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1:13-2:10절) 욥이 당한 시련
Ⅲ.두 번째 천상의 회의(하)
욥이 당한 불행은 너무나도 처참했지만, 그가 신앙을 지킨 것은 대단한 것입니다. 그것으로 욥의 시련(試鍊)이 모두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다시 회의(會議)가 열렸습니다. 그 회의(會議)의 주제(主題)는“욥의 신앙?”이었습니다. 좀 더 쉬운 말로 표현하면 “욥이 언제까지 견딜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회의(會議) 진행은 처음 회의(會議)와 비슷했습니다. 즉 하나님 앞에 천사들이 모여 있고, 사탄(詐誕)도 거기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사탄(詐誕)에게 “어디서 왔느냐?”고 물어보시는 것도 똑같았습니다. 이번에 다른 점은 하나님께서 사탄(詐誕)을 이렇게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즉 “네가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면서 처음처럼,“욥과 같이 순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없다”고 하시고 나서“네가 나를 격동 질을 해서 까닭 없이 그를 치게 하였지만, 그는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켰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생각으로는 하나님께서 사탄(詐誕)을 좀 많이 야단을 치셨을 것 같습니다. 즉“네가 원하던 것이 고작 이것이냐? 그래 사람을 그렇게 비참하게 만드니까 속이 시원한 모양이지? 이제 당장 욥을 원상회복시켜 놓고 다시는 가까이하지도 말라”고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탄(詐誕)에게 너무나도 관대하게 말씀하시니까 사탄(詐誕)이 다시 욥을 참소(讒訴)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번에 사탄(詐誕)이 한 말은 정말 무서운 말이었습니다.
2:4-5절)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가죽으로 가죽을 바꾸오니 사람이 그 모든 소유물로 자기의 생명을 바꾸올 지라.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뼈와 살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틀림없이 주를 향하여 욕하지 않겠나이까.”
여기서“가죽으로 가죽을 바꾼다.”는 말은 옛날에 물물교환 할 때, 사람들이 비슷한 가치를 가진 것끼리 바꾼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아주 중요한 것은 아무렇게나 바꾸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즉 사탄(詐誕)은 욥이 재산(財産)을 모두 잃고, 자식(子息)을 잃었지만, 아직 가진 것이 있기 때문에 여유를 부린다는 뜻입니다.
사탄(詐誕)은 욥이 극단적인 이기주의로 몰고 있습니다. 즉 자기 몸이 멀쩡하고, 생명에 지장이 없으니까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지, 당장 몸에 병이 생기거나 목숨에 이상이 생기면, 욥의 태도는 달라질 것이라고 충동질 하는 것입니다.
사탄(詐誕)은 욥을 너무나도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으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아마 이기적인 노인 중에 다른 것은 다 없어지고, 망해도 자기 몸만 성하면 괜찮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니까 사탄(詐誕)이 주장하는 바른 신앙 기준은 점점 더 올라가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하나님께서 너무나도 잘해 주시고, 축복해 주시니까 하나님을 믿는 것은 바른 신앙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즉 재산(財産)도 잃고, 가족(家族)도 잃고, 오해(誤解)도 당하고, 욕도 먹으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진짜 신앙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것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진짜 사랑은 자기 몸에 병이 생기고, 죽어가면서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사랑해야 진짜 신앙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어려운 시험을 당했을 때, 마지막 선택이 바로 이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을 올바로 믿는 것 하나만 택하고 죽을 것인가? 아니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으니까 하나님을 내려놓고, 나의 행복을 택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사탄은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을 가지고 욥의 신앙을 시험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즉 그를 병들게 하고, 죽게 하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사탄(詐誕)의 그 충동(衝動)까지 받아주십니다.
6절)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를 네 손에 맡기노라 다만 그의 생명은 해하지 말지니라.”
이제 욥은 기계(器械)로 치면, 완전히 해체(解體) 당하게 됩니다. 즉 하나님은 망나니 같은 엉터리 기술자에게 고급차 하나를 완전히 박살내게 허락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
창조주 하나님은 사탄(詐誕)이 아무리 해체시켜 놓아도 얼마든지 다시 조립(組立)할 자신이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탄(詐誕)에게 욥의 재산(財産)뿐만이 아니라, 자식(子息), 그리고 이제는 그의 몸까지 완전히 해체(解體)하게 하셨습니다. 오직 “생명만 해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욥이 어떻게 됩니까?
7-8절)사탄이 이에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서 욥을 쳐서 그의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종기가 나게 한지라. 욥이 재 가운데 앉아서 질그릇 조각을 사져다가 몸을 굵고 있더니”
욥이“재 가운데 앉았다”는 것은 불행 중에 있고, 큰 시련 중에 있다는 뜻입니다. 이 시련(試鍊)을 이겨내지 못하면, 끝나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가장 전투적(戰鬪的)인 자세가 재위에 앉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신의 시험(試驗)을 모든 사람들 앞에서 인정하는 것이며, 기도로 이기겠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의 몸에 종기(腫氣)가 너무나 가려 워서 도저히 손으로 긁을 수 없어 기왓장으로 온 몸을 긁고 있었습니다.
아이가 아토피성 피부염을 앓고 있다면, 밤에 자지도 못하고, 앉아서 온몸을 박박 긁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욥의 피부병은 단순한 피부병이 아니라, 악창(惡瘡)이었습니다.
이것은 가장 고통스럽고, 심한 냄새가 나고, 나중에는 죽는 것입니다. 결국 사탄(詐誕)은 욥의 몸에도 손을 대었습니다.
이제 욥은 외모(外貌)자체가 비참해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욥에 대한 가장 무서운 공격은 그의 아내로부터 왔습니다.
9절)그의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키느냐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아마 욥의 아내는 욥만큼 신앙이 좋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그래야만 좋은 드라마(drama)가 만들어지는지도 모릅니다.
욥의 아내가 너무나 신앙이 좋아서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고 기뻐했다면, 이 드라마(drama)가 덜 긴장되었을 지도 모릅니다.
욥의 아내가 그에게 던진 말은 사탄(詐誕)이 하고 싶었던 말 그대로였습니다. 즉 “아직도 하나님에 대한 온전함을 지키느냐?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이 말이 무슨 뜻일까?
“하나님이 너를 버리셨으니까 너도 하나님을 버리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지금 이 형편에 신앙에 무슨 소용이 있고, 하나님의 뜻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 다 소용이 없으니까 죽으라.”는 것입니다.
즉 모든 것이 이제 끝장났다는 뜻입니다. 결국 자포자기(自暴自棄)하라는 뜻입니다.
죤 번연의 천로역정을 보면, 크리스천이 천성 길을 잘못 들어 엉뚱한 성(城)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곳은 거인(巨人)의 성(城)인데, 거인(巨人)은 매일 크리스천과 그의 친구 믿음을 때리면서 자살(自殺)하라고 말합니다.
그 거인(巨人)의 이름은 절망(絶望)이었고, 거인(巨人)의 부인 이름은 자포자기(自暴自棄)였습니다. 그런데 크리스천은 약속(約束)이라는 열쇠로 문을 열고, 탈출에 성공하게 됩니다.
아마 욥의 아내는 드라마(drama)에서 가장 좋지 않은 악역(惡役)을 맡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욥은 아내를 욕하거나 야단치지 않았습니다.
10절)그가 이른즉 그대의 말이 한 어리석은 여자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게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 하지 아니하니라.”
욥이 아내를 욕하거나 저주하지 않았던 것은 아내도 똑같은 피해(被害)자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또 아내가 하는 말이 본심(本心)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어리석은 여자”라고 하지 앓고“한 어리석은 여자 중 하나”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많은 어리석은 여자 중의 하나라는 뜻이고, 다른 때는 어리석지 않은데, 지금 이 말하는 것은 좀 어리석다는 뜻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잔(盞)비유를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잔(盞)을 주시는데, 단 잔(盞)도 있고, 쓴 잔(盞)도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면, 단 잔(盞)만 마셔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하기 때문에 쓴 잔(盞)도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두고 베드로에게 요18:11절)...아버지께서 주시는 잔(盞)을 내가 마시지 않겠느냐? 고 말씀하셨습니다.
욥의 온전이 무엇입니까? 이 시험(試驗)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고, 자신은 그 하나님의 뜻을 끝까지 믿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가 행복(幸福)할 때만 아니라, 불행(不倖)하거나 고통스러울 때도 찬송(讚頌)을 받으시며, 영광(榮光)을 받으실 분이라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욥은 입술로 범죄 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을 보면 옛날 사람들의 신앙에서 입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의 모든 신앙은 입술의 말로 평가되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말(言)이 완전히 고삐 풀린 망아지가 되어, 전혀 자신의 생각이 여과(濾過)되지 않고,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마구 떠들어 대는 데, 그것은 신앙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 욥이라는 사람의 엄청난 파멸(破滅)을 눈앞에 보고 있습니다. 욥은 망(亡)했습니다. 즉 재산(財産)은 모두 잃었고, 자식(子息)들도 모두 잃었으며, 그의 몸에는 악창(惡瘡)이 나서 잠시도 견딜 수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거기에다가 아내는 욥에게 “하나님의 뜻을 믿지 말고,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고 합니다. 만약 우리가 지금 이와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다면, 도저히 견디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욥기를 사랑하는 이유는 자기 나름대로 이와 비슷한 체험을 한 번씩 하기 때문입니다. 즉 욥을 통하여 고난 중에 있는 우리 자신을 보게 됩니다.
감사한 것은 이런 환란(患亂)을 허락하신 것은 이해가 되지 않지만, 모든 것이 여전히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탄(詐誕)은 하나님의 허락을 넘어 우리를 해치지 못할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아무리 우리를 해체(解體)하고, 분해(分解)해서 못쓰게 만들어도 다시 조립(組立)할 자신이 있으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조립(組立)하셨을 때는 처음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월등(越等)하게 뛰어난 작품(作品)을 만드실 것입니다. 이때 우리가 할 일은 살 려 고 몸부림치는 것이 아니라, 입술을 단속하며, 가족들끼리 서로 아프게 하지 아니하며, 잠잠히 하나님을 바라보는 이것입니다.
약5:10-11절)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을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으로 삼으라.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