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관 Hua-Yi Distinction 华夷观
선생의 학업은 부지런했다(先生之業, 可謂勤矣). 이단을 배척하고 불교와 도교를 물리쳤으며 틈의 새는 곳을 막고 이치를 확대하여 밝혔다(觝排異端, 攘斥佛老. 補苴罅漏, 張皇幽眇). 미약하고 쇠퇴한 서업을 찾아 홀로 널리 찾아 이었다(尋墮緖之茫茫, 獨旁搜而遠紹). 온갖 내를 막아 동쪽으로 흐르게 하고 엎어진 곳에서 힘찬 물결을 회복했다. 선생은 유인으로 힘을 다했다(障百川而東之, 廻狂瀾於旣倒. 先生之於儒, 可謂勞矣). 한유의 <진학해(進學解)> 중 한 대목이다. 당송 8대가의 한 사람인 퇴지(退之) 한유(韓愈, 768 - 824)는 성당 시대의 문장가이며 정치가이고 또 사상가였다.
한유는 유교를 사상과 정치경제의 원리로 삼았으며 불교를 허무주의, 도교를 초월주의라고 통렬한 어조로 비판했다. 맹자의 유심주의를 계승하고자 했던 한유는 송대의 성리학에 영향을 미쳐 엄숙주의풍의 정통론과 도통사상으로 이어진다. 한유의 이런 사상을 흔히 화이사상(華夷思想)이라고 한다. 그의 유교중심의 도통사상 또는 사상적 화이관은 전국시대의 혈연적 화이관과 문화적 화이관을 통합하고 계승한 것이다. 화이관의 시초는 고대 주(周, BC 1122 - BC 249)였다. 일찍이 봉건제도를 확립한 주는 혼인을 통한 혈연으로 중화체제를 형성하면서 주변의 종족을 이적(夷狄)으로 간주했다. 전국시대에 이르러 이러한 혈연적 화이관은 문화와 예절을 기준으로 한 문화적 화이관을 통하여 이족을 동화시키려는 정책으로 발전했다. 이런 혈연적 화이관과 문화적 화이관을 계승한 것이 바로 한유였다.
한편 송(宋)대에 이르러 금(金)과 대립하면서 중화의 문화적 우월성과 사상의 정통성을 강조하는 중화주의를 표방했다. 특히 주자는 성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신유학을 부흥하여 중화사상의 철학적 기반을 마련했다. 주자의 성리학을 토대로 화이관이 더욱 체계화되고 악비(岳飛, 1127 - 1279)와 같은 중화영웅이 등장하면서 이적에 대한 적대감도 증대되었다. 중국의 민족영웅인 악비는 여진족의 국가 금에게 쫓겨 남하한 남송의 대장군이자 강경한 주전파였다. 그런데 악비는 양자강과 회하(淮河) 사이의 중원을 회복한 다음 북진을 주장하다가 주화파에 밀려 처형을 당하고 만다. 그리고 남송은 북방을 포기하고 금을 섬기며 조공(朝貢)을 바친다는 내용으로 화의했다. 하지만 악비를 민족영웅으로 칭송하면서 중화와 이적을 구분하는 화이관과 중화사상은 더욱 강고해진다.
황하와 양자강 사이의 중원지역은 중화사상과 화이관 그리고 중원중심 천하관의 지리적 중심이다. 이처럼 남송과 금을 나누는 지리적 화이관은 중심주의 사상이면서 민족주의 사상이고 문화우월의식이기도 하다. 중화를 중심으로 하고 그 바깥에 지방이 있고, 그 바깥의 사방을 남만(南蠻), 동이(東夷), 서융(西戎), 북적(北狄) 등 이족으로 설정하는 한편, 내번과 외번을 구분하면서 중화주의적 화이관 또는 화이사상(華夷思想)으로 확대된다. 이 중화질서는 중앙 - 지방 - 토사(土司) - 번부(藩部) - 조공국 - 호시국(互市國) - 화외의 층위로 체계화되어 있다. 그러니까 중원의 화이관은 문명과 야만으로 보는 초기의 혈연과 문화적 화이관으로부터 문명과 야만의 관계를 상호협력으로 설정한 사상적 화이관 그리고 위계질서의 정치적 화이관에 이르기까지 중국 중심의 중심주의 천하관이다. 이런 화이관은 19세기 말에 이르러 베스트팔렌조약(1648) 체제가 영향력을 발휘하여 근대 국민국가의 체제로 바뀌었다.
신라, 고려, 조선, 일본, 베트남, 유구, 몽골 등은 발달한 중국의 문화와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학습했다. 특히 한자를 사용하면서 중국과 함께 한자문화권을 형성한다. 아울러 이들 민족은 사대주의(事大主義) 정책을 통해서 중국문화를 적극 수용했는데 중국은 이런 민족의 동화를 양면적으로 대했다. 즉, 정치경제적으로는 중화주의에 편입시키지 않은 반면 문화나 사상적으로 중화질서의 영향에 놓았다. 그 결과 이들 민족은 중화를 흠모하는 존화주의(尊華主義) 또는 모화사상(慕華思想)의 경향을 보이거나 소중화주의에서 보듯이 중화주의에 편입되기를 희망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 민족 역시 독자적인 천하관을 가지고 중국과의 관계를 설정했다.
충북대교수 김승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