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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도시에는 나의 백성이 많다!
사도행전 18:5-11 / 계강현 목사
가정교회는 주님의 지상명령에 따라 영혼 구원, 제자 만들어 신약교회를 회복하고 하나님 나라 참 부흥을 이룸으로,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어 드리는 성경적인 교회다. 한국교회가 제자훈련으로 성경공부를 많이 시켰는데, 정작 제자가 되지 못한 것은 비신 영혼구원에 집중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할 수 있다. 지상명령의 네 동사 중에서 지키도록 가르쳐서 제자를 만들라(명령형 본 동사)는 말씀은 잘 붙잡았는데, 가서 세례를 주고를 꽉 붙잡지 못한 것이다. 왜냐하면 제자가 할 우선순위는 영혼 구원하는 일이고, 영혼 구원하는 과정 가운데 예수님의 사역과 삶을 배우고 전수하는 진정한 제자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영혼 구원하는 전도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단박에 전도할 대상이 없다고 반응한다. 나보다 다 잘 살고, 나보다 학력도 더 높고, 나보다 더 행복한 거 같으니, 전도할 대상이 없단 얘기다. 여러분, 그래봐야 예수 믿는 우리는 천국에 가지만, 예수 안 믿는 저들은 지옥에 갈 뿐이다. 살아있는 것 같으나 영혼이 죽은 자들이기에 반드시 구원해야 할 불쌍한 대상들이다.
그런데도 막상 전도하려 하면 두렵고 어렵다. 사실 바울사도조차 그랬다. 오늘 본문 행 18:1부터 보니까 바울이 전도여행을 하면서 그리스 아테네 시를 떠나서 고린도 시로 건너왔다. 그때에 동역자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니아에서 내려와 바울과 합류하게 되었다. 바울은 힘을 얻어서 실라와 디모데와 함께 고린도 시에 사는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힘을 다해 전했다. “예수가 우리가 기다리던 구원자,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밝히 전했다. 그러나 이 복음을 들은 유대인들은 오히려 바울 일행을 대적하고 훼방하고 괴롭혔다. 이때 바울은 옷을 털어 버리면서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기로 한다. 그리고는 회당 옆에 사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유대교를 열심히 믿고 있던 디디오 유스도의 집에 가서 그들 가족에게 복음을 전하니, 그와 온 집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 바울은 그 집에서 유하며 복음을 전했는데, 바로 옆에 회당에 회당장 그리스보가 믿게 되었고 고린도 사람들도 많이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았다.
그러나 바울 주위에는 여전히 자신을 반대하고 훼방하는 유대인들이 있었다. 또 복음을 거절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고린도 사람들도 있었다. 고린도는 그리스의 항구도시,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 신전이 언덕에 자리하고 있는 곳이다. 아주 성적으로 문란했기에 옛날에는 욕할 때, “그 놈, 고린도에서 온 놈 같다.” 그러면 그게 욕이었다. 성적으로 문란한 사람을 표현할 때 “고린도인 같다.”(코린토티조마이)고 했다. 고린도는 사랑의 신 비너스를 섬겼기 때문에 신전에 가면 공창, 남창들이 있다. 그들과 몸을 섞으면 영을 받고 능력을 받는다 생각하고 음행을 버젓이 저질렀으니 얼마나 음란했겠는가? 여러분이라면 이런 도시 안에 예수 믿을 사람이 있다고 느끼겠나? 더 이상 복음을 받아들인 만한 사람이 없는 것 같아 보였다. 또 자신을 반대하고 방해하는 자들을 생각하면 복음 전할 용기가 사라지고 두려워지기조차 했다. 고린도 시에서 전도하기를 그만 두고 다른 곳으로 갈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몸도 지치고 마음은 무겁고 두려웠다.
그때 밤에 환상 가운데, 주님이 바울에게 나타나셨다. 말씀하시길, vv9-10, “무서워하지 말아라. 잠자코 있지 말고, 끊임없이 말하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아무도 너에게 손을 대어 해하지 못할 것이다. 이 도시에는 나의 백성이 많다.” 바울사도도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다. 무서워하지 않았는데, 주님이 ‘무서워하지 말아라.’ 그랬겠냐? 계속 전하고 있는데, 주님이 ‘잠자코 있지 말고 끊임없이 말하여라.’ 그랬겠냐? 무서워하고 침묵하려고 했기 때문에 이렇게 말씀하신 거다. ‘이 도시에는 나의 백성이 많다.’는 주님의 말씀은 우리에게도 고무적이지 않나? 바울 사도는 이 말씀을 듣는 순간 두려움이 물러가고 용기가 솟았다. 그때로부터 일 년 육 개월 동안 고린도 시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가르쳤다. 주님이 바울에게 말씀한 ‘이 도시에는 나의 백성이 많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생각해보면서 은혜 나누자.
1. 전도는 주님이 자기 백성을 찾는 일에 협력하는 것이다.
바울사도가 전도하는 데 있어서 힘이 들고 계속해서 방해하는 유대인들 때문에 두려운 마음이 잠시 들었다. 우리도 전도하려다가 마음을 열지 않는 가족이나 반대하는 전도대상자들을 보면서 실망할 때가 있다. 전도할만한 자를 찾아도 잘 보이지 않을 때 답답해진다. 그럴 때 전도의 열의가 식어지고 두렵기조차 하다. 이럴 때 주님이 우리에게 “이 도시에는 나의 백성이 많다.”고 말씀하신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부정적 생각을 버리고 긍정적 생각을 가지라고 하신다.
어떤 구두 회사에서 아프리카에 판매 계획을 가지고 시장조사를 하라고 두 사람을 파견했다지 않나? 한 사람은 보고하길, “아프리카 사람들은 신발을 아예 신지 않기 때문에 그들에게 구두를 판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 사람은 보고하길, “아프리카 사람들은 신발을 아예 신지 않고 있습니다. 전 국민 모두가 구두를 사 신을 고객입니다.” 벌써 생각부터 다르지 않나?
한국의 교회가 부흥했고 이제는 전도가 힘들고 전도할 대상도 없다고 하지만 이제 겨우 20% 못되게 예수 믿고 있는 거다. 아직도 80%가 주님을 알지 못한 채 구원받지 못하고 지옥으로 달려가고 있다. 한 도시의 인구가 100만 명이라면 오늘 주님이 오시면 20만 명은 천국 가지만, 80만 명은 지옥 간다. 왜 전도 대상자가 없나? 이 도시 안에 내 백성이 많다고 주님이 말씀하신다. 불교가 강한 이 광주시에 내 백성이 많다고 하신다. 여러분이 살고 있는 서울, 성남, 분당, 광주, 용인, 수지, 군포, 안양, 안산, 여주, 천안, 충남 진천, 호주 멜번 에도 예수 믿어야 할 주님의 백성이 아직 많이 남아있다.
여러분, 우리 주님이 이 도시에 내 백성이 많다 하시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와 같은 뜻이기 때문에 주님의 자녀가 많단 얘기다. 이 말씀은 아직 예수 믿지 않고 죄악 중에 살고 있지만, 하나님이 영생을 주시려고 작정한 미래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 도시에 많이 있다는 뜻이다. 여러분이 10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놀이공원에 갔다고 쳐보자. 알아서 놀다가 6시 되면 입구에서 만나자. 그랬는데, 시간이 되었는데도 8명밖에 안 왔다. 한참 기다려도 안 오면 “자, 그래도 얼추 다 왔으니까 이제 그만 가자!” 그럴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우리 하나님 아버지도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우리 주님이 이 도시에 내 백성이 많다. 그랬으면 그 백성이 하나님의 자녀인데, 이제 대충 구원했으니 마감하자. 그러겠는가? 그럴 리가 있겠는가? 당연히 반드시 다 구원하실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전도는 하나님이 반드시 구원하시려는 자기 백성을 찾는 일에 협력하고 동참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 주위에 그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준비된 영혼들이 있다. 그래서 전도는 그 영혼들을 찾는 것이고,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이 그런 영혼들을 우리에게 붙여주시는 것이다. 처음에 전도는 우리가 영혼을 찾아 구원해내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가정교회를 하면서 점점 더 드는 생각은 전도는 하나님이 영혼들을 우리에게 붙여주시는 거다. 휴스턴 서울교회 곽인순 목자나 충주 사랑의 교회 안국철 목사가 우리 교회 부흥회에 강사로 왔을 때 어떻게 하면 전도를 잘하느냐고 물었더니, “기도하면 영혼을 붙여주신다”고 대답했다. 그때는 그게 무슨 말인지 잘 몰랐는데, 이제는 100% 이해가 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해야 할 제목은 준비된 비신 영혼을 보내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전도 잘하는 목자 목녀는 매일매일, “오늘도 준비된 영혼을 만나게 해주세요.”라는 기도를 하는 거다. “보내주시면 잘 섬길 테니, 준비된 영혼을 맡겨주십시오.” 우리가 찾아가지만, 준비된 영혼을 만날 때 구원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여러분, 여러분이 부모라면 내 자식 어떤 유치원에 보내고 싶은가? 안 볼 때 때리고 괴롭히고 왕따 시키는 유치원이 아니라, 사랑으로 가르치는 원장과 선생님이 있는 유치원에 보내고 싶을 것이다. 나만 하더라도 어떤 분이 교회로 나와서 목장을 연결시켜 주어야 할 때, 고민이 된다. ‘이 영혼을 잘 보살펴주고 은혜 안에 머물도록 해줄 수 있을까?’ 하나님도 안 그러실까? 하나님이 마음 놓고 영혼을 맡길 수 있는 준비가 되어야 한다. 여러분의 교회와 목장이 하나님이 비신자를 보내주셔도 상처받지 않고 구원받을 수 있는 하나님이 마음 놓을 수 있는 목장이 되어야 된다. 그래서 우리가 그런 사랑의 공동체,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목장을 만들면 하나님이 자동적으로 영혼을 보내주신다. 이렇듯 우리가 하나님과 영혼을 사랑해야 하나님께서 영혼을 맡기신다. 전도가 안 되는 것은 아직 우리가 하나님이 비신자를 보내줘도 수용할 준비가 안 되서 그렇다고 생각된다. 준비되어 있으면 보내주신다.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주님의 백성들이 이 도시에 아직 많다. 그러므로 그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있으면 보내주시고 만나게 해주시고 붙여주신다. 우리에게 이 마음이 없으면, 그 마음을 달라고 기도하자.
주님이 “이 도시에 나의 백성이 많다.”고 하시는데, 우리는 “전도할 대상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라고 말한다면 주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게 아닌가! 우리의 생각과 말을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바꿔야 한다. 주님이 자기 백성, 자기 자녀를 반드시 찾을 것이니까, 우리도 믿고 목장을 사랑으로 준비하고 그 준비된 영혼을 보내달라고 매일 기도하자.
2. 두려워하지 말고 계속 전하라.
“이 도시에 나의 백성이 많다.”는 말씀은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행동하라는 얘기다. “무서워하지 말아라. 잠자코 있지 말고, 끊임없이 말하여라.” 주님의 백성이 많은 데 전하지 않고 두려워하고만 있으면 안 된다는 얘기다. 담대하게 전하라는 뜻이다.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그 말씀 바로 뒤에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이다. 주님이 복음 전하려는 우리와 함께 계신다! 지상명령을 하신 예수님이 바로 그 뒤에 뭐라고 하셨는가? 마 28:20b, “보아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
마가복음 맨 마지막 장인 막 16:16-18,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을 것이다. 17 믿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표징들이 따를 터인데, 곧 그들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으로 말하며, 18 손으로 뱀을 집어 들며, 독약을 마실지라도 절대로 해를 입지 않으며, 아픈 사람들에게 손을 얹으면 나을 것이다.” 우리는 믿고 구원을 받는 사람들이다. 고로 우리에게도 이런 표징이 따라야 한다. 예수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새 방언을 말하고 손으로 뱀을 집어 들고, 독약을 마셔도 절대 해 입지 않고 아픈 사람들에게 손을 얹으면 낫는 기적이 임하길 희망한다. 그런데 이 말씀을 예수님이 어떤 배경에서 하신 줄 아는가? 그 바로 전 절인 막 16:15, “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온 세상에 나가서,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여라.” 바로 복음전하는 자에게 이런 표징이 따른다고 말씀한 것이다. 오늘 한국교회에 이런 표징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이유는 영혼구원하려고 하지 않고 그런 제자를 만들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주님이 무턱대고 함께 하시지 않고 무턱대고 표징을 행하시지 않는다. 복음을 전하는 자에게 함께 하시고, 복음을 전하는 자에게 표징이 따르게 하신다. 다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시는 거다. 그러므로 우리가 복음 전하는 사역을 감당하는 데 있어서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끊임없이 와보라고 말해야 한다. 주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성령 하나님을 보내주셨기 때문이다. “내 힘만 의지할 터면 패할 수밖에 없도다. 힘 있는 장수 나와서 날 대신 하여 싸우네.” 기도의 희생, 금식의 희생, 물질의 희생, 가족의 희생, 긴 순교의 희생을 드려서 함께 하시는 주님과 성령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사역을 하는 우리가 되자.
여러분, 주님이 자기 백성을 반드시 구원하시겠지만, 고전 1: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우리의 미련한 전도의 방법을 통해 하신다. 우리를 도구로 사용하시길 원하시는 거다. 그렇게 우리를 제자로 만들어 가시기 원하신다. 취직하기도 힘들고, 50세만 되면 명퇴 얘기를 들먹거리는 시대에 하나님이 나를 영광의 도구로, 상급 받는 길로 사용하신다니 이 얼마나 큰 특권이요 영광인가!
그러므로 우리가 전도하러 나가지 않고는 구원받는 일이 생기지 않는다. 가족이나 친구나 사돈의 팔촌 누군가가 나에게 복음을 전하고 목장과 교회 가자고 했기 때문에 나와 여러분이 구원받았다. 우리가 침묵하고 있으면 아무도 구원할 수 없지만 용기를 내어 입을 열어 전도하면 구원의 역사가 일어난다. 우리 가정교회에서 하는 전도방법은 목자 목녀가 목장식구들과 함께 목사와 연합하여 하는 팀 관계전도로 “와보라!”하는 전도다. 와서 목장을 보면 예수 믿는 사람들이 괜찮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호감을 느끼게 되고, 교회에 와보면 목사가 예수영접 시켜서 구원받게 하는 팀 관계전도다. 이게 요즘같이 기독교가 이미지가 안 좋아져서 전도하기 힘든 때에 가장 최선의 전도방법이다. 아니 영혼을 구원하는 일만 하고 끝이라면 다른 좋은 전도방법도 있겠지만, 영혼을 구원해서 제자를 만들어야 하는 교회가 되려면 이 가정교회 전도가 최적이다.
바울사도가 아시아로 선교를 계획하고 추진하는 중에 환상을 보았는데, 마게도니아 사람이 손짓하면서 “마게도니아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그러는 거다. 이에 바울 사도는 일행과 함께 하나님의 부르심이라고 확신하고 배를 타고 건너가 유럽을 복음화하는 초석을 놓게 되었다.
우리가 편안함을 추구하면서 이편에 가만히 앉아있으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지만, 우리가 불편함을 감수하고 저편에 건너가 복음을 전하기로 선택하기만 하면 성령 하나님이 구원역사를 베푸신다. 그저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는 간단한 행동이 한 사람의 운명을 영원히 바꿔놓는 것이라면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고로 우리는 저편으로 건너가는 결정만 내리면 된다. 물론 저편은 가보지 않은 땅, 낯선 곳이다. 저편은 복음이 없는 곳이다. 저편은 믿지 않는 세계다. 편하지 않는 대화의 장소다. 저편은 어색하고 불편한 상황이 전개될 수 있는 장소다. 어떨 때는 자존심을 상하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가야 한다.
어느 날 외로워 보이는 회사 동료를 보면서 자꾸 신경이 쓰이는데, 성령 하나님이 우리 마음속에 내면의 음성으로 들려주신다. “너, 편한 지금의 자리를 박차고 어서 저편에 있는 동료에게 우정의 악수를 내밀어라. 그에게 격려나 대화가 필요한 지 알아봐라. 놀라운 일이 벌어질 지 누가 아느냐?” 엘리베이터에서 이웃을 만났는데 성령이 마음의 음성으로 들려주신다. “너, 침묵하지 말고 저 사람이 교회에 다니는지 물어봐라. 혹시 복음전할 일이 일어날 지 누가 아냐?” 어린이집에 갔다가 학부모를 만났는데 성령 하나님이 마음에 말씀하신다. “너, 저편에 혼자 있는 엄마에게 가서 말을 건네 봐라. 혹시 네가 도와줄 일이 있지 않겠냐?” 누구나 쉽게 어울릴 수 있는 ‘편한 대화 자리’를 좋아하지, 불편한 자리로 들어갈 이유가 없다. 그러나 성령이 자꾸 말씀하시고 어색하게 혼자 서 있는 저편의 사람이 자꾸 신경 쓰이고, 결국 순종해서 일어나 저편으로 건너가서 작은 행동을 하게 된다. 바로 그렇게, 저편으로 건너가는 작은 행동의 결단과 선택을 통해서 구원의 역사는 이루어지는 것이다. 나와 여러분을 위해서 누군가가 편안한 이편을 버리고 불편한 저편으로 건너가 행동했기에 구원받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전도는 ‘저편으로 건너가는 단순한 선택으로 이루어지는 결과’다.
우리도 성령 하나님의 인도를 좇아 그런 선택을 해야 한다. 두려움을 극복하고 용기를 내야 한다. 프란시스 쉐퍼는 ‘작지 않은 사람들’이라는 책에서 이런 말을 했다. “하나님 보시기에 하찮은 사람이나 하찮은 장소는 없습니다. 만약 그 사람들이 삶 전체를 예수님께 맡기고 예수님의 인도를 받는다면 그 하찮은 일로 인하여 한 시대의 흐름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이번 주에 한기정 목자가 목사님 한 분을 소개했다. 가정교회에 관심을 갖고 계신 분이라는 거다. 어떻게 알았냐 물었더니 그 교회 교육전도사가 광주에 사는데 만날 때 가정교회 자랑을 자꾸 했단다. 목사님이 전도가 안 돼서 고민하실 때 교육전도사가 경기도 광주에 전도가 되는 교회가 있다더라고 소개했더니 연결을 시켜달라고 얘기하더란다. 전화를 걸었더니 시흥에 있는 교회였다. 조근호 원장님 지역모임에 연결시켜 드렸고 열심히 잘할 것 같다. 그래서 내가 한 목자에게 문자를 보냈다. ‘한 목자는 평세 한 가정을 섬긴 것보다 더 큰일을 한 거예요. 왜냐하면 한 교회가 가정교회를 하게 연결한 거니까.’ 그래서 평세도 한국교회를 살리는 데 기여하지만, 목회자 세미나는 더욱 파급효과가 큰 것이다.
“이 도시에는 나의 백성이 많다.”고 우리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전도는 주님이 자기 백성을 찾는 일에 협력하는 것이다. 우리가 준비되면 하나님은 그의 백성을 보내시고 붙여주신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지고 그런 영혼을 붙여달라고 기도하자.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두려워말고 계속 전하자. 이 일에 헌신하는 주의 자녀들이 되자. 그럴 때 그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는 우리의 모든 삶도 책임져주시고 더해주시는 복을 주신다. 또한 영원한 하늘나라에서 해같이 빛나도록 상급을 예비해두실 것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