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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지애] 10
#1. 아파트 앞 (밤)
공주, 아파트 현관을 빠져나와 어디론가 막 걸어가다가 선다.
내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지? 어디로 가야 하나? 둘러보지만 아무데도 갈 데가 없다.
공주, 그냥 아무데로나 다시 걷기 시작하는데 타쓰지가 쫓아온다.
타쓰지 : (쫓아가며) 어디 가는 거야?
공주 : 니가 상관할 바가 아니다.
타쓰지 : 어디 가는데?
공주 : (위엄있게 버럭) 왜 자꾸 날 귀찮게 하는 거냐? 너 때문에 일이 이 지경이 되지 않았느냐?
공주, 다시 걸어가는데 타쓰지, 이번엔 공주의 팔을 잡는다.
타쓰지 : 가자. (공주를 끌고 가려는데)
공주 : (뿌리치며) 놔라!
타쓰지 : (잡고 있는 손에 힘을 더 주며) 가자.
공주 : 놓으라니까!
타쓰지, 공주를 뚫어지게 보다가 확 끌고 가면 공주, 타쓰지를 공격해 팔을 빼내고 밀쳐버린다.
타쓰지 : 윽!
공주 : 미안하다. 니가 김유석과 아무런 연관이 없다고 해도, 니가 나에게 아무리 이런다고 해도,
나는 너에게 마음을 열수가 없다. 그러니 돌아가라.
공주, 돌아서서 어디로 갈까 하다가 다시 집 쪽으로 돌아간다.
타쓰지, 더 이상 잡지 못하고 가는 공주를 바라본다.
#2. 인철이네 집 (밤)
인철, 부엌에서 공주가 하려던 저녁의 흔적을 보고 있다. 코드가 뽑힌 밥솥, 어질러진 재료 등등...
인철, 밥솥의 콘센트를 꽂아 취사버튼을 눌러 놓고 침대로 가 엎어진다.
인철, 공허함에 미치겠는데 문소리가 난다.
베개에 얼굴을 묻고 눈을 감고 있던 인철, 눈을 번쩍 뜬다. 다시 한 번 심장이 쿵 내려앉는다.
공주, 안으로 들어와 엎어져 있는 인철을 싸늘하게 내려다본다.
인철, 자는 척하는데 공주, 인철을 툭툭 찬다.
인철, 할 수없이 눈을 뜨고 올려다본다.
인철 : 왜?
공주 : 여긴 내 자리다. 니 침소로 돌아가라.
인철, 웃음이 나오지만 꾹 참으며 괜히 인상을 쓰고 일어나 밖으로 나가는데.
공주 : 그리고 날이 밝는 대로 나갈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아라.
인철 : (다시 얼굴이 싸늘하게 굳는다) ... 맘대로 해.
인철, 문을 꽝 닫고 나간다.
공주, 자리에 누워 천장만 뚫어져라 올려다본다.
#3. 거실 (밤)
인철도 공주처럼, 자리에 누워 천장만 뚫어져라 보고 있다. 가슴이 너무 아프다.
#4. 호텔 - 타쓰지 방 (밤)
타쓰지, 침대에 엎드려 있다. 너에게 마음을 열수가 없다던 공주의 말이 비수처럼 가슴에 꽂힌다.
#5. 인철이네 집
인철, 혼자 라면을 먹고 있는데 공주가 방에서 나온다.
인철, 슥 올려다보고 다시 라면을 먹는다.
공주 : 보자기를 하나 빌려다오.
인철, 젓가락을 탁 내려놓고 벌떡 일어나 보자기를 꺼내 홱 던지고 다시 밥을 먹는데
공주, 보자기를 받아들고 방으로 들어간다.
인철, 궁금한 얼굴로 공주방을 본다.
#6. 공주방
공주, 보자기에 인철이가 사준 속옷15종세트와 타쓰지가 사 준 옷 등등을 챙긴다.
인철, 슥 들여다본다, 어처구니가 없다.
인철 : 짐 싸냐?
공주 : 보면 모르냐?
인철, 빤히 본다.
공주, 보자기를 꾸려들고 벌떡 일어나 인철을 밀치고 밖으로 나간다.
#7. 현관
보따리를 옆구리에 낀 공주, 인철이가 사준 신발을 신고 타쓰지가 사준 신발, 클럽에서 신던 까만 신발을 양손에 든다.
공주 : 문을 열어라.
인철 : 너, 정말 갈 거야?
공주 : (눈물이 핑 돈다) 보면 모르냐?
인철 : 데리러 온대?
공주 : (옹졸한 놈) ... 몰라도 된다.
인철, 잠시 보다가 화난 얼굴로 문을 벌컥 열어준다.
공주 : 그동안 신세 진 거는 언젠가 갚을 날이 있을 거다. (눈물이 주르륵 흐른다)
인철 : 됐어. 안 갚아도 돼.
공주, 마지막으로 인철이 잡아주길 기다리며 머뭇거리지만
인철, 문을 열고 선 채 기다린다.
공주, 인철을 노려보다가 나가면 인철, 문을 꽝 닫는다.
#8. 복도
닫힌 문을 노려보는 공주. 가슴이 찢어진다.
공주,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가까스로 옮긴다.
#9. 인철이네 집
인철, 베란다 창으로 달려와 아래를 내려다본다. 타쓰지의 차는 보이지 않는다.
인철, 잠시 서성대다가 밖으로 뛰어 나간다.
#10. 복도
인철, 복도를 뛰어 엘리베이터 쪽으로 가며 혹시 공주가 있지나 않은지 두리번거린다.
#11. 계단
인철, 계단을 두 개 세 개씩 막 뛰어 내려간다.
#12. 아파트 앞
인철, 공주를 찾아 여기저기 두리번거리지만 공주는 간 데 없다.
인철, 허탈하다.
#13. 엄박사네 집
엄박사네 식구들, 공주와 함께 아침을 먹고 있다.
공주 : (씩씩하게 밥을 떠먹으며) 염치없는 부탁인 줄은 알지만 당분간 신세를 좀 지면 안 되겠습니까?
엄박사네 식구들, 서로 눈을 마주친다.
순자 : 뭐, 안될 거야 없지만...
공주 : 그렇다면 우선 밥값이라도 할 수 있는 길을 알려주시면 밥값은 하도록 하겠습니다.
엄 : 무슨 수로?
공주 : 그러니까 길을 알려주십시오.
순자 : 내가 아는 길이래야 남의 집 살림 하는 거 밖에 더 있나?
공주 : 그거라도 가르쳐 주시면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엄박사네 식구들, 다시 서로 돌아본다.
순자 : 파출부, 그거 아무나 하는 거 아니야. 힘도 좋아야 되지만 너무 젊거나, 너무 예뻐도 안돼.
나도 처음 이 일 시작할 때는 얼마나 힘들었는데. 무조건 예뻐서 안 된다는 거야.
엄 : (흐뭇하게 회상하며) 그래, 예뻤지.
숙희 : 그러니까 거기서 사고만 안 쳤으면 됐잖아? 가만히만 있었으면 돈방석인데.
공주 : 그렇다고 나를 그렇게 버리고 가는 법이 어디 있느냐?
순자 :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숙희 : 그런 게 있어.
공주 : (식구들을 보다가) 당분간만이라도 거두어주시면 반드시 보은하겠습니다.
엄 : 보은은 무슨?
공주 : 고맙습니다.
공주, 다시 밥을 막 먹고 식구들, 난감한 얼굴로 다시 돌아본다.
#14. 은비네 집 - 수정
봉수, 채여사, 은비, 서양식 아침을 먹고 있다.
채여사, 봉수를 째려본다.
봉수 : 뭘 봐? 밥 먹는 거 처음 봐?
채 : 차! 그 얼굴에... (다시 빵을 먹는다)
봉수 : (긴장한다) 뭐? 그 얼굴에라니?
채 : 아니야.
봉수 : (눈치를 보며 쨈을 바른다)
은비 :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며 빵을 씹고 있다가 불쑥) 나, 회사 그만 둘까봐.
채 : 아니, 왜?
봉수 : 무슨 얘기야? 사람이 일을 해야지.
은비 : 재수 없어서 못 다니겠단 말이야.
채 : 아니, 또 뭐가 재수가 없어. 뭐가?
은비 : 남자들.
채 : 남자들?
은비 : 아, 쪽팔려. 아, 재수 없어. 그것들을 어떻게 죽여 버리지?
채 : 어머, 엄박사님 말이 딱 맞네? 니가 상관살이 꼈다더니. 어머머머. 그래, 그 얘길 했어.
니가 회사생활에 잘 적응 못할 거라고 그러시더라구, 엄박사님이.
봉수 : 엄박사님?
은비 : 그게 뭔데?
채 : 어머, 세상에. 니가 남자 우습게 보구, 윗사람을 똥으로 보는 게 니 팔자에 들어 있댄다.
은비 : 그런 것도 팔자에 나온단 말이야?
채 : 그런 정도가 아니야. 다 나와. 다. (봉수를 보며) 인생에 여자가 몇인지, 남자가 몇인지, 결혼은 언제 하는지,
바람은 언제 피는지, 세상에 다 찝어 내는 거 있지?
봉수 : (찔끔해서 딴 데를 본다)
채 : (은비에게) 너, 상관살만 조심하래드라. 니가 재물복도 있고, 건강도 좋고, 다 좋은데, 그 놈의 상관살 때문에
다 된 밥에 코 빠뜨리는 경향이 있대요. 그러니까 앞으로 재수 없는 일이 있어도 꾹 참고 정신수양에 힘쓰도록 해. 알았지?
절대 남자를 똥으로 보면 안된다.
은비 : (다시 곰곰 생각한다)
봉수 : (일어나며) 나, 나갈게.
채 : 다 먹은 거야?
봉수 : 응.
채 : 전화기 챙겼어?
봉수 : 어? (주머니를 더듬으며) 응.
봉수, 채여사를 슬쩍 돌아보고 식은땀을 흘리며 샤샤샥 나간다.
채여사, 나가는 봉수를 잠시 보다가
채 : (은비에게) 그러니까 그 실장, 사주 꼭 알아와.
은비 : 됐어!
채 : (혼잣말로) 아니면 내가 한 번 나서봐?
은비 : 뭐?
채 : 아니다.
은비, 불안하다.
#15. 수영장
타쓰지, 풀에서 나오는데 수영모자에 물안경을 쓴 채여사가 옆 레인에서 한 마리 인어처럼 솟구쳐 나온다.
채 : (우아하게) 어머! 이게 누구세요?
타쓰지 : (돌아본다)
채 : 안녕하세요?
타쓰지 : (누군지 못 알아본다) 누구세요?
채 : (얼른 물안경을 모자에 올린다. 눈에 안경자국이 팍 나있다) 저, 은비엄마예요.
타쓰지 : 아, 안녕하세요?
채 : 어머, 세상에. 이런 데서 다 만나네.
타쓰지 : 그때는 감사했습니다.
채 : 아, 별말씀을. 언제 한 번 다시 모셔야 될 텐데. 바쁘시죠?
타쓰지 : 아뇨. 별로.
채 : 그럼, 이번 주말에 시간 좀 내시겠어요?
타쓰지 : 네?
채 : 지난번 와인도 그렇고, 우리 은비한테 너무 잘해주신다 그래서 제가 가만있을 수가 없어서요.
타쓰지 : ...
채 : 그럼, 주말에 오시는 걸로 알고 준비할께요. 오실 거죠?
타쓰지 : 아... 예.
채 : 그럼, 은비 편에 시간 알려 드릴께요.
타쓰지 : 예, 알겠습니다.
채 : 그럼, 그 날 뵙겠습니다.
채여사, 다시 풀로 날렵하게 뛰어들더니 물 속에서 손을 흔들고 반대편으로 헤엄쳐간다.
타쓰지, 픽 웃는다.
#16. 옷공장
혁, 공장으로 들어오는데 인철이 소파에서 자고 있다.
혁 : 야! 너, 또 여기서 잤냐?
인철 : 어, 왔어?
인철, 힘겹게 몸을 일으켜 앉아 하품을 늘어지게 하며 얼굴을 손으로 비빈다.
혁 : 마! 잠은 집에 가서 자. 이런 데서 자면 몸 버려.
혁, 테이블 위를 정리하다가 한쪽에 쌓여 있는 그림(의상 디자인)들을 발견한다.
혁 : 너, 잠 안 자고 일만 했냐? 많이 그렸네? (집어 들어 넘겨보며) 오!!! 제법인데? 괜찮다, 야.
(넘길수록 감탄한다) 오!!! 어쭈!! 공주 내보내더니 정신 차렸네?
인철 : 야, 나 삼십분만 더 잘께. (옆으로 픽 쓰러져 돌아눕는다)
혁 : (인철을 보다가) 공주는 잘 있대냐?
인철 : ...
혁 : 전화도 없어?
인철 : ...
혁 : 아무리 가라 그런다고 그렇게 홀랑 쫓아 가냐? 공주 걔는 안 그럴 줄 알았는데.
하여간에 여자라는 동물은 정신이 있거나 나갔거나 다 똑같애. 돈 많은 놈들만 보면 사족을 못 쓴다니까.
인철 : 아, 정말!
인철,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가다가 멈칫 서더니 다시 들어온다.
인철 : 야, 삼만원만 꿔줘.
혁 : 삼만원은 뭐하게?
인철 : 차에 기름 좀 넣게.
혁 : 안돼. 원단 살 돈이야. 버스 타고 다녀.
인철, 째려보다가 나간다.
혁 : 야! 어디 가?
인철, 벌써 나갔다.
#17. 스카이 복도
인철, 마케팅실로 가는 복도를 따라 걸어와 문을 거칠게 열고 들어간다.
#18. 마케팅 사무실
인철 : 안녕하세요?
직원들, 인철의 인사에 돌아보다가 깜짝 놀란다.
인철 : (은비에게 활짝 웃으며) 안녕?
은비 : (울그락 불그락)
이대리 : 어머, 안녕하세요?
이대리, 불안한 얼굴로 타쓰지 방을 힐끗 곁눈질하고 인철의 앞을 막아선다.
이대리 : 준비는 잘 되시죠?
인철 : 안에 있어요?
인철, 자기 방에서 다른 직원들과 얘기하고 있는 타쓰지를 본다.
이대리 : 어머! 지금 회의중이신데.
인철, 누가 말릴 틈도 없이 타쓰지의 방으로 들어간다.
#19. 타쓰지 사무실
타쓰지와 직원들, 인철이 갑자기 들어오자 놀라 돌아본다.
인철 : 야, 너, 회사 안 그만뒀냐?
타쓰지 : (직원들에게) 이따가 다시 얘기합시다.
직원들, 일어나 나간다.
타쓰지, 자기 자리로 돌아가다가 직원들이 일손을 놓고 안을 주시하고 있자 버티칼을 돌려버리고 자기 자리에 앉는다.
타쓰지 : 뭐야?
인철 : (앞의 의자에 앉으며) 휴가도 안 내고?
타쓰지 : 휴가를 왜 내?
인철 : 오... 이제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이거지? 내 품 안에 들어왔다 이거냐?
타쓰지 : ... 무슨 얘기야?
인철 : 무슨 얘기냐니?
타쓰지 : ... 주공주한테 무슨 일 있어?
인철 : (조금 이상하지만) 그걸 왜 나한테 물어봐?
타쓰지 : ...너, 공주 어떻게 한 거야?
인철 : 니가 데려갔잖아!
타쓰지 : ... 내가? ... 언제?
인철 : ... 그저께.
인철과 타쓰지, 공주가 없어졌다는 사실에 순간적으로 당황하여 서로 할 말을 잃는다.
동시에 : 김춘추?
#20. 마케팅 사무실
직원들, 일렬로 서서 버티칼 사이로 들여다보려고 애쓰고 있는데
갑자기 문이 벌컥 열리자 얼른 뒤로 한발짝씩 물러나는데
인철과 타쓰지, 서로 먼저 나가기 시합이라도 하는 사람들처럼 부리나케 밖으로 나간다.
은비와 직원들, 우르르 쫓아나가 문 밖을 내다본다.
#21. 복도
인철과 타쓰지, 굳은 얼굴로 긴 복도를 따라 나란히 걷는다.
타쓰지 : 공주한테 무슨 일 생기면 너, 나한테 죽었어.
인철 : 내가 할 소리!
두 사람, 복도 끝에서 양쪽으로 짝 갈라진다.
인철, 앗! 하는 얼굴로 타쓰지를 쫓아간다.
#22. 클럽 앞 (낮)
타쓰지의 차가 클럽 입구가 저만치 보이는 곳에 서있다.
잠시 후 무용2가 클럽 안에서 뛰어나와 두리번거린다.
인철 : (창을 내리고 손짓을 한다) 야! 여기.
무용 : (다가오며 차를 보고 놀란다) 어머, 어머, 이거 누구 차야?
인철 : 안에 누구 있냐?
무용 : 우리 지금 회의중이야. 나 빨리 들어가 봐야 돼. 차 죽인다.
인철 : 무슨 회의?
무용 : 대책회의. 지금 강남컨설팅 회장이랑 다 모여 있단 말이야. 근데 이건 문이 두갠가 보내?
인철 : 뭐?
타쓰지 : 잘 됐네. (내리려는데)
인철 : (잡으며) 야, 야, 야! 좀 기다려. (무용에게) 공주 봤냐?
무용 : 걔, 못 본지 한참 됐어.
인철 : 어제 오늘 못 봤어?
무용 : 아, 못봤어. 그거 물어보려고 나오라 그런 거야?
인철 : 정말 못봤어?
무용 : 못봤다니까!
인철 : 그래? 알았다. 가봐. 그리고 나 봤단 얘기 하지마.
무용 : (차를 부러운 눈으로 보며) 맨 입으로?
인철 : 나중에 드라이브 한 번 시켜줄께.
무용 : 알았어. 안녕. (신나서 간다)
인철 : (걱정스럽게) 아... 어딜 간 거야, 도대체?
타쓰지, 말없이 차에서 내린다.
인철, 당황하여 따라 내린다.
인철 : 야, 어디가?
타쓰지 : 여기까지 왔는데 물어는 봐야 될 거 아냐?
인철 : 가면 맞아 죽어.
타쓰지 : (비웃으며) 비겁한 놈.
타쓰지, 클럽으로 곧장 걸어간다.
인철 : (열 받는다) 야, 야!
#22-1. 클럽
테이블이 한 쪽으로 치워져 있는 홀 안.
웨이터와 춘추의 부하들, 아가씨들이 무대 위에 서 있는 춘추 앞에 정렬해 있다.
웨이터들은 청소를 하다 말았는지 빗자루와 걸레 등등을 손에 들고 있고
아가씨들은 연신 화장을 하고 있다.
부하들과 웨이터들의 얼굴은 엉망진창이다.
춘추 : 우리가 연이은 땅꼬마의 공격을 성공적으로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은 여러분 모두가 일치단결하여 싸워준 덕분이다.
특히 영업부 직원들이 블라디보스톡에 대거 출장 중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놈들의 집요한 공격을 막아냈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정말이지 대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장하다. 여러분.
앞으로도 우리의 일터는 우리 손으로 지킨다는 각오로 열심히 싸워주기 바란다. 자, 박수!
일동, 박수를 치는데 타쓰지가 겁도 없이 황야의 무법자처럼 입구에 나타나고
인철, 타쓰지의 뒤에 난감한 얼굴로 선다.
클럽 안에 있던 일동, 눈이 똥그래진다.
춘추, 타쓰지를 보는 순간 얼굴에 화색이 돈다.
춘추 : 오!! 이게 누구야?
춘추와 부하들, 타쓰지의 뒤를 살핀다. 인철 밖에 없다.
타쓰지, 신랑이 주례 앞으로 가듯 거침없이 춘추 앞으로 걸어오고
인철은 민망하게 인사하며 타쓰지를 따라간다.
인철 : 안녕하세요, 상무님? 안녕하세요, 부장님?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춘추 : 그래, 잘 생각했다. 니가 이제야 내가 누군지 알았구나. 진작에 좀 알아보고 다니지.
타쓰지 : 공주, 어딨어?
춘추 : 뭐, 임마?
타쓰지 : 너, 내가 분명히 경고했지? 공주, 어딨어?
춘추 : (인철에게) 얘, 지금 뭐라 그러는 거냐?
타쓰지, 다짜고짜 춘추를 갈겨버린다.
인철, 사색이 되고 클럽안에 있던 일동, 깜짝 놀라는데
불의의 일격을 당한 춘추, 부하들이 달려들려고 하자 손을 들어 제지한다.
춘추 : 니들, 나하고 한 번 해보자는 거냐?
인철 : 아니, 그런 게 아니라요.
춘추 : 그래, 안 그래도 벼르고 있었는데 니들. 오늘 잘 걸렸다. (인철과 타쓰지를 번갈아 보며) 니놈들 때문에 땅꼬마한테 당하고,
공주도 잃어버리고 나, 요새 악 밖에 안 남은 사람이야.
타쓰지 : 공주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가만 두지 않겠어.
춘추 : 그래? 어떻게? 이렇게?
하더니 춘추, 순식간에 타쓰지를 때려눕히고 인철을 살벌한 눈으로 돌아본다.
인철, 슬금슬금 도망가려는데 준하, 인철을 춘추한테 확 밀어버린다.
인철도 한 순간에 바닥에 널브러진다.
춘추 : (인철과 타쓰지의 머리카락을 잡아 들어올려 들여다보며) 공주가 어딨냐니? 일본에서 잃어버린 공주를
왜 여기 와서 찾아? 너희놈들이 빼돌리고 왜 나한테 와서 찾아! 너희들, 살고 싶으면 공주 내 눈앞에 데려와.
아니면 둘 다 죽어.
춘추, 인철과 타쓰지의 머리를 바닥에 다시 콱 처박고 일어난다.
춘추 : 정부장.
준하 : 예, 회장님.
춘추 : 블라디보스톡에 있는 애들, 빨리 철수시켜.
준하 : 예, 회장님.
춘추 : 회의 끝! 해산.
일동 : 회의 끝!
춘추, 부하들과 사라지고 무대 위에 인철과 타쓰지만 남는다.
두 사람, 가까스로 몸을 일으킨다.
인철 : (타쓰지를 노려보며) 내가 들어오지 말자 그랬지?
타쓰지 : 그래도 아니란 건 확인했잖아?
인철 : (재수 없다. 빤히 보다가) 비겁하다구? 누군 싸울 줄 몰라서 안 싸우는 줄 아냐? 난, 너처럼 껨값 물어줄 돈이 없거든.
인철, 확 돌아서 나간다.
타쓰지, 나가는 인철을 노려본다.
#23. 아파트 근처 패스트푸드점 앞 (밤) - 수정
인철, 버스에서 내려 터덜터덜 집으로 가는데
친구들과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던 숙희가 인철을 보고 유리벽 안에서 손짓을 한다.
인철, 슥 돌아보고 지나쳐 가는데.
숙희 : (밖으로 뛰어나와 부른다) 오빠! 오빠!
인철 : (귀찮다) 왜?
숙희 : 오빠 얼굴이 왜 이래? 또 맞았어?
#24. 패스트푸드점 (밤)
인철, 숙희네와 함께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다가 놀란다.
인철 : 스튜디오?
친구1 : 광고사진 찍는 데요.
인철 : 거긴 왜 갔었는데?
숙희 : 밥값 번다구...
인철 : 뭐?..
친구2 : 공주가 길거리 캐스팅이 됐었거든요? 거기서 연락이 와서요.
친구1 : 우리가 꼬신 거 아니에요. 공주 걔가 밥값이라도 벌겠다고 나선 거예요.
인철 : (기가 막히다) 밥값을 벌어?
숙희 : 근데 걔가 거기서 웬 여자한테 막 욕하고 때리고 그래서 끝장났잖아.
인철 : 여자를 때려?
숙희 : 근데 그때 그 멋진 오빠가 나타났길래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우리 큰 일 날 뻔 했어.
친구2 : 그때 그 오빠 진짜 잘 생겼더라.
친구1 : 이 오빠가 더 잘생겼다.
친구2 : 아냐, 그때 그 오빠가 더 잘생겼어.
친구1 : 솔직히 그 오빤 좀 느끼하더라, 야.
친구2 : 느끼하긴 뭐가 느끼해? 옷빨 끝내주던데.
인철 : (어처구니가 없는 얼굴로 보는데)
숙희 : 근데 걔랑 싸웠어?
인철 : 누구랑?
숙희 : 걔 왜 우리 집에 와 있는 거야? 안 데려갈 거야?
인철, 숙희를 놀란 눈으로 잠시 보더니 벌떡 일어나 뛰어나간다.
친구1 : 저 오빠도 옷빨 죽인다, 야.
#25. 길 (밤)
인철, 기쁜 마음에 아파트를 향해 미친 듯이 달린다.
#26. 아파트 앞 (밤)
인철, 한달음에 달려오다가 아파트 현관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아파트를 올려다보며 숨을 고른다.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오른다.
#27. 엄박사네 집 (밤) - 수정
순자는 자고 있고 엄박사와 공주는 얘기를 하고 있다.
엄박사, 책을 펴들고 공주의 말과 책의 내용을 비교하며 놀라고 있다.
공주 : 이에 후일의 동성대왕이신 모다왕께서는 친히 원정군의 총사령관이 되어 당시 중원의 패자이던 북위의 십만대군을
두 차례에 걸쳐 격멸함으로써 효문제를 뤄양으로 물러가게 했던 것입니다.
엄 : (입이 떡 벌어져 다물어지질 않는다)
공주 : 북위와의 일차전에서는 주신 이래 이어져오던 전통적인 5군제로 부대를 편성하여 중군대원수에 모다왕,
전군에 건위장군 팔중후 부여고대장, 우군에 건위부장군 부여력부장, 좌군에 영삭장군 면중왕 왕저근,
그리고 후군에 광무장군 부여고장군을 배치하여 일거에 효문제의 대군을 격멸하였고,
이때 부엌에서 시끄럽게 설거지를 하던 순자가 고무장갑을 낀 채 뛰어 들어오며 걸레를 공주에게 휙 던진다.
공주, 능숙하게 받아든다.
엄박사는 계속 놀란 얼굴로 공주를 바라보고 있다.
순자 : 공주님. 나 하루종일 남의 집 살림하느라 피곤한 사람이야. 공주님더러 집안일 하란 소리 안해.
왜 이 사람까지 집안일 못하게 하는 거야?
공주 : 저는 그런 적 없습니다.
엄 : 여보. 이 아가씨 정말 놀라워. 중국 사서까지 주르르 꿰고 있어.
순자 : 시끄러. 청소나 좀 해줘. 그렇게 여편네를 부려먹어야 직성이 풀리겠냐!!!
공주 : 청소는 제가 하겠습니다.
공주, 벌떡 일어나 청소기를 찾아들고 갑자기 청소를 시작한다.
이때 현관벨이 울리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쉬지 않고 딩동거린다.
순자 : (신경질) 또 누구야? 누구세요!!!
순자, 현관문을 벌컥 연다. 인철이 서 있다.
순자 : (작게) 왜 이제 왔어? 저 아가씨 좀 빨리 데리고 가!
인철 : 죄송합니다.
인철, 청소기를 들고 서 있는 공주를 보는 순간 그동안의 걱정과 그리움이 분노가 되어 터진다.
인철 : (버럭) 너, 이리 안 나와!!!
공주, 엄, 순자, 깜짝 놀란다.
#28. 복도 (밤) - 수정
인철, 공주의 손목을 거칠게 끌고 집으로 들어가려는데 공주, 악착같이 버틴다.
인철 : 들어와!!!
공주 : 싫다는데 왜 이러느냐!
인첣 : 싫어?
인철, 공주를 무섭게 보다가 동네 사람들이 지나가자 손목을 확 끌어 엘리베이터로 간다.
공주 : (끌려가며) 놔! 놔라!
#29. 아파트 잔디밭 한 가운데 (밤)
인철, 공주를 끌고 와 잔디밭 한가운데에 거칠게 밀어붙인다.
공주, 넘어질 듯 비틀거리다가 서서 인철을 똑바로 본다.
인철 : (잡아먹을 듯이 무섭게) 너, 지금 장난하냐?
공주 : 말하지 않았느냐? 너한테 신세지기 싫다고.
인철 : 왜? 내가 아리가 아니라서? 그래서 남의 집 가서 그러고 있는 거야? 너, 왜 사람 바보 만들어? (버럭) 엉?
공주 : (분노에 찬 눈으로 보며 참았던 화를 터뜨린다. 눈물이 뚝뚝 흐르지만 울음을 꾹 참으며)
그럼, 날더러 도대체 어쩌란 말이냐! 나라고 속도 없고 눈치도 없는 줄 아느냐? 너는 처음부터 나를
미쳤다고 생각하지 않았느냐? 여기저기 니 마음 내키는 대로 보내버리고, 아무한테나 맡기고, 걸핏하면 화를 내고,
제대로 말도 못 꺼내게 하고, 계속 그 자한테 가라는 소리만 하지 않았느냐! 내가 어떻게 할 수 있겠느냐?
아무리 니가 아리가 아니라고 해도, 이 세상 천지에 내가 의지할 사람이라고는 너 밖에 없는데,
니가 그러면 난 어떻게 해야 된단 말이냐!!
인철, 눈물을 줄줄 흘리며 얘기하는 공주를 빤히 보고 있다가 갑자기 거칠게 끌어안는다.
공주, 인철의 가슴을 밀어내보지만 인철, 그럴수록 더욱 힘껏 끌어안는다.
인철 : ... 미안해. 내가 잘못했다.
공주, 인철의 말에 와르르 무너져 대성통곡을 한다.
인철, 공주의 머리를 가슴에 꼭 끌어안은 채 서 있다가
공주의 얼굴을 감싸 쥐고 불타는 사비성 앞에서의 아리처럼 입을 맞춘다.
언제 왔는지 저만치서 타쓰지가 이 모습을 보고 있다.
#30. 인철이네 거실 (밤)
인철, 잠을 못 이룬다. 공주가 있는 방을 돌아본다.
인철 : ... 자냐?
#31. 인철이네 집 - 공주방 (밤) - 수정
공주도 자리에 누워 잠을 못 이루고 있다가 인철의 말에 거실 쪽을 돌아본다.
공주 : 안 잔다.
인철 : ... 아리가 어떤 사람이었냐?
공주 : (놀란다) ...
인철 : ... 잘 생겼냐?
공주 : ... 그래...
인철 : 뭐하던 사람인데?
공주 : ... 남부여 최고의 장수이자 나의 호위무사였다.
인철 : (씩 웃는다) 그래?
공주 : ...
인철 : 공주님.
공주 : ?
인철 : 잘 자라.
공주 : ... 그래.
공주, 입가에 미소가 번지다가 문득 자신이 아리가 아닌 인철과 입맞춤을 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왠지 찜찜해진다.
아리에 대한 죄책감이 물밀듯이 밀려온다.
#32. 호텔 - 타쓰지 거실 (밤)
방안의 불이 다 꺼져 있고 방송이 끝난 TV화면의 지지직거리는 불빛만 비친다.
타쓰지, 창가에 앉아 미동도 않고 밖을 내다보고 있다. 자신이 우습다. 피식 웃음이 나온다.
#33. 호텔 - 레스토랑
타쓰지와 집사, 밥을 먹고 있다.
집사, 상처가 있는 타쓰지의 얼굴을 보며 인상을 찌푸린다.
집사 : 어머님께서 돌아오시랍니다.
타쓰지 : (굳는다) 가라 그럴 땐 언제고 이제 와서 왜?
집사 :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십시오. 여기 와서 어떻게 생활하셨는지.
타쓰지 : (픽) 내가 어떻게 했는데?
집사 : 그 정도로 끝났으니까 망정이지, 경찰이나 언론에 알려졌으면 어쩔 뻔 했습니까?
타쓰지 : ....
집사 : 도련님은 일본 언론에서도 주목하고 있는 인물입니다. 폭력 사고로 이곳에 쫓겨 왔는데
이 곳에서 조직폭력배들과 싸움을 했다는 게 알려지기라도 하면 무슨 망신입니까? 그것도 한낱 여자 때문에.
타쓰지 : ....앞으로 그럴 일 없을 거야!
두 사람, 잠시 침묵.
집사 : 그건 그렇고,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타쓰지 : ...
집사 : 도련님을 그림자처럼 감시하던 닌자들이 왜 어젠 나타나지 않았을까요.
타쓰지, 미처 생각지 못했다가 뭔가 이상하게 느껴진다.
집사 : 돌아 갈 준비를 하겠습니다.
타쓰지 : ....
집사, 다시 밥을 먹고 타쓰지, 창 밖으로 고개를 돌린다.
#34. 엄박사네 집
인철, 공주, 엄박사네 식구들과 아침을 먹고 있다.
인철, 공주의 밥그릇에 계속 맛있는 반찬을 올려준다.
인철 : (말로만 퉁명스럽게) 이거 먹어봐. .... 요것도 먹어봐....
엄박사, 마지막 남은 계란말이를 집으려는데
인철의 젓가락이 잽싸게 가로채 공주의 숟가락 위에 올려놓는다.
엄, 순자, 숙희, 기가 차다.
엄 : 얼굴은 근데 왜 그 모양이야?
인철 : (아무렇지도 않게) 계단에서 굴렀어요. (공주에게) 나 없는 동안 박사님 말씀 잘 듣고.
공주 : 알았다.
인철 : 집 안 일 좀 거들어 드리고.
공주 : 알았다.
인철 : 손님들 오면 방에 들어가 있고.
공주 : 염려 말아라.
인철 : (숙희가 집으려는 반찬을 빼앗아 주며) 이것도 좀 먹어.
인철, 자기와 공주를 보고 있는 엄박사네 식구들을 돌아본다.
인철 : 어우,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잘 먹었습니다. 가 볼께요.
엄 : 어, 그래.
인철 : (공주를 툭 치며) 갔다 올께.
인철, 후닥닥 나간다.
아무도 선뜻 입을 열지 않고 묘한 침묵이 흐른다.
이때 전화벨.
순자 : 여보세요. ...네. 사모님.
엄 : (관심있게 돌아본다)
순자 : 오늘이요? .....오늘은 요리 아줌마 (끊어졌다. 부들부들) 이 여편네가 누구 죽일 일 있나?
(수화기를 부서져라 내려놓는다)
엄 : 왜?
순자 : 내가 이 여편네를!!!
순자, 갑자기 공주를 슥 돌아본다.
#35. 슈퍼마켓
순자, 공주를 데리고 장을 보고 있다.
공주, 눈이 휘둥그렇게 뜨고 어머어마한 매장 안을 둘러본다.
공주, 카트 밀고 이리저리 뛰어다기도 하고, 순자, 잡으러 다니고,
공주, 과일이며, 야채며, 생선이며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며 들었다 놨다 한다.
순자, 후회스럽다.
닌자들, 그 뒤를 쫓는다.
#36. 계산대
공주, 카트를 밀고 그냥 나간다. 삐삐 소리가 난다.
순자, 당황하여 공주를 잡아끈다.
시간경과
공주, 계산대에서 돈을 세는 점원들, 카드를 판독기에 긁는 모습들을 유심히 보고 있다.
멀리 닌자가 보인다.
#37. 은비네 집
공주, 양손에 장바구니를 들고 순자를 따라 안으로 들어오다가 현관에 서서 집안을 둘러본다.
채 : (안에서 나오며) 아줌마, 이제 오면 어떡해,
순자 : 장 볼게 한두가지라야죠. (돌아보며) 들어와.
채 : 어머! 이 아가씨는 그 때 그 아가씨?
순자 : 오늘 또 그 손님 오신다면서요? 보나마나 나 혼자 해야 될 거 아니에요? 내가 그날 환갑잔치 치르고 죽다 살아나서
오늘은 보조 한 명 데리고 왔어요.
채 : 그렇다고 아무나 데리고 오면 어떡해?
순자 : 보조일당 달라 소리 안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채 : 그래, 그럼.
순자 : 이리와.
공주 :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채 : (자기도 모르게) 네. (앗!)
채, 어딘가 미심쩍은 얼굴로 부엌으로 들어가는 공주를 보며 거실로 가 전화를 한다.
채 : 여보세요. 고은비씨 부탁합니다.
부엌에서 짐을 풀던 공주, 고은비란 말에 어디서 들었지? 하는 얼굴로 돌아본다.
#38. 마케팅 사무실
은비, 전화를 받고 있다.
은비 : 뭐? 오늘? 왜 그래, 정말!! 어으, 몰라. 왜 엄마 마음대로 그래? (전화기에 대고 신경질을 내다가 다른 직원들의 눈치 본다)
언제 또 거기까지 쫓아가서 그랬어? 엄만 자존심도 없어? 그럼, 난 뭐야? 난 몰라! 엄마 마음대로 해. (확 끊는다)
이대리 : 왜? 선 보래?
은비 : 아니에요.
이때 타쓰지가 사무실로 들어와 자기방으로 간다.
직원들 : 안녕하세요.
타쓰지 : 네.
타쓰지 자기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직원들, 상처가 있는 타쓰지의 얼굴을 보고 의아하다.
은비, 잠시 갈등하다가 쫓아 들어간다.
#39. 타쓰지 사무실
타쓰지, 자리에 앉는데 은비가 따라 들어온다.
은비 : 실장님.
타쓰지 : (본다)
은비 : 얼굴이 왜 그러세요?
타쓰지 : 계단에서 굴렀어요.
은비 : (상상이 안 간다) 왜요?
타쓰지 : (무시하며) 무슨 일이예요?
은비 : 아, 차, (바깥의 눈치를 슬쩍 보고) 우리 엄마 만나셨다면서요?
타쓰지 : 그런데요?
은비 : 우리 엄마하고 하신 약속 신경 쓰지 마시라구요. 그리고 혹시 오해하실까봐 말씀드리는 건데요,
우리 엄마 멋대로 한 약속이니까 저하고는 연관짓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타쓰지 : 오늘 저녁에 가기로 했는데?
은비 : 맘대로 하세요.
타쓰지 : 그래요, 그럼!
은비, 타쓰지를 잠시 보다가 홱 돌아서 나간다.
#40. 옷공장
인철, 연신 콧노래를 부르며 활기차게 그림을 그리고 있다.
혁, 기가 차다.
혁 : 너, 미쳤냐?
인철 : 내가 뭐?
혁 : 너 무슨 조울증 같애.
인철 : 그래? (휘파람)
혁 : (뚫어지게 관찰하며) 너, 미쳤지.
인철 : 응.
혁 : 미치는 것도 전염되냐?
인철 : 그런가 봐.
혁 : 그럼 나 어떡하냐?
인철, 갑자기 전화를 한다.
인철 : 박사님. .....예....공주, 잘 있죠?......네?
인철, 얼굴 굳는다.
#41. 은비네 집 (밤)
순자, 지난번 보다 더 바쁘게 일을 하고 있고
믹서기 뚜껑은 열려 내용물이 사방으로 튀어 있고 바닥에는 온갖 가루가 널려있다.
공주는 구석에 미안한 얼굴로 서 있다.
순자 : 내가 못 살아, 내가 못 살아. (안방 눈치를 보며) 뭘 보고 서 있어. 좀 치워.
순자, 걸레를 홱 던진다.
공주, 걸레를 탁 받아 들고 닦는다.
순자, 조미료병들을 들어 보는데 다 비어있다.
순자 : 이거 다 어따 부은 거야? 이거 어떻게 먹어. 내가 미쳤지. 어떡해. 어떡하면 좋아.
#42. 은비네 집 앞 (밤)
은비의 차가 서면 뒤 이어 타쓰지의 차가 선다.
은비, 차에서 내려 차에서 내리는 타쓰지를 짝 째려보고 안으로 들어간다.
타쓰지, 꽃다발을 들고 따라 들어간다.
#43. 은비네 집 (밤)
딩동. 현관벨이 울리자 채여사와 봉수, 안방 쪽에서 뛰어나온다.
채 : 아줌마, 다 됐어?
순자 :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네...
채 : 보조 데리고 뒷방으로 가 있어.
순자, 공주를 데리고 부엌 뒷방 쪽으로 간다.
봉수, 채여사를 따라 나오다가 공주를 보고 깜짝 놀란다.
봉수 : 아니, 저 아가씬 누구야?
채 : (문으로 가며) 파출부 보조.
봉수 : (따라가며) 뭐?
딩동딩동.
채 : 나가요---
채여사, 부리나케 문을 열면 은비가 먼저 홱 들어오고 타쓰지가 뒤이어 들어선다.
채 : 어서오세요.
타쓰지 : 안녕하십니까.
봉수 : 어서 와요.
타쓰지, 꽃다발을 채여사에게 안긴다.
채 : (꽃향기를 맡으며) 어머. 내가 꽃을 좋아하는 걸 어떻게 아셨어요? 정말 고맙습니다. 들어오시죠. ... 앉으세요.
타쓰지와 은비네 식구들, 지난번처럼 자리를 잡고 앉는다.
식탁에는 지난번보다 더 떡 벌어진 상이 차려져 있다.
타쓰지 : 번번이 고맙습니다.
채 : 별 말씀을. 오늘은 식사 하시고 아래에 노래방도 예약해놨으니까 노래도 하시고 천천히 놀다 가세요. 드시죠. 여보, 드세요.
일동, 식사를 시작하는데 먹을 수가 없다.
하지만 아무도 티를 내지 않고 이것저것 시식해보지만 모두 마찬가지라 조용히 수저를 내려놓는다.
채여사, 순자 있는 쪽을 짝 노려본다.
채 : 내가 오늘 좀 바빠서 아줌마한테만 맡겼더니 간이 좀 이상하죠?
타쓰지 : 네. 뭐, 별로...
봉수 : (어색하게 웃으며) 우리 식당으로 모실걸 그랬어.
채 : 어떡하지?
은비 : 그러게 누가 초대하래?
채 : (당황한다) 어머, 얘! 어머! 너, 정말!
타쓰지 : 괜찮습니다. 별로 시장하지 않습니다.
채 : 죄송해요. 바쁘신데 오시라 그래놓고. 아줌마! 아줌마!
순자 : (뛰어나온다) 예?
채 : (죽여 버리고 싶지만 이를 악물고 끝까지 우아하게) 오늘 간이 정말 이상해. 못 먹겠어. 중국집 전화해서 요리 몇 개 하고,
(타쓰지에게) 자장면? 짬뽕? 뭘로 하시겠어요?
타쓰지 : 전 됐습니다.
채 : 그래도 뭐 하나 시키시죠?
은비 : 난 자장면.
타쓰지 : 그럼, 은비씨하고 같은 걸로.
채 : 당신은?
봉수 : 난 짬뽕!
채 : (순자에게) 아줌마, 자장 셋, 짬뽕 하나.
순자 : 네. (가려는데)
채 : (자장면을 시키는 순간 도저히 못 참겠다) 그리고 내가 그냥 넘어갈라 그랬는데 너무 화가 나서 도저히 못 참겠네?
손님 초대해놓고 이게 뭐하는 짓이야?
순자 : 죄송해요.
타쓰지 : 아, 저는 신경 쓰지 마십시오. 저는 괜찮습니다.
채 : 아니에요. 이런 사람들은 따끔하게 버릇을 고쳐놔야 돼요. (얘기하며 점점 더 열받는다) 음식을 이따위로 해 놓고
누구더러 먹으라는 거야? 내 얼굴이 도대체 뭐가 돼? 손님이 얼마나 불쾌하시겠어?
순자 : ... 죄송해요...
공주 : (뒷방에서 나온다) 다 내 잘못이니 그 분을 너무 나무라지 마십시오.
공주와 타쓰지와 은비, 서로 눈이 마주치고 깜짝 놀란다.
세 사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떻게 행동해야할지 순간 헷갈린다.
타쓰지, 싸늘하게 공주를 외면하고 다시는 쳐다보지 않는다.
순자 : 들어가 있어!
채 : 그러게 내가 아무나 데리고 오지 말라 그랬지?
순자 : 죄송해요...
채 : 됐어. 중국집에 전화하고 이 상이나 치워. (타쓰지에게 다시 우아하게) 우린 저 쪽으로 자리 옮기죠.
타쓰지 : 저는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채 : 아니, 그러시면 우리가 미안해서 어떡해요?
타쓰지 : 초대해 주셔서 고맙구요, 다음엔 제가 한번 모시겠습니다. 오늘은 은비씨하고 둘이서 식사를 했으면 합니다.
채 : (반색을 하며) 아, 그거 좋은 생각이에요.
타쓰지 : (은비에게) 나갑시다.
은비, 공주를 계속 보는데 타쓰지, 망설이는 은비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데리고 나간다.
채여사와 봉수, 현관문까지 따라가 배웅한다.
채 : 안녕히 가세요.
현관문이 닫히고 채여사와 봉수, 흡족한 얼굴로 돌아선다.
봉수 : 오히려 잘 됐네. 안 그래?
채 : (안으로 들어가며) 아줌마, 대충 치우고 빨리 가. 피곤할 텐데.
봉수, 채여사를 따라 방으로 들어가며 다시 한 번 공주를 힐끗 본다.
공주, 이상하게 섭섭하여 타쓰지가 나간 쪽을 보고 서있다.
순자 : 뭐해? 빨리 치워.
#44. 아파트 입구 (밤)
타쓰지와 은비, 차 쪽으로 걸어온다.
은비 : 도대체 뭐하는 여자예요?
타쓰지 : 뭐 먹을래요?
타쓰지, 운전석 쪽으로 돌아가는데 인철의 차가 타쓰지의 차 뒤에 바짝 붙어 선다.
타쓰지, 헤드라이트 불빛에 눈이 부셔 인상을 쓰며 돌아보는데
인철, 차에서 내리다가 타쓰지와 은비를 보고 어이없어 한다.
타쓰지, 경멸하는 눈빛으로 인철을 보다가 차에 타고
은비도 불쾌한 얼굴로 인철을 보다가
은비 : 어머, 그럼, 강인철씨 부인? 허, 차!
은비도 타쓰지의 차 옆자리에 올라타고 떠난다.
인철,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기분이 더러워진다.
#45. 로비 (밤)
인철, 공주가 나오기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다.
타쓰지와 은비가 자기를 보던 눈빛이 생각할수록 불쾌하다.
인철 : 차!
이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공주와 순자가 나온다.
순자, 인철을 보자 흠칫 놀라고 공주, 반갑게 환하게 웃는다.
인철, 화난 얼굴로 공주와 순자를 번갈아 노려본다.
인철 : (화난 목소리로) 아줌마.
순자 : 내가 뭐?
인철 : 정말 이러셔도 되는 거예요?
순자 : 이거 봐. 인철이. 나도 피해자야. 나도 오늘 이 아가씨 땜에 짤릴 뻔한 사람이야!
인철 : 그러게 왜 데리고 와요?
순자 : 자기도 밥벌이 좀 하게 해달라 그래서,
인철 : (버럭) 애 상태를 보고 데리고 다니셔야죠! 에잇!
인철, 공주의 손목을 확 잡고 끌고 나간다.
순자, 어처구니가 없다.
순자 : 아니, 누가 누구한테 화를 내?
순자, 소리 지르다가 째려보던 경비와 눈이 마주치자 밖으로 나간다.
#46. 바 (밤)
타쓰지와 은비, 한마디도 안 하고 술만 홀짝홀짝 마시고 있다. 오랜 침묵...
은비 : ... (못 참고) 무슨 생각해요?
타쓰지 : (대답 없이 술을 마신다)
은비 : 다시 물어볼께요. 누구 생각해요?
타쓰지 : ...
은비 : 아까 그 여자 생각해요?
타쓰지 : (비로소 은비의 눈을 마주본다)
은비 : 기분 안 나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솔직히 호기심이 더 커서 따라왔어요. 누구예요?
타쓰지 : ...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여자.
은비 : ... 네?
타쓰지 : ... 자기만의 세상이 따로 있는 여자. ... 그게 내가 그 여자에 대해서 알고 있는 전부야.
은비 : ???
타쓰지 : ... 나, 곧 돌아가게 될 거야.
은비 : 네? 아니 왜요? 오신지 얼마나 됐다고?
타쓰지 : 재미도 없고,
은비, 다시 술을 마신다.
타쓰지 : ... 고은비씨.
은비 : (본다)
타쓰지 : 우리, 사귀어볼까?
은비 : ... (피식 웃고) 그 여자 대신인가요?
타쓰지 : 응.
은비, 대꾸 없이 다시 혼자 술을 따라 마신다.
타쓰지 : 싫음 말고.
은비 : ... 아뇨, 좋아요.
타쓰지와 은비, 서로 잔을 부딪고 쭉 들이킨다.
#47. 은비네 집 앞 (밤)
은비, 차 앞에 서 있고 타쓰지, 뒷자리에 앉아 은비에게 손을 흔든다.
은비 : 안녕히 가세요.
차, 출발한다.
은비, 설레는 마음으로 한참동안 가는 차를 바라본다.
#48. 타쓰지의 차 안 (밤)
타쓰지, 눈을 가리고 뒷자리에 머리를 기대고 앉아 있다.
타쓰지 : (일어로) 차 돌려.
#49. 인철이네 집 (밤)
욕실 안에서 인철이 떠드는 소리가 들리고
공주, 옷을 갈아입으며 널린 옷가지들을 정리하는데 인철의 겉옷 안주머니에서 목걸이가 툭 떨어진다.
공주, 목걸이를 내려다보며 굳는다.
인철 : (소리) 어떻게 나만 없으면 사고를 치냐? 공주라는 애가 공주답게 행동을 해야지,
왜 엉뚱한 데 가서 무수리짓을 하고 있어? 그 자식하고 그 기집애하고 널 얼마나 우습게봤겠냐?
인철,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욕실에서 나오다가 목걸이를 손에 있는 공주를 본다.
공주, 부들부들 떨며 분노에 찬 눈으로 인철을 본다. 배신감에 공주의 눈에 눈물이 핑 돈다.
인철, 당혹스럽다.
인철 : 아니, 저, 그게...
딩동. 두 사람, 움직이지 않는다. 딩동.
공주 : (인철을 노려보며 무섭게) 모른다고 하지 않았느냐? 니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느냐?
내, 너의 진심을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눈물이 주르륵 흐른다)
공주, 싸늘하게 외면하고 돌아서서 현관으로 간다.
인철, 잡지도 못하고 굳은 얼굴로 서있다.
공주, 현관문을 벌컥 열면 안에서 응답이 없어 돌아가려던 타쓰지가 문 열리는 소리에 다시 돌아본다.
공주의 눈물 젖은 눈과 타쓰지의 놀란 눈이 마주친다.
공주 : 잘 왔다. 네 집으로 가자.
공주, 타쓰지를 지나치는데.
인철 : 가지마!
공주, 잠시 섰다가 그대로 타쓰지를 지나쳐 가버린다.
타쓰지, 공주와 인철을 번갈아 보다가 공주를 따라 가고
인철, 참담한 심정으로 그 자리에 계속 굳어 있다.
문이 꽝 닫힌다. 인철, 가슴이 무너져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