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쥐가 된다는 것[네이글]
What is It Like to be a Bat 变成蝙蝠会怎样
‘박쥐가 된다는 것’은 심리철학자이자 법철학자인 네이글(T. Nagel)이 1974년에 발표한 논문이다. 이 논문에서 네이글은 ‘인간이 박쥐가 되지 않는 한 박쥐의 의식을 알 수 없다’라고 주장했다. 뉴턴의 고전역학을 토대로 한 라플라스의 가설 이래, 과학자를 포함한 많은 사람은 물리적 결정론과 환원주의가 타당하다고 믿었다. 라플라스(P. Laplace, 1749~1827)는 원자의 정확한 위치와 운동량을 알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는 가설을 제시했다. 한편 모든 사물과 사건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인과적 결정론(Causal determination)은 세상이 체계적 규칙 내에서 운행된다고 간주한다. 네이글이 ‘박쥐가 된다는 것’을 발표한 1970년대에도 결정론적 세계관과 연결된 물리주의, 환원주의, 기능주의, 유물론, 행동주의 등이 유행하고 있었다. 당시 물리주의자들은 모든 것을 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믿었다.
물리주의(Physicalism, 物理主義)는 모든 것을 물리적으로 설명하려는 과학적 태도이자 철학적 사상이다. 물리주의에 의하면 인간을 포함한 모든 것은 물리화학의 구조물이며 물리화학이 인간의 정신을 결정한다. 영혼이나 신은 존재하지 않으며 인간의 주관적 감정도 사실은 물리적 작용이다. 한편 환원주의(Reductionism, 還元主義)는 어떤 현상을 기본적인 원리나 원인으로 설명하려는 이론이다. 과학에서는 모든 것을 관찰가능하고 실험가능한 법칙으로 환원하고자 한다. 그중에서도 물리주의는 인간의 정신과 마음은 물리적인 것이거나 물리에 수반한다고 본다. 물리주의에 의하면, 정신, 마음, 감정, 경험, 감각, 의식, 인지를 포함한 인간의 의식은 환원주의로 설명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들은 기능으로 실현되고 행동으로 검증될 수 있다. 네이글의 ‘박쥐가 된다는 것은’은 바로 이런 물리주의와 환원주의에 대한 비판이다.
이 논문의 첫 문장은 이렇다. “의식은 심신 문제를 정말 풀 수 없도록 만든다.” 네이글은 논문 곳곳에서 물리주의와 환원주의는 인간을 포함한 유기체(Organism)인 종의 의식을 소홀히 했다고 지적한다. 네이글이 말하는 의식은 ‘무엇이 된다는 느낌, 무엇인 느낌(feeling)’이다. 의식 개념을 새롭게 정의한 네이글이 비판한 핵심은, 물리주의는 인간과 유기체를 설명하면서 행동, 기능, 현상 등 외적 기능에 초점을 맞추어 물리로 환원했다는 것이다. 네이글이 볼 때 그런 것들은 과학적 설명이 가능하다. 문제는 의식이다. 의식은 감각, 지각, 감정, 이성, 분석, 판단 등의 미묘한 정신작용이다. 이 중에서 문제가 되는 의식은 감각의 특질, 주관적 경험, 현상의 이해 등이다. 주관적이고 미묘한 감각질은 물리적인 것으로 환원될 수 없다. 반면 이성적이고 분석적인 것들은 (불완전하지만) 과학으로 환원될 수도 있다. 그런데 물리주의에서는 이성적인 것만이 아니라 감성적인 것도 물리로 환원하려 한다.
물리주의의 문제점은, 인간의 의식을 신경생물학, 신경생리학, 뇌과학, 생물학, 화학, 물리학, 전기공학 등으로 환원하여 설명하는 것이다. 논리실증주의의 영향을 받은 물리주의자들은 인간의 주관적 경험도 객관적 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믿는다. 가령 두통을 C 신경세포의 전기작용으로 환원하는 것이다. 네이글은 이에 대한 반론으로 인간과 박쥐를 비교하는 사고실험을 제시했다. 박쥐는 대상을 의식할 때 초음파(sonar)나 반향정위(echolocation)와 같은 감각을 사용하고 인간은 대상을 인식할 때 주로 시각을 사용한다. 인간이 박쥐의 신경구조와 생리 조건을 모두 안다고 하더라도 결코 박쥐와 같은 경험을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종의 생물적 차이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 말은 의식을 가진 박쥐의 경험을 물리적 법칙으로 환원할 수 없다는 뜻이다. 여기서 네이글은 개체의 주관적 경험 이전에 종의 주관적 경험을 내세웠다.
네이글은 “그 유기체가 되는 어떤 것이 있을 때만이 한 유기체는 의식의 정신상태를 가진다”고 말했다. 이 문장에서 ‘그 유기체’는 생물의 종(species)을 말한다. 그러므로 종의 생물적 구조가 그 종 특유의 의식을 가지도록 한다는 뜻이다. 같은 종 안에서는 (완전하지는 않지만) 다른 개체의 의식을 알 수 있고 어느 정도까지는 법칙화할 수 있다. 그런데 종이 다르면 단지 행동으로 유추하여 상상할 수밖에 없다. 가령 번개 칠 때 박쥐가 느끼는 공포와 인간이 느끼는 공포는 다르다. 따라서 인간이 박쥐의 생리 작용과 신경구조를 알더라도 인간은 박쥐의 경험을 이해할 수 없고 박쥐의 의식을 알 수 없다. 박쥐의 의식 x를 인간의 의식 y로 환원할 수 없고, 물리적 법칙으로 표시할 수 없다. 네이글은 박쥐와 인간의 경험 특히, 감각질의 차이를 근거로 물리주의와 환원주의의 방법은 불완전하다고 비판한다.★(김승환)
*참고문헌 Thomas Nagel, “What is It Like to be a Bat”, The Philosophical Review Vol. 83. No. 4(Oct. 1974).
*참조 <결정론>, <경험>, <기능주의>, <논리실증주의>, <메리의 방>, <메리의 방 논증>, <물리주의>, <박쥐가 된다는 것 논증[네이글]>, <속성예화>, <수반>, <심신이원론>, <심신일원론>, <유기체론>, <의식>, <환원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