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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예수 그리스도의 태어나심은 이러하다.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나서, 같이 살기 전에,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한 사실이 드러났다.
19.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므로, 약혼자에게 부끄러움을 주지 않으려고, 가만히 파혼하려 하였다.(마1:18,19)
18 This was how the birth of Jesus Christ took place. His mother Mary was engaged to Joseph, but before they were married, she found out that she was going to have a baby by the Holy Spirit.
19 Joseph was a man who always did what was right, but he did not want to disgrace Mary publicly; so he made plans to break the engagement privately.
예수님이 오신 성탄절입니다.
그 예수님은 어떤 분이셨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말씀 한 마디로 나병 환자를 고치셨습니다.
물 위를 걷기도 하셨습니다.
한 명의 도시락으로 한 이만 되는 사람을 먹이셨습니다.
물론 주님의 탄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은 처녀의 몸에서 탄생하셨습니다.
생각도 못 할 일들이 주님 옆에서는 줄줄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이런 일들이 무엇을 뜻할까요?
사람들은 이런 일들을 보면서 예수님을 믿는 것이 세상 더 보장받는 길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암 떨어져라 하면 암 안 걸리고 살고
돈 벌어라 하면 부자로 살고.......
얼마나 편리한가!
하지만 그 정반대의 뜻을 가졌을 것입니다.
세상 나라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다른 나라 하나님의 나라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나라를 예수님을 통해 정확히 보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 세상 우리 삶을 두고 나그네라고 합니다.
아무리 화려하게 살아도 그것은 허무한 그림자에 불과합니다.
우리의 본향은 이 땅이 아닌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이 땅을 영원한 본향으로 여기며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그 하나님의 나라를 이 세상 나라에서 보이셨던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우리들은 그 하나님의 나라에서 쫓겨난 경험이 있습니다.
그 이유로 주님께서 죽어도 사는 길을 여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교회의 존재 이유도 그것입니다.
교회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는 가는 길을 알려 주는 곳입니다.
그런데 교회는 무슨 방법으로 이 땅과 하나님 나라를 연결시킬까요?
여러분은 말씀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길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미친 바다 위에서 베드로는 빠져 죽을 줄 알았습니다.
폭우 치는 바다 위의 쪽배를 생각해 봅시다.
그것이 발랑 뒤집어지면 그만입니다.
무서워서 떨고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그 바다 위를 걸어오셨습니다.
얼마나 대조됩니까?
베드로는 배를 타고도 죽을까 보아 떨고 있는데 예수님은 그 광풍을 발로 딛고 오셨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부탁했습니다.
예수님 나도 예수님의 경험을 하고 싶어요.
그러자 예수님께서 단 한마디 하셨습니다.
오라!
그러자 베드로가 물 위를 걷기 시작했습니다.
교회는 바로 이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 한마디!
저는 강대상에서 바로 이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게 하는 것입니다.
다른 것이 아닙니다.
목사라고 제 눈 앞에 하나님의 나라가 선히 보이는 것으로 오해하시면 안 됩니다.
저는 일생에 딱 한 번 귀신을 본 적이 있습니다.
아마 신학을 하기 얼마 전이었을 것입니다.
그 때 저는 한 달여를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이상한 일입니다.
저에게 그런 일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머리를 베개에 대면 그대로 잠이 드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도대체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런 어느 날 시커먼 그림자가 기름처럼 스며들며 내 창문으로 넘어오는 것을 제가 눈으로 보았습니다.
그것을 보는 순간입니다.
저는 저 위에서 잠자는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는데 제가 잠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그것을 향해 소리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가라!
그랬더니 그 검은 물체가 창문으로 맥없이 물러가는 것입니다.
다음부터 편히 잠을 잤습니다.
그 사건 전에는 예수님의 이름을 성경책에서 읽었을 뿐이었습니다.
남이 하는 간증에 등장하는 기이한 주문 정도로 들어왔습니다.
당시 저에게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아 이 말은 너무 유치하게 들렸습니다.
그랬는데 그 날 처음 제가 경험한 것입니다.
제 입에서 튀어나온 예수님의 이름이 정말 예수님이 되는 경험입니다.
예수님 앞에서 귀신이 꼼짝 못 하고 튀어나갔습니다.
그 한마디가 예수님이셨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그 일을 경험하고 있는 중입니다.
제가 강대상에서 외치는 말씀들이 예수님이 되셔서 여러분을 뜯어 고치시는 중입니다.
말씀이 곧 예수님이십니다.
모든 교회가 이 시간에 바로 그 말씀을 경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씀이신 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 때 예수님은 아주 신생아이셨습니다.
시므온은 이 신생아 예수님을 보며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29. "주님, 이제 주께서는 주의 말씀을 따라, 이 종이 세상에서 평안히 떠나갈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30.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습니다.(눅2:29,30)
시므온은 이 아기 예수님을 보더니 구원을 보았다고 고백했습니다.
아기 예수님이 곧 구원입니다.(예수=구원)
그 구원을 보았으니 이 세상에서 다른 것을 볼 것이 더 이상 없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이제 세상 떠나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갓 태어나신 예수님께서 성장하셔서 십자가를 지시고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신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 자체가 구원이십니다.
시므온의 눈에 그랬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예수님이시며 예수님을 곧 그리스도이며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모두 다 같은 말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것은 하나님 나라 영생을 경험하는 일입니다.
이 세상 나라에 예수님 즉 하나님의 나라가 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주님의 오심은 아주 특별했습니다.
성경은 지금 예수님이 오신 일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유대인은 1년 정도의 약혼 기간을 지나서 결혼하게 됩니다.
약혼이란 법적으로는 결혼을 한 상태이지만 실제 혼인한 상태를 이르는 것이 아닙니다.
결혼을 약속한 상태입니다.
1년이 지나야 같이 살 것입니다.
같이 산 적이 없으니 마리아가 아기를 가질 수 없는 바로 이 약혼 기간에 마리아가 아기를 가진 것입니다.
즉 처녀가 아기를 가진 것입니다.
이런 경우 심각한 문제가 생깁니다.
18. 예수 그리스도의 태어나심은 이러하다.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나서, 같이 살기 전에,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한 사실이 드러났다.
18 This was how the birth of Jesus Christ took place. His mother Mary was engaged to Joseph, but before they were married, she found out that she was going to have a baby by the Holy Spirit.
마리아가 돌에 맞아 죽을 일이 생긴 것입니다.
유대의 법은 이런 성적 문제에 대해 아주 엄격합니다.
그리스도의 탄생 그 가장 성스러운 일은 가장 불경한 일로 보여졌습니다.
물론입니다.
그 일로 당황한 사람은 당연히 마리아 본인입니다.
남자를 모르는 이 여인의 배가 불러오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인류 역사에 그 누구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일이 이 성결한 처녀에게 일어난 것입니다.
그런데 변명할 여지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마리아는 약혼자 요셉에게 자신의 일을 알려야 했습니다.
아주 까무라칠 일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이 여인의 죽을 것 같은 경험의 과정을 거치고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18. 예수 그리스도의 태어나심은 이러하다.
18 This was how the birth of Jesus Christ took place.
하나님의 일은 이런 과정을 거쳐야 했던 것입니다.
즉 어떻게 예수님의 탄생이 일어났는지(how the birth of Jesus Christ took place) 그 과정에서 마리아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던 것입니다.
마리아가 그 일을 감당했습니다.
실은 교회 하나가 이 달내 지역에 서는 일도 마리아와 같은 한 사람의 역할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설명할 수도 없는 희생을 할 사람 말입니다.
이 정결한 여인에게 비웃음거리가 될 일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돌에 맞아 죽을 일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2,000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마리아에게 일어난 이 일은 사람들에게 비웃음의 내용이 되고 있습니다.
처녀가 예를 낳아!
그러나 우리는 지금 처녀가 아기를 낳았다는 사실을 믿는 사람으로 여기 모인 것입니다.
세상은 비웃음을 것입니다.
문제가 된 것은 또 그의 남편 요셉이었습니다.
요셉은 이 난감한 일을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성경은 이 사람 요셉을 두고 의로운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19.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므로,
19 Joseph was a man who always did what was right,
성경이 그를 의로운 사람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는 세상과 다른 의로운 행동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보수적인 유대인입니다.
그는 엄격한 유대의 법을 알고 있습니다.
요셉은 이 불경한 여인을 데리고 올 수 없었습니다.
이 여인을 데려와서 사는 것은 사람들의 비웃음거리가 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마리아가 아니라 요셉을 의심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요셉을 자신의 약혼 기간을 엄수 하지 못한 불경한 사람으로 볼 것입니다.
이것만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문자적으로 사람들이 하는 대로 간단하게 법을 적용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요셉은 차마 그 일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요셉에게 당시의 종교적 문화를 잔인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가지고 고민한 것입니다.
이 고민이 없었더라면 마리아는 돌에 맞아 죽을 것입니다.
덩달아 그리스도도 돌에 맞아 죽고 말았을 것입니다.
요셉은 그 일을 차마 못 하겠다고 결론을 내린 것입니다.
왜냐하면 마리아를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19. 약혼자에게 부끄러움을 주지 않으려고, 가만히 파혼하려 하였다.
19 but he did not want to disgrace Mary publicly; so he made plans to break the engagement privately.
문자적으로 법을 어기는 일은 하나님을 부인하는 일입니다.
그는 신학적인 싸움을 했습니다.
또 이 사랑하는 여인에게 배신당한 것입니다.
감정적인 싸움을 했습니다.
사람이 세상 모든 비밀을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후일에는 성령을 통한 잉태를 알고 그는 마굿간에까지 또 애급까지 이 아이를 들고 피신을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을 의심 없이 믿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는 그가 알지 못했던 하나님의 뜻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더 깊이 생각했으며 그는 겸손했습니다.
예수님은 사랑을 실천하시는 일에 요셉보다도 더 적극적이셨습니다.
아예 불경한 현장범이 예수님 앞에 끌려왔을 때도 법을 문자적으로 지킨 것이 아닙니다.
죄가 있음에도 사랑을 실천하셨습니다.
5. 모세는 율법에, 이런 여자를 돌로 쳐서 죽이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였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이 일을 놓고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6. 그들이 이렇게 말한 것은, 예수를 시험하여 보고 고소할 구실을 찾으려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몸을 굽혀서,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를 쓰셨다.
7. 그들이 다그쳐 물으니, 예수께서 몸을 일으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가운데서 죄가 없는 사람이 먼저 이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요8:5-7)
악당들은 예수님께 나아갈 때 엄포부터 놓았습니다.
법 자체를 문자적으로 지키라는 엄포입니다.
“모세가 이런 명령을 내렸다.!”
법을 내세우며 보복적으로 압수수색을 하는 권력자
범죄 행위가 있어도 증거의 위법성을 내세우며 제 편의 범죄 행위를 문제 삼지 않는 권력자
증거를 없애버리는 권력자
그들은 법을 가지고 더러운 장난질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앙은 잔인하게 법을 적용하는 인간과의 싸움입니다.
2. 사람들은 예수를 고발하려고, 예수께서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쳐 주시는지를 보려고, 예수를 지켜 보고 있었다.
3. 예수께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일어나서 가운데로 나오너라" 하고 말씀하셨다.
4. 그리고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안식일에 선한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 악한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옳으냐? 죽이는 것이 옳으냐?" 그들은 잠잠하였다.(막3:2-4)
법을 정확하게 지킴으로 법의 정신을 피해 가는 잔인한 인간들!
지뢰처럼 묻힌 법망을 피해서 사랑의 법 정신을 지키는 예수님!
성경은 요셉을 통해 의란 무엇인지부터 보이신 것입니다.
요셉은 마리아를 조용히 불러서 남모르게 파혼할 생각이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의는 곧 사랑입니다.
제가 신대원 때 한경직 목사와 토론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학생들은 그 분이 당시 군사독재에 동조하는 문제를 두고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 때 그 분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랑과 정의의 선택이 요구될 때 자신은 사랑에 기운다는 것입니다.
학생들의 데모에 동조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세상의 정의를 따르면 그럴듯하지만 그 말이 아닙니다.
그 목사의 말은 성경에서는 대표되는 거짓말입니다.
성경에서 사랑과 하나님의 의란 대립 개념이 아닙니다.
성경은 문자적으로 법을 지키는 일을 피한 요셉을 두고 의롭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그렇게 처녀로써 잉태한 마리아를 살리려 했습니다.
성경의 의란 곧 사랑입니다.
18. 예수 그리스도의 태어나심은 이러하다.
18 This was how the birth of Jesus Christ took place.
하나님의 일은 이런 과정을 거치셨습니다.
어떻게 예수님의 탄생이 일어났는지(how the birth of Jesus Christ took place) 그 과정에서 마리아에 이어서 요셉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던 것입니다.
요셉의 의가 없었더라면 예수님은 마리아와 함께 돌에 맞아 죽으셨을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도 요셉과 같은 의가 넘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