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주의 바흐 / 이훈(2006)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장영주(20)가 왜 바흐는 연주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하고 있다.
누군가가 바흐의 「소나타와 파르티다」를 왜 리코딩하지 않느냐고 물어온 적이 있다. 여섯 살 때부터 바흐를 연습했고, 무대에서 「소나타와 파르티타」를 연주한 적은 있다. 그러나 리코딩은 좀더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첼리스트 로스트로포비치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 조곡」을 예순이 넘어서길 기다려 리코딩했다. 그보다 훨씬 젊은 나로서는 좀더 기다려도 될 것 같다. (<<한겨레>>, 2001. 12. 20. http://www.hani.co.kr/section-009010000/2001/12/009010000200112192324001.html)
나는 바흐의 음악을 무척 좋아해서 “죽음은 바흐의 음악을 더는 듣지 못하는 것”(https://cafe.daum.net/ihun/in5t/11)이라고 말하는 만용을 부린 적도 있지만 완전히 문외한이다. 대가라고 해도 좋을 전문가들이 바흐를 두고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는 것에서 그의 위대한 성취를 겨우 짐작할 뿐이다. <무반주 첼로 모음곡(조곡)> 필사본 악보를 발견하고 12년 동안 날마다 연구하고 연습한 끝에 연주에 나서도 되겠다고 한 첼로의 거장 파블로 카잘스의 얘기가 그 예다.
“아버지는 나에게 처음으로 풀사이즈의 첼로를 사주셨습니다. 그 멋진 악기를 가지게 된 것이 얼마나 자랑스러웠는지 짐작할 수 없을 거예요. 그런 다음 우리는 부두 가까이에 있는 어떤 고악보서점에 들렀습니다. 나는 악보 뭉치를 뒤져보기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오래돼 변색되고 구겨진 악보 다발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것은 바흐의 무반주 첼로를 위한 모음곡이었습니다. 첼로만을 위한 곡이라니! 나는 놀라서 그걸 바라보았습니다. 첼로 독주를 위한 여섯 개의 모음곡이라고! 나는 생각했습니다. 어떤 마술과 신비가 이 언어 속에 숨겨져 있을까? (중략) 나는 그 악보가 왕관의 보석이기나 한 것처럼 단단히 움켜쥐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방에 들어가서는 그것들을 열심히 들여다보았습니다. 읽고 또 읽었어요. 그때 내 나이는 열세 살이었습니다. (중략) 그 모음곡은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었지요. 설명할 수 없는 흥분 속에서 그 곡을 연습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뒤 12년 동안 매일 그 곡을 연구하고 연습했습니다. 그래요, 12년이 지나서야 나는 그 모음곡 가운데 하나를 공개 연주회에서 연주할 만큼 용기가 생겼는데 그떼 네 나이는 이미 스물다섯 살이었어요.”(파블로 카잘스, 앨버트 칸 엮음, 김병화 옮김, 《첼리스트 카잘스, 나의 기쁨과 슬픔》, 한길아트, 2003, 63-4쪽. * 전에는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는 대목을 여기에 옮겼는데 최근(23년 10월)에 책을 읽어 봤더니 내용은 그런대로 같지만 문장은 많이 달라서 제대로 바꿨다. 서지 사항까지 밝힌 인용문마저도 출처를 확인하면서 옮겨야 한다는 점을 깨닫는다.)
카잘스는 이 곡을 발굴한 지 47년, 공개로 연주한 지 35년이 지난 1936년, 그의 나이 60세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녹음했다. 도대체 어떤 세계이길래 연주자로서는 최고의 경지에 있는 사람들이 마치 밥을 먹듯이 날마다 연습하고 연주하면서도 몇십 년이 지나야 녹음하겠다고 마음먹는 걸까?
물리적으로야 아마 같은 소리일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사람에 따라 다르게 들린다. 어디 음악만 그런가. 문학 작품도 마찬가지다. 같이 세상에 태어나 어떤 사람은 그 깊은 경지를 이해하고 어울리는 말도 하는데 나는 뭘까 하는 안타까움을 지울 수 없다. 그저 열심히 듣고 읽고 할 수밖에 없다. 이해하고자 노력하지도 않은 채 불평하는 것이야말로 도둑의 심보다.(2023. 10. 16. 고침.)
첫댓글 첼리스트들에게 6개의 모음곡은 곧바로 그들의 레퍼토리에서 알파와 오메가이자 통과의례, 에베레스트산 같은 존재가 되었다.
에릭 시블린, 정지현 옮김,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찾아서》, 21세기북스, 2017.
"지난 80년 동안 나는 하루를 똑같은 방식으로 시작했습니다. 기계적인 일과가 아니라 일상생활에 필수적인 어떤 것이에요. 아침에 일어나면 피아노로 가서 바흐의 <프렐류드와 푸가> 중 두 곡을 칩니다. 그것 말고 다른 방식으로 일과를 시작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어요. 이것은 집에 내리는 일종의 축복 같은 것이지요. 그러나 그런 의미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이 세계를 재발견하는 것이고 내가 그 세계의 일부분이라는 데서 오는 기쁨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것은 생명의 기적에 대한 깨달음과 인간으로 존재한다는 것에서 느끼는 믿을 수 없는 경이로움으로 나를 가득 채워줍니다. 내가 들어온 이래 그 음악은 한 번도 똑같은 적이 없었어요. 절대로 똑같지 않아요. 매일매일 그것은 무언가 더 새롭고 멋지고 믿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바흐입니다. 자연도 그렇지만 바흐는 하나의 기적이에요."
파블로 카잘스, 앨버트 칸 엮음, 김병화 옮김, 《첼리스트 카잘스, 나의 기쁨과 슬픔》, 한길아트, 2003, 29-3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