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경의 <자연사 박물관>을 읽고
글이 덤덤하다. 먼 곳에 사는 사람들 이야기 같다.
‘힘들겠네. 잘 되면 좋겠다.’
이정도 생각이 든다. 이런 상황이 생기는 것에 대해 안타깝고 답답하기도 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핑계로 외면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내 삶은 부족하지 않고 살만하니까 알려고 하지도 않는 것 같다.
교사도 노동자라고 전교조에 가입했다. 정말 나는 노동자라고 생각하는가? 노동자에 대한 개념도 없다. 친한 언니가 함께 하자고 해서 가입했고 회비만 내고 있다. 가끔 서명하고, 노동자 대회에 참여하지만 안전하고 쉬운 것만 행동한다. 그것으로 위안을 삼기도 한다. 옆에 선생님이 부당하게 해고 되고, 다쳤다고 해서 철탑에 올라가지 않는다. 철탑에 올라갈 용기도 없다. 절박하지 않고 살만하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 같다.
대학교 때 두 군데 공장을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한 곳은 남자 와이셔츠를 만드는 작은 공장이었다. 다른 한 곳은 애경산업이라고 화장품 만드는 회사였다. 작은 공장은 봉고차로 출퇴근 시켜줬다. 그곳 식당은 7~8명 정도 들어갈 수 있다. 매일 비슷하게 반찬 두 가지(한 가지는 김치)와 정부미 쌀밥과 국물이 많은 된장국을 주었다. 큰 공장에서는 대형 버스로 출퇴근했다. 식당에는 100여명이 들어 갈 수 있다. 영양사도 있고 식단에 의해 매일 다른 국과 반찬이 나왔다.
‘와, 이왕 다니는 거 큰 회사에 다녀야 겠다.’
라는 생각을 했었다. 이때부터 나도 모르게 사람들을 노동자와 아닌 사람으로 구별했는지 모르겠다.
직업 때문인지 그와 그녀보다 아들과 딸이 궁금하다. 학교는 잘 다니는지, 별 일은 없는지, 마음은 어떨지. 분명 변화가 있을 텐데. 말이 없어지거나, 예민해져서 친구와 싸우거나, 말이 많아지거나. 부모가 어렴풋하게라도 이해할 수 있게 설명을 잘 해주면 좋겠다. 왜 학원을 못 가는지, 학습지를 안 하는 이유(아이들은 좋아하겠지만), 먹고 싶은 것을 마음껏 못 먹는 이유 등에 대해서.
2011년에 부모들이 대부분 공장에 다니고 일용직인 학교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 정말 머릿니가 한동안 유행해서 대대적으로 소독하는 소동이 벌어졌던 기억이 난다. 선생님들끼리 모여서 부모 탓을 했다. 부모들이 바빠서 생긴 일이라는 것을 꿈에도 생각해보지 못했다.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이가 생기냐? 부모들은 도대체 뭐하는 거야? 으이구......”
“여기니까 이가 생기지, 천안 시내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지금 만나고 있는 아이들 부모 모두 노동자다. 공장 노동자, 건설 노동자. 아이들이 어려서 부모에게 의지하고 좋아한다. 커서도 좋아하면 좋겠다.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그 아이들도 노동자가 될 테니. 나는 기회가 될 때마다 부모님들 덕분에 따뜻하게 입고, 먹고 싶은 것 먹고, 안전하게 잠을 잘 수 있다고 이야기 해준다. 아이들이 커서 철탑에 올라 갈 일이 없으면 좋겠다. 그저 마음뿐이다.
첫댓글 근로자와 사용주는 서로 이해관계가 다른것 같아요. 근로자는 큰 욕심없는데 투쟁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들이 비일비재할까요? 안타깝습니다. 짧은 발제지만 내용은 진지하네요. 잘 읽었습니다.
당연한 권리를 요구하는 사람들의 당연한 행복을 앗아가는 세상을 보게 됩니다. 소설 속 고립된 주인공 가정의 모습이 현실이겠거니 생각하니 고통스럽네요. 우리는 어디에 있어야할까요? 마음이 복잡합니다.
저는 노동자입니다, 평생 일해왔고, 앞으로도 일할.
'밥통'이라는 단체가 있습니다. 농성이 있는 곳, 누군가 철탑에 올라가면.. 그 밥차는 따뜻한 밥을 싣고 갑니다. 지난 몇 년, 다른 세상을 꿈꾸는 <밥차>에 저도 마음을 보태고 있습니다. 동지 한분에게 따끈한 밥과 국을 대접하는 마음으로. 그 자리에 함께 있지못함을 그저 돈으로 보상하듯이.. 그래도 마음만은 보탠다고..힘내서 투쟁하시라고. 배고프면 더 서러우니...
늘 그렇게 미안한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