도하는 세력과 발전의 혜택보다는 더 큰 고통을 짊어져야 하는 대다수의 사람들로 구분되기 시작한 것이다.
기원전 1000년에서 1년 사이에 사피엔스는 또 한번 거대한 변화의 시기를 겪는다. 물질적 변화와 사피엔스 사이의 교류는 각각의 문화적 전통 속에서 살아가던 수많은 공동체 사이에서 근본적인 통합의 필요성을 제기하였고, 결국 화폐, 국가, 종교의 ‘보편적 질서’를 향한 변화를 추동시켰다. 물물교환으로 유지되었던 교역은 ‘화폐’(돈)이라는 새로운 교환도구를 만들어냄으로써 비약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돈은 부의 전환과 저장, 이동을 쉽고 값싸게 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에 복잡한 상거래망과 역동적 시장이 출현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돈의 유통은 ‘신뢰’를 기반으로 했다. 돈의 ‘보편적 전환성’과 ‘보편적 신뢰성’이 교역의 확대 속에서 사피엔스의 삶의 영역을 확대시켰다. 비록 돈은 냉정한 수요-공급의 법칙으로 움직이며 전통적인 인간관계를 파괴하는 부정적 측면을 갖고 있지만 모든 차별에 영향받지 않는 특수한 관용성을 지닌 세계였다. “돈은 인류가 지닌 관용성의 정점이다. (....) 인간이 창조한 신뢰 시스템 중 유일하게 거의 모든 문화적 간극을 메울 수 있다. 종교나 사회적 성별, 인종, 연령, 성적지향을 근거로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유일한 신뢰 시스템이기도 하다.”
두 번째 ‘보편적 질서’는 ‘제국의 탄생’이다. 제국의 정의는 개념적으로 단순히 영토가 크다는 점이 아니라 두가지 요인이 담겨져 있어야 한다. 하나는 문화적 다양성이다. 제국은 다양한 문화를 가진 여러 집단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다른 하나는 영토의 탄력성이다. 제국의 국경은 정해져있지 않았으며 다양한 요인에 의해 변동하였다. 키루스에 의해 수립된 페르시아는 제국의 본질적 성격을 잘 보여준 제국의 시작이었다. 페르시아 내에는 다양한 민족이 공존하였고 각각의 문화를 지키면서 제국의 질서를 수용하였다. 다만 다음과 같은 원칙은 있었다. “제국은 온 세상이 기본적으로 하나라는 것, 모든 장소와 시대에 적용되는 일군의 원칙들이 있다는 것. 모든 인간은 서로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을 늘 인식하고 있었다.” 제국은 문화의 다양성을 축소시킨 단점을 갖고 있지만, 반면 문화의 통합을 통해 사피엔스의 공동의 질서를 수립하였다. 이렇게 만들어진 제국은 비록 정치적으로 해체될지라도 후대까지 제국을 통해 만들어진 문화를 전달하면서 사피엔스의 삶에 영향을 미쳤다.
세 번째 ‘보편적 질서’는 종교질서, 즉 보편종교의 탄생이다. 원시적인 ‘애니미즘’은 특정한 신에 대한 숭배로 바뀌었다. 이러한 현상은 자연 속에서 수많은 존재들과 동등한 관계로 교류하던 인간이 동식물을 소유물로 격하시키고 지배하기 위해 신이라는 존재를 규정하고 그와의 계약을 수립한 종교의 세계였다. 종교에는 다신교, 일신교, 이신교 들이 공존했다. 종교는 인간의 취약한 구조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역할을 담당했으며 ‘초인적 질서에 대한 믿음을 기반으로 하는 인간의 규범과 가치체계’라고 정의할 수 있다. 다신교는 인간의 영역마다 특정 신과 연결시킨다. 하지만 다신교에도 최고의 권력(힘)이 있다. 다만 그것은 인간의 희로애락에 관심을 갖지 않는 비인격적 존재이다. 그리스 종교의 ‘운명’이라든가, 힌두교의 ‘아트만’과 같이 개별적인 인간를 초월하는 절대적인 힘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하지만 다신교 이후 등장한 일신교는 신에게 인격적 특징을 부여하고 그에게 모든 권능을 인정하였다. 그리고 종교의 영향력을 확장시키기 위해 자신의 교리가 절대적 진리라고 주장하는 보편성을 강조했고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해야 한다는 선교성이 중시되었다. 이런 일신교의 태도가 결국 수많은 종교적 분쟁을 가져왔으며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하는 비극을 초래한 것이다. 다신교가 갖고 있던 다양성과 관용성을 잃어버린 일신교는 폭력의 선명성과 진리의 확신을 통해 점차 사피엔스의 종교적 질서를 이루게 된다. 하지만 보편적 종교질서는 초월적 신에 대한 믿음에서만 발생한 것은 아니다.
사피엔스는 인간 그 자체의 믿음에 대해서도 초월적인 가치를 부여하기 시작하였다. 일종의 ‘인본주의적 종교’, 또는 ‘이데올로기’라 불리는 믿음체계이다. 신이 상상의 산물이듯이, 이러한 믿음 또한 ‘상상의 질서’이다. 이러한 믿음의 기초에는 호모 사피엔스가 다른 모든 존재나 현상과는 근본적으로 구별되는 유일무이하고 신성한 성질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갖고 있으며 믿음의 대상이 개인 또는 사회이냐는 차이에 따라 ‘자유주의적 인본주의’와 ‘사회주의적 인본주의’로 구별될 수 있다. 인본주의는 사피엔스의 가능성을 존중함으로써 자유와 평등을 향상시키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사피엔스에 대한 또다른 인본주의적 관점에 의해 사피엔스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힌 것도 있다. ‘국가사회주의’(나치)이다. 이들은 인간은 변화할 수 있다는 ‘진화적 사고’를 바탕으로 인간을 초인으로 개조하거나 인간 이하의 것들을 제거하려 시도하였다.
인간이 만들어 낸 ‘보편적 질서’는 이후 사피엔스의 삶에 절대적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저자는 이러한 변화가 필연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경계한다. 어떤 역사적 사실도 필연적으로 생겨난 것은 어떤 것도 없다. 특히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어떤 것이 현재의 역사를 만들 것이라는 사실을 전혀 알 수 없었다. 다만 역사는 사후의 평가에 의해 설명될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역사 연구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역사를 연구하는 것은 미래를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서다. 우리의 현재 상황의 자연스러운 것도 필연적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기 위해서다.”
역사학자들은 그 시대를 연구함으로써 역사가 다른 방향으로 갈 수 있었음을 발견하게 된다고 한다. 역사는 역사의 전개를 설명하고 과정을 제시할 수 있지만, 그것이 ‘왜’ 꼭 그렇게 이루어졌는가에 대해 설명할 수 없다. 다만 역사의 과정을 이해함으로써 어떤 결과가 어떤 요인과 연결되었는가를 파악하고 역사의 가능성을 좀 더 넓게 바라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역사에서 살펴볼 수 있는 원칙 중 하나는 ‘선의’로 시작되고 진행된 것이 결국 큰 문제를 제기하다는 것이다. 그것이 특히 ‘절대적’, ‘필연적’, ‘진리’라는 이름으로 등장했을 때 수많은 피해자를 낳게 된다. 그런 점에서 문제의 ‘완벽한’ 해결이라든가, 근본적인 해결이라는 말은 위험할 수 있다는 점을 항시 인식해야 한다. 선명성과 ‘상상적인 것’을 이용하여 문제의 핵심을 호도하는 행위 또한 역사의 문제를 은폐하는 경우일 것이다. 우리가 불완전하다는 사실, 그리고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것은 ‘상상’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좀 더 겸손한 태도로 문제해결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목소리를 높이며 타인을 매도하는 자들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도 ‘상상의 것’을 강요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첫댓글 - 선악의 구별을 절대적인 것으로 몰아서 극한 대립을 야기시키는 오늘날의 정권 모습이 걱정스럽다. 왜 이리 서둘러 방향을 급선회하는지 모르겠다. 선동적인 정치를 벗어나는 공동체의 지성이 넓게 펼쳐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