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피는 봄날
어제 춘분이 지났다. 여기저기 들꽃들이 피어나는 삼월 넷째 토요일이다. 이럴 땐 어디로 나가볼까 순서를 정하기 쉽지 않다. 지난 주말은 의림사 계곡으로 들어 봄날에 피어나는 야생화들을 보고 나왔다. 응달 낙엽 검불을 비집고 노루귀와 현호색이 피어났다. 얼레지는 꽃망울을 달고 나오고 산자고와 홀아비바람꽃은 아직 피질 않았다. 아마 이번 주말이면 그 꽃도 필 것이다.
그곳 산기슭은 낙엽활엽수림이다. 낙엽 쌓인 검불에 자라는 일년생이나 다년생 초본류들은 높게 자라는 나무가 그늘을 드리우기 전 이른 봄 짧은 시기 꽃을 피워 제 임무를 완수했다. 생강나무와 삼지닥나무에서도 노란 꽃을 피우고 있었다. 낮게 자라는 생강나무와 삼지닥나무는 그들보다 높게 자라는 낙엽활엽교목이 잎이 돋아 그늘을 드리우기 전 꽃을 피우기는 마찬가지였다.
토요일 아침 평소 출근 시각과 같은 때 학교로 나섰다. 나한테 주말 학교는 근교 들녘이나 산자락이다. 동정동에서 북면 온천장으로 넘나드는 버스를 탔다. 화천리에 내려 감계지구 아파트가 들어서는 곳으로 향했다. 화천리 일대는 부동산중개사무소와 식당들이 많이 생겨났다. 올해 늦은 봄부터 입주가 시작될 모양이었다. 나는 아파트단지와 인접한 조롱산으로 오를 작정이다.
멀리서 바라보면 산의 형상이 새장처럼 생겼다 해서 조롱산이다. 조롱산엔 여태 제대로 된 등산로가 없었다만 아파트 입주가 시작되면 주민들 즐겨 오르지 싶다. 봄날이면 내가 텃밭처럼 산나물을 마련해 온 곳이었는데 앞으로는 생태 환경이 많이 달라질 것이다. 조만간 인적이 드물었던 조롱산에 등산로가 생겨 봄이면 내가 뜯어오던 취나 두릅 같은 산나물도 사라질 것이다.
아파트 건설업체가 다른 경계선에 공원과 어린이 놀이터를 조성해두었다. 어디선가 옮겨온 큰 소나무가 심겨져 있고 운동기구는 시운전을 하지 않았는지 테이프가 감겨 있었다. 공원을 지나 조롱산 기슭으로 올랐다. 조롱산 양달은 소나무가 많고 응달은 오리나무를 비롯한 활엽수림이다. 나는 아파트단지 사이로 지나 소나무 숲으로 들었다. 비탈진 산자락을 조심스럽게 올랐다.
조롱산은 그리 높지 않은 산이다. 소나무 숲을 지나 산등선에 올라 뒤돌아보니 산 아래 신축 중인 아파트가 우뚝 솟아 예전 스카이라인이 아니었다. 소나무 숲을 지나니 졸참나무를 비롯한 낙엽활엽수가 자랐다. 그 사이 양지쪽 언덕엔 선홍색 진달래가 화사하게 피어났다. 진달래 개화 시기는 해발고도에 따라 차가 있고 양달이냐 응달이냐 따라서도 꽃 피는 시기가 차가 난다.
우리 지역 천주산은 진달래로 유명하다. 조롱산에서 바라보이는 건너편 서쪽이다. 천주산 진달래 군락지는 북사면 응달이다. 조롱산보다 해발고도가 더 높다. 천주산 진달래가 피는 때는 사월 초순으로 지역 사회단체에서 진달래 축제를 연다. 도심에서 꽃구름으로 피어났던 벚꽃이 질 무렵이다. 전국 각처 등산 마니아들이 천주산 진달래를 구경하려고 몰려와 찻길이 막힐 정도다.
나는 조롱산 산허리를 몇 구비 돌아갔다. 산골짝 어디쯤에서 달래가 보여 몇 줌 캤다. 달래는 작년 가을에 싹이 돋아 겨울이 오기 전 제법 자란다. 논밭에 심겨진 마늘이나 양파가 겨울을 나듯이 달래도 겨울을 나면서 잎줄기가 얼고 녹고 하면서 끝 부분은 말라 시들어 있었다. 시장에 파는 다래는 비닐하우스에 키운 것이 대부분이다. 야산에 절로 자란 달래는 향기가 더 진하다.
산허리에서 산기슭으로 내려가니 동전마을이었다. 그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텃밭을 가꾸는 지인한테 연락했더니 차를 몰아 나타났다. 지인 텃밭에 들렸더니 매화가 활활 피어났다. 몇 해 전 봄에 입적한 법정스님 법문이 떠올랐다. 산중 오두막에서 홀로 구도 정진에 힘쓴 스님은 매화는 반쯤 피었을 때가 아름답고 벚꽃은 활짝 피었을 때가 아름답다고 했다. 꽃피는 봄날이다. 14.0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