款驅造化入纖毫 (관구조화입섬호)
任是姸媸不可悲 (임시연치불가비)
(관이 조화를 구사해 가는 털을 드니
예쁘거나 추하거나 슬퍼할 수 없네.)
(여기서 관(款)은 관단마로 걸음이 느린 조랑말을 뜻함)
신윤복이 자신을 관단마에 비유하여
'잘 하지는 못하지만 붓을 들어 그림을 그리니
그림이 좋던 나쁘던 슬퍼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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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 고을에 우열을 가릴 수 없는 부잣집이 둘 있었으니 한집은 홍초시, 다른 한집은 곽진사였다.
두사람 모두 부모를 잘 만나 물려받은 논밭으로 천석꾼 부자가 되었는데 짜 맞춘 듯이 둘 다 개차반이다.
부친이 비슷한 시기에 황천길로 가자 탈상도 하기 전에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두사람 모두 개망나니짓을 하지만 길은 달랐다.
곽진사는 노름꾼이고 홍초시는 오입쟁이였다.
곽진사의 노름꾼 기질은 어릴 때부터 나타나, 모든 게 내기 대상이었다.
서당 다닐 때도
“석두가 오늘 훈장님 담뱃대로 알밤을 맞을까 안 맞을까.
내기할 사람 일전씩 걸어.”
풍뎅이 목을 비틀어 마룻바닥에 놓고 누구 풍뎅이가 오래 도는지 내기를 하고, 딱지치기·구슬치기도 그냥 하는 법이 없더니, 머리가 굵어지자 저녁마다 투전판을 돌기 시작했다.
홍초시의 엽색 편력도 화려하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이 물동이 이고 가는 처녀 치마를 걷어 올리고, 여름밤이면 개울가 소나무 위에 몸을 숨겨 동네 여자들이 멱 감는 모습을 보고, 장가가기 바로 전 해인 열두살 땐 마흔이 넘은 찬모방을 들락거렸다.
노름꾼, 오입쟁이는 부친의 눈치를 살펴야 했는데 이제 잔소리꾼들이 이승을 하직했으니 그들 세상이 된 것이다.
더구나 노름 밑천, 엽색 자금까지 두둑이 남겨 두고 갔으니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노름꾼 곽진사는 울면서 바짓가랑이를 잡는 마누라를 뿌리치고 문전옥답 팔아 치운 돈보따리를 싸 들고 김천으로 원정도박을 갔다.
오입쟁이 홍초시는 어린 기생 머리를 얹어 주고 논문서를 기생 어미에게 맡긴 뒤 기생과 말을 타고 금강산 유람을 갔다.
동네 노인들이 느티나무 아래 모였다 하면 화두는 언제나 곽진사와 홍초시였다.
“어느 집이 더 빨리 망할지 알 길은 없지만 두집 모두 망하는 건 틀림없는 일이야.”
“살림을 다 털어먹고 적수공권이 되면 두사람은 어떻게 될까?”
의견들이 분분했는데 길 가다 땀을 닦으며 느티나무 아래서 쉬던 땡추가 입을 열었다.
“노름판에서 문전옥답이 다 날아가도 노름꾼 마누라는 잠을 자지만 다른 년과 붙어 자는 오입쟁이의 마누라는 잠 한숨 못 자는 법이여.”
노름꾼 곽진사는 밤새 돈을 다 잃어도 터덜터덜 집에 와서 마누라 고쟁이를 벗기고 밤일을 치렀다.
십년이 흐르자 노인들 예측대로 두집 모두 거덜이 났다.
그러나 땡추의 예언대로 두망나니의 처지는 달랐다.
노름꾼 곽진사 마누라는 주막을 차려 밥 굶을 걱정은 면해 곽진사는 마고자를 입고 동네 마실도 다니는데...
오입쟁이 홍초시는 돈이 떨어지자 셋째첩, 둘째첩, 첫째첩으로부터 차례대로 문전박대를 당하더니 마누라한테도 쫓겨나 기생집 하인 노릇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