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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돈균] [사물의 철학] 아버지의 카메라 - 한 송이의 꽃
자전거를 타고 집 근처 공원을 지나다가 저편 나무 앞에서 카메라를 들고 접사에 몰두하고 있는 낯익은 사람을 봤다. 이젠 머리칼이 희끗희끗한 아버지였다. "이렇게 더운 날 뭐하고 계세요?" 이쪽을 보신 아버지가 아들임을 확인하고서는 활짝 웃으며 대답하신다. "어, 너구나. 꽃을 찍고 있어."
부모님 집 벽은 이렇게 찍은 사진들로 꽃밭이다. 눈에 띄는 것은 액자 속 꽃은 꽃무더기가 아니라 늘 한 송이라는 사실이다. 비슷해 보이는 무리 중에서 단 하나의 대상에 포커스를 맞춘 확대 사진.
디지털카메라 등장, 화소 수 높은 카메라가 휴대폰과 한 몸이 되면서, 이 물건은 소소한 일상을 놓치지 않고 기록하는 갑남을녀의 `생활 장난감`이 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연령대에 따라 사진에도 패턴이 보인다는 사실이다. 20ㆍ30대가 아기자기한 일상의 시간을 동적인 리듬으로 포착한다면, 중장년으로 갈수록 정적이고 미세한 자연에 집중하는 경향을 띤다. 연령대별로 카메라가 선택하는 대상을 따라가 보면 나름 인생 그래프가 그려질 수도 있다. 필자가 특히 관심을 갖는 건 인생의 격랑을 헤쳐 온 노년의 카메라 렌즈가 가닿은 대상들이다.
`카메라` 어원인 라틴어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는 원래 `어두운 방`이라는 뜻이다. 기본 원리가 캄캄한 방(상자)에 빛이 들어올 수 있는 작은 구멍을 뚫고, 이를 통해 바깥 사물을 재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카메라 원리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중국 춘추시대 `묵자(墨子)`에 나온다.
놀라운 것은 이 원리를 장착한 장치 이름도 비슷하게 `잠긴(어두운) 보물방`이었다는 사실이다. 카메라는 최초로 아이디어가 출현했던 고대에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큰 눈`으로 `훑는` 방법이 아니라 `작은 눈`으로 사물 대상에 `집중`하는 방법이었다.
부처가 깨달음 직후에 강론했다는 `화엄경(華嚴經)`의 `화엄`은 삼라만상의 섭리를 꽃잎 한 떨기에서 본다는 뜻을 담고 있다. 작은 렌즈를 통해 작은 대상에 머물면서, 세상을 가장 작게 집중해서 보는 아버지의 카메라. 그건 `꽃`이었을까?
함돈균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
(MK 뉴스, 2013. 8. 2.)
카메라. *철학자의 사물들(장석주)
사진의 본질은 더도 덜도 아닌 멈춤, 시간의 얼어붙음, 죽음이다. 사진을 들여다본다는 것은 현실의 시간에서 뒷걸음질쳐서 과거 속으로 들어가는 행위이다. 이때 과거란 다시 되풀이
할 수 없다는 점에서 죽음이다. 과연 죽음뿐일까? 사진은 시간과 존재의 정지라는 맥락에서 죽음이다. 동시에 살아 돌아올 수.없는 존재의 회귀로서의 생생한 삶을 겪게 한다.
동시에 죽음에서 살아 돌아오는 삶이다.
사진은 대상을 전유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망각에 대비한 일종의 보험이다.
사람을 포함한 모든 사물은 생겨나는 순간부터
소실점을 향해 달려간다. 소실점에 가 닿는 순간
사물은 사라진다. 사진은 그 사라짐의 운명에
대한 미약한 저항이다.
카메라는 총이 그렇듯 피사체를 겨냥한다. 카메라를 쥔 사람은 피사체에 조심스럽게 초점을 맞춘 뒤 방아쇠를 당기듯 셔터를 누른다. 찰칵. 그 찰나피사체는 필름 속에서 영구적으로 정지된다. 총에 맞아 죽는 것과 같이 피사체는 필름 속에서 영
구 정지되면서 죽음을 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