唐陳子昂舘陶郭公姬薛氏墓誌曰 姬人 姓薛氏 東明國王金氏之胤也 昔金王有愛子 別食於薛 因爲姓 世不與金氏爲姻 其高曾皆金王貴臣大人也 父承冲 有唐高宗時 與金仁問歸國 帝疇厥庸 拜左武衛將軍云
당 나라 진자앙(陳子昂)이 지은 관도 곽공(館都郭公)의 희(姬) 설씨(薛氏)의 묘지(墓誌)에 이르기를, “희인(姬人)의 성은 설씨이니 동명국왕(東明國王) 김씨의 후예이다. 옛적에 김왕(金王)이 사랑하는 아들이 있어 별달리 설(薛) 땅에 봉함을 받아 설을 성(姓)으로 하였으며, 대대로 김씨와는 혼인하지 않았다. 그 고조․증조가 모두 김왕의 귀신(貴臣)․대인(大人)이다. 아버지 승충(承冲)이 당 나라 고종 때 김인문(金仁問)과 함께 우리나라로 돌아왔는데 그때 황제께서 그 공로에 보답하기 위하여 좌무위장군(左武衛將軍)에 임명했다.” 하였다.
余按句麗始祖 爲東明王高朱蒙 今曰 東明國王金氏 非也 夫薛 新羅之大姓也 金亦羅王之姓也 唐武德四年 新羅人薛罽頭 隨海舶入唐 至太宗時 拜左武衛果毅 及征高句麗 力戰 死於駐蹕山下 太宗脫御衣覆屍 授職大將軍 金仁問 新羅武烈王第二子也 二十三入唐高宗時 挾唐師 共征百濟 後官至柱國 死於唐 子昂所謂薛承冲者 余葢以謂新羅人薛罽頭 改名承冲也 况所謂別食於薛 東國古郡 本無以薛爲號者乎 然則武衛之拜於高宗者 非也 旣曰 與金仁問歸國 則仁問之入唐 或在於太宗之時歟
내가 상고하건대, 고구려(高句麗)의 시조가 동명왕(東明王) 고주몽(高朱蒙)이니, 이제 동명국왕 김씨라 한 것은 잘못된 것이다. 저 설(薛)은 신라의 대성(大姓)이고 김(金) 또한 신라 왕의 성이다. 당 나라 무덕(武德 당 고조의 연호) 4년에 신라 사람 설계두(薛罽頭)가 바다를 건너는 배편으로 당 나라에 들어가 태종 때에 좌무위과의(左武衛果毅)에 임명되었고, 당 나라가 고구려를 치기에 이르러 힘써 싸우다가 주필산(駐蹕山) 밑에서 죽었는데 태종이 어의(御衣)를 벗어서 시체를 덮어 주고 대장군 벼슬을 주었다. 김인문은 신라 무열왕(武烈王)의 둘째 아들로 23세에 당 나라에 들어가고, 고종 때 당 나라 군대를 인도하여 함께 백제를 쳤는데, 뒤에 벼슬이 주국(柱國)에 이르렀고 당 나라에서 죽었다. 자앙이 이른바 설승충이란, 설계두가 승충으로 이름을 고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른바 ‘별달리 설 땅에 봉함을 받았다.’는 말에 대하여는 우리나라 옛 고을에 본디 설(薛)로 이름한 곳이 없다. 그렇다면, 고종 때 무위(武衛)에 임명되었다는 것은 잘못이다. ‘김인문과 함께 나라로 돌아왔다.’ 했으니, 인문이 당 나라로 들아간 것이 태종 때였을는지도 모른다.
又曰 帝疇厥庸 則罽頭從征有功 故帝嘉其功也 其所謂帝者 余以謂太宗也
또 말하기를 ‘황제가 그 공로에 보답했다.’고 했으니, 계두가 종정(從征)하여 공이 있었기 때문에 황제가 그 공을 어여삐 여긴 것이다. 이른바 황제는 태종이라고 생각한다.
誌又曰 姬人幼有玉色 少號仙子 年十五 大將軍薨 剪髮出家 見寶手菩薩 靚心六年 靑蓮不至
지(誌)에 또, “희인은 어려서 옥 같은 아름다움이 있었으므로 소시에 선자(仙子 신선을 뜻함)라고 불렀다. 나이 15세에 대장군이 죽자 머리 깎고 중이 되었으며 보수 보살(寶手菩薩)을 만나보고는 6년 동안 마음을 닦았건만, 청련(靑蓮)이 이르지 않으니,
[주-D010] 청련(靑蓮) …… 않으니 : 청련은 불교의 진리를 상징한 말. 여기는 부처의 밝은 눈을 얻어서 견성(見性)할 수 없음을 뜻한다.
乃謠曰 化雲心兮思淑貞 洞寂滅兮不見人 瑤艸芳兮思氛氳 將奈何兮靑春 遂返初服而歸 我郭公長壽二年 太歲癸巳二月十七日 卒於通泉縣之官舍云 按貞觀十九年乙巳 薛將軍死之 其時姬年十五 則姬辛卯生 是薛將軍歸唐十年 始生斯女也
노래하기를,
번뇌를 버리고 숙정을 생각했는데 / 化雲心兮思淑貞
열반(涅槃)의 경지에 이르렀건만 사람을 볼 수 없어 / 洞寂滅兮不見人
아리따운 요초는 힘차게 자라는데 / 瑤草芳兮思氣氳
어쩔거나 이 내 청춘 / 將奈何兮靑春
했다. 마침내 환속(還俗)하여 우리 곽공(郭公)에게 시집왔다. 장수(長壽 측천무후(則天武后)의 연호) 2년 계사년 2월 17일 통천현(通泉縣) 관사(官舍)에서 졸(卒)했다."
상고하건대, 정관(貞觀 당 태종의 연호) 19년 을사에 설 장군이 죽었는데, 그때 희인의 나이가 15세였다. 그렇다면 희인은 신묘생이 되니, 설 장군이 당 나라에 간 지 10년에 비로소 딸을 낳았던 것이다.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