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애플이 다 이기는 이어폰의 역사
이어폰
귀에 끼우거나 밀착할 수 있게 된, 전기 신호를 음향 신호로 변환하는 소형 장치. 휴대용 라디오나 보청기, 음악 감상용 장치에서 혼자만 들을 때에 사용한다
1. 전화 교환원이 되고 싶다면 승모근 단련부터
학창 시절 배운 플레밍의 왼손법칙을 아시나요? 전자기력의 방향을 알려주는 법칙인데요, 이어폰이 바로 전자기력을 이용해 소리를 내는 장치이죠. 1878년 전자기력을 이용한 소리 발생 장치에 대한 첫 번째 특허가 등장했습니다. 하지만 이 장치는 이어폰이라기보다는 확성기에 가까웠죠.
1880년대, 이어폰보다 헤드폰이 먼저 등장했습니다. 최초의 헤드폰은 전화 교환원들을 위한 장치였는데요. 전화교환원들끼리 소리를 구분해서 듣기 위함이었죠. 에즈라 길릴란드가 발명한 이 헤드폰은 한쪽에는 이어폰, 한쪽에는 마이크가 있어 마치 전화기를 억지로 어깨에 얹어 놓은 형태를 띄었죠. 심지어 무게도 4kg가 넘었다고 하니, 전화 교환원의 승모근은 남아나기 힘들어 보입니다.
2. 최초의 헤드폰은 스트리밍 음악 서비스용?!
1890년대에는 음악 감상을 위한 헤드폰(?)이 탄생했습니다. 이 장치는 일렉트로폰 회사에서 런던 오페라 하우스에 설치한 것으로 실시간 공연을 더 크게 들을 수 있는 장치였죠. 이 장치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서비스에 가입해야 했어요. (그 시절의 스포티파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이 장치는 생긴 게 헤드폰이라기보다는 청진기에 가까웠는데요. 무게 때문에 머리에 쓸 수 없었기 때문이죠.
3. 슬픈 전설을 가진 최초의 현대식 헤드폰
제대로 머리에 쓸 수 있는 헤드폰은 1910년 미국에서 탄생합니다. 이 헤드폰은 무선 수신기였기 때문에 ‘라디오 헤드셋’이라고 일컫죠. 오늘날의 헤드폰과 모습이 완전히 같습니다.
이 헤드폰에는 슬픈 전설이 하나 있습니다. 라디오 헤드셋을 발명한 나다니엘 볼드윈은 부업으로 부엌에서 헤드폰을 만들었는데요. 군에서 이 헤드셋의 유용성을 알아보고 계약을 합니다. 시끄러운 군사 작전지에서 통신을 잘 듣고, 밖으로 소리가 새어 나오지 않도록 하는데 엄청 유용했거든요.
계약이 성사된 이후에도 볼드윈은 부엌에서 수제로 헤드폰을 만들었고, 별로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특허를 내지 않았습니다. 결국 수많은 카피 제품이 탄생하게 되었고, 이것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볼드윈은 파산했다고 하네요.
4. 헤드폰 음질의 발달: 다이나믹, 스테레오
1927년 소리의 혁명적인 사건이 발생하는 데, 바로 유성영화의 탄생이었죠. 이로 인해 극장용 스피커 시장이 급격하게 성장합니다. 당시 극장용 스피커를 제작하여 판매하던 베이어 다이나믹스는 1937년 시장에서 한발자국 더 앞서 나가고자 신제품을 출시하는데요. 바로 DT48이라는 헤드폰이었죠.
이 헤드폰은 최초의 다이나믹 헤드폰입니다. 다이나믹 헤드폰이란, 소형 진동판을 설치하고 코일을 감아 전기 신호로 진동판에 진동이 일어나도록 하는 헤드폰으로, 기존의 헤드폰보다 훨씬 음질이 좋은 헤드폰이라는 뜻이었죠.
베이어다이나믹스의 DT48은 최근까지도 그 설계를 그대로 가지고 있는 DT48E가 출시했으나 2011년 단종되었습니다.
1958년에는 최초의 스테레오 헤드폰이 등장합니다. 미국의 재즈 뮤지션인 존 코스가 제작한 Koss SP-3였죠.
이 헤드폰은 최초의 스테레오 헤드폰 말고도 업적이 하나 더 있습니다. 당시 가정용 스테레오 오디오 기계에는 헤드폰 출력 단자가 없었는데요. 존 코스는 이 헤드폰을 출시하면서 오디오 제조업체들을 설득해 헤드폰 출력 단자를 포함되도록 했고, 이때 헤드폰 출력단자가 표준규격이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베이어다이나믹스의 DT48과 코스의 SP-3는 비싸고 무거워 오디오 덕후들만을 위한 제품이었죠.
5.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헤드폰은?!
머리에 쓸 수 있게 되었고, 음질도 좋아졌지만 헤드폰은 여전히 대중적인 기기가 아니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음악 감상용 장치의 가격과 크기가 무지막지했거든요. 그래서 음악은 거대한 붐박스를 들고 뒷골목에서 시끄럽게 듣던가, 집안에서 고상하게 비싼 기계 앞에서 듣는 것이었죠.
하지만 1979년 워크맨의 등장으로 음악을 듣는 모습이 완전히 바뀌게 됩니다. 이제는 가볍고 저렴하게 음악을 들을 수 있었죠. 심지어는 이동하면서 공공장소에서도 들을 수 있었어요. 가벼운 오디오 기계에는 가벼운 헤드폰이 필요했는데, 이때 두각을 나타낸 헤드폰이 젠하이저의 HD 414입니다.
HD 414는 이미 1967년에 제작되어 세계 최초의 오픈형 헤드폰이라는 타이틀도 가지고 있는데요. 오픈형 헤드폰이란 스피커의 뒷부분이 개방되어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방식으로 제작을 하게 되면 헤드폰의 음향이 외부로 새어 나가긴 하지만 헤드폰 자체의 음질은 혁신적으로 높아지게 되죠.
젠하이저의 HD 414는 워크맨의 탄생에 힘입어 천만 대가 넘게 팔리며 가장 많이 팔린 헤드폰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소니는 이후 HD 414 제품의 특허 사용료를 지불하고 MDR-3를 제작하기도 했죠.
6. 애플이 하면 뭐가 되었든 트렌드가 된다
헤드폰 말고 이어폰은 대체 언제부터 사용되었을까요? 사실 이어폰은 1920년대부터 있어 왔습니다. 하지만 음악 감상용보다는 보청기로 사용되었죠. 이러한 이어폰의 초기 쓰임새 때문에 이어폰은 보청기로 인식되었고, 사람들이 쓰기 꺼렸어요.
뿐만 아니라 이어폰 품질에도 문제가 있었어요. 1950-60년대에는 휴대용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구입하면 이어폰을 끼워 주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라디오 가격이 점점 떨어지기 시작하자, 이어폰의 생산 단가를 낮추고 한쪽만 있는 이어폰을 제공하기 시작했죠. 제품 생산도 라디오 제조회사에서 하청을 주었기 때문에 품질이 형편없었어요.
이러한 이어폰의 문제점 때문에 1990년대까지는 헤드폰을 쓰거나, 귀를 전부 덮지만 헤어밴드는 없는 이어폰(?)을 쓰는 게 영미권의 국룰이었다고 합니다. 이 이어폰의 인식을 바꾼 것이 바로 애플의 iPod입니다. 2001년 출시된 iPod은 이어폰을 기본으로 제공했는데요, 이때부터 헤드폰보다 이어폰을 더 많이 사용하게 되었다고 하죠.
알아두면 아는 척하기 좋은 사실
원래 이어폰이라는 용어는 소니가 워크맨을 발매하면서 만들어낸 상표였어요. 특허가 풀리고 여러 음향 회사에서 사용하면서, 널리 쓰이게 된 것이죠.
7. 디자인이 예쁜 적이 없었던 무선 이어폰
블루투스가 존재하지 않던 1960년대에도 무선 헤드폰이 있었습니다. 단지 라디오만 들을 수 있는 라디오 헤드폰이긴 했지만요.
블루투스를 활용한 최초의 헤드폰은 2000년 에릭슨에서 등장합니다. 에릭슨의 T36은 블루투스 기술이 탑재된 최초의 핸드폰인데요, 기본 구성품으로 블루투스 무선 헤드폰이 있었어요. 당시의 무선 헤드폰으로는 음악감상은 불가능했기 때문에 한쪽 귀에만 착용하는 업무용으로 포지셔닝했죠.
무선 이어폰의 역사에는 LG도 빼놓을 수 없는데요. 세계 최초로 넥밴드형 블루투스 이어폰을 선보인 것이죠. 이제는 아저씨의 상징이 되었지만 한때는 잘나갔고, 현재도 넥밴드형 무선 이어폰 제품은 여러 제조사에서 출시된다고 합니다.
이어폰 유닛 간의 선마저 없는 완전 무선 이어폰은 일본의 오디오 제조업체인 욘코에서 2015년에 출시한 W800BT입니다. 켜짐/꺼짐 스위치, 마이크, 그리고 볼륨 조절이 이어폰 안에 들어 있었죠. (에어팟보다 낫다?!)
하지만 어디가 최초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어요. 2016년 출시한 에어팟이 시장을 잠식했거든요.
8. 노이즈 캔슬링도 애플로 대동단결
노이즈 캔슬링 기술은 1930년대에 이미 개발되었고, 헤드폰용으로 만든 시도는 1950년대부터 있었어요. 제대로 된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은 1984년 젠하이저에서 루프트한자 항공사 파일럿을 위한 제품을 제작하면서 등장합니다. 당시 파일럿은 기내 소음때문에 난청을 겪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죠. BOSE 역시 1989년 파일럿을 위한 헤드폰을 제작합니다.
1995년 소니는 최초로 일반인을 위한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 MDR-NC10과 헤드폰 MDR-NC20을 출시했죠. 하지만 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2019년 출시된 애플의 에어팟 프로가 현재 이어폰 시장 점유율 약 25%인걸요.
원문: 사소한 것들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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