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 성당
간략설명 감곡 본당에 이어 청주교구 내에 두 번째로 설립된 본당
도로주소 충청북도 옥천군 옥천읍 중앙로 91
공소 시기와 본당 설립 옥천(沃川) 지방 최초의 선교는 감곡(甘谷) 본당 부이용(Bouillon, 任加彌) 신부에 의해서 이루어졌으며, 1900-1901년 말 감곡 본당의 교세 통계표에 의하면 옥천군 장사리(長沙里)에는 신자수가 40여 명인 개경지 공소가 있었다. 안정적인 선교 활동의 결과 신자수가 꾸준히 증가하자 1903년 공주 본당 2대 주임 파스키에(P. Pasquier, 朱若瑟) 신부는 옥천 공소를 설립하였으며, 이듬해 경부선이 개통되면서 옥천 지역이 교통의 요지로 점차 주목받게 되자 본당 설립을 계획하게 되었다.
1906년 교구에서는 옥천 공소를 본당으로 승격하면서 초대 주임으로 홍병철(洪秉喆) 루카 신부를 임명하였다. 홍병철 신부는 부임과 함께 당시 교우들이 갖고 있던 천주교에 대한 잘못된 특권 의식을 단속하는 등 본당의 올바른 기반을 마련하기 위하여 노력하였으며, 1909년 옥천읍 이문동(里門洞)에 20평 규모의 성당을 완공하였다. 이와 함께 홍병철 신부는 본당 소유의 토지를 경작하는 소작인들을 대상으로 전교 활동을 펼쳤는데, 이는 큰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1913년 홍병철 신부가 공소 순회 도중 갑자기 사망하게 되자 2대 주임으로 이종순(李鍾順) 요셉 신부가 부임하였다. 성탄절에 대전 지역 신자 3명의 방문을 통해 대전 지역 신앙 공동체에 대하여 알게 된 이종순 신부는, 대전 지역의 신앙 공동체가 앞으로 크게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1914년 11월 비룡(飛龍) 본당을 설립하고 초대 주임으로 부임하였다. 이에 옥천 본당은 비룡 본당 관할 공소로 격하되었고 1919년 11월 대전(大田, 현 대흥동) 본당의 설립과 함께 신설 본당 관할이 되었다.
1928년 9월 3대 주임으로 윤예원(尹禮源) 토마스 신부가 부임함으로써 옥천 공소는 다시 본당으로 승격되었으나, 활성화되지 못하고 1943년 3월 다시 대전 본당 관할 공소로 격하되었다. 이는 옥천 지역이 극도로 침체되어 전교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늘어나는 타 지역의 성당수에 비례하여 사제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었다. 그 후 1948년 7대 주임으로 김영근(金永根) 베드로 신부가 부임함에 따라 다시 본당으로 승격되었는데, 김영근 신부는 옥천읍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삼양리 신시가지에 25평 규모의 새 성당을 완공하여 본당을 이전한 후, 본당의 활성화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였다.
1953년 9월부터 메리놀 외방전교회가 충청북도 지역을 담당하게 됨에 따라, 8대 주임으로 메리놀회 소속의 페티프렌(R. Petipren, 邊聖行) 신부가 부임하였다. 1956년 4월 24일 페티프렌 신부는 옥천읍에서 가장 큰 건물인 100여 평의 성당을 완공하고 봉헌식을 거행하였으며, 본당 신자들과 지역 주민들을 위한 ‘성모의원’(나환우 진료소)과 ‘천당의 문’ 양로원을 설립하였다.
한편 다양한 활동의 결과 인근 지역의 신자수가 증가하자 1955년 10월 보은(報恩) 본당, 1956년 6월 영동(永同) 본당을 분리 · 설립하였다. 9대 주임 그레이그(H. Graig, 奇厚根) 후고 신부 또한 1957년 10월 황간(黃澗) 본당을 분리하였으며, 이듬해 청주교구의 설정과 함께 본당은 대전교구에서 청주교구로 소속이 바뀌었다. 1959년 1월 예수 성심 시녀회의 분원을 마련한 데 이어 9월에 청산(靑山) 본당을 분리 · 설립하였다.
12대 주임으로 부임한 호프만(V. Hoffman, 河) 신부는 1964년에 성모의원이 점차 발전함에 따라 2층 병원(512평)을 신축하였으며, 나환우뿐만 아니라 일반인들까지 치료함으로서 범위를 확대하였다. 1972년 4월 ‘천당의 문’ 양로원은 청주 경로 수녀회 성심원과 합병되었다.
본당의 발전과 안정 14대 주임 데크만(L. Decman, 馬) 신부는 1972년 5월 4층 건물(504평)을 완공하고 옥천 성모병원을 가톨릭 의대 부속병원으로 개원하였다. 본당의 관할이 메리놀회에서 교구로 이관됨에 따라 16대 주임으로 부임한 박용수(朴容秀) 바오로 신부는 전교 방법의 하나로 1977년 성모유치원을 개원하였고, 1981년 10월 사제관과 수녀원을 신축하였다. 이어 17대 주임 서정혁(徐廷赫) 프란치스코 신부는 1986년 12월 본당 설립 80주년을 맞아 2층 규모의 ‘성녀 소화 데레사 교육관’(145평)과 수녀원(45평)을 완공하고 축복식을 거행하였다.
18대 주임 이범현(李範玄) 토마스 신부는 초대 주임 홍병철 신부의 생애와 본당 초기 역사에 많은 관심을 갖고 본당사 편찬위원회를 조직하여 본당사 편찬 작업에 착수하였다. 이와 함께 신자들의 성체 신심을 강조하여 ‘가르멜산 성체 조배회’를 도입하였으며, 1989년 제1회 남부지구 성체대회를 개최하였다. 19대 주임 류한영(柳漢永) 베드로 신부는 1991년 11월 일자형의 건물을 열십자형으로 증 · 개축하면서 110평을 늘렸으며, 모임 장소로 이용할 강당(60평)도 마련하였다.
21대 주임 이승용(李承鎔) 마태오 신부는 본당 설립 90주년 기념사업으로 취학 전 어린이의 교육 시설이 부족한 상황을 고려하여 소화 어린이 집 개원을 계획한 뒤 건물을 완공하고, 1996년 5월 20일 어린이 집 축복식을 거행하였다. 이와 함께 본당 전 신자를 대상으로 1년 동안 성서 40주간 교육을 실시하였다. 이어 22대 주임으로 부임한 박치영(朴治英) 안드레아 신부는 1998년 5월 31일 160세대 440명의 교적을 이관하여 이원(伊院) 본당을 분리 · 설립하였다.
23대 주임 경덕수(慶悳秀) 레오 신부 때인 2002년 2월 28일 성당 건물은 1940년대 충북 지역에서 유일하게 건축된 성당이며 다른 성당 건축의 전형이 되었으므로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7호로 등록되었다. 2006년 설립 100주년을 맞은 옥천 성당은 인근에 많은 본당을 분리한 모(母) 본당으로서 모범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출처 : 한국가톨릭대사전 제9권, 2002년, 내용 일부 수정(최종수정 2011년 12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