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기억하렴. 그러다 힘들면 이모한테 말해야 한다. 혼자 짊어지려고 하면 안돼. 아무리 네가 의젓하고 씩씩한 아이라도 세상에 혼자 감당해야 하는 슬픔 같은 건 없으니까. 알았지?" _46
"게으른 사람들은 자기가 알지 못하는 걸 배우려고 하는 대신 자기가 아는 단 한 가지 색깔로 모르는 것까지 똑같이 칠해버리려 하거든." _192
그 소리를 듣자 나를 견딜 수 없게 만드는 익숙한 슬픔과 피로가 밀려왔다. 그 소리는 언니를 잃은 이후 숨죽여 울던 엄마의 흐느낌처럼 들렸다._206
나는 사람이 겪는 무례함이나 부당함은 그것이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물에 녹듯 기억에서 사라지는 게 아니라 침전할 뿐이라는 걸 알았고, 침전물이 켜켜이 쌓여 있을 그 마음의 풍경을 상상하면 씁쓸해졌다._256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료에 따르면 한인 간호 노동자들이 벌인 서명운동은 1978년 3월, 체류권 보장을 위해 공개 토론회를 여는 토대가 된다._354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았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이 될 수 있어'_생의 한가운데 대목을 선자이모가 매 일기장마다 써 놓았던 이 문장이 떠오른다.
5.18 광주사태를 뉴스로 보고 실상을 알리기위해 거리로 나가 서명운동을 했다는 파독 간호사들의 이야기까지, 왈칵 눈물이 났다.
선자이모는 독일가서 공산당이 되면 안된다는 다짐을 가족들로부터 여러차례 받았고, 파독 광부로 온 공무원이었던 남편은 6.25로 아버지를 잃은 아들이었다. 그래서 아내가 저런 일에 얽히는 걸 극도로 싫어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선자이모는 주변의 시선을 이겨내고 거리로 나갔다.
예나지금이나 이렇게 용기있게 실천하시는 분들에게 늘 감사해야 한다는 마음이다.
소설을 수필처럼 읽었다. 꼭 작가의 이야기를 풀어놓은 듯,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읽으며 여러번 울컥했고 마지막 전개는 반전이었다.
해미와 우재의 뒷이야기도 궁금하고 한수의 이야기도 궁금하다.
그들의 뒷이야기가 궁금했던 소설이 있었던가?
작가의 다른 작품도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