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이환범기자] 두산 좌완투수 유희관(30) 만큼 팬층과 외부의 평가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투수도 없다. 4년연속 두자릿수 승수라는 금자탑을 쌓았음에도 불구하고 '정말 대단하다'는 평가와 '압도적인 맛이 없다. 이제는 터질 때가 됐다'는 부정적인 시선이 여전히 공존한다. 느린 공과 운동선수 같지 않은 외모 등이 편견을 부추키는 가장 큰 이유다. 하지만 유희관은 누가 뭐라고 해도 최근 4년간 국내 투수 중 최다승을 거둔 투수다. 국내 최고의 투수라고 말할 수는 없어도 영양가면에서는 최고의 성적을 올렸다.
상무에서 군복무를 마치고 복귀한 2013년 선발로 전환해 10승 고지를 밟은 유희관은 이듬해 12승을 거뒀고, 지난해에는 18승으로 국내선수 최다승을 기록하기도 했다. 올해도 17일 현재 12승을 기록중이다. 4년 통산 52승25패로 국내선수와 외국인선수를 통틀어 가장 많은 승수를 올렸다.
국내 최고 좌완투수로 평가받는 국가대표 좌완 투톱 SK 김광현이 41승, KIA 양현종이 46승을 거둔 것과 비교해도 유희관이 더 꾸준한 모습을 보여줬다. 국내 최고 우완 삼성 윤성환의 51승, 최고의 외국인투수로 평가받는 더스틴 니퍼트(47승) 보다도 많다.
14일 잠실구장에서 만난 유희관은 최근 4년간 최다승 투수라는 말에 "그런 대단한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자부심을 느낀다. 그 선수들에 버금가게 더 분발해야겠다"고 소감을 말한 뒤 "나는 공이 느리기 때문에 제구력으로 승부해야한다. 하지만 느린 공으로도 이런 성적을 올렸다는 자체는 인정받고 싶다"고 말했다.
최고구속 131킬로의 느린 공은 150킬로를 팡팡 던지는 김광현 양현종 등의 구위에 못 미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최대한 공을 끌고 나와 타자 앞에서 던지는 듯한 독특한 투구폼, 정확한 제구력에서 여타의 투수보다 우위에 있다. 무엇보다 4년간 부상 없이 꾸준히 선발 로테이션을 지키고있는 것도 강점이다. 올시즌 각 팀의 내로라하는 투수들을 봐도 부상 없이 시즌을 소화하고 있는 선수는 거의 없다. 투수를 운용하는 감독과 팀의 입장에서는 가장 고맙고 든든한 투수가 유희관이다.
유희관은 올 시즌 출발은 좋지 않았다. 첫 두 경기에서 뭇매를 맞으며 불안하게 출발했다. 지난해 18승을 거둔 투수임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구종이 다 노출되고 한계가 왔다'도 평가도 이어졌다. 그러나 유희관이 이내 자신의 모습을 되찾으며 승수쌓기에 돌입했다. 7월 7일 넥센전 승리후 아홉수에 걸려 주춤했지만 8월 2일 LG전에서 7이닝 1실점으로 10승을 거둔 이후 13일 넥센전 8이닝 무실점 승리까지 3연승 중이다.
유희관이 7월 7일 넥센전에서 심판의 볼 판정에 아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제공 | 스포츠서울
유희관은 "10승을 하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며 "사실 9승 이후 3연패를 할 땐 내 공에 자신감도 없고 위축됐다.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다시 내 공을 믿고 공격적으로 던져보자고 마음을 먹은 후 제대로 공이 들어가기 시작했다"고 10승 달성 이후 연승 비결을 설명했다.
최근 4년간 최다승을 달성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저평가된 것 같다는 말에 유희관은 "공이 느리기 때문인 것 같다. 어쩌다 못 던지는 날이면 여전히 팬들의 비난이 들끓기도 하고 욕도 바가지로 먹기도 하지만 크게 게의치 않는다. 그래도 초반보다는 그런 안 좋은 평가들이 훨씬 줄어들었다"고 말하며 호탕하게 웃었다.
유희관은 말을 잘 하는 선수로도 유명하다. 경기 후 그라운드 인터뷰 등에서 조리 있고 재밌는 말로 웃음꽃을 자아내기도 한다. 프로야구 선수로는 운동능력 이외에 인터뷰를 잘 하는 것도 큰 장점인데 이게 오히려 독으로 작용할 때도 있다. 유희관은 "말을 많이 하는 나의 성향이 일부 팬들에게는 별로 안 좋게 보이는 것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모든 팬들이 나를 좋아하게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야구를 더 잘 하는 길 밖에 없다"고말하며 한숨을 쉬었다.
유희관(왼쪽)이 7일 넥센전에서 승리한 뒤 포수 양의지와 함께 환하게 웃고 있다. 제공 |스포츠서울
4년 연속 두자릿수 승수를 달성한 유희관에게는 더 큰 꿈이 있다. 포스트시즌에서 이전보다 더 임팩트 있는 경기를 하고 싶고 내년에 열리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태극마크를 달고 나가고 싶기도 하다.
유희관은 "국가대표는 운동선수라면 누구나 한 번씩은 되고 싶은 꿈이다. 이렇게 느린 공을 가진 선수가 국가대표에 과연 뽑힐 수 있을 지 동료들도 궁금해한다. 국가대표로 선발된다면 영광이다. 하지만 지금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고, 팀이 우선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유희관은 "시즌 마무리를 잘 하고 포스트시즌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더 잘 하고 싶다"고 강한 의욕을 보였다. 풀 타임 첫 해인 2013년엔 한국시리즈까지 뛰었지만 호투하고도 승리와 인연을 맺지 못했고, 지난해에는 KS 5차전에서 호투하며 승리투수가 됐지만 이전 경기에서는 위력을 발휘하지 못해 아쉬움이 컸다.
지난 2009년 두산에 입단한 유희관은 프로 8년, 풀타임 선발 4년째다. '느림의 미학'으로 국내최고 선발투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유희관의 야구인생은 그의 공처럼 천천히, 그러나 꾸준하고 안정적으로 최고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