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호 사용법
김상영
"헌동어른 나오셨니껴?"
대폿집을 들어서는 이에게 누군가 인사를 해놓곤 킥킥거립니다. 어떤 어르신인가 싶었더니 우리 또래네요.
"왜~라."
어른 흉내 낸 우스개로 천연스레 화답하니 불콰한 분위기가 왁자지껄 달아오릅니다. 듣자 하니 헌동이 이 친구는 나이 서른이 채 되기 전에 이미 호를 받았답니다.
마을 어른들은 때가 되면 아랫세대들의 호를 지어주는 풍속을 이어왔다 합니다. 그런 어르신들이 세상 뜨자 미풍양속도 사라져 갔다는데, 일찌감치 장가간 덕에 요행히 받은 호랍니다.
호는 별호, 아호, 택호, 당호나 군호, 시호, 심지어는 묘호까지 있다고 하나, 내가 말하는 호는 벼슬이나 고향 따위를 붙여 부르는 택홉니다. 택호는 주로 여성에게 붙인댔으나 우리 고장은 남녀공용으로 쓰여 왔습니다. 남자는 '양반'이나 '어른'이요, 여자는 '댁'을 붙였습니다. 처가가 감계인 조부님은 감호셨고, 월촌인 부친은 월산이셨습니다. 광동·금천·뉘실·연호·영천·용동·방호·북동·석실·서호·신안·신천 어른 또한 그러실 겁니다. 한 동네에서 연을 맺으면 본동이라 하니 그것만으로도 어설픈 무당 노릇은 할 성싶습니다.
일세를 풍미한 선현들의 호를 암기하던 학창 시절이 있었지만, 우리 동네 어른들이야말로 저절로 떠오르는 정답고도 그리운 분들입니다. 이웃들과 옛날을 회상할양이면 그 어른들과의 일화 한두 토막이 마치 전설처럼 들려 귀를 세우곤 합니다. 살아생전 조모님의 북동 댁 사건은 이날 이때껏 내 기억을 붙들고 있습니다.
"오늘은 북동풍이 몇 미터로 불고…."
라디오방송의 일기예보를 듣던 조모님이 되묻습니다.
"북동 띠가 뭐라 칸다꼬?"
점심을 잡수던 조부님 놋숟가락이 소반을 탁! 때립니다. 엄숙해야만 했던 식사 시간인지라, 우린 터지는 웃음보를 참느라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내 택호는 석홉니다. 호를 갖게 된 곡절 한번 들어 보실래요? 근 사십 년 만에 귀향하니 이웃들이 말 붙이기를 꺼렸습니다. 뉘 집 손인지 아는 어르신들도 다를 바 없었습니다. 부르기가 애매하기 때문이었지요. 나잇살이나 먹었으니 이름을 함부로 부를 수 있나, 자식들을 모르니 개똥이네, 소똥이네 할 수가 있나요. 급기야 원로 어르신이 나서서 호를 짓기에 이르렀는데, ‘원산’이라 하자십니다. 군대 원사 출신이니 그러신 겁니다. 이런 낭패가 있나요.
옛 동네 이웃집 머슴이 원상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원새이’라 불렀으며, 동요를 흥얼댈 때마다 그 사람을 떠올리곤 하였답니다. 원새이 똥구멍은 빨갛고~♬, 바로 그 이름입니다. 원숭이 꼬리처럼 착 감기는 이름이니 원산이가 입에 굴러 원새이로 불릴 일은 시간문제로 여겨졌습니다. 아니 되옵나이다.
그러면 어쩌나, 어르신은 생각을 거듭하신 가 봅니다. 이번엔 석호라 하자십니다. 처가가 산 너머 동네 석탑이니 돌石에 이름 號입니다. 속칭 ‘돌태비’라 불리는 동네랍니다. 감사하옵나이다. 아내에게 고했더니 같잖다는 표정으로 닦아세웠습니다.
"아 이 사람아, 정신이 있나 없나, 형부가 석호 아이가."
아차, 큰 동서 처가도 돌태비였구나. 당연하기 짝이 없는 사실이건만 비로소 아하~ 싶은 것이, 망연해질 따름입니다. 유서由緖 있고 부르기 좋은 호를 놓친 어르신은 낭패하여 무릎을 치십니다.
어정쩡한 시간이 흘렀습니다. 깔깔한 이웃은 여전히 말 붙이기를 꺼렸지만, 후덕한 어른들은 내키는 대로 나를 불렀습니다. 본이 같은 할매는 ‘족친’이라 하고, 어떤 새댁은 ‘새집이’라고도 합니다. 또 다른 아지매는 ‘충성이’라 합니다. 그런 분들도 때론 ‘보소~’ 라고도 하니, 그야말로 중구난방이었습니다.
미주알고주알 터놓고 지내는 형제들이라 호 사건을 처가 식구들이 얼추 알게 되었습니다. 이른 봄날에 큰 동서가 나를 불렀습니다.
"내 호를 석산이로 바꿨는데 자네가 석호 하게."
석호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돈 들여 호를 새로 짓고, 동네엔 벌써 택호 턱으로 막걸리 말이나 냈답니다.
석호를 작명해 주신 이웃 어르신에게 나도 택호 턱을 냈습니다. 삼겹살에 소주 몇 잔 걸친 이웃들과 아내 모두 웃음꽃이 피었습니다. 손윗동서가 버린 걸 주운 택호지만, 뭐 어떻습니까. 뒤끝이 좋을진대 그깟 곡절쯤은 에피소드로 남을 겁니다.
지인 중에 석호가 있긴 하지만, 호로 불릴 때는 사뭇 다르게 느껴집니다. 어른으로 대접받는 느낌, 함부로 대하지 않는 진중함이 배여서 좋습니다.
내로라하는 문사들은 대부분이 호를 가진 듯합니다. 마치 명함을 새기듯 작호를 하고 즐겨 쓰는 것 같은데, 나는 그러질 못하겠습니다. 호를 붙인 그만큼 내 글에 지워진 엄중함을 감당할 수 없어섭니다. 수필 배우는 요즘 들어선 더욱 그러합니다. 배울수록 부족함이 느껴지는 것입니다.
진중하고도 엄중한 호라 하여 운명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끼칠 수는 없는가 봅니다. 호를 바꾼 동서는 1년도 더 못 살고 그만 세상을 뜨고 말았습니다. 몸이 찌뿌둥해지자 호를 바꿔 본 것이리란 걸 입원하고서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백세시대인 요즘 들어 일흔하나에 그리됐으니 그 옛날 공자 연세에도 못 미쳐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고희古稀 잔치 땐 강철같이 탄탄하게 뵀던 분이 속절없이 세상을 등질 때 나는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인명은 재천이란 걸요.
하늘이 부를 때까지 이웃들이 그저 내 택호를 인정스레 불러 주기만 하면 좋겠습니다.
"석호 이 사람 술 한잔하세."
호를 지어준 어른이 나를 즐겨 부르십니다. 불러 줄 때가 좋은 법이지요. 인생 뭐 있나, 갑니다, 가요.
첫댓글 재미있으면서
진중한 글입니다.
석호 어르신요, 잘 읽었습니다~^^
노 샘, 각별히 관심 주심에 감사합니다. 석호 잘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