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중봉조헌문학상
팔월의 당신 / 최형만
서쪽 하늘이 한 시절을 떨어뜨려도
눕지 못한 갈대처럼
활을 잡으면 팽팽해지는 불꽃
팔월의 꽃도 몽땅 붉어지고 있다
발목부터 올라온 뿌리의 함성은
어디로 흘러갔을까
붉은 깃발에 꽃잎 날리면
꽃대 밀어 올린 그 힘으로 돌아오라고
사람들은 북을 두드리고 징을 친다
밭을 일구던 어미의 가슴이 납작해질 때
갓난이도 칼날 같은 허기를 견뎠을까
한 번의 옹알이도 없는 밤마다
오래된 길목에 서면
무명으로 살다간 한때가 보인다
비린 땅을 지키러 눈 뜨면
초록으로 일어서던 임진의 여름
칼의 무게를 견딘 계절이 지던 날
투구와 휘장은 어느 고개를 넘어갔을까
피 냄새를 맡던 새들의 날갯짓도
숨은 바람에 만장처럼 펄럭이고 있다
허공을 달군 쇳내에 벼려지는 팔월
그을린 당신이 먼빛으로 오는 중이다
《 심사평 》
제14회 중봉조헌문학상에는 시 716편과 수필 211편이 도착하였다. 모두 246명의 문사(文士)들이 참여해 열띤 경합을 벌였다. 전국적인 관심이다. 경향각지에서 빠짐없이 작품을 보내주었다. 올해에 해외에서의 참여는 없었다. 아쉽긴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으로 전 세계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분명한 사실은 중봉문학상이 전국적으로 주목받는 문학상이 되었다는 점이다. 당초 중봉 선생의 이름자라도 널리 확산하는 계기를 만들자던 의도가 달성되고 있어서 다행이라는 기쁨과 함께 무거운 책임감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중봉문학상에 응모하는 작품의 질의 크기는 작품의 양을 압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것 하나 쉽게 보아 넘길 작품이 없었다.
제14회 중봉조헌문학상 응모작품 중에는 특기할 만한 것은 연령대의 폭이 매우 넓게 분포했다는 점이다. 초등학생이 응모한 것도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 여기고 있다. 그만큼 소재와 내용이 다양해졌다는 의미이다.
또 동시도 몇 번 응모하였다. 주최 측에서 제시한 범위 안에서 장르가 확장되고 있는 것은 초등학생이 응모한 것만큼 의미 있는 일로 여기고 있다. 후술하겠지만, 중봉문학상도 규모의 확장과 함께 응모 장르의 칸막이도 넘어야 할 때가 아닌가 하는 심사위원들의 의견이 있었다.
예선을 거쳐 본선에 올라온 작품은 시와 수필, 각 4편씩이다. 여느 해 3편씩 본심에 올린 것을 감안하면, 작품들 간 경합이 얼마나 치열했는가를 단적으로 알 수 있다. 접수순서대로 나열하면, 시에서는 최형만의 <팔월의 당신>, 최동문의 <홀로, 도시를 건너는 법>, 조영실의 <호고-의병일기>, 윤빛나의 <고등어>이다.
수필에서는 박수현의 <유쾌한 간병인>, 배정순의 <꿀재>, 정석대의 <대밭띠>, 최세환의 <누름돌>이다. 모두 상당한 수준을 보여주는 작품들로 예리한 문제의식과 함께 형식의 새로움과 세밀함을 드러내고 있었다. 오랜 격론과 숙고 끝에 최종 선정한 작품은 대상으로 최형만의 시 <팔월의 당신>을 선정하였고, 우수상으로는 최세환의 <누름돌>(수필)과 조영실의 <호고-의병일기>(시)를 뽑았다.
최형만의 <팔월의 당신>은 임진왜란 기간 가장 뜨거운 여름 중 하나였던 중봉 조헌의 8월을 반어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1592년 8월, 중봉은 청주성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으나 금산전투에서 장렬하게 순절하게 되는데, 그 과정을 8월의 강렬한 빛과 열로 그려내고 있다.
특히, “그을린 당신이 먼빛으로 오는 중”은 중봉의 순절과 전쟁의 승리 혹은 더 나아가 현재까지의 역사적 기억이 교차하는 중의적인 장면이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중첩되어 현재화되고 있는 것이다. 최형만이 제출한 5편이 모두 수작(秀作)이라는 점도 대상으로 선정하는데 주저하지 않은 이유가 되었다.
우수상으로는 최세환의 <누름돌>(수필)과 조영실의 <호고-의병일기>(시)를 뽑았다. 최세환의 <누름돌>에서 주목한 것은 수필이 가지는 미덕인 특수한 것의 일반화이다. 그는 누름돌이라는 특별한 대상을 자신만의 관점으로 보편적인 삶(생활)의 영역 안에서 펼쳐내고 있어 큰 공감으로 획득하고 있다. 그러나 다소 산만, 장황한 전개는 아쉬움으로 남는다.
조영실의 <호고-의병일기>는 제목 그대로 무명의 의병들의 치열한 삶을 매우 격렬한 어조로 풀어내고 있다. 의병에 대한 형상화에서 일반적으로 드러나는 상투성도 북소리가 마치 바로 옆에서 울려 퍼지는 듯한 숨 막히는 긴장으로 상쇄하고 있는 작품이다.
이번 제14회 ‘중봉조헌문학상’에 참여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앞으로도 ‘중봉조헌문학상’에 대한 지속적인 애정과 관심을 부탁드리며, 문운이 늘 함께 하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