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병제1사단은 최전방에 위치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1* 연대(애칭 혹은 별칭 썽용 연대)가 적과 가장 가까이서 대치하고 있는 줄 안다.
그 연대에 오늘 안보 강연을 다녀왔다. 말이 '安保'지 '안전 생활'을 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를 장병들에게 들려 주는 것이다. 물론 노래가 겯들여지고 우스갯소리도 섞인다.
여단장 김** 대령과 의기투합해서 낳은 결과가 오늘의 강연이다. 나는 아침 여덟 시 조금 넘어 집을 나서서 서울 행 버스를 탔다. 서울역에서 문산까지는 경의중앙선이 있어 가기는 수월했다. 연대 정훈과장 김진규 대위가 마중을 나왔다.
연대 본부에 도착하니 그리운 김** 연대장이 반겨 맞는다. 무조건 포옹--! 점심 시간이 12시부터인데 시침은 그걸 제법 넘기고 었었다. 모두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부연대장과 각 과장(중령 소령)들과 베이블에 앉았다. 그 밥맛을 나는 표현하기 역부족. 내가 여태 먹은 접심 중에서 가장 최고! 26사단 사령부 간부 식당에서의 경험과 비슷했다. 여군 소령도 과장이기 때문에 합석했는데 여군들이 군 전투력 증강에 한몫한다는 걸 다시 한 번 느꼈다.
이윽고 연대장 차를 타고 교육장으로 이동! 연대장차는 방탄차? 연대 본부 교회 성전이 교육장이었다, 한데 이상하다? 장병들이 마구 환호성을 질러대는 것이다. 정말 야단이다. 사전 교육이 있었는지 모른다. 하여튼 듣는 이가 나 자신 아니라도 흥분했으리라. 나를 그렇게 맞이하는데 내가 어찌 화답이 없겠는가? 나는 강연이 시작되기도 전에 '진짜사나이'를 같이 부르자고 부추겼다. 사나이로 태어나서--.
그러고 나서 애국가를 서서 부르고 지휘는 내가 했다. 先唱도 겸했는데, 입대 일자가 얼마 안 되는 병사 하나로 하여금 나와 나란히 서도록 했다. 그러고 나서 한국전쟁 때의 悲話(혹은 秘話)를 들려 주고 이런저런 노래도 보탰다. '목포의 눈물', '뜨거운 안녕'--.
<효경>의 身體髮膚는 受之父母 不敢毁傷이 孝之始也--.이는 필수 덕목이다. 설명을 하고 손가락 하나 다치지 말자고 강조했다. 물론 전투라면 목숨도 바친다!
나는 너무 행복했다. 아편을 맞으면 그럴까? 길길이 뛰고 야단이 났으니 노병을 장병들이 이상하다 했을까? 나는 괘념치 않고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막춤' 일보 전까지 갔다. 하지만 시간이 되어 교육은 마쳐야만 했다. 시종일관 경청하던 어느 과장(소령)이 어느새 내 앞에서 구령을 붙인다.
"부대 차렷!"
나는 하사 모자를 고쳐 썼다. 소령이 다시 부르짖는다.
"전진! 교육 끝"
하사인 내가 답한다.
"전진, 쉬엇!"
연대장이 방탄차로 문산 역까지 바래다 주겠단다. 과장과 주임원사가 큰소리로 경례, 전진!
그렇게 헤어졌다 12킬로그램의 책은 그 자리에서 전했었고, 대신 나는 쌍용 연대 배지와 코인을 받았으니, 그야말로 자랑거리가 생겼다. 내려오는 걸음은 깃털처럼 가벼웠다. 정훈과장이 카톡으로 보내 준 사진을 여기저기 보냈다.
내 얼굴을 보더니 아내는 덩달아 기뻐했다. 아침보다 더 건강한 모습으로 귀가해서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사진을 보고)
"당신 뱃살 좀 빼요. 그대로 두었다가는 병 걸리기 삽상입니다. 혈압이라도 높아 누워 있다고 생각해 봐요. 혈압이 문제가 아니라, 군대 못 가는 게 억울해 죽을 것 같아요, "(웃음)
아닌 게 아니라 배가 부르다. 빼야 한다. 시한은 7월 8일, 내 소설집 출판기념회가 열리는 날이다. 자니리 가수와 같이 '뜨거운 안녕'을 부르기로 했는데, 오늘 한 戰友가 가세(?)하기로 했다. 어느 중대장이다. 내일부터 그는 아마 '뜨거운 안녕'을 연습하겠지.
나는 군 안보 강사로 살아남기 위해서도 뱃살부터 빼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