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화동..치우님
사랑했지만..프시키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준민은
그날들..하얀새님
<오랜 날들이 지난 뒤에도>
그대, 무엇을 꿈꾸었기에
어느 하늘을 그리워했기에
아직 다 부르지 못한 노래 남겨두고
홀로 먼길을 떠나는가.
다시 날이 밝고 모든 것들이 깨어나는데
그대는 지금 어느 구석진 자리에 쓸쓸히 서서
무얼 바라보고 있는가.
고운 희망의 별이었는데
이 형편없이 망가진 인간의 세상에서
그대의 노래는 깜깜어둠속에 길을 내는
그런 희망의 별이었는데
그댄 말없이 길을 나서고
우린 여기 추운 땅에 남아
무슨 노래를 불러야 하는 거냐
도대체 무얼 노래해야 하는 거냐
알것같아, 그대 말하고 싶었던 게 무언지
그대 온 몸으로 노래하던 그 까닭을
쉬지 않고 달려온 그 청춘의 의미를
이제 조금은 알 것 같아
들려 들릴거야
그대의 기타소리
대숲의 바람처럼 몸을 돌아나오던
그 하모니카 소리
우리 고단한 삶에 지쳐 비틀거릴 때마다
우리들 마음속에 소용돌이칠 그대의 노래
우리들 팍팍한 마음속에 뜨겁게
울려날 그대의 목소리
어느날 영롱한 나팔꽃처럼
환히 피어날 그대의 노래
그대는 그렇게 우리들 탁한 삶의 한켠에
해맑은 아침으로 따뜻한 햇볕으로
남아있을테지
다시 겨울이 오고, 오랜 날들이 지난뒤에도
- 백 창 우 -
너무 빨리 가버린 그를 추모하는 글...
김광석씨를 처음 만난 것은 대학 시절이었다.
물론 직접 얼굴 본 적은 한 번도 없다.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창립 멤버이기도 한 그는
내가 좋아하는 <광야에서>를 부르기도 했다.
새내기 때 뭣도 모르고 데모하러 다니며 많이 불러 재꼈던 노래다.
그는 그룹 <<동물원>>에 참여하여 <거리에서>, <혜화동>, <변해가네>등을 불렀다.
모두 다 좋아하는 노래이다.
음유시인이라 불리던 그의 노래는 나를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위안이 되었을 것이다.
용인 살 때 준민은과 함께 주로 의정부 가던 차 안에서
그의 추모앨범에 있던 노래 중,<두바퀴로 가는 자동차>와
애들과 어울리지는 않지만 내가 좋아하는 <사랑했지만>을 온 가족이 열창하곤 했었다.
우리 가족 중에서는 옥씨와 막내 시동생, 막내 동생이 그의 광팬이라 할 수 있다.
예전에 막내 시동생과 함께 살던 시절에는 아기 학준이를 막내 시동생이 가끔 재우곤 했었다.
어쩔 수없이 학준이도 그의 노래와 가까이 지낼 수밖에 없었다.
시동생이 자장가로 김광석씨의 노래를 항상 틀어줬으니 말이다.
지금에 와서 쭈니는 느린 그의 노래보다는 빠른 노래가 좋다고 말한다.
어린 시절의 좋았던 기억은 아마도 머리 한 켠에서 잠자고 있다보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볼 수 없는 그가 몹시도 생각이 날 때가 가끔 있다.
마음이 잘 다스려지지 않으면 더욱 그러는 것 같다.
준민은 학교에 보내고 같이 놀자는 주몽이를 물리치고 호젓하게 앉아 커피 한 잔 마시며
오랜만에 <사랑했지만>을 들으니 눈물이 마구 난다.
이 노래에 언젠가 내 마음을 실었던 적이 있었다.
갑자기 그 때 생각이 나니 눈물이 나네.
울보 프시키~~~메롱!!!!@@@@
첫댓글 어느 날 갑자기 김광석씨 생각이 나서 올렸는데, 이거 저거 챙기다 보니 제가 좋아하는 노래를 거의 다 모아두었네요.
우리집에는 내가 30대에 산 2장짜리 C.D.가 있어 하나는 '노래 이야기', 또 하나는 '인생 이야기' 가을 밤에 들으면 너무 좋아. 서른 즈음에란 노래를 들으며 그런 생각 했었어 만약에 살아 있다면 나이 마흔에 대해서도 노래했을텐데... 슬프다...
언냐두 좋아하셨구나....저희 집 옥씨두 아주 좋아라하지요. 테잎이 많아요. 요절한 김광석씨가 너무 보고 싶지요
와우!!프시케짱!나두 좋아 하지만 울 신랑두 김광석씨 광 팬이야!고마우이 좋은 음악올려줘서....
그러셔요
그럼 두 분이 사이좋게 잘 들으셔요 
김광석씨 노래는 좋은 노래가 많지요
예전 대학로소극장에서 공연할 때 봤는데 노래는 물론이고 의외로(?? ㅎㅎ) 끼로 똘똘 뭉친 유머와 재치가 넘치는 가수분이었는데 안타까워여..마니아인 후배 덕분에 알았죠~~^^*
영부인은 직접 보셨군요
그래서 더 안타깝겠어요. 우리 세대는 그를 거의 좋아했던 것 같아요.